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비판한 친불 경세가*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정약용의 불교사상 비판론〉(《유교사상문화연구》 제49집, 2012)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공자와 맹자의 실천적 유학 정신에 입각하면서 조선 사회의 사상적·사회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주자학을 비판한 담대한 사유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산은 또한 청년 시절에 서학(西學)에 심취한 역정이 있을 정도로 유학 이외의 사상에 대한 열정도 뜨거웠다. 당시 조선사회에서 서학은 유교 세력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었던 적대적인 사상이었으나 다산은 서학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조선의 유학자들이 이단 사상으로 간주하면서 경계했던 불교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하고 있었는가?

연구자에 따라서는 다산이 불교에 대해서 상당히 친화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하고, 엄연히 불교를 배척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다산은 경사(經師)이면서 선사(禪師)이다.’라고 천명하는 입장도 있으며, ‘다산은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론은 각각 나름대로 일정한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다산의 불교인식이라는 주제로 그의 불교관의 특성을 탐색하여 보고자 한다.


2. 불교사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양상

1) 불교 심성론에 대한 입장

다산이 불교사상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주자학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산은 맹자의 심성론이 유학의 심성론의 본의를 드러내는 의미 있는 입론이라고 인식하고, 주자학의 심성론은 맹자의 심성론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초점에서 불교 심성론의 문제를 거론한다. 즉 다산은 주자학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의 근원을 언급하면서, “본연지성이란 말은 원래 불서(佛書)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 유학의 천명지성(天命之性)과는 얼음과 숯불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이니, 말할 바가 못 된다.”라고 불교사상을 문제 삼는다. 다산은, 주자학에서 인간 성선(性善)의 근거로 삼는 본연지성 개념이 실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유교의 근본정신을 표현하는 개념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산은 천명지성을 유가(儒家)의 고유한 성 개념으로 간주한다. 다산은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이 하나이면 도(道)도 하나이다. 성의 근본은 천에 있다.”라고 함으로써, 성이란 천[上帝]으로부터 부여된 것이기에 ‘천명지성’이라 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불교에서 연원한 본연지성의 개념이 주자학의 중심 개념이 되고 있으나 그 함의가 유가의 정통적 성론과 다르며, 또 옳지도 않다는 것이다. 다산은 “본연이라는 명칭은 본래 《능엄경》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그는 유가들이 별다른 반성 없이 불교의 《능엄경》에서 유래한 본연지성의 개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다산은 또 불교의 성(性)을 유학의 성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고 하여 그 천언만어(千言萬語)가 모두 이 성을 찬미했으나 그 본의는 맹자의 성선설과는 매우 다르다. 저들이 말한 것은 본체의 허령기묘(虛靈奇妙)한 것이고, 맹자가 말한 것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이,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찌 취지가 같은 말이겠는가?

다산은 불교에서 인식하는 인간의 성은 본체의 허령기묘함을 말하므로 유학의 기호적(嗜好的)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불교의 견성(見性)은 허령기묘한 마음의 본체를 본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다산은 불교의 성을 ‘실체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불교에서의 성은 허령한 실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불교 심성론은 유가 심성론의 정통인 맹자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산은 맹자의 성선(性善)은 낙선치악(樂善恥惡)의 기호라고 이해될 수 있으므로 곧 비실체적 경향성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맹자와 불교의 심성론은 그 의미상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다산이 불교 심성론을 실체론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주자학의 성론이 결정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올바른 입론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즉 다산은, 성은 마음의 기호이므로 선이나 악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단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경향과 같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마음을 밝게 함으로써 실체적 성을 보면 곧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심성론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불교의 심성에서의 선악 문제에 대해서도 다산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불씨(佛氏)는 ‘여래장성 청정본연(如來藏性 淸淨本然)’이라고 했다. 이는 본연의 성이란 순선무악(純善無惡)하여 터럭만 한 찌꺼기도 없고 맑게 빛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기혈(氣血)에 의해서 본연이 물들게 되므로 죄악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송나라의 여러 선생은 모두 이 불설(佛說)을 따랐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영체(靈體)를 기호로 논한다면 낙선치악(樂善恥惡)하고, 권형(權衡)으로 논한다면 가선가악(可善可惡)해서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다. 어떻게 순선무악(純善無惡)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다산은 여래장 개념을 중심으로 불교의 청정과 본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를 선악과 관련지어 논하고 있다. 다산은 불교의 불성론에서 불성을 ‘여래장 자성청정심’으로 보는 입장을 언급한 것이다. 여래장 자성청정심의 입장에서는 성불(成佛)의 관건이 ‘반관심성(反觀心性)’ ‘각심(覺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가에서 이 자성청정심은 일체의 염오(染汚)도 없으므로 인간이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기혈(氣血)에 기인한다는 입장으로 귀결된다고 다산은 주장한다. 기혈을 악의 근원으로 보는 이러한 불가의 설은 주자학자들에게 그대로 수용되어 기질을 악의 유발 근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마음이라는 영체는 기호[성]의 측면에서 낙선치악하고, 권형의 측면에서 가선가악하므로 심성을 선(善) 결정적인 본체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다산은 성은 비결정적이므로 인간이 악을 하게 되는 것은 마음으로 인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도학이나 문장을 가지고 스스로 높은 체하는 사람을 칭찬하면 좋아하고 비난하면 성내는데 이것은 기질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은 “‘허령(虛靈)한 것은 순선(純善)하므로 악할 리가 없다.’는 것은 불씨의 말이다.”라고 지적한다. 즉 불교에서 마음이 온전히 선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라고 다산은 강조한 것이다. 

