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성리학을 회통한 사상가*

* 이 글은 졸저 《송석구 교수의 불교와 유교강의》 중 〈불교와 율곡철학〉(p.290~326)을 개정 보완한 것이다.

1. 서언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는 조선 중기의 어느 성리학자보다도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였다. 그 자신이 젊었을 때(19세) 금강산에 입산한 사실도 있다. 당시 그가 출가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설이 구구하지만, 율곡 자신이 후진에게 언급한 내용을 보면 그는 한때 불교에 심취한 것이 틀림없다.

“겉으로 변형된 행색이 문제가 아니고, 그 마음이 깊이 빠졌으니 변형하지 않은 것이 뭐가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이미 불교에 깊이 빠졌으면”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의 속내가 드러난다. 그는 불교의 진리나 유교의 진리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불가의 출가와 멸인륜적 부분에 동감하지 않고 유가의 현실주의에 동의함을 본다.

2. 돈오(頓悟)와 교기질(嬌氣質)

불교의 근본은 불성을 깨침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현하는 성인에 있다. 불성과 선성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율곡의 견해이다. 그런데 불성을 깨치는 것을 돈오(頓悟)라 하고 성인이 됨을 교기질(嬌氣質)이라고 보고 있다.
 
불교에서는 깨침을 전이(轉移), 몸바꿈이라 한다. 나아가 모든 훈습을 목록 없애고 본래의 부처님 자리 일심(一心)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율곡 역시 기질을 변화하여 본성으로 돌아감을 강조한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아름답게 바꾸기 힘들고 타고난 힘이 약한 것을 강하게 바꿀 수 없으며 신체 역시 단신을 장신으로 바꿀 수 없다. 오직 사람의 마음과 뜻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으니 불초(不肖)한 것을 현명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의 타고난 마음이 허령(虛靈, 비어 있고 신령하다)하기 때문에 타고난 천품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으며 현명함보다 귀한 것은 없다.

여기서 허령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곧 천리(天理)에서 왔음을 의미한다. 교기질은 이러한 허령한 인간의 본성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인간은 타고난 신체적 특징은 바꿀 수 없으나 인간의 허령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이것은 기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질을 바꾼다는 뜻은 ‘타고난 본성’ 회복이며, 이를 위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주장한다.

극은 극복한다는 것으로 이기는 것이고 복은 되돌린다는 것이며 예는 천리의 절도를 말한다. 극기복례란 타고난 개인적인 욕망이 발현되는 자신의 기질을 극복하여 천리의 절도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루만이라도 자기를 극복하여 예를 지키면 천하의 사람들이 자신의 어진 마음과 함께한다. 어진 마음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천리, 어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仁)을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 불성이라 함은 모두가 자비의 마음을 말한다. 불교의 자비나 유교의 인이나 그 내용은 비슷하다. 그러한 자비에 도달하려면 깨침(돈오)이 있어야 한다. 이 돈오는 근본적인 ‘나’ ‘불(佛)’ ‘일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불퇴전(不退轉)이 있어야 한다. 깨침은 내가 전이되는 것이다. 율곡이 성인이 되고 ‘천리’ ‘본성’ ‘어짐[仁]’에 돌아가기 위하여서는 나의 이기적인 기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곧 ‘교기질’이다. 겉으로 일시적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전신으로 변화되고, 바뀐 것을 말한다.

3. 노승과의 문답

율곡이 금강산 입산 초기부터 불교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로는 그의 〈풍악증소암노승(楓嶽贈小菴老僧)〉이라는 글을 들 수 있다.     

이 글은 율곡이 금강산에 소풍을 갔던 길에 어느 암자에서 공부하고 있는 노승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승(僧)이 묻기를, “유가에도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말이 있느냐?”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맹자는 성선(性善)을 말할 때 말끝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하니, 어찌 즉심즉불과 다를 것이냐. 다만 우리 유가에서 본 것이 더욱 실(實)이 있다.”라고 하였다. 승은 즐거이 여기지 아니하고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비색비공(非色非空)은 어떤 말이냐?” 하였다.

