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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와 불교에서 초월과 변용의 상징* / 김지현
-성태(聖胎)를 중심으로
[64호] 2015년 12월 01일 (화) 김지현 inixie@snu.ac.kr
*  이 글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주관한 ‘열린논단(9월 17일,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발표한 내용을 축약, 정리한 것이다.

 

들어가며

어떤 종교에서든지 범속한 존재와 성스러운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초범입성(超凡入聖)’ 즉 인간이 어떻게 범속을 초월하여 성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수행론적 문제가 되고 보면, 성과 속의 단절보다는 ‘존재의 변용’의 문제가 초점에 놓인다. 특히 몸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초월적 존재로 변화할 수 있는지 묻게 되면 그 입장은 양극단으로 갈라지곤 한다. 한쪽은 육체를 버려야만 초월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다른 한쪽은 육체의 성질을 변화시켜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지 않은 채 초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 몸을 버린 초월에 대한 가르침은 드물다. 그러한 인간 변용에 대한 가르침은 교리와 교설뿐 아니라 다양한 상징과 도상적(圖像的) 표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오래전부터 필자를 사로잡고 있던 도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그것은 조셉 니덤(Josheph Needham)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에 게재된 명청(明淸) 시대의 오백나한상에 나타난 것인데, 아라한이 양손으로 배를 열어 복중의 부처의 얼굴, 혹은 아기 모습을 한 부처를 보여주는 이른바 ‘개심견불(開心見佛)’의 도상이다.
이 기이한 도상과 관련해서는 명청 시대에 이루어진 여러가지 제작 예들을 볼 수 있다. 명 대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서는 중국 산서성(山西省) 오대산(五臺山) 불광사(佛光寺) 벽화의 오백나한도, 일본에 건너간 범도생(范道生, 1635~1670, 복건성 천주인)이 교토 오바쿠(黄檗)의 만복사(萬福寺)에서 제작하여 1663년 완성한 십팔나한상(十八羅漢像)의 나호라존자상(羅怙羅尊者像)을 들 수 있고, 청 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는 사천성(四川省) 신도시(新都市) 보광사(寶光寺)의 오백나한상,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공죽사(筇竹寺)의 오백나한상을 들 수 있다(〈그림 1〉).
니덤은 이들 도상을 ‘도교 내단(內丹)의 표상’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들 도상이 불교와 도교의 교섭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왜 불교 사찰에서 그것도 나한상에서 도교 내단의 표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답을 얻기 힘들다. 내단은 어떤 것이며 그 속의 갓난아기의 상징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었기에 불교예술 속에 스며들어 간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러한 나한상의 개심견불 표상이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점에서 도교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것을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초월과 변용의 상징의 한 양태로 보고, 도교와 불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문화 속에서 이것이 어떻게 함께 공유되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성인론 그리고 성불과 득도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

