코스모스가 가는 허리를 흔들며 길손을 반겨 주던 가을날 오후였다. 고향을 다녀오는 중에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도롯가에서 승복을 입은 어느 분이 손짓하는 걸 보고 차를 멈추었다. 차에 오른 그분이 건네는 인사말의 목소리를 듣고 보니 뜻밖에도 비구니 스님이었다.

“혹시 불교 신자이신지요?”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이고 기독교계 미션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승복을 입은 제 모습을 보고 차를 멈추셨는지요?”
“낯선 분을 잘 태우지 않는데 성직자라 믿음이 갔는가 봅니다. 아니, 우리는 그저 이웃이니까요.”

스님의 그런 질문은 우리 사회의 종교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나라는 종교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이 더불어 살면서 비교적 화합하며 지내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웃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스님은 옥천 읍내의 어느 약국에 처방을 부탁한 약을 찾기 위해 잠시 들른 후에 대전 고속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거기서 어디로 갈 예정이냐고 되물었더니 서울행 고속버스를 탈 것이라고 하여 행선지가 같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우연하게도 스님과 함께 세 시간 남짓 서울까지 동행하는 행운(?)을 누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스님은 서울의 모 사찰에 적을 두고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돕고 있다고 하였다. 아무튼 주로 교회와 사찰에 관해 궁금해하던 것을 화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스님은 물질에는 크게 관심도 염려도 없으나 현재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아야 할 때 어려움이 많다며 인간적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였다.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 저녁식사 때가 가까워져서 휴게소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하고 차를 마셨다. 내가 돈을 지불하자 스님은 태워다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대접까지 받는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하였다. 나는 성직자인 스님께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게 오히려 영광이라며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 여동생 내외도 신학을 공부하고 최근에 교회를 개척하여 어렵게 지내는 성직자인데 종교는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일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오면서 기독교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기독교 대학에서 재직하며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살아왔다. 불교의 교리를 아는 바가 없고 기껏 대학 시절에 《반야심경》 해설서를 읽어 본 적밖에 없다. 그런데 그 스님에 대한 경우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여러 훌륭한 스님들의 글을 읽은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청담 스님의 자서전을 우연히 읽고 스님의 삶에 무척 감동받은 적이 있다. 청담 스님에 대한 감동 때문에 그 이후에도 수행이 깊은 여러 스님에 관한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어 보았다.

청빈과 외로움을 벗 삼으며 오로지 구도의 길을 간 경허 스님, 40년 이상을 장좌불와의 고행을 스스로 택하여 구도와 학문에 전념한 청화 스님에 관한 책도 읽었다. 그리고 누더기를 입고 처소에 철조망을 두른 채 살다가 입적하신 성철 스님을 소개한 책을 보며 경이로움마저 느낀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비롯한 많은 수필집은 문학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아 거의 모두 사서 읽어 보았다. 내가 중국 산둥 성 소재 청도대학 한국어과 초빙교수로 갔을 때 ‘한국어 독해’ 강의 중 법정 스님의 수필 작품 여러 편을 복사해서 교재로 쓴 적도 있다. 

아무튼 내가 읽은 책들은 불교의 경전이 아니었으나 기독교 신자인 내가 불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준 책들이다. 그 책들에 나타난 스님들의 삶을 통해서 종교적 차원을 떠나 진정한 구도적 삶의 길이 무엇인가를 본받고 싶었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그 비구니 스님을 대할 때도 그런 분들에게서 얻은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관념이 부지불식간에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나는 평범한 우리네 삶의 경지를 넘어선 큰스님들의 행적이 그리운 때도 있다.

어릴 적 봄놀이 가시던 할머니를 따라가 본 직지사, 중고교 시절에 소풍을 가던 갑사나 법주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들리는 풍경소리, 노스님의 독경 소리, 그윽한 향불 냄새가 고찰의 고요 속으로 이끌며 불교 신자도 아닌 나에게 경건함마저 느끼게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분위기는 간 곳 없고 화려하고 비대해진 산사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붐비고 잡담이 소란스러울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감동케 하던 큰스님들의 맑은 눈빛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지나치게 내가 고답적이요, 시대에 뒤져 있는 탓일까. 더구나 대형교회가 늘어가지만 교역자 세습 문제는 물론 각종 물질에 얽힌 불미스런 사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욱 큰스님들의 누더기 옷이 생각난다.

어느덧 도봉산 산정에서 단풍이 물들어 내려오며 십여 년 전에 그 비구니 스님과 동행하던 추억을 깨워준다. 두툼하게 약을 넣은 종이가방을 내려놓고 몇 차례 합장하고 창동 전철역 계단을 총총히 올라가던 스님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법명도 거처도 모르는 그 스님은 새벽마다 부처님 앞에서 예불을 드릴 것이다. 그동안 나는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올릴 것이다. 각자 믿고 우러르는 그분께서 일러 주신 ‘남을 나처럼 여기라’는 말씀이 이 땅에 충만하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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