내가 “이것도 또한 앞에서 말한 경우이다”라고 답하니, 승이 비웃었다. 내가 바로 말하기를, “솔개가 날아 하늘에 오르고 물고기가 못에서 뛰어노는 것이 색(色)이냐 공(空)이냐?”라고 하였다. 승이 말하기를, “비색비공은 진여체(眞如體)이다. 어찌 그와 같은 시에 비할 수 있느냐.”라고 하였다. 나는 웃고 말하기를, “이미 언설(言說)이 있었으니 바로 경계(境界)이다. 어찌 체(體)라고 하겠느냐. 만일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妙處)는 전할 수 없는 것이요, 불가의 도는 문자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심즉불(卽心卽佛)’에 대해 성선(性善)과 요순을 비교하여 말한 것이라든지, 언설이 있으면 이미 경계가 있게 되어 진리의 체가 문자에 구애된다고 한 대구(對句)는 불교에 대한 그의 지식의 깊이와 선 체험의 경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선문(禪門)에는 ‘개구착(開口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선가의 진리인 마음의 체는 말로 하면 이미 그 체를 잃고 경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도(道)는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경구(驚句)이다. 따라서 율곡이 언설은 이미 경계라고 대답한 것은 이러한 선가의 세계를 마치 알고 사용한 듯한 놀라운 일면이 있다. 이러한 예는 그가 쓴 〈연비(鳶飛)〉의 시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魚躍鳶飛上下同   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아, 본래 아래 위가 하나인데,
這般非色亦非空   저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니 ‘색즉공(色卽空), 공즉색(空卽色)’이니라.
等閒一笑看身世   등한일소(等閑一笑)하고 내 신세 돌아보며,
獨立斜陽萬木中   석양 비낀 숲 속에 홀로 서 있더라.

유가의 눈으로 불가를 보려 했으나 오히려 불가의 진리를 유가의 이론으로 변호하였다는 느낌마저 들 수 있을 정도로 율곡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확연히 이해하고 깨치고 있다. ‘새가 위로 날고 고기가 물 위에 뛰는’ 자연의 진리 그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라는 것이다.

율곡은 이러한 진리의 본체를 문자로 세운다면 이미 경계인 현상에 사로잡혀 그 본체를 드러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에서 율곡은 “불교에서는 본체를 마음이라 하고 유가에서는 이를 성(性) 또는 이(理)라고 했음이 다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 맹자가 성선을 말하면서 요순을 일컬은 사실을 들어 이것이 불교의 ‘즉심즉불’과 같다고 말한 것은, 불교에서 심(心)을 깨쳐 ‘불(佛)’이 된 것과 유가에서 인간의 본성인 선(善)을 그대로 실현하여 요순의 ‘깨친’ 경지에 드는 것이 서로 같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율곡과 불교적 세계의 합일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는 그의 시 〈여산인보응하산지풍암이광문가숙초당(與山人普應下山至豊巖李廣文家宿草堂)〉이다.

學道卽無着   도(道)를 배움이 곧 집착이 없음이라,
隨緣到處遊   인연을 따라 어디든 놀 수 있네.
暫辭靑鶴洞   청학동을 잠깐 이별하고
來玩白毆州   백구주를 구경하노라.
身世雲千里   이내 몸 신세는 구름 천리요,
乾坤海一頭   건곤은 바다 한 모퉁이로다.
草堂宿寄者   초당에서 잘 자고 가는 도다,
梅月景風流   매화에 비친 달이 풍류로다.

여기에서 ‘도는 무착(無着)’이라는 어구는 그가 불교적 수행의 진수인 집착을 여의는 세계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불교에서는 무집착이야말로 사물의 진상을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적 한계에 의하여 사물을 한정시켜 자기의 경험 세계 내에서만 그것을 표준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사물은 개방성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폐쇄성의 사유는 그 사물 자체를 따라갈 수 없다.

여기에서 《금강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있는 바 모든 상(相)은 허망하나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如來)를 볼 것이다.

이는 집착하지 않는 데서 여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금강경》은 나아가 집착의 대상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보살은 마땅히 일체상(一切相)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발하되, 이는 마땅히 색(色)에 주(住)하지 않고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주착(住着)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불교적인 표현들은 도는 어떤 고정불변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미 사물의 진상인 도는 우리의 사고의 한정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러한 분위기는 《금강경》뿐만 아니라 많은 경전의 주요한 실천 수행의 요체로 나타나고 있다.