다산은 “내가 불서(佛書)를 보니 모든 말이 심체(心體)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찬탄했는데, 우리 유가(儒家)에는 이런 법이 없다.”라고 언급하여 유교와 불교 심성론의 차이를 지적하였다. 본래의 심성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순수 청정으로 규정하고 이를 직관하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입장은 유교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상이라고 다산은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 심성론의 자성청정심은 선악의 이원적(二元的) 대립성을 넘어서는 본래 청정을 의미하는 것인데, 다산이 불교의 심성론을 비판하면서 청정심을 선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원적 상대주의로 불교의 입장을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불교 수양론에 대한 입장

다산은 주자학의 수양론이 함의한 문제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불교사상으로부터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주자학이 불교 수양론의 논지를 일부 수용함으로써 사상적인 한계를 내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산은 불교 수양론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는데, 이는 불교 수양론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자학의 수양론을 비판하는 주요 논점으로 불교를 거론한 것이다. 다산은 불교의 심성론이 심성에 온전한 실체적 선이 갖추어져 있다고 이해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심성의 실체적 선을 전제한 수양은 마음의 관조(觀照)에만 집중하게 되는 폐단이 있다고 인식한다.

《맹자》의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마음에서 움직여 행위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으로써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서가 될 뿐이다. 인의예지는 행동으로 드러나 인이 되고, 의가 되고, 예가 되고, 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인의예지를 마음속에 있는 성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측은·수오·사양·시비를 인의예지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하니, 이는 심성을 너무 중시한 것으로써 안연(顔淵)이 인(仁)을 물은 데 대해 공자가 사물(四勿)로 대답한 뜻과 다르다. 이로 인해 구산 이후 여러 사람들이 정좌(靜坐)를 통해 드러나 이의 기상을 체인(體認)하는 것을 성학(聖學)의 종지(宗旨)로 생각하였으며, 양시(楊時)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끝내 선(禪)에 물드는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다산은 정좌의 수양법에 대해 거론하면서 불교의 선(禪)을 비판하고 있다. 양시 등의 유가들이 정좌를 중시한 이유는 ‘드러나기 이전의 기상’ 즉 본래의 성품을 각성하는 미발시(未發時)의 수양이 성인 되는 공부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발의 수양이 정좌에 치우쳐 ‘선(禪)에 물드는 잘못’을 범하게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수양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사단(四端)의 마음을 일으키고 사덕(四德)을 실천하는 것이 수양의 참된 의미라고 본다. 그런데 정좌만을 중시하고 정작 도덕적 문제사태에서 사단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이는 미발시 수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다산은 “미발이란 희로애락의 정이 발하지 않았을 뿐이니 어찌 마른 나무나 타버린 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선가(禪家)의 입정(入定)과 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한다. 다산은 유학의 미발이나 이발(已發)이 불가의 선정과는 다르므로 입정을 유가 수양론의 핵심으로 상정하는 것은 잘못된 입장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다산은 불교의 선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중시하므로 실제의 삶에서의 가치 실천의 문제를 본질로 삼지 않는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바람직한 가치를 실제적인 인간관계에서 실천하는 수양을 중시하는 윤리라고 다산은 규정한다.

