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聖胎)를 중심으로

들어가며

김지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어떤 종교에서든지 인간이 범속하고 일상적인 존재에서 이를 초월한 존재로의 변용을 이야기한다. 이는 현세적 욕망과 행복을 중시한다고 이야기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인간 변용에 대한 가르침은 교리와 교설 뿐 아니라 다양한 상징과 도상적 표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명청시대의 독특한 불교 도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근세에 있어서 불교와 도교의 교차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셉 니담(Joshep Needham)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는 나한상을 중심으로 한 명청시대의 불교 도상을 게재되어 있는데, 이는 아라한이 양손으로 배를 열어 복중의 부처의 얼굴, 혹은 갓난아이의 모습을 한 부처를 보여주는 이른바 ‘개심견불(開心見佛)’의 도상이다. 이러한 도상은 명청 시대에 여러가지 제작 예를 볼 수 있다. 먼저 명대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서는 중국 산서성(山西省) 오대산(五臺山) 불광사(佛光寺) 벽화의 오백나한도, 일본에 건너간 범도생(范道生, 1635-1670, 복건성 천주인)이 교토 오바쿠(黄檗)의 만복사(萬福寺)에 만든 십팔나한상을 들 수 있고, 청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는 사천성(四川省) 신도시(新都市) 보광사(寶光寺)의 오백나한상,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공죽사(筇竹寺)의 오백나한상을 들 수 있다. 니담은 이들 도상을 소개하면서 ‘도교 내단의 표상’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왜 불교 사찰의 도상들에서 도교 내단의 표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도교 내단은 어떤 것이며 그 속에서 갓난아기의 상징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까.

본 발표에서는 이러한 나한상의 개심견불의 표상이 불교에 있어서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점에서 도교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것을 동아시아에서 나타난 초월과 변용의 상징의 한 양태로 보고, 도교와 불교라는 서로 다른 종교적 배경 속에서 이것이 어떻게 함께 공유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인론과 성불과 득도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

불교와 도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성불(成佛)'과 '득도(得道)’ 혹은 ‘체도(體道)'일 것이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또 도교가 불교와 대비되는 하나의 종교적 체계로서 정립되기 이전, 중국의 고전적 이상형은 '성인(聖人)'이었다. 그리고 범부와 성인에 대한 논의, 특히 평범한 인간이 성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전국시대(기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오래된 철학적 주제였다.

다만 현대인에게 성인이란 초세간적인 saint, 혹은 sage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하기 쉽지만, 동아시아의 종교사상사 속에서 성인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층적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중국고전에서 성인이란 문명과 제도를 창조한 문화영웅으로, 반드시 초세간적인 혹은 초속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복희나 여와처럼 신화속에서 반신반수의 초인적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초인적인 능력이 있기보다는 인간 중의 하나이며, 기본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질서를 만들어내고 다스리는 이, 농기술과 편리한 기계를 만들어내는 테크니션이며 우리가 문명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질 문명과 함께 공동체의 윤리를 만들고 유지해온 존재이다. 문자와 불의 사용법, 의복과 주거의 제조법, 수렵과 농경술을 처음 정하고 발견하고 가르쳐 준 이들이 바로 중국 신화에서 삼황(三皇)으로 칭송하는 '성인'이다.

왕조가 성립한 이후에는 천자(天子), 즉 역대 왕조의 제왕(帝王)들이 천상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를 통치하는 성인으로 이념화되었다. 따라서 성인이란 신정일치의 중국왕조에서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인 개념이 세속을 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 초속적인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불교가 정착하면서부터이다.

또 한가지, 전국시대부터 육조시대까지 중국인들이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던 존재 중에 하나로 신선(神仙), 혹은 신인(神人)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불교가 들어온 후한시기, 부처가 서역의 성인이라기보다는 신인, 혹은 신선과 동일시 되어 설화화되었다는 것도 초기 불교 수용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이러한 신선은 단지 그와 만나는 것을 희구했을 뿐,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후대에 발전한 생각이다. 불사약을 찾아 사신을 보냈던 진시황(秦始皇; BC259-BC210)도, 여러 방사들의 조언을 듣고 신선술을 추구하던 한무제(漢武帝; BC159-BC87) 시대에도 신선이란 단지 만날 수 있는 존재이지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했던 혜강(嵇康; 223-262)의 시대까지도 변함없었다.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대담한 논의를 펼치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은 포박자抱朴子 갈홍(葛洪; 283-343)에 이르러서이다.