4. 삼요(三要)와 삼불(三不)
 
율곡은 금강산에 입산하였다 돌아오면서 자기를 환성(喚醒)시키는 〈자경문(自警文)〉 범14조를 지었다. 이 글은 그가 유가에서 불가로 들어갔다 다시 유가로 나오면서 그의 공부 방향의 일대결단을 적은 것이다. 그는 〈자경문〉 제1조에 “먼저 자기의 뜻을 크게 가지어 성인으로 준칙을 삼아야 할 것이니,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와 같이 도(道)의 궁극 목적을 ‘성인에 둔다’는 뜻을 확고히 하는 데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공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오직 이 뜻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이유를 깨달아서 ‘불(佛)’이 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뜻만 세워 열심히 공부한다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누구나 마음을 깨달으면 곧 부처라고 말하는 불교의 ‘심즉시불(心卽是佛)’의 견해와 상통하는 것이다.
또 〈자경문〉 제13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래 놓아둔 마음을 일조(一朝)에 걷잡아 힘을 얻는 것이 어찌 용이할 수 있으랴. 마음은 산 물건이니 정력(定力)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요동(搖動)되어 편안하기 어렵다. 만일 사려가 분요(紛擾)할 때에 악을 싫어하여 끊어버리려고 생각하면 더욱 분요가 일어나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여, 나에게서 말미암지 않은 것같이 느낀다. 가사 단절한다고 해도 다만 이 단절하려는 생각이 가슴속에 가로놓일 뿐이니 이것도 망념(妄念)이다. 분요할 때를 당하여 정신을 수습하여 가볍게 관리하고 그것과 같이 가지 말 것이니, 공부가 오래되면 반드시 응정(凝定)할 때가 있어서 집사(執事)가 전일(專一)하게 될 것이니 이것도 정심(定心)의 공부이다.

여기에서 율곡은 경(敬)의 공부 방법인 주일무적(主一無滴)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오히려 정심(定心)공부로 오직 망념을 버리는 방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선문의 화두수행의 방법에 너무나 일치하고 있다. 선문에서는 화두를 쓰는 방법을 설명할 때 오직 본수화두(本修話頭)만 쥐고서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지금 들고 있는 화두만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보면 율곡은 선문의 망념을 제거하는 방법을 유가의 정심공부에 적용한 것 같다.

나아가 그는 공부가 성취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을 입지 단계에서 찾으면서, 뜻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지적한다.

뜻이란 기(氣)의 장수(帥)이니, 뜻이 전일(專一)하면 기가 동하지 않는 것이 없다.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뜻이 서지 않은 까닭이다. 뜻이 서지 않는 데는 그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불신(不信)이요, 둘째는 부지(不智)이며, 셋째는 불용(不勇)이다. ‘불신’이란 무엇인가? 성현이 후학에게 밝게 알리어 명백하고도 간절하게 가르쳐 주었으니 만일 그 말에 따라 순서대로 나아가면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는 이치인데, 그런 일을 하고도 그런 공이 없는 것은 아직까지 없다. 저 불신하는 이는 성현의 말이 사람을 권유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만 그 글만 완미할 뿐이요 몸으로 실천하지는 않고, 입으로 떠드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행하는 것은 속세의 행위이다. ‘부지’라는 것은 인생의 기품이 만 가지가 되어 같지 않은 것을 말하나, 힘써 알고 힘써 행하면 성공하는 것은 한가지이다. 뛰며 장사 지내는 놀이를 한 것은 맹자의 유희였지만 마침내 아성(亞聖)이 되었고, 저물게 돌아오고 사냥질하는 것을 즐긴 것은 정자의 버릇이었지만 마침내 큰 현인이 되었으니, 어찌 반드시 나면서부터 알아야만 비로소 덕을 이룰 수 있겠는가? ……‘불용’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성현은 우리를 속이지 아니한다는 것과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소 알면서도, 다만 태만하게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분발하고 진작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제 한 일을 오늘 개혁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오늘 좋아하는 일을 내일 개조하기를 꺼린다. 이와 같이 고식적으로 우물쭈물하여 한 치를 나아가면 한 자씩 후퇴하니 이것은 불용의 소치이다.

이와 같이 율곡은 입지가 세워지지 못하는 장애가 이 ‘삼불(三不)’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당시 불교계의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가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삼요(三要) 사상과 너무 일치한다. 서산은 말하기를 “참선하는 데는 반드시 세 가지 요긴한 것이 있으니, 첫째 큰 신심(信心)이요, 둘째 큰 분심(憤心)이요, 셋째 큰 의정(疑情)이다. 만약 그 속에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이 되고 만다”하였다. 여기서 신심(信心)은 성인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불신(不信)과 통하고, 분심(憤心)은 불용(不勇)과 통하며, 의정(疑情)은 부지(不智)와 유사하다고 보인다.