다산은 불교 수양법은 일상의 도리 실천 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입적(入寂)’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불씨(佛氏)는 마음에 대해 논할 때마다 항상 적감(寂感)으로 말했다. 정문(程門)의 여러 사람들 또한 ‘양가(兩家)의 설(說)이 일치하여 부합된다.’고 하면서 그들이 미발·이발을 논할 때 오직 이 구절을 인용해서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성문(聖門)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은 신사(愼思)에 있는 것이지 입적(入寂)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계신공구(戒愼恐懼)에 있는 것이지 묵존(黙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산은 정주학자들이 불가의 수양법에 의해 점염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불가의 수양법은 견성을 본질로 하므로 ‘입적’과 ‘묵존’을 중시하지만, 유가의 수양법은 행사적(行事的)인 수양이 본령이므로 치심(治心)의 방법으로 ‘신사’와 ‘계신공구’를 중시한다고 다산은 강조한다. 다산은 유가의 신사와 계신공구는 실사(實事)에서 도덕 문제를 해결하고 덕을 실천하는 실제적인 수양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주학자들이 유가와 불가의 수양법이 그 의미상 일치한다고 보는 것은 유교 수양론을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다산은 지적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 다산은 ‘명경지수설(明鏡止水說)’을 거론하면서 마음 본연의 청정에 침잠하는 입적과 묵존의 불교 수양법을 비판한다.  

명경지수설은 불가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심체의 허령적연(虛明寂然)이 마치 수경(水鏡)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사려가 없고 계신공구의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조금도 동요됨이 없게 된 후에야 이러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다.

명경지수설은 외물(外物)과 실사로부터 단절된 채로 마음의 적연[적정]만을 도모하므로 유학의 본령과 어긋난다고 다산은 간주하고 있다. 즉 유학에서는 미발시에 계신공구하는 바탕에서 일마다 마땅한 도리를 헤아려 중(中)을 취하는 것을 수양의 본질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사적 수양론의 입장에서, 다산은 “명경지수를 허명(虛明)이라고는 말할 수 있으나 중(中)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라고 불교 수양론을 비판한다. 허명적연만을 강조하고 실사에서의 선악을 고려하지 않는 좌선적(坐禪的) 명경지수 방법을 통해서는 실제적인 도덕적 문제 상황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하는 것과 사려·판단하는 것이 중절(中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점에서 다산은 “행사로써 본성을 함양하는 요체를 삼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장차 공적(空寂)에 빠져 결국 선승(禪僧)이 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경계하였다. 즉 다산은 불교의 수양법인 적정은 실제적인 도덕적 문제사태에서의 실천에 중점을 두지 않는 공허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렇게 다산은 불교의 묵존적 수양은 마음의 고요함을 추구하여 본래 마음을 보는 데 있을 뿐이며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는 소극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산은 이러한 불교의 입정, 적멸의 수양법이 정주학의 수양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유학의 본래적인 행사적 수양의 의미를 약화시켰다고 우려했다.

3) 불교 윤리관에 대한 입장

다산은 불교의 윤회(輪廻)와 불살생(不殺生) 그리고 유교의 인(仁)과 같은 주요 윤리적 논점들을 상관적으로 논급하기도 한다. 먼저 불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윤회에 대해 다산이 언급하고 있는 점을 검토해 보자.    

불씨는 인간이나 만물의 성이 같다고 생각하므로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기도 하고 개가 죽어서 사람이 되기도 하여 끝없는 윤회로 생생무궁(生生無窮)하다고 한다. 소문충(蘇文忠)이 이 말을 그대로 믿어〈적벽부(赤壁賦)〉와 〈조주한문공묘비음기(潮州韓文公廟碑陰記)〉를 지을 때 그 말을 사용했는데도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 것은 송나라 때의 현인들이 이러한 병폐를 많이 범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불교의 윤회설을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기도 하고, 개가 죽어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산은, 불교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성이 같다고 보는 입장에서 윤회를 주장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이 입장에 대해 비판한다. 다산은 인간의 존재적 위상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매우 고귀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만물 가운데서 가장 귀한 존재라고 하면서 “천하의 사람이 각기 배태(胚胎)한 그 처음에 영명스러운 마음이 부여되어 만류(萬類)를 초월하여 만물을 향용(享用)하고 있다.”라고 규정한다. 다산은 사람이 모든 존재 중에서 유일하게 윤리적 존재이므로 오상(五常)의 덕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으며, 이 점에서 인간이 주(主)가 되므로 인간과 만물은 차등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산은 인간과 만물의 성이 동일하다는 입장에 근거하여 사후(死後)에 사람이 동물로 되기도 하고, 동물이 사람으로 되기도 한다는 불교의 윤회설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인식한다.

