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역사의 역동성 구명에 매진할 터

이봉춘
먼저 영예로운 불교평론 학술상을 주신 《불교평론》과 심사를 담당하신 심사위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권위 있는 학술상을 받는 일은 매우 영광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막상 수상소감을 밝히고자 하니 새삼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그것은 아직도 저의 학문연구가 깊지 못하고 이루어놓은 업적 또한 미미함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불교역사 분야로 공부의 방향을 정한 것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불교학 연구를 불교교리·불교역사·불교응용의 세 분야로 크게 구분했을 때, 그 가운데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들 각 분야는 저마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또 불교 발전을 위해서도 다 같이 필요한 연구들입니다. 따라서 이들 세 분야를 놓고 저는 오래 고민해야 했으며 결국 불교역사 연구로 방향을 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순수 교학과 사상 또는 신앙을 포함하는 교리 분야는 불교의 근본이며 본질인 만큼 그 연구가 크게 중요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상당 부분에서 관념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또한 선택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측면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또 불교응용 분야는 당시로서는 아직 그 윤곽과 내용이 제대로 논의되고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다만 크게 흥미를 느끼면서도 확신을 갖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비해 역사 분야는 구체적인 현실태로서 인간 삶의 궤적을 논한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우선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교학 사상 등의 문제는 어떤 한 가지 틀로만 고정시킬 수 없으며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의 경험적 사실을 대상으로 삼는 역사 문제의 구명에 더 마음이 끌린 셈입니다. 더구나 불교역사란 곧 불교의 사상, 신앙 등이 인간의 삶에 투영된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광범한 불교사 가운데서도 한국불교사를 전공으로 삼은 저에게 조선불교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조선시대의 불교는 암울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정치로부터 한결같이 강제되어 온 피지배적인 역사, 인적 물적 억압과 종교적 침체, 교학과 사상의 쇠퇴, 불교교단의 힘겨운 생존방식 등 이 시대 불교의 경험들 대부분이 우울한 것들입니다. 이 같은 조선불교의 역사는 찬연했던 신라불교나 국교의 지위를 누린 고려불교와 대비되면서 그 쇠락상이 더욱 부각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런 인상은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조선불교의 여러 가지 현상들에 눈을 돌렸을 때 그것은 상식과 선입견 수준 그대로 어둠 짙은 한 시대의 역사로만 읽힐 뿐이었습니다. 이는 과거로부터 미쳐온 영향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다카하시 토호루(高橋亨) 등 식민시대 일본인 학자들로부터 시작한 조선불교 쇠퇴론 등 부정적인 시각과 평가에 거의 무비판적으로 훈습되어 온 결과이기도 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불교를 신라나 고려의 불교가 보여주는 창의성과 역동성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식민시대의 큰 사상적 조류 또는 역사적 상황의 변동을 함께 고려할 때, 단순히 조선불교에 드러나는 현상 자체만으로 조선불교를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저는 오히려 수난과 쇠퇴로만 규정되어 오는 조선불교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조선불교만의 긍정성 그리고 어떤 역동성이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습니다. 개국으로부터 대한제국 성립 때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한결같은 숭유배불의 이념과 정책이 조선불교에는 무거운 질곡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선불교에서 과거의 인상과는 다른 모습들을 새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조선불교에 대한 저의 애정과 애착의 결과라고도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한 시대 불교역사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을 찾아내는 일, 그것은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에서도 시사함이 적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의 불교뿐만이 아니라 한국불교 역사는 끊임없는 미래를 위해 더욱 새롭게 읽어내고 계속 구명해 가야 할 작업입니다. 불교평론 학술상이 능력이 부족한 저에게도 그런 의욕과 용기를 북돋워 주신 것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이봉춘 박사의 연구논문 목록
〈조선전기 불전언해와 그 사상〉 《한국불교학》 5, 1980.
〈전법노력과 역사의식〉 《법륜》 1982.
〈원효의 승가관〉 《한국불교학》 9, 1984.
〈불교와 한글전용〉 《한글새소식》 151, 1985.
〈삼국·통일신라시대불교의 주체적 수용〉 《불교학보》 24, 1987.
〈조선시대의 관음신앙〉 《한국관음신앙연구》 1988.
〈핵가족화의 제문제〉 《현대의 제문제, 그 불교적 해답》 1989.
〈천태종지에 대한 고찰〉 《백화》 3, 1989.
〈백곡화상-척불의 부당성 항의한 대장부〉 《한국불교인물사상사》 1990.
〈고려 천태종의 성립과 그 전개〉 《한국사론》 20, 1990.
〈고려후기 불교계와 배불론의 전말〉 《불교학보》 27, 1990.
〈조선 개국초의 배불추진과 그 실제〉 《한국불교학》 15, 1990.
〈안락사, 어떻게 볼 것인가〉 《동학》 1991.
〈조선 태종조의 배불책 단행과 그 논거〉 《불교학보》 28, 1991.
〈조선 성종조의 유교정치와 배불정책〉 《불교학보》 28, 1991.
〈조선시대 법난불교의 재조명〉 《석림》 25, 1992.
〈연산조의 배불책과 그 추이의 성격〉 《불교학보》 29, 1992.
〈조선 세종조의 배불정책과 그 변화〉 《한국불교사상사》 上, 1992.