《화엄경》에서도 “믿음은 모든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여, 성불(成佛)을 하는 데는 믿음이 뿌리가 됨을 역설했다.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또한 “수도자(修道者)는 먼저 반드시 뜻을 세워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그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 믿음은 내가 부처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곡의 입지도 그 근본 취지가 나와 성인이 둘이 아니라는 믿음의 바탕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입지론과 불교의 신(信)은 매우 유사 상통한다. 물론 율곡이 꼭 서산의 《선가귀감》을 보고 삼불 사상을 전개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서산의 삼요는 서산 자신의 창작이 아니라 이미 선문에서 상식화된 전래의 사상을 《선가귀감》에 수록한 것이기 때문에 율곡의 넓은 지식으로 이미 선문의 책자에서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율곡이 이 글을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5. 정심(正心)
 
성리학자들은 심을 중시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심도심설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자는 “마음이 허령함과 깨달음은 하나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율곡은 심성정의(心性情意)가 일로(一路)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심의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은 하나인데, 인심과 도심으로 나누어 두 가지 명목을 두어 설명한다” “심은 성(性)을 담는 그릇”이라는 율곡의 말들은 모두 이러한 차원의 발언이다. 그리고 율곡은 심성정의(心性情意)를 나누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대개 심(心)이 발하지 않은 때는 성(性)이고, 이미 발한 것은 정(情)이요, 발한 뒤에 헤아리고 생각함은 의(意)이다. 심은 ‘성정의’의 주(主)가 되므로 그 발하지 않은 것과 이미 발한 것 및 발한 후에 비교하여 서로 대어보고 헤아리는 것을 다 심이라 이른다.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은 이(理)이다. 발하는 것이 정리(正理)에서 나오고 용사(用事)하지 않으면 곧 도심이니 칠정의 선한 一邊이요, 심이 발할 때에 기가 이미 용사하는 것은 인심이니 칠정의 선과 악을 합한 전부이다. 이때 기의 용사를 알고 잘 살펴서 정리에 따르게 하면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들을 것이요, 만일 잘 살피지 못하여 되는 대로 방임하면 정(情)이 이기고 욕(欲)이 성하여 인심은 더욱 위태롭게 되고 도심은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율곡은 심(心)을 성(性)의 그릇(器)으로서 정(情)이나 의(意)가 모두 포괄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들은 다 같이 심인데 발한 후에 기가 용사하면 인심이 되고 발하는 것이 정리(正理)에서 바로 나오고 기가 용사하지 못하면 도심이라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도심은 칠정의 선일변(善一邊)이요 인심은 심이 발할 때 기가 이미 용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율곡이 도심은 사단이요 인심은 칠정이라는 견해를 배척하고, 사단도 칠정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칠정 중의 선일변이라는 독창적 견해를 피력하였던 것이다.
율곡이 인심이나 도심을 설명할 때 용사하고 용사하지 못하는 데서 인심과 도심이 구별된다는 견해는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 심즉시불(心卽是佛)이건만 마음의 번뇌·망상에 의해 중생이 된다는 경우와 상통하고, 더구나 인심과 도심이 모두 일심一心이라는 율곡의 주장의 그의 탁견이라 보인다. 마음이 미혹하여 중생이 된다는 설과 기가 용사하고 하지 않는 데에 인심·도심이 구별된다는 유사성을 불교에서 찾아보면, 혜능(慧能, 638~712)의 《육조단경(六曹壇經)》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간 사람이 다 본래부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따름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에 따라 견성(見性)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 있는 사람은 불성(佛性)에는 본래로 차별이 없고 다만 미혹함과 깨친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 마음을 깨치지 못하여 번뇌·망상을 가지고 생멸(生滅)을 끊임없이 이루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일어나는 이 번뇌·망상을 쉬면, 그리고 그 마음을 깨치면 불(佛)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뇌·망상은 마음과 함께 있는 것이지 마음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 〈사구게(四句偈)〉에서는 “심(心)은 불(佛)과 중생(衆生)이 차별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이다, 중생이다’라고 나누어 보지 않는 논리가 불교적이라고 한다면, 율곡이 심·성·정·의 일로(一路)라고 하여 인심과 도심을 하나로 보는 견해는 불교적 윤리와 유사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율곡은 일심(一心)이나 정심(正心)이라는 용어를 중요하게 쓰고 있다. 그의 《성학집요》의 ‘정심’ 장은 이러한 견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정심’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위 두 장의 공부는 정심 아닌 것이 없으나 각각 주장하는 바가 있으므로, 따로 정심을 주로 한 선현의 훈계를 편집하여 함양과 성찰의 뜻을 상세히 논하였다. 주자는 말하기를, “경(敬)은 성문(聖門)의 제일의(第一義)이므로 철두철미하게 해야지 간단(間斷)이 있으면 안 된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 글의 대요는 경(敬)을 주로 삼았다.(제3장의 收斂은 경의 처음이요, 이 장은 경의 끝이다.)

