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플 마니아다.

우리 집에는 애플 노트북에서 아이맥, 아이패드, 아이팟,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많은 애플 제품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애빠’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앱등이’라고도 부른다.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 생각한다.

애플을 처음 만났던 건 1995년 무렵이었다. 방송 일을 할 때였다. 내가 좋아했던 선배가 쓰던 컴퓨터가 바로 애플의 매킨토시였다. 예뻤다. PC와 달리 간결했다. 모니터에 박히는 글꼴은 깔끔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던 젊은 시절 애플은 그렇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사용했던 애플은 파워북 540이라는 중고 노트북이었다. PC와 달리 애플은 다루기 쉬웠다. 직관적인 사용이 가능했다. 이런 기능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 그런 기능이 나타났다. PC는 기계였지만, 애플은 친구였다.

하지만 애플과의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플은 망해가던 회사였다. 가격은 PC보다 2배 이상 비쌌다. 보증수리도 엉망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으며 애플과 멀어졌다. 게다가 IBM과 동맹을 맺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세상을 휩쓸던 시대였다. 그렇게 인연이 끝나나 보다 했다. 애플과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건 2008년 중국을 갔다가 마주친 아이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이후 컬러플한 아이맥과 아이팟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많은 실망을 거듭한 후라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폰을 만나며 인연은 다시 시작됐다.

애플이 나를 끌어 잡아당긴 이유는 무엇일까. 애플이 만드는 제품에는 다른 제품에는 존재하지 않는 애플만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과 UI (User Interface, 사용자 접점)가 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사용자 경험은 무엇보다 쉽다는 것이다. 애플 제품에는 설명서가 없다. 그저 전원을 켜고 사용하면 된다. 어느 제품보다 음악을 재생하는 성능이 뛰어나고 색상을 잘 표현한다. 게다가 디자인은 얼마나 예쁜가. 이런 애플 제품을 가리켜 단순하고 파격적이며 직관적인 선불교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창업주였던 스티브 잡스가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산업계의 화두는 UX다. 스마트폰, 모바일 앱, 게임, 쇼핑몰, 가릴 것 없이 사용자 경험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들과의 접점(User Int-erface)에 반영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일관성 있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지가 열쇠다. 물론 UX나 UI가 단순히 기술적 효용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 경험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은 그것이 가치를 공유하고 인간과 컴퓨터 간의 효율적인 상호작용(Human com-puter interaction, HCI, CHI)을 이룰 수 있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UX를 떠올렸던 것은 지난 1월 발표됐던 한국 갤럽의 《한국인의 종교》라는 연구보고서를 읽으면서였다. 문득 불자들의 신행 경험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교인의 경우 1주일에 한 번 이상 절에 간다고 응답한 사람이 지난 20년 동안 10%를 넘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개신교인이 80%, 천주교인이 59%인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종교의례에 참석하는 빈도가 이 정도라면 이는 종교생활이 일상생활과 크게 유리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령별 종교 인구에서도 불교는 젊은 층이 적고 중장년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대로였다.

왜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용자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교는 애플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사찰에서 이뤄지는 법회나 행사 등을 생각해보면 어렴풋하나마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사찰의 행사나 법회는 시대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법당은 여전히 조선시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통사찰이야 그렇다 쳐도 새로 짓는 법당도 그 안에 녹아든 건축미학은 여전히 조선시대의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신식 법당을 지어도 꼭 머리에는 기와를 얹는 것이 대표적 예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이미 입식 생활로 전환된 지 오래임에도 사찰은 여전히 좌식을 고집한다. 법문 역시 마찬가지다. 비슷비슷한 법문의 내용은 둘째 친다 하더라도 내용은 여전히 훈고적이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대기설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경전의 출처라도 잘 밝혀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찬불가는 어떤가? 개신교의 찬송가를 차용하여 방편으로 찬불가를 활용하는 것은 그렇다 해도, 거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탱화나 벽화는 과거의 유산을 답습할 뿐이다.

소통의 중요한 채널이 된 인터넷과 SNS 활용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찰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콘텐츠와 소통보다는 쇼윈도와 같은 전시성 운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찰의 운영도 그런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이 가져온 공유, 개방, 참여라는 시대정신이 사찰의 운영에서 잘 구현되고 있다는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사용자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법과 교화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비종교인이 불교를 받아들이기까지 세심한 배려와 고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비종교인이나 젊은 불자들이 볼 때 불교는 매우 불친절하고 고루하다.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불교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운 철학과 말씀은 정교하게 설계되고 준비된 사용자 경험과 사용자 환경에 의해 구현되어야 한다. 잡스가 선불교의 정신을 아이폰을 통해 구현하고 이를 상품화했듯 말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시대를 꿰뚫는 붓다의 말씀이 흐르고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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