불교와 도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성불(成佛)’과 ‘득도(得道)’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국에서는 깨달은 자도, 도를 얻은 자도 ‘성인(聖人)’이라 불렸다.
성인이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또 도교가 하나의 종교적 체계로서 정립되기 이전부터 이야기되던 중국의 고전적 이상형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성인을 초세간적인 ‘saint’ 혹은 ‘sage’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종교사상사 속에서 성인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층적이다. 중국 고전에서 성인이란 문명과 제도를 창조한 문화영웅으로, 반드시 초세간적 혹은 초속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란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물질문명의 창시자이며 공동체의 윤리규범을 만들고 유지해온 존재이다. 문자와 불의 사용법, 의복과 주거의 제조법, 수렵과 농경술을 처음 정하고 발견하고 가르쳐 준 이들이 바로 중국 신화에서 삼황(三皇)으로 칭송하는 성인이다. 통일 왕조가 성립한 이후에는 천자(天子), 즉 역대 왕조의 황제(皇帝)들이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를 통치하는 성인으로 이념화되었다.
이러한 성인 개념이 초속적인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이다. 한편 전국시대부터 육조시대 초기까지 중국인들이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던 것은 신인(神人), 혹은 신선(神仙)이었다. 이 때문에 기원후 1세기경 처음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부처는 신인 혹은 신선과 동일시되었다. 다만 중국 고대에서 신선이란 단지 만나는 것을 희구할 수 있을 뿐,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선술에 심취했던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이나 한무제(漢武帝, BC 159~BC 87)의 시대에도 신선이란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했던 혜강(嵇康, 223~262)의 시대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대담한 논의를 펼치고 금단의 복용을 구체적인 성선의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은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 283~343)에 이르러서이다.
갈홍의 이른바 ‘신선가학론(神仙可學論)’ 이후, 도교는 송경과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제시했고 4~6세기에 보급된 대승불교는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형을 제시했다. 이 시기의 중국인들은 신선과 부처를 포함하여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했던 것 같다. 이러한 성불과 득도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필연적으로 그 가능성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성선(性善)을 말한 맹자(기원전 4세기), 인간의 성은 반드시 선하지는 않으나 길거리 위의 범부도 후천적 교육에 의해 우(禹)와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순자(기원전 3세기)로 대변되듯, 인간의 성(性)을 둘러싼 중국사상사의 긴 논의와 연결된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도가 가장 비천한 곳, 즉 기왓장이나 똥오줌 속에도 있다고 하는 《장자》의 언설, 그리고 ‘도성(道性)’을 ‘스스로 그러함[自然]’으로 정의한 《노자》의 주석들은 모든 존재 속에 도성의 내재성을 이론화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선언한 《열반경》의 불성(佛性) 사상 및 여래장(如來藏) 사상이 풍미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축도생(竺道生, 355~434)이 5세기 중반 돈무참(曇無讖)에 의해 《열반경》이 완역되기도 전에 《열반경》 전반에 설해진 불성론을 확대 해석하여 천제(闡提, 이찬티카)의 성불을 주장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9세기경 안넨(安然)에 의해 “초목이나 국토도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草木國土, 悉皆成佛)”고 하는 무정(無情)의 성불까지 주창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개는 동아시아 불교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한편 육조시대의 도교는 《열반경》을 중심으로 전개된 불성론과 마주하면서 불교적 언설을 차용한 도성론을 구축해 나갔다. 6세기 초 도사 송문명(宋文明)은 《도덕의연(道德義淵)》에서 하상공의 《노자》 주석 “스스로 그러함이 도성이다(自然道性)”라는 구절에 대해 “(이는) 도성이 청허자연을 본체로 하고, 모든 생물이 각각 (도성을) 나누어 받았음을 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도경에 “모든 중생이 도성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 悉有道性)”는 문구가 등장했고, 당초 도사 번사정(潘師正, 586~684)도 고종(高宗)과의 문답에서 “형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도성을 포함하고 있다(一切有形, 皆含道性)”고 말했다. 이러한 도성론은 도교교의서 《도교의추(道敎義樞)》의 〈도성의(道性義)〉로 집약되었다. 
이러한 불성론과 도성론의 전개가 바로 앞서 소개한 독특한 도상적 표현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긴 해도 그것이 배를 열고 아기를 꺼내 보이는, 그로테스크할 만큼 구체적인 묘사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도상 표현의 기반은 좀 더 후대의 대담한 사상적 융합과 실험을 기다려야 했다.


2. 개심견불(개복현불) 도상의 원류

명청 시대의 나한상에서 보이는 개심견불-실제로는 개복현불(開腹見佛)-의 표상은 삼교일치적 입장에서 저술된 양생수련서가 널리 읽히던 근세의 종교문화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들 도상 표현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는 명말의 《성명규지(性命圭旨)》에 보이는 〈영아현형도(嬰兒現形圖)〉, 그리고 청 대 《혜명경(慧命經)》에 수록된 〈도태도(道胎圖)〉를 들 수 있다.