경 공부를 말하면서 일반적으로 쓰는 거경(居敬)이라는 표현 대신, 함양과 성찰을 함께 묶어 정심(正心) 공부라고 한 것은 불교의 정심을 비교할 때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더 나아가 일심을 강조하는 것도 쉽게 넘어갈 것만도 아니다. 율곡이 일심을 말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심은 하나인데 도심과 인심으로 나눈 것은, 성명(性命)에서 나온 것(道心)과 형기(形氣)에서 나온 것(人心)을 구별한 것이다.

사람의 일심(一心)은 온갖 이치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요순의 인(仁)과 탕무(湯武)의 의(義)와 공맹(孔孟)의 도(道)는 다 고유한 성분이다. 다만 이 기품(氣稟)이 앞에서 구애되고 물욕이 뒤로 함몰시켜 총명한 사람이 혼미해지고 정대(正大)한 사람이 간사하게 되므로, 혼미하여 어리석은 중인이 되어 실상 금수와 다름이 없으나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이(理)는 그래도 공명하고 정대하다. 다만 엄폐한 바 되지만 끝내 이(理)는 식멸(息滅)되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혼미한 것을 내버리고 그 간사한 것을 끊어 버린다면 밖에서 빌려오지 않고도 요순·탕무·공맹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자가(自家)의 무진장(無盡藏)의 보화를 유암(幽暗)한 땅에 묻어 놓고도 알지 못한 채 빈한구걸(貧寒求乞)하면서 사방으로 유전(流轉)하다가, 만일 선각자를 만나 보화의 매장된 곳을 지시받아서 의심 없이 독신(篤信)하여 그 매장한 것을 발굴하면 무진장의 보화가 다 자기 소유인 것과 같다. 이 이치가 심히 명백한데 사람들이 자각을 못하니 슬픈 일이다. 만일 다만 이 마음에 이(理)가 갖추어져 있는 것만 알 뿐이요 그 이상 엄폐된 것을 힘써 버리지 않으면, 이것은 실로 보화를 매장한 곳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속여 말하는 것일 뿐이니 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때 율곡의 일심은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의 일심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리고 《기신론》 속의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은 도심과 인심에 대비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율곡이 일심에서 인심과 도심을 나누었듯이, 《기신론》을 소(疏)한 원효의 《해동기신론소(海東紀信論疏)》에서도 《기신론》의 심을 일심으로 해석하고 이 일심을 진여문과 생멸문의 이문(二門)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진여문은 이언절려(離言絶慮)로서 말과 생각을 여읜 본체를 말한다. 그것은 마치 율곡이 말하는 이(理)와 유사하다. 그리고 진여심은 정이 발할 때 기의 용사를 받지 않고 직출되는 도심과 같은 것이다. 이에 비해 생멸의 세계는, 불교에서 이미 홀기(忽起)된 무명(無明)에 의한 망념(妄念)의 결과를 말한다. 그러나 이 생멸심(生滅心) 자체가 곧 악(惡)은 아닌 것이다. 다만 생멸심은 망념의 소산이기 때문에 악의 가능성이 많은 것일 뿐이다. 이 생멸심에 곧 진여(眞如)가 내포되어 있으나 생멸심 자체가 진여는 아니고, 또 보리(菩提)는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이다. 생멸심에 집착되어 그것에 매달려 있을 때 악이 되는 것이다.

