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첫 기억은 부산 초량의 피난 시절, 기도하시는 외할머니 품에 안긴 것이다. 새벽 4시마다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독실한 불교 신자셨다.

누구든 그 뛰어난 우윳빛 미모에 감탄을 자아내어 곁에 있던 내가 으쓱해졌던 1904년생의 할머니는 집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계셨다.

덕수국민학교 여학생 중 전교 1등으로 졸업한 나를 여학교 배정 날 오시어 이화 줄에 서게 하신 것도 할머니였다. 한 반에 20여 명이 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경기로 가던 때였다. 친구들이 ‘너 거기 줄 서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경기에 가면 과부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할머니와 경기를 나온 할머니 친구들이 납치와 전쟁으로 과부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이화를 갔고, 크리스천 학교의 영향으로 나는 후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불교 신자인 할머니께서 나를 크리스천으로 전도한 셈이다.

그렇게 미국에서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다니고 있는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이 마침 크리스천 학교여서 자연스럽게 그 채플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아주 어려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간 기억은 생생하다. 한번은 얼어붙은 겨울날 서울 도선사에서 빙판길을 내려오다 할머니와 내가 미끄러지고 엎어지는데 지나던 청년이 붙잡아드리니 “아휴 구세주를 만났네.” 하며 긴 언덕바지를 소녀처럼 즐겁게 내려가시던 생각이 난다.

여기 교토는 어딜 가나 절이다. 크고 작은 절이 2,500여 개나 된다. 불교는 우리나라가 6세기에 전해준 것인데 그 전통이 천 년 너머 이어져 왔고 그 안의 정원은 어딜 가나 기막히게 아름다워 교토 최고의 자산이요, 세계인들이 몰려오는 관광 자원이기도 하다. 천 년 전 우리 선조가 지어준 목조건축과 그 정원 예술을 볼 적마다 나를 길러 주신 할머니가 이 아름다움을 보셨을까 생각한다. 1920년대 와세다 법대를 다니신 할아버지와 신혼살림을 동경에서 하셨고, 1970년대에 외삼촌이 오사카 공보원장을 하셨으니 보지 않으셨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794년부터 1867년의 메이지 유신 때까지 천황이 거주했던 고도(古都) 교토는 일본 문화의 정수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 열아홉 곳 모두가 불교와 관련된 건축물과 조각품들이다. 한 도시에 불교 사찰만 수천 개이니 과연 세계적인 불교도시라 하겠다.

올봄부터 그런 도시에서 그 문화를 바라보며 나는 살아가고 있다.

도시샤 대학은 아시아인으로서는 미국 대학 최초의 학사인 ‘니시마 조(新島 襄)’가 1875년 세운 일본 최초의 기독교 대학이다. 교토의 대표적 사찰이었고 일찍이 조선통신사도 묵은 적이 있던 상국사(相國寺) 경내를 일부 불하받아 지은 학교다.

교내에 건물을 지으려 땅을 파면 당시 그 사찰의 유물이 많이 나온다. 그 상국사 절과 도시샤 대학의 채플이 바로 곁에 위치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종교로 승격된 신도(神道)의 수장인 천황의 궁은 도시샤 대학 바로 앞에 있다. 

세 종교가 한 지역에 공존하는 것을 보며 일본 문화와 의식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된다. 신도는 6세기 우리 백제가 불교를 전해주기 전부터 있어 온 종교로 일종의 자연신 숭배사상이다. 불교의 전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었으나 백제의 후예인 성덕태자의 노력으로 일본의 중심 종교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 불교가 일본에 뿌리를 내리면서 신도교의 자연숭배 사상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생명존중 사상과 환경보존 사상이다.

독해 시간에 그와 관련된 예 하나를 배웠다. 음식을 들기 전 일본 사람들은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頂きます, 戴きます))” 하며 두 손 모아 예를 갖춘다. 나는 이것을 상대와 그 재료를 기른 이와 그걸 만든 이에게 하는 감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식은 함께하는 이나 기른 이에게가 아니고 고기나 생선, 곡식 등 그 생명에 깃든 영(靈)에게 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신도 사상에서는 만물에 영이 깃들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물었다. “그래도 기른 이에게 잘 먹겠다는 뜻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희생된 생명을 생각하면, 기르고 만든 수고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듯하였다. 귀한 생명을 죽여 조리해 먹는 것이니 그 채소와 물고기는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희생되는 셈이다. 그러니 희생된 그 생명과 영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이타다키마스’인 것이다. 이는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불교 사상과도 통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인간만큼 소중함을 가르치며 살생을 금지하는 가르침이다.

창조된 주위의 생명체를 다시 돌아본다. 다양한 생명체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류의 의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교토는 6·25동란 때 법원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북으로 납치당해 가신 후, 첫 손주인 내게 지극한 사랑을 쏟으신 장복순 할머니의 생각을 유난히 많이 나게 하는 도시이다.
너무 일찍 갈 사람에게 정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아아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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