1)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
《성명규지》는 16세기 중반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615년경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은 ‘윤진인의 고제(尹眞人高弟)’가 서술했다고 전해지나 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 출판 양태나 현재 남아 있는 전적들의 분포를 볼 때 명청 시대의 중국·조선·일본까지 널리 보급되고 읽혔으니 그 영향력은 막대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 속에 실린 도해들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게재되긴 했지만 윌리엄 빌헬름과 칼 융의 《태을금화종지》 영역본에 실려 20세기 초 서양에까지 알려졌다.
《성명규지》는 가장 첫 장에 그려진 부처·노자·공자의 삼성도(三聖圖)가 웅변하듯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쓰인 텍스트로 성명(性命), 즉 심신 양면의 수련을 통한 ‘성선성불(成仙成佛)’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55가지 도해가 마련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도교의 내단(內丹) 이론과 승선(昇仙)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성명규지》에서 성선성불의 프로세스는 9단계로 요약되며 ‘구전환단지공(九轉還丹之功)’이란 단법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其一曰 ∶ 涵養本原, 救護命寶
            (근본을 길러 생명의 보배를 구하고 지킨다)
其二曰 ∶ 安神祖竅, 翕聚先天
            (정신을 조규[천기와 연결된 곳]에 안정시키고 선천의 기를
            모은다)
其三曰 ∶ 蟄藏氣穴, 衆妙歸根
            (기를 기혈에 잘 간직하고 신묘한 작용들을 통해 근원으로
            되돌린다)
其四曰 ∶ 天人合發, 采藥歸壺
            (하늘과 인간이 함께 음양의 기를 발동시키고 약을 캐어 단            
            지 속에 되돌린다)
其五曰 ∶ 乾坤交媾, 去礦留金
            (건과 곤이 교합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금만을 남긴다)
其六曰 ∶ 靈丹入鼎, 長養聖胎
            (영묘한 단약을 솥에 넣고 성태를 길러 키운다)
其七曰 ∶ 嬰兒現形, 出離苦海
            (영아가 모습을 드러내면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난다)
其八曰 ∶ 移神內院, 端拱冥心
            (정신을 모아 고요하게 하고 가만히 앉아 무심의 상태가 된다.)
其九曰 ∶ 本體虛空, 超出三界
            (본체인 허공으로 돌아가 삼계를 초탈한다)
 — 《性命圭旨》 元集 〈邪正說〉

《성명규지》에서 성선성불의 과정은 인간을 우주의 근원적 상태로 되돌리고, 우주 생성의 이원적 힘인 음양의 결합을 통해 성스러움을 배태하고, 태아를 낳고 기르듯 이를 성장시켜 초탈에 이르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성선과 성불의 가능성은 ‘성태’로, 아기신선과 아기부처의 표상은 ‘영아’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신선과 부처의 새로운 탄생을 도상화하고 있는 〈영아현형도(嬰兒現形圖)〉는 남자 수행자가 자신의 복부를 열어 태중의 아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그림 2〉). 해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앞서 화후(불조절)가 충족되면 성태가 완성되고, 마치 과일이 익는 것처럼 반드시 아기가 태어나니 열 달이 지나면 아기집에서 나온다. 불교에서는 이를 ‘법신(진리의 몸)’이라 하거나 ‘실상(참된 모습)’이라 하고, 도교에서는 이를 ‘적자’ 또는 ‘영아’라고 한다. 