율곡의 인심은 형기에서 나온 것으로, 불교의 망념 또는 번뇌와 꼭 같이 비교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불교의 번뇌란 기본적으로 탐·진·치 삼독(三毒)과 신·구·의 삼업(三業)에 의한 것임을 고려할 때, 전자가 의식적·심리적인 데 비하여 후자는 물질적·육체적인 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율곡의 인심과 《기신론》의 생멸심은 서로 유사하다고 보이는 것이다. 특히 율곡의 ‘인심도심상호종시설(人心道心相互綜始說)’을 상기할 때 진여심과 생멸심의 비교는 더욱 뚜렷해진다. 다음 율곡의 말을 보기로 하자.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처음에는 성명의 정(正)에서 바로 나오다가도 혹 순할 수 없어 마침내 그 사이에 사의(私意)가 섞이면, 이는 처음에는 도심이었다가 나중에는 인심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혹은 처음에 형기(形氣)에서 나왔더라도 그것이 정리(正理)에 어긋나지 않으면 진실로 도심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혹 정리에 어긋나더라도 그릇된 줄 알고 고쳐서 욕심을 따르지 않게 된다면, 이는 처음에는 인심이었다가 도심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도심도 인심이 될 수 있고 인심도 도심이 될 수 있다는 말에서 우리는 생멸심이라 해서 꼭 악은 아니라고 보는 불교적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율곡이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소위 사람마다 지닌 무진장의 보화를 깊고 어두운 땅에 묻어 놓은 채 알지 못하여 빈한구걸 하면서 사방으로 찾다가, 만일 선각자를 만나 보화가 매장된 곳을 지시받아 의심하지 않고 독신하면 그것이 곧 자기 것이라는 말은 《대반열반경(大槃涅槃經)》 권25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의 비유와 너무나 흡사하다. 《대반열반경》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가난한 집에 숨은 보배가 있어도 이 사람이 보지 못한 까닭에 무상(無常)·무락(無樂)·무아(無我)·무정(無情)하다가,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그대의 집에 숨은 보배가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빈궁하고 곤고하여 무상하고 즐겁지 않으며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하면서 방편(方便)으로 보게 하거든, 곧 이 사람이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게 되느니라. 부처 성품도 그와 같으니, 중생들은 다만 보지 못하여 무상하고 즐겁지 아니하며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이 경의 제8권 〈여래성품(如來性品)〉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어떤 가난한 부인의 집에 순금돌이 묻혀 있었는데 집안의 식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도 몰랐다. 수단 많은 한 이상한 사람이 가난한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삯을 줄 테니 나를 위하여 풀을 매어 달라.” 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인해 그 집에서 순금돌을 파내게 되더니, 부인이 매우 기뻐서 이상하게 여기면서 그 사람을 숭배했다.

이상 《열반경》의 비유들에 나타난 것은, 사람마다 만리(萬里)를 갖춘 일심(一心)을 가지고서도 물욕(物欲)에 엄폐되어 그 보배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선각자의 지시에 의해 그 일심을 되찾아 성인의 길에 든다는 율곡의 비유와 유사한 것이다. 이때 일심과 불성은 같은 의미이다.

율곡의 불교사상과 비슷한 또 다른 면모는 ‘물격(物格)과 지지(知至)’에 관한 논의 가운데 나타난다.

묻기를 “물격(物格)이라는 것은 물리(物理)가 극처(極處)에 이르는 것입니까, 나의 지식이 극처에 이르는 것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물리가 극처에 이르는 것이다. 만일 나의 지식이 극처에 이르는 것이라면 이것은 지(知)가 지(至)하는 것이지 물(物)이 격(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한 가지의 일로서, 물리로 말하면 물격이라 하고 내 마음으로 말하면 지지라 하는 것이니 실은 두 가지 일이 아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물리는 원래 극처에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사람이 물격한 후에야 극처에 이를 것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이 물음은 당연하다. 비유하면, 방안에 책은 선반 위에 있고 옷은 횃대 위에 있으며 상자는 벽 아래에 있는데, 어둠으로 인하여 물건은 볼 수 없으니 책이나 옷, 상자가 어느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비춰 보게 되어야 책·옷·상자가 각기 그곳에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고, 그런 뒤라야만 책은 선반 위에 있고 옷은 횃대에 있으며 상자는 벽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理)가 원래 극처에 있으니 격물하기를 기다려 비로소 극처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고, 또 이(理)가 스스로 알고 극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식이 밝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이(理)가 이르거나 이르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하였다.

물은 물마다 각기 이(理)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인간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본래 사물의 이(理)는 구유(具有)된 것인데, 인간이 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앎을 극진히 함으로써 사물이 지닌 이(理)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곧 물격이다.

