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빛의 삼원색(三原色)이다. 이 세 가지 색을 여러 비율로 섞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색 이외의 다른 색으로는 삼원색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색들의 원자(原子)다. 색이 섞이는 원리는 이렇다.

예를 들어 빨강과 초록을 섞으면 노란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빨강 어디에도, 초록 어디에도 노란색은 없다. 다만, 우리의 뇌가 이 빛깔들을 동시에 볼 때 그것을 노란색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가을이라 색 타령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색에 관해 자료를 검색해보고,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또다시 곱씹어 본 곳이 바로 지리산 기슭, 가을 색에 담뿍 젖어 있던 실상사(實相寺)였으니 말이다.

지난주 나는 실상사에 다녀왔다. 설치미술 작가인 임선희와 김기라가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기에 길을 나선 것이다. 이름하여 ‘지리산프로젝트 2015 우주산책.’ 나는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사찰의 호젓함을 좋아했다. 그런 사찰에서의 전시라니, 이렇게 멋진 기획이 또 있나 싶었다.

산책을 나선 기분으로 최대한 편안하고 가벼운 옷을 입었다. 걸치고 보니 검정색과 회색. 그래도 뭐 어떠랴,  혼자였고, 누구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는 여행길인데. 그러나 막상 실상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잘 타지 않던 고속버스의 흔들림에 장시간 시달렸기 때문이다. 나는 실상사 입구에 한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실상사 표지판을 앞에 두고 시원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그런 것을 팔 것 같은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카페 사장님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어르신 한 분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곧 카페 찾기를 포기하고 실상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렇지만 공기가 다른 탓인가? 선선한 바람과 너그러운 햇살을 맞으며 걷는 동안 나는 그간의 피로가 서서히 씻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느리거나 빠른 걸음으로 박자까지 맞추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서 봤다면 코스모스 들판의 광녀(狂女)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까 그 말쑥한 차림의 어르신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나처럼 작품을 보러 오신 분이려니, 생각하다가 앞에서의 방정이 부끄러워 걸음을 재촉했다. 

실상사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배경처럼 둘린 지리산도 사찰의 담백함에 맞춰 가을 산의 화려함을 꾹꾹 눌러 담은 느낌이었다. 빨강도 그냥 빨강이 아니고 노랑도 그냥 노랑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단풍의 빨강, 은행의 노랑과는 조금 다른 색이었다. 그것은 마치, 혈기 왕성한 젊음이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깊이 같은 거였다. 나는 단박에 실상사에 매료되었다. 빠르고 선명한 것만 쫓던 사나운 눈이 잠시 순해지는 기분이었다. 삼층석탑과 보광전을 둘러보고 약사전으로 향했다.

바로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이었고, 지인의 작품이 설치된 곳이기도 했다. 나는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불상의 이목구비를 말끄러미 올려다봤다. 넓적한 얼굴에 약간은 좁아 보이는 이마, 수평으로 긴 눈과 무뚝뚝해 보이는 콧날. 색으로 치면 무채색에 가까운 표정. 그 표정을 천장에서 양 갈래로 내려진 세 개의 전구가 묘한 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전구에서 나오는 색과 그것을 받아 환해진 부처님의 얼굴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가가 작품의 제목을 봤다. 〈RGB lights-시각의 신세계(2015)〉.

그때였다. 바로 뒤에서 “예전보다 잘 보여서 좋구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거의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고 있던 그 어르신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분의 옷차림으로 짐작건대, 미술계에 종사하는 어떤 분이려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은 그냥 관광객이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을 불상을 위해 설치된 조명으로 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순간 피식, 하고 나오는 웃음을 참았던 것 같다. 물론, ‘사물에 대한 시각적 인식 새롭게 하기’라는 이 작품의 의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르신의 안목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십 분을 넘게 미간을 좁히고 불상의 얼굴을 노려보던 바로 내 모습! 나는 어느새 색의 의미를 찾아보고, 작가의 해설을 읽어보고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생각했다. 곱씹고 또 곱씹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결국 하나의 단어로 귀결되었다. “인식.”

그랬다. 내가 실상사에서 본 빨강과 노랑은 삼원색이 합쳐진 그 어디의 색이었다. 실제로 세 가지의 색 어디에도 없는 색이지만, 그것이 섞이면 우리의 뇌가 인식하는 빛깔. 이 가을, 어쩌면 나는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들을 경험하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더 풍성해짐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빛깔과 모양, 냄새와 촉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의 몸 어딘가에 촉수가 돋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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