‘적자’와 ‘영아’는 도교의 상징체계 속에서 도와 합일한 상태, 즉 득도의 표상인데 이것이 불교의 ‘법신’ 및 ‘실상’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되어 다양하게 인용된 문장들을 보면 이들 표상이 송원(宋元) 대의 내단학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진희이(陳摶, 북송)가 이르길 “아득하게 아무 종적 없이 단방에 돌아가 현묘한 기관 속에 침잠하여 성태를 맺는다”고 하였고 (중략) 장자양(張紫陽, 張伯端, 987~1082)이 이르길 “영아는 한 조각 진기를 품었으니 열 달이 지나면 태아가 완전해지고 성인의 기틀[聖基]을 다지는 단계로 들어간다”고 했다. (중략) 종리옹(鍾離權)이 이르길 “태 속에 영아가 만들어지면 삼가며 따듯하게 기르는 공을 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성명규지》는 이러한 내단의 프로세스와 동일한 가르침으로 《능엄경》의 십주(十住)를 들고 있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도 역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능엄경》에서 말한 것과 같이 “부처와 같은 행위를 하게 되면 부처의 기운을 나누어 받는다. 이는 마치 중음신(中陰身, 아직 태 속에 들어가지 못한 몸)이 스스로 부모를 구하면 그 신실함이 비밀스럽게 통하여 여래의 씨앗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이를 ‘생명의 존귀함을 받는 단계[生貴住]’라 한다. 도태 속에 노닐게 되면 스스로 깨달음의 결과를 받든다. 이는 태아가 완성되면 사람 모습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를 ‘방편이 모두 갖춰진 단계[方便具足住]’라 한다. 용모가 부처와 같고 마음의 모습 역시 그러하니, 이를 ‘바른 마음을 갖춘 단계[正心住]’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합해져 나날이 자라니, 이를 ‘물러남이 없는 단계[不退住]’라 한다. 열 가지 몸의 영묘한 모습이 일시에 모두 갖추어지니, 이를 ‘참된 아이가 된 단계[童眞住]’라 한다. 몸이 완성되면 태에서 나와 스스로 부처의 아들이 된다. 이를 ‘진리의 왕자가 된 단계[法王子住]’라 한다. 성인의 모습이 되면 일국의 대왕이 여러 나랏일을 태자에게 나누어 맡기고, 저 카트리야 왕세자가 장성하여 관정의 예를 받는 것과 같으니, 이를 ‘머리에 관을 쓴 단계[冠頂住]’라 한다.” ‘여래의 씨앗에 들어간다’는 것은 종성을 여래의 씨앗으로 보는 것으로서, 스스로 조화를 일으켜 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도태(道胎, 도의 태아)라 하고 ‘각윤(覺胤, 깨달은 자의 후손, 즉 깨달음의 결과)’이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러한 것이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 아기나 도교의 태선(胎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이 완성되어 태에서 나와 스스로 부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대목에 이르면 (여동빈이 말한) “진인이 출현하니 대신통이로다. 이로부터 천선이 되니 경하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닌가?

보살에서 부처가 되는 단계에 대한 언설들은 지론(地論)의 유행이나 화엄학의 발전에서 보듯 중국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도록 하고, 여기에서는 보살의 수도단계론이 신선이 되는 과정을 상술한 내단설과 함께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도록 하자.
중요한 사실은 《성명규지》의 독자층이 단지 도사나 서민층이 아니라, 서문을 쓴 추원표(鄒元標, 1551~1624)가 대변하듯, 고반룡(高攀龍, 1562~1626)이 중심이 되어 명 대 주자학의 부흥을 꾀했던 동림서원(東林書院)의 멤버들이었으며, 이 텍스트가 문인들의 심신수양법으로 실천되었다는 점이다. 명청 시대 문인들과 종교인들은 이들 상징을 인간 초월과 변용의 표상으로 이해했으며 그 저변에는 불교와 도교의 일치를 시도했던 송원 시대 내단학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2) 《혜명경》의 도태도
유화양(柳華陽, 1735~1799)은 홍도(洪都, 현재의 江西省 남창) 지방 사람으로 어려서 불교를 좋아하여 절에 드나들었다. 수련을 위해서 선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하던 차에 그보다 백수십 년 이전에 살았던 오수양(伍守陽, 1573~1644?)을 만나 오의를 전수받고 혜명의 도를 이해했다. 후에 호운(壺雲) 노사를 만나 수도에 정진하고, 그 가르침을 책으로 엮어 《혜명경》이라 명명했다.
《혜명경》은 총 8개의 그림과 12장의 논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상 《성명규지》와 공통된 요소가 매우 많다. 다만 특기할 사항은 유화양이 출가한 승려라는 사실이며, 그가 오수양의 내단설을 불가 수련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여 이를 불경의 언설을 기반으로 융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선어록을 비판하고 불경 중에서 오수양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능엄경》 《화엄경》 《육조단경》만이 진실된 말을 담고 있다고 여겼다.
유화양은 혜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그 기본적 입장 역시 삼교합일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혜명(지혜의 생명)이란 석가여래가 처음 취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던 말이다. 이는 원래 서방의 범어로서 우리 중국 사람들은 ‘본원(本源)’이라 하며 유자들은 이를 ‘선천의 기(先天炁)’라 말한다. 이는 부처가 되는 수련의 방편이고, 조사가 되는 수단이며,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방법이다.