이러한 사상은 마치 일체중생이 본래원각(本來圓覺)을 갖추고 있는데 무명(無明)에 의해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원각경(圓覺經)》의 세계와 비슷하다. 《원각경》 〈문수보살장(文殊菩薩章)〉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선남자여, 위 없는 법왕이 큰 다라니문(陀羅尼門)이 있으니 원각(圓覺)이라 한다. 일체 청정(淸淨)한 진여(眞如)와 보리(菩提)와 열반(涅槃)과 바라밀(波羅蜜)을 흘러내어 보살들을 교수하나니, 일체 여래의 본기인지(本起因地)는 모두가 청정원각을 원만히 비춤에 의해 무명을 영원히 끊인 후에야 불도를 이루셨느니라.

이 말은 본래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각을 비추어서 불(佛)을 이루었다는 원조청정각상(圓照淸淨覺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청정각상은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단지 무명에 의하여 그것을 비추어 보지 못할 뿐이다. 이것은 율곡의 등기조견(燈以照見)에 의하여 모든 본래의 만리를 모두 알 수 있다는 것과 너무나 같다. 이에 준하는 또 다른 비유를 《대반열반경》 권26 〈사자후보살품〉에서 볼 수 있다.

세존이시여, 성품이 있는 고로 인연을 구하나니, 왜냐하면 분명하게 보려 함이오이다. 인연은 곧 아닌 인(因)이오니, 세존이시여, 마치 어둠 속에 먼저 물건이 있었기에 물건을 보려고 등불을 비치는 것이오이다. 만일 본래 없었으면 등불로 무엇을 비치오리까? 마치 진흙 속에 병이 있으므로 사람과 물과 물레와 노끈과 작대기 따위로 아는 인(因)을 삼는 것이며, 니구루다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을 수구하여 아는 인을 짓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있는 효모와 따뜻함도 이와 같아 아는 인을 짓나이다. 그러므로 먼저부터 성품이 있어도 아는 인을 빌려서야 보게 되나니, 젖 속에 먼저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나이다.

이는 본래부터 책상이나 옷걸이가 그 자리에 있음에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다가 등불을 비춘 이후에야 확인하듯이, 누구나 지닌 본래의 불성(佛性)을 등불의 인연을 만나 알게 되는 것이 마치 모든 물건을 등불로 인해 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곡이 비유하고 있는 내용의 대상 명칭은 다르지만 그 사상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불경 속의 내용인 불성이 모든 인간에게 본유(本有)하나 인연을 만나서야 불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과 같이, 인간이나 만물에는 모두 이(理)가 본유하나 그 격물을 당해서야 이(理)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율곡의 견해는 불성을 심(心)의 성(性)인 이(理)로 해석할 때 ‘불성즉리(佛性卽理)’로 통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제까지 율곡의 비유를 통하여 그가 불교사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정심(正心)은 《대학》의 8덕목 중 ‘성의정심(誠意正心)’의 정심이지만, 이를 이렇게 소상히 밝히고 정심과 일심(一心)과 이(理)로써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은 율곡에게만 볼 수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이것은 불교의 불성론과 깊은 내적 연계를 갖지 않는가 생각된다.

6. 결론

우리는 이제까지 율곡의 철학사상에서 불교와 유교 관계를 살펴보았다. 율곡은 조선조의 성리학자로서 정계나 학계의 거봉이었으며 또 당대의 거유 퇴계에 의하여 극찬을 받았지만, 그는 이미 젊은 시절에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불교에 뜻을 두어 불경을 공부하고 금강산에 입산하여 선(禪)을 실천했던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더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금강산 입산은 단순한 소풍도 아니고 시험 삼아서도 아닌, 내면의 철학적 간절한 욕구에 의해 생사의 일대사 인연을 요해(了解)·해탈(解脫)하려는 심사숙고의 결과였다.
이렇게 볼 때 율곡의 박학·심문한 불교적 지식과 실천의 체험은 그의 탁월한 기억력과 구상력, 종합력과 함께 불교와 성리학을 회통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불교사상의 핵심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논리체계에 대한 이해는 그의 성리 철학을 독창화하는 데에 유감없이 가미되었던 것이다. ■

 

 

송석구 /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동국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박사). 동국대학교 총장,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 등 역임. 주요 저서로는 《송석구 교수의 불교와 유교 강의》 《송석구 교수의 율곡 철학 강의》 《대통합》 《진리와 실천》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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