갈홍의 이른바 신선가학론(神仙可學論) 이후 단약의 복용, 송경과 명상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선이 되는 방법을 추구했던 도교가 발전하고, 대승불교가 보급된 4~6세기 육조시대 중국인들의 관심은 인간이 신선과 부처를 포함하여 ‘성인’이 될 수 있는가에 천착했던 것 같다. 어떻게 깨달은 자가 될 것이냐, 어떻게 도와 합일할 것이냐, 이러한 성불과 득도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은 필연적으로 그 가능성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었고, 이러한 물음들은 인간이 본래 선한 것인가, 선함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 중국 고대철학의 오랜 물음과 맞닿아 있기도 한 것이다.

즉 이러한 물음은 인간의 성(性, 본래 가지고 태어난 마음)을 둘러싼 전국시대 이래 중국사상사의 긴 논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관심의 맥락에서 중국 초기 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을 선언한 『열반경』의 열렬한 수용, 여래장(如來藏)과 불성(佛性) 사상이 풍미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가 가장 비천한 곳, 즉 기왓장이나 똥오줌 속에도 있다고 하는 『장자莊子』(外篇・知北遊)의 언설은 도성(道性)론의 기반으로 자리했고, 특히 『노자』에 대한 주석서들은 ‘도의 성격[道性]’을 ‘스스로 그러함[自然]’으로 정의하며(河上公注) 모든 사물과 존재 속에 도성이 내재함을 이론화했다.

이러한 중국적 사고가 『열반경』이 완역되기 이전에 이미 이찬티카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성불 가능성을 제창하게 했던 하나의 강력한 기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중국 승려 도생(道生; 355-434)이 5세기 중반 돈무참(曇無讖)에 의해 『열반경』이 완역되기도 전에 『열반경』 전반에 설해진 “一切悉有佛性”을 확대 해석하여 천제(闡提, 이찬티카)의 성불을 주장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9세기경 안넨(安然)에 의해 무정(無情)의 성불, 즉 “초목국토 실개성불(草木国土, 悉皆成佛)”이 주창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동아시아 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육조시대 도교에서도 『열반경』을 중심으로 펼쳐진 불성론과 마주하면서 불교적 언설을 차용한 도성론이 구축되었다. 6세기초 도교학자 송문명(宋文明)은 『도덕의연道德義淵』(돈황殘卷)에서 하상공의 노자 주석 “스스로 그러함이란 도성을 말한다(自然道性)”라는 구절에 대해 “이는 도성이 청허자연을 본체로 하고, 모든 생물이 각각 도성을 나누어 받았음을 논한 것이다. 먼저 현묘한 하나의 기를 품수받아 정신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 천명을 받아 그 몸뚱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論道性以清虛自然爲體,一切含識有各有其分. 先稟妙一之氣以成其神, 次受天命以生其身)”라고 설명했다. 6-7세기경 성립된 도교 경전 『洞玄靈寶本相運度劫期經』에서는 “一切衆生, 皆有道性”이라는 문구가 보이며, 당초 도사 번사정(潘師正; 586-684)은 고종(628-683)과의 문답에서 “一切有形, 皆含道性”(『道門經法相承次序』)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도교측의 도성론은 『도교의추道教義樞』卷八, 「도성의道性義」편에 집약되어있다.

이러한 불성론과 도성론의 전개가 앞서 소개한 독특한 도상적 표현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주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나,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보이는 그로테스크할 만큼 구체적인 묘사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도상적 표현의 기반은 좀 더 후대의 대담한 사상적 융합과 실험을 기다려야 한다.

2. 개심견불(개복현불) 도상의 원류

명청시대의 나한상에서 보이는 개심견불 (그러나 실제로는 개복현불開腹見佛)의 표상은 구체적으로는 삼교일치의 입장에서 쓰여진 양생수련서가 널리 읽혀지던 근세의 종교 문화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이들 도상표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헌은 명말에 유행한 『성명규지性命圭旨』의 「영아현형도嬰児現形圖」, 그리고 청대의 승려 유화양(柳華陽; 1735-1799)의 『혜명경慧命經』에 수록된 「도태도道胎圖」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이들 도상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도상 성립의 배경이 되는 사상적 연원을 도교와 불교 양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도교 쪽에서는 인간에 내재된 신선의 가능성의 표상으로서 영아와 성태를 이야기했던 내단 사상을 살펴볼 것이고, 불교 쪽에서는 성불 가능성과 수도의 단계론을 설했던 불전의 해석사를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1)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