다산이 윤회설을 비판하면서 거론한 불교의 성론 비판은 ‘성즉리(性卽理)’에 근거하여 인(人)·물(物)의 성이 동일하다고 보는 주자학적 성론을 비판하는 그의 입장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영명한 마음을 가졌지만 다른 동물은 영명한 마음이 없어서 인의예지를 인식할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명확하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은 사후에 서로 생을 교호(交互)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다산에게서 사후에 사람이 소가 되거나, 소가 사람이 되는 윤회는 불가능하며, 윤회의 방식으로 개체의 본성이 계속 이어지는 생생무궁도 불가(不可)하다고 다산은 주장하는 것이다.  

다산은 인·물의 성이 같다는 주자학의 입장이 매우 불교적이라고 보고,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성론은 유학의 본래적 입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개·소·사람의 같은 면을 찾으면서 호랑이와 이리에게 인(仁)을 강요하고 승냥이와 수달에게 예(禮)를 요구하며, 그들로 하여금 수도(修道)·수교(受敎)하게 하며 모두 대중(大中)의 경지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은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물의 성이 같다는 것은 불씨의 말이다.

주자학에서 인·물의 성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인간에게 해당하는 윤리적 규범을 동물에게도 요구하는 것은 오류이며, 이러한 주자학의 입장은 인·물의 성이 같다는 불교의 설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다산은 강조한다. 이 점에서 다산은 불교의 사유는 주자학과 같은 오류를 안고 있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인간은 인간대로 그리고 동물이나 초목은 그들대로 본래적 성에 부합하는 서로 다른 도리가 있다고 인식한다. 이에 다산은 유학의 위천지육만물(位天地育萬物)도 ‘소림 선승들의 면벽(面壁)의 선(禪)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인간에게 합당하게, 그리고 인간 아닌 존재들은 그들에게 합당하게 그 본성을 온전하게 실천토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산은 그 본성을 온전히 다하는 개념인 ‘진성(盡性)’을 인성과 물성으로 구분하여, “진인성은 사람을 다스려 지성(至善)의 경지에 이른 것이며, 진물성은 상하(上下)·초목(草木)·조수(鳥獸)가 모두 무성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인간에게는 윤리적 도리를 구현하는 것이 진성이며, 물(物)에게는 생명을 잘 발양시켜 무성하게 생장하도록 하는 것이 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산은 이 맥락에서도 불교의 선(禪)을 비판하고 있다. 
다산은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규범에 대해서도 유교의 인(仁)과 비교하면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두 사람이 인(仁)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접촉해야 비로소 인이라는 명칭이 생긴다. 사물에 있어서는 인이 합당하지 않다. 불가에서 살생을 금하는 것은 사물에 대해 인하는 것이며, 묵자(墨子)의 겸애(兼愛)는 남을 친애(親愛)하는 것이다.

인이란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가운데서 구현되어야 할 덕으로 다산은 간주한다. 즉 인은 오직 사람 사이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가치라고 규정하므로 불가의 불살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불살생은 사물에 대한 것이며, 사물에 대해서는 인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이 점에서 보면 다산은 불살생을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전제에서 불살생의 불교 규범을 유교의 인과 다르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산이 불살생 규범에 대해 비판하면서, 불가의 불살생을 ‘인간 아닌 다른 존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실은 불교의 불살생 계율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을 죽이지 않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불살생에 대한 다산의 입장은 불교의 규범을 지나치게 협의로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불교의 불살생 규범에 대한 다산의 비판은 그의 불교규범 비판의 집요함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라고 보인다.

3. 불교사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특성

불교사상에 대한 다산의 논의에는 주목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산이 불교사상의 심성론, 수양론, 윤리관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은 대체로 ‘비판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산은 불교사상에 대한 입장을 표명함에서 많은 경우에 주자학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거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불교사상에 대해서 상세하거나 장황하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다산은 주자학의 심성론과 수양론의 문제점이 유학 본래의 정신과 어긋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인식하고 이 점에 대해서 상당히 우려하므로, 주자학의 사유 형성에 영향을 미친 불교사상[특히 선불교]의 논점을 비판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의 불교사상에 대한 인식은 ‘주자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문제적인 사상’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다산이 근본적으로 불교사상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불교사상 비판의 목적은 불교를 근본적으로 절멸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주자학의 문제점과 관련된 문제적 사유로 불교를 지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주자학 비판을 강화하고,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는 맥락에서 불교사상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다산의 불교사상 비판은 주자학 비판을 위한 부수적 과업으로 추진되는 측면이 뚜렷하다. 그렇기에 불교에 대한 다산의 인식은 강력한 적대감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      