혜명이 인도의 범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prajñā-jīva’ 등에 해당하는 원어가 있었음을 지칭하는 것일 텐데, 정확히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석가가 “깨달은 이의 ‘지혜의 생명’이 오래 사는 길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 데서 비롯한 진리의 생명력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 여겨진다. 
《혜명경》에서 개복현불의 도상은 〈도태도〉에 나타난다. 유화양은 이 그림이 《능엄경》에 원래 존재하던 오의를 나타낸 것이며, 불교의 가르침에 도태(道胎)에 관한 수행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도태란 대체 무엇일까?

태(胎)란 형상이 있거나 어떤 다른 것이 이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 자신의 신(神)과 기(炁)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신이 기 속에 들어가고 후에 기가 신을 감싸면, 신과 기가 결합하여 의식이 움직임 없이 고요해지는데, 이것을 일러 ‘태’라고 한다. 또한 (순화된) 기가 응결한 뒤에 신이 영명해지니, 이것이 《능엄경》에서 말하는 “친히 깨달음의 결과(覺應)를 받든다”는 것이고, 두 가지 기가 서로를 기르니 “나날이 자란다”고 하는 것이며, 기가 충만하고 태가 완전해지면 정수리에서 나오니 이른바 “몸이 만들어지면 태에서 나와 스스로 부처의 아들(佛子)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도태’란 인간의 정신과 원기가 결합하여 의식이 부동의 고요를 찾는 열반삼매의 상태를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화양이 《능엄경》에 원래 존재한다고 한 ‘도태’는 《성명규지》에서도 인용된 바 있던 《능엄경》의 십주설을 말한다.
《혜명경》은 이러한 《능엄경》의 도태를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와 유사한 형태로, 다만 나체로 수행하는 불보살이 하복부 속의 “불자(부처의 아들)”를 열어 보여주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그림 3〉). 《능엄경》의 이미지는 또한 〈출태도(出胎圖)〉에서도 시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그림 4〉). 

능엄경의 주문에서 말하기를, “이때 세존이 육호에서 온갖 보배로운 빛을 내시니, 빛 속에서 천 개의 꽃잎이 있는 연화가 생겨났고, (화신으로서의) 여래가 그 연화 속에 앉아 정수리에서 시방으로 온갖 보배로운 빛을 내시어 두루 비추시니, 대중들이 우러러보았고 방광여래가 신주(神呪)를 설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양신(陽神)의 출현’이다.
〈출태도〉의 그림 형식은 《성명규지》의 〈단공명심도(端拱冥心圖)〉와 〈양신출현도(陽神出現圖)〉(〈그림 5〉)를 복합해 놓은 도상인데, 《혜명경》은 이를 ‘양신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양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처음에 소개했던 오백나한상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왜 이러한 도상들이 하필 나한상에 표현되었을까? 그 힌트는 《혜명경》의 해설 중 “세존이 말씀하시길, 불사가 가능한 것이 아라한이라고 하셨다”는 문구에서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유화양은 “불사란 장수(長壽)를 이름이다”라고 해설했다. 즉 그에게 불사란 도태의 형성과 양신의 출현이 상징하는 초탈에 이르기 전 단계로서, 물리적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육신이 현세에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불교에서 ‘불사’란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서는 생로병사의 분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 말인데, 여기서는 신선사상의 장생불사의 의미로 읽히고 있다. 《혜명경》의 출판 당시 강남 지방의 병부 관료였던 손정벽(孫廷璧, ?~1805) 역시 1794년의 서문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행하는 자는 청정과 자비를 중시하며 나아가 아라한과 마찬가지로 불사의 도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여 아라한을 불사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성불(成佛)이 곧 성선(成仙)과 다르지 않다고 인식했으며, 불사와 초월의 도를 추구하는 구체적 방편을 내단학에서 찾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라한은 불사와 초월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성태와 도태의 도상 표현에 적합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혜명경》의 〈도태도〉,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의 사상적 연원을 찾으면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삼교일치 혹은 선불동원의 입장에서 이야기된 도교의 내단설과 중국불교의 수도단계론과 만나게 된다. 다음에서는 도교에서 ‘성태’와 ‘영아’의 상징이 가진 의미와 내단 사상의 전개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불전에서 ‘성태’가 어떻게 이야기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영아의 상징과 내단