〈보우대사의 교관〉 《허응당보우대사의 재조명-제1회 봉은학술세미나논문집》 1992.
〈근대 불교개혁론의 이념과 실제〉 《석림》 26, 1993.
〈독창적 불교 철학의 개척자 원효〉 《한국인》 12, 1993.
〈일제하의 불교대중화운동〉 《백화》 7, 1993.
〈군승활동 강화를 위한 제도와 방안〉 《군불교 진흥을 위한 세미나 발표논집》 1993.
〈신행단체의 현황과 문제점〉 《재가불자의 의식개혁운동 세미나 발표논집》 1994.
〈세조대의 흥불정책과 불전언해〉 《한국불교사의 재조명》 1994.
〈승관조직과 승과제도〉 《한국사》 16, 1994.
〈한국불교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불교학 연구, 그 회고와 전망》 1994.
〈원효의 탄생지에 관한 고찰〉 《원효학연구》 1, 1996.
〈불교의 역사〉 《대학교재 1-1》 1996.
〈(성릭학의 전래와 수용)불교와의 관계〉 《한국사》 21, 1996.
〈군종활동의 역사적 고찰〉 《96군종발전세미나집》 1996.
〈사명당 유정의 선교관〉 《한국불교학회 춘계학술회의 논문집Ⅱ》 1996.
〈태고보우시대의 불교사회〉 《태고보우국사논총》 1997.
〈조선 후기 선문의 법통고 : 경허의 법맥계보를 중심으로〉 《한국불교학》 22, 1997.
〈중종대의 불교정책과 그 성격〉 《한국불교학》 23, 1997.
〈원효의 원융무애와 그 행화〉 《원효학연구》 3, 1998.
〈근세 천태종의 전개와 동향〉 《천태학연구》 창간호, 1998.
〈(조선중기)불교계의 동향〉 《한국사》 31, 1998.
〈조선시대 불교의 자구노력과 그 결과, 《전운덕 총무원장화갑기념불교학논총》 1999.
〈조선시대의 승직제도〉 《한국불교학》 25, 1999.
〈조선시대 불전언해와 그 불교사적 의의〉 《불교어문논집》 4, 1999.
〈불교 생활의례 정립을 위한 시론〉 《불교문화연구》 1, 2000.
〈회통불교론은 허구의 맹종인가〉 《불교평론》 5, 2000.
〈조선불교의 도총섭 제도와 그 성격〉 《사명당 유정-그 인물과 사상과 활동》 2000.
〈근대한국불교의 역사와 정체성〉 《회당학보》 6, 2001.
〈조선불교의 경제현실과 그 대응활동〉 《대각사상》 4, 2001.
〈조선전기 숭불주와 홍불사업〉 《불교학보》 38, 2001.
〈뇌허 불교학의 비젼과 그 계승〉 《불교문화연구》 2, 2001.
〈불교가사의 전통과 그 상징성〉 《불교문화연구》 3, 2002.
〈흥륜사와 이차돈의 순교〉 《신라문화연구》 20, 2002.
〈실록으로 본 조선초 척불소의 경향〉 《불교학보》 39, 2002.
〈태고사상과 한국불교의 갈등현상〉 《태고사상》 2, 2002.
〈천태종 중창의 역사적 의의〉 《천태학연구》 5, 2003.
〈무학자초 함허기화〉 《한국불교 천년 지성사》 2003.
〈효령대군의 신불과 조선전기 불교〉 《불교문화연구》 7, 2006.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100년사 재조명〉 《불교문화연구》 7, 2006.
〈한국불교지성의 연구활동과 근대불교학의 정립〉 《근대동아시아의 불교학》 2008.
〈참으로 어떻게 믿을까〉 《믿음과 수행의 길-원각불교시리즈1》 2008.
〈범산 김법린의 사상과 활동〉 《한국불교학》 53, 2009.
〈충만한 삶, 고요한 죽음〉 《지혜와 자비의 삶-원각불교시리즈2》 2009.
〈세속의 길, 수행의 길〉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원각불교시리즈3》 2010.
〈보우의 불교사상과 불·유 융합조화론〉 《한국불교학》 56, 2010.
〈유정의 구국활동과 교단내의 평가〉 《불교학보》 56, 2010.
〈한국 관음신앙의 역사적 고찰〉 《불교의 새로운 지평-원각불교시리즈4》 2011. 
〈미래사회와 한국 천태종〉 《미래세계와 불교-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11.
〈가사의 인도적 원형과 중국적 변용〉 《천태학연구》 15, 2012.
〈민중과 함께한 조선시대 스님들〉 《지혜의 향연-원각불교시리즈5》 2012.
〈한국 관음신앙의 역사와 천태종의 관음신행〉 《수월관음 및 관음신행의 종합적 연구》 2012.
〈과잉의 시대, 그 행복과 탐욕〉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자의 삶-원각불교시리즈 6》 2013.
〈병고 고익진의 삶과 학문세계〉 《한국불교학》 69, 2014.
〈홍정식-인간, 사회, 시대 지향의 불교학 탐구자〉 《불교평론》 62, 2015.
〈상월대조사의 신행과 대한불교 천태종의 신행〉 《동아시아 법화경 세계의 구축 Ⅲ》 2015.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