다산이 불교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는 하나 크게 적대적이지 않은 경향은, 당시의 사회적 변화의 추이와도 상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 초기에 유학자들은 유교 지배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그간 지배적인 위상을 누려온 불교에 대해 엄정한 비판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산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불교와 관련된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하나의 사례로 주자가 배불(排佛)한 중요 근거였던 ‘불교는 무효(無孝)·무충(無忠)의 가르침’이라는 논리가 약화되기 시작한 점을 들 수 있다. 즉 임진왜란 과정에서 승군(僧軍)이 충을 실천하고,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통해서 불교에서 효를 중시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불교에 대한 유학자들의 비판적 입장이 완화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주자학의 사회적 지도력이 약화되고, 장례(葬禮) 문화 등에 있어서 불교의 영향이 증가되고, 또 일부 승려들은 화엄과 선(禪)을 바탕으로 유학자들과 교류하기도 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유학자들이 조선 전기와는 달리 비교적 불교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으며, 다산에게도 이러한 부드러운 대응의 경향이 엿보인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다산은 주자학 비판의 보조적 방편으로 불교사상을 문제 삼는 데 주력하였으며, 불교사상 자체를 독립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지는 않고 있는 경향을 나타냈던 것이다.

다산의 불교사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불교 신도가 절에 시주한 일을 다룬 실제적인 사안을 평한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다산은 《목민심서》 〈청송상(聽訟上)〉에서 “전지(田地)의 소송은 백성의 재산에 관계된 바이니, 한결같이 공정하게 처리해야 백성이 이에 승복할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신응시의 사례를 들고 있다. 

신응시가 호남 지방의 감사로 있을 때이다. 남원에 어떤 부민이 있어 불교에 혹하여 가산을 다 바쳐 부처를 섬기며 만복사(萬福寺)에 전지를 시납하고는 문권을 만들어 영구히 절급하여 자기의 정성을 표하였으나 그 후에 마침내 굶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빌어먹고 다니다가 빈한하여 죽을 지경이 되자 소장을 갖추어 관에 하소하여 시납한 전지를 돌려받으려고 여러 차례 소송했으나 그때마다 지므로, 이에 감사에게 호소했다. 신응시가 그 소장의 끝에 손수 판결하기를 ‘전지를 시납한 것은 본래 복을 구한 일인데, 몸은 이미 굶어 죽고 자식은 빌어먹으니 부처의 영험 없음을 이에 의거하여 판결할 수 있다. 전지는 그 주인에게 돌려주고 복은 부처에게서 받으라.’라고 하였다. 이에 온 도(道)가 쾌하다고 여겼다.

다산은 남원의 한 부민이 불교 사찰과 관련된 재산 문제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감사 신응시가 판결한 내용을 보고, “온 도가 쾌하게 여겼다.”라고 호평하였다. 즉 다산은, 소송인이 그 아버지가 만복사에 시납(施納)한 밭을 돌려받으려고 한 청이 정당하다고 보고, 이를 돌려주라고 판결한 것은 합당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 판결은 가산(家産)을 불교사원에 바치고 생활이 어렵게 된 백성의 고충을 이해하고, 시납한 재산의 일부를 돌려받아 어려운 생계를 해결토록 한 점이 부각되는 처결이다. 이 판결에 대한 다산의 간략한 호평은 불교신앙을 바라보는 그의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불교문화에 대한 친화적 인식의 특성

불교사상에 대해서 다산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다산은 불교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친화적(親和的)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인정하면서 승려들과 교유하고, 선(禪)의 차문화를 향유하는 등 불교적 정서와 문화를 수긍함으로써 불교와 친화하게 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미 17세 때 화순의 동림사에서 형 약전과 함께 유교 공부를 하면서 〈동림사독서기(東林寺讀書記)〉를 지었는데, 여기서 “절 문에 들어오자 맑은 생각이 일어났네”라고 표현하는 등 불교사원에 대한 정서적인 긍정성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그가 불교에 대해 심정적으로 적대적인 의식을 갖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산은 귀양 생활 동안에 여러 승려와 교유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상당히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배지에서 승려 혜장(惠藏)·초의(草衣)와 《주역》이나 불교사상에 대해 토론했을 뿐만 아니라, 보은산방(寶恩山房)·백련사(白蓮社[白蓮寺])·대둔사(大芚寺) 등에서도 여러 선도(禪徒)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다산은 또한 《대둔사지(大芚寺志)》를 편찬했는데, 거기에 수록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불교 기사를 토대로 엮은 우리나라 고대불교사(古代佛敎史)이다. 여기서 그는 고대 삼국의 불교역사와 신라 말까지 국내외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전기(傳記)를 정리하고 있다.