성태와 영아라는 상징의 근원은 《노자》의 ‘적자’와 ‘영아’ 그리고 육조시대 도경에 나타난 ‘태선(胎仙)’에서 찾을 수 있다.
‘영아’는 《노자》에서 “혼백을 지니면서도 하나 되어 (심신을) 분리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를 전일하게 하고 부드러움을 유지하여 영아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겠는가?” 등의 구절에 보이는데, 모두 도와 하나가 된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영아와 같은 의미를 가진 ‘적자’는 “깊이 (무위의) 덕을 품은 사람은 적자(갓난아기)와 같다”라는 구절에 보이는데, 이 역시 도가의 궁극적인 이상인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한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이후 이러한 갓난아기의 비유는 비유에 그치지 않고 도교 명상의 대상으로 형상화되고, 또 여러 도경 속에서 구체적인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4세기 말 성립한 상청경(上淸經)에서는 수행자의 단전 속에서 태어나는 ‘태선’, 그리고 체내의 기와 신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궁극적 자아인 ‘제일(帝一)’로 나타났다. 제일은 당송 대에 이르기까지 도교 명상이 추구하던 궁극적인 존재로서 모두 갓난아기의 형태로 표현되었다(〈그림 6〉). 이들 도상을 살펴보면 상청경의 영아 도상이 《성명규지》나 《혜명경》의 ‘양신 출현’을 표현하는 도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후에 내단설이 풍미하면서 이러한 영아의 도상은 체내에서 합성되는 금단의 상징으로서 여러 도교 서적의 도해에 사용되기에 이른다.
내단설의 대두는 도교사의 관점에서 중국의 중세와 근세를 구분하는 큰 전환점이 된다. 당송 변혁기(9~10세기)를 거치면서 사회구조가 바뀌고 국가에서 관리하던 도관 시스템 역시 약화되었는데, 내단설은 변화된 사회구조와 함께 등장한 상인과 사대부 계층을 새로운 신도층으로 얻으면서 유행한 것이다. 따라서 내단서는 도관에 입문한 도사들에게 비전되던 이전의 도경들과 달리 도사에 국한되지 않고 문인들 사이에 널리 읽혔으며, 송(宋) 대 이후 출판 기술의 발전과 함께 동아시아 각국에 전해져 널리 실천될 수 있었다.
내단설이 태동한 외적 동인은 외단(外丹)의 발달과 쇠퇴에 있다. 외단이란 갈홍이 신선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것으로, 오랫동안 외단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고 ‘금단(金丹)’으로 불렸다. 시들어 사라지는 약초를 사용한 치료약들은 단지 병을 고칠 수 있을 뿐 죽음을 면하게 할 수는 없으며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광물이야말로 인간의 육체에 영원성을 가져다준다고 생각되었는데, 금단은 바로 신비한 광물의 합성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역대 황실은 이러한 금단 제조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연단의 프로세스와 언설은 다양하고 복잡해졌지만, 그 과정은 대체로 대극적인 성질을 가진 두 광물, 즉 ‘수은[汞=龍]’과 ‘납[鉛=虎]’을 ‘화로와 솥[爐鼎]’에 넣고 불 조절[火候]을 통해 두 광물의 합성체[黃芽]를 승화시켜 금단을 얻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금단 제조에 의존하지 않고 인체 내에서 금단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도 병존했다. 이를 내단의 원류로 볼 수는 있으나 본격적으로 내단설이 유행한 것은 금단 제조에 대한 황실의 지원이 끊기게 되면서부터이며, 사상적 동인은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재해석에 있었다. 송 대 이후 내단학은 불교의 선종과 유사하게 남종과 북종으로 나누어 보는데, 북종은 왕중양(王重陽, 1112~1170)의 전진교 내단설을 지칭하고, 남종은 《오진편(悟眞篇)》을 저술한 장백단을 필두로 한 강남 지역의 내단설을 지칭한다. 그러나 사실 이 두 내단설 모두 오대 말 북송기에 유행한 《주역참동계》와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의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고, 선불교와 도교의 일치를 주장했다. 특히 남송 이후 도교 내단설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정신성[神]을 인간 내면의 본성[性]에, 기질의 측면[氣]을 타고난 육체적 특징[命]에 배당했다. 정좌(靜坐)가 성공(性功)이라면 불사의 추구는 명공(命功)으로 여겨 이 두 가지의 종합, 즉 ‘성명쌍수(性命雙修)’가 이론화되었다.
내단설을 간략히 도식화하자면, 수은과 납 대신에 체내의 수화(水火), 즉 신장의 원기[水中氣]와 심장의 혈액[火中液]을 역의 감(坎☵)괘와 리(離☲)괘에 빗대어 신장에서 추출해 낸 진양(眞陽)의 기로써 심장의 진음(眞陰)의 기를 대체하고 단전을 화로와 솥으로 삼아 이 둘의 결합체를 얻어 승화시켜가는 과정이다. ‘성태’는 바로 용호(龍虎)로 비유되는 진양·진음의 기가 결합하여 생긴 새로운 생명, 신선이 될 태아이다. 이를 잘 길러 승화시킨 ‘양신(陽神)’은 육체를 초월하여 생겨난 자기 자신이다. 양신이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면 초탈의 완성, 즉 신선(천선)이 되는 것이다. 《종려전도집》의 다음 구절은 이러한 내단 프로세스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내단의 약재는 심장과 신장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단의 약재는 본래 천지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늘 볼 수 있는 것이다. 화후(불 조절)는 일월이 왕래하는 수를 취하니, 그 수행은 마땅히 부부가 교합하는 것을 본떠야 한다. (부부가 교합하면 태아가 생겨나듯) 성태(聖胎)가 이루어지면 진기(眞氣)가 생겨난다. 기 속에 기가 있으니 마치 용이 여의주를 기르는 것처럼 하면 위대한 단약이 완성되고 양신(陽神)이 출현한다. (양신은 바로) ‘몸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몸(身外有身)’이니, 이는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것과 같다.  
 