 『성명규지』는 대략 15세기 중반 경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만력의 출판붐을 타고 1615년 출판된 판본이다. 이 책은 “윤진인의 고제(尹眞人高弟)”가 서술했다고 전해지나 저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 출판 양태나 현재 남아있는 전적들의 분포를 볼 때 명청시대의 중국, 조선, 에도까지 널리 보급되고 읽혔으니 그 영향력은 막대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에 실린 도해들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채 게재되긴 했지만 윌리암 빌헬름과 칼 융의 『태을금화종지』 영역본에 실려 서양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들 텍스트를 이해할 때, 내단이 송원이후 명청시대에 있어서 더 이상 도교라는 종교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정신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성명규지』는 가장 첫장에 그려진 부처와 노자, 공자의 삼성도(三聖圖)가 웅변하듯 삼교합일의 입장에서 심신 양면의 수련과 변화를 추구하는 텍스트로, 그 목적은 ‘성선성불(成仙成佛)’에 있으며 24가지 설(說)과 55가지 도(圖)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도해는 모두 도교의 내단이론과 승선의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그려진 것인데, 그 속에서 도교의 ‘연성(練性)’은 유교의 ‘존심양성(存心養性)’, 불교의 ‘견성(見性)’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성선성불의 프로세스는 『성명규지』(元集)에 9단계로 요약되며 ‘구전환단지공(九轉還丹之功)’이란 단법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其一曰∶涵養本原, 救護命寶. (근원을 길러 생명의 보매를 구하고 지키는 것)
 其二曰∶安神祖竅, 翕聚先天. (정신을 조규에 안정시키고 선천의 기를 모으는 것)
 其三曰∶蟄藏氣穴, 衆妙歸根. (기혈에 넣어두고 모든 신묘함을 근원으로 되돌리는 것)
 其四曰∶天人合發, 采藥歸壺. (하늘과 사람이 함께 발동할 때 약을 캐어 단지 속에 되돌리는 것)
 其五曰∶乾坤交媾, 去礦留金. (건과 곤이 교합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금만을 남기는 것)
 其六曰∶靈丹入鼎, 長養聖胎. (영묘한 단을 솥에 넣고 성태를 길러 키우는 것)
 其七曰∶嬰兒現形, 出離苦海. (영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것)
 其八曰∶移神入院, 端拱冥心. (신을 안으로 옮겨 들이고 가만히 앉아 무심의 상태가 되는 것)
 其九曰∶本體虛空, 超出三界. (본체인 허공으로 돌아가 삼계를 초탈하는 것)

이 중 여섯 번째가 “영단입정, 장양성태,” 일곱 번째 단계가 “영아현형, 출리고해”로 노래되고 있다. 즉 『성명규지』에서 성선과 성불의 가능성은 ‘성태’로, 아기신선과 아기부처의 표상은 ‘영아’로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영아현형도(嬰児現形圖)」는 남자 수행자가 자신의 복부를 열어 태중의 아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그 설명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앞서 화후(불조절)가 충족되면 성태가 완성되고, 마치 과일이 익는 것처럼 반드시 아기가 태어나니 열달이 지나면 아기집을 벗고 나온다. 석가는 이를 ‘법신(진리의 몸)’이라 하고 ‘실상(참된 모습)’이라 하며, 도교에서는 이를 ‘적자’라고 하고 또한 ‘영아’라고 한다.

前面火候已足, 聖胎已圓, 若果之必熟, 兒之必生, 彌歷十月, 脫出其胞. 釋氏以此謂之法身, 又曰實相. 玄門以此謂之赤子, 又曰嬰兒. (『性命圭旨』貞集)

‘영아’는 도교의 심볼리즘 속에서 도와 합일한 상태, 즉 득도의 표상으로 여겨져 오던 것인데 이것이 불교의 ‘법신’ 및 ‘실상’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다양하게 인용된 문장들을 살펴보면 이들 표상이 송원대의 내단학에 기원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진희이[陳摶, 북송]가 이르길, 아득하게 아무 종적없이 단방에 돌아가 현묘한 기관속에 침잠하여 성태를 맺으리. (중략)
장자양[張紫陽, 張伯端; 987-1082]이 이르길, 영아는 한조각 진기를 품었으니 열 달이 지나면 태아가 완전해지고 성인의 기틀[聖基]을 다지는 단계로 들어간다.
여순양[呂純陽, 呂洞賓]이 이르길, 하늘이 하나를 낳고 삼재로 변화하니 음양이 교감하여 성태를 맺는다.
장자양이 이르길, 서로 삼키고 서로 마시며 오히려 서로 친해지니 비로소 남자도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임을 깨닫는다. (중략)
종리옹[鍾離權]이 이르길, 태 속에 영아가 만들어지면 조심스레 덥히고 기르는 공을 들여야한다.
진니환[陳泥丸, 陳楠, 남송)이 이르길, 남아가 회임한 아기가 바로 태선이니 섬광이 칠흙같은 어둠 속에 둥그렇게 빛