불교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다산이 승려와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불교사원과 불교역사를 소개하는 글을 작성한 것은 불교인과 불교문화에 대해서 다산이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정황들을 보면서 이을호는 다산이 불교에 호응한 바를 언급하여, “경사만년개작좌선(經師晩年皆作坐禪) 그대로의 아련한 모습”이라고 묘사하면서 “다산은 경사(經師)이면서 동시에 선사(禪師)이다.”라고까지 지칭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다소 무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검토한 바와 같이, 다산은 선학(禪學) 중심의 불교사상에 대해서 일관되게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동선교고〉를 찬술한 것에 대해서도 다산이 ‘선사’로서 혹은 ‘내유외불(內儒外佛)’로서 불교 교리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좀 더 정밀한 전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다산이 불교사를 찬술한 목적은 조선의 문화전통을 확립하는 일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즉 다산은 우리나라의 불교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재구성하는 데는 집중했으나, 사상적 측면에서 불교를 바라봄에 있어서 여전히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대체로 다산은 승려, 불교문화, 불교역사에 대해서는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다산이 불교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친화적인 마음을 갖지 않았다면, 승려들과 진정성 있게 교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대동선교고〉의 찬술을 비롯한 여러 사찰 관련 문헌을 집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은 조선의 불교문화에 대해서는 관용적으로 수용하고, 어느 점에서는 애정을 가지고 접하려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산은 당쟁의 폐해와 유학이 허례에 흐르는 비실제적인 면모를 목도하면서 주자학적 사유의 한계를 비판하고 유교적 지배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 그 자신이 주류 세력가들에 의해 유배당함으로써 주자학을 종지로 삼던 당대의 지배 유림들에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다산은 몸과 마음이 힘든 유배 생활 중에 승려들과 인간적인 교유를 하면서 불교도와 불교문화에 상당히 친화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다산은 불교문화와 역사를 조선의 전통문화로 소중하게 간주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교유한 승려들의 수도(修道)의 태도와 무욕(無慾)의 마음가짐에 대해 상당한 존중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5. 맺는말

사상으로서 불교 즉 ‘불교사상’에 대한 다산의 입장은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그의 논저에서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불교사상의 핵심적 가치들은 유학의 근본정신과는 그 의미가 확연하게 다르고 또 문제가 많다는 것이 그의 주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불교사상에 대해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고, 비교적 간명하게 불교사상의 요체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산이 불교사상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중요한 이유는 주자학과 불교사상의 관련 문제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다산은 주자학은 유학의 본령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학의 정신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주자학은 조선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자학 비판에 상당한 힘을 쏟고 있다. 다산은 이러한 주자학 비판의 과정에서 불교사상을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다. 즉 다산의 불교사상에 대한 비판은 주자학 비판에 부수되는 측면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불교사상을 주자학의 사유 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토대적 사유로 인식하면서 불교사상의 심성론·수양론·윤리관 등에 대해 비판하였다.

따라서 다산의 불교사상에 대한 비판은 불교사상의 문제점을 독립적인 주제로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유교윤리와 비교하거나 혹은 주자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보론적으로 거론하는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다산은 불교사상을 비판함에서, 유학의 입장을 강화하려고 하거나 주자학을 공박하려는 의지가 뚜렷해서 불교사상을 다소 협의의 맥락에서 이해하려 하거나, 유학의 입장에서 불교의 윤리를 독해함으로써 불교사상의 고유한 윤리적 의미를 소홀히 하는 듯한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산은 ‘불교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지만, 승려·불교역사·불교문화 즉 통칭하여 ‘불교문화’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측면에 대해서는 상당히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즉 다산은 승려와 친근하게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차문화를 향유했으며, 불교문화와 역사에 대한 글을 편찬하는 등 불교문화에 대해서는 친화적인 양상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불교문화에 친화적인 다산의 입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승려들의 태도에 대해 정서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불교문화와 역사의 전통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이영경 / 경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동 대학원 졸업(박사, 한국윤리사상). 경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소장 역임. 주요 저서로 《율곡의 윤리사상》 《한국사상과 마음의 윤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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