4. 보살의 마음과 장양성태

초월의 가능성, 즉 신선이 될 새로운 자기 자신의 탄생을 상징하는 ‘성태’는 내단설의 중요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이 용어 자체는 사실 불전인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서 비롯한다.
《인왕반야경》은 5세기경에 성립된 중국선술불전(中國選述佛典)으로 불성론과 보살의 수도단계론이 혼합되어 있다. 여기서는 신심(信心)·정진심(精進心)·염심(念心)·혜심(慧心)·정심(定心)·시심(施心)·계심(戒心)·호심(護心)·원심(願心)·회향심(迴向心)을 보살의 종성십심(種性十心)으로 열거하고 “모든 불보살이 이 열 가지 마음을 기르고 키워 ‘성태’를 만든다”고 이야기된다. 길장(吉藏, 549~623)은 이 열 가지 마음이 “(불보살이 되는) 대승의 법신종자를 이루는 것이니, 이를 성태라 이름한다”고 해석했다. 요컨대 성태란 ‘부처가 될 기초’를 비유한 말이다.
이러한 수도단계론은 육조시대부터 화엄학이 발달한 당 대에 이르기까지 전개되었고, 또 이를 주제로 한 중국선술불전들이 성립되었다. 《인왕반야경》 이외에도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범망경(梵網經)》(5세기~6세기 초 성립)과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6세기경)이 있다. 《인왕반야경》은 보살의 수도단계를 41위설로 제시했고, 《범망경》는 40위, 《보살영락본업경》은 《화엄경》의 설을 도입해 52지설을 제시했다. 《범망경》은 십발취(十發趣), 십장양(十長養), 십금강(十金剛), 십지(十地)의 위계설을 제시했는데, 이 중 ‘십장양(十長養)’이 《인왕반야경》의 “장양십심위성태(長養十心爲聖胎)”에서 유래한 것은 명백하다.
“성태를 기른다”는 표현은불교나 도교를 불문하고 육조시대 말부터 당 대에 걸쳐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단수련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던 선사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그 유명한 평상심을 설하면서 ‘장양성태’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봐서도 잘 알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마음[마음이 공한 이치]을 깨닫는다면, 때에 따라 옷 입고 밥을 먹으면서성태를 기르고, 끝없는 변화와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길 뿐이니 달리 무슨 일이 더 있겠는가?

마조도일의 ‘장양성태’는 내단적 프로세스는 물론 이전의 불전에서 논의되어왔던 보살의 수도론과도 무관하다. 여기서 ‘장양성태’는 곧 부처가 되는 길의 비유적 표현이며, 그것은 무사태평한 일상의 행위와 평상심 속에 이루어진다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한편 내단설과 합치되는 것으로 읽혔던 《능엄경》은 마조가 활약하기 이전, 중인도 승려 반랄밀제(般剌蜜帝, Pāramiti)에 의해 705년 한역된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현대 학자들은 같은 시기 중국에서 선술된 위경이라 보고 있다. 이 《능엄경》의 십주설 역시 《인왕반야경》의 십심설 및 보살의 수도단계론과 무관하지 않다. ‘성태’와 ‘도태’라는 표현이 이들 불전에 사용된 것은 그 처음 의도와 무관하게 같은 시기 도교 내단 전통에서 사용되던 같은 표현과 결부되어 이해되기 쉬운 것이었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두 전통이 서로 교차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을 것이다.


나가는 말

이상에서 중국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개복현불의 도상에 대해 그 연원을 도교와 불교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중국인들에게 서로 다른 초월을 이야기하는 도교와 불교는 어느 하나가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이해되어야 할 것이었고, 이러한 ‘선불일치’ 나아가 ‘삼교일치’의 입장에서 도경과 불전을 읽고 이를 내면화한 문화의 담지자들-문인·도사·승려들-에 의해 《성명규지》와 《혜명경》에서 볼 수 있는 사상의 융합과 초월의 상징이 태어난 것이다.
‘성태’ 혹은 ‘도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보살의 수도론을 이야기한 《인왕반야경》 및 《능엄경》이 인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어진 불전이라는 사실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다. 중국인들이 부처가 되는 과정을 아기가 잉태되고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어휘의 선택이 이들 불전이 성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중국에 존재해 왔던 어떤 전형적인 사유방식에 기원을 두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중국인에게 새로움의 창조란 늘 남녀, 즉 음양의 결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는 우주론과 생성론의 기본 관념이 존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새로운 자아의 생성은 그것이 초월적 존재일지라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존재해야 하며, 태아가 뱃속에서 소중히 길러져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초월적 자아 역시 신중한 기름의 과정을 거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사고가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을 낳으면서 기원전 4세경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성태나 도태의 상징은 한국의 불교계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글에서 살펴본 《혜명경》은 1994년 석원태 씨에 의해 한글로 번역되었고, 필자는 이 책을 오대산 영감사(靈鑑寺)의 법산(안영헌) 스님께 받았다. 법산 스님은 1990년대에 신자의 보시를 받아 양평에 영감난약을 세우셨고 현재에도 양평에 계신다. 스님께서 《혜명경》을 비밀수행법의 하나로 여기며 필자에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전해주신 것이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한국의 스님들이 어느 정도 이들 전적들을 접하고 얼마나 수행에 사용하고 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몇몇 사찰에서 《혜명경》 강해를 한 적이 있고, 영감사의 스님 역시 수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아 한국의 불가수행법으로서도 어느 정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성명규지》는 2005년 이윤희 씨에 의해 한글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목판본이 3종 정도 주요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대개 1600년대에서 1800년대에 간행된 판본들이다. 한편 《혜명경》은 2011년 이윤희 씨에 의해 새 번역본이 나왔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도서관 소장본 중 1883년 인쇄된 목판본 《화양금선증론華陽金仙證論》(《혜명경》과의 합각본)이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조선시대 내단학과 더불어 명맥을 이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도교에서 유래한 갓난아기의 도상이 불성의 상징으로서 불가의 수행법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수련 전통은 우리에게는 이미 잊혔으나, 내단 실천에 심취해 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더욱 깊이 이해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념이나 교의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몸을 기반으로 한 수행의 입장에서 접근해 본다면, 서로 다른 종교문화 속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풍부하고 깊은 차원의 대화와 상호이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김지현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졸업(중국철학 박사). 주요 논문으로 〈도교와 술수: 분류체계의 변천과 4~6세기 도경을 중심으로〉와 〈內傳にみる道敎修行の過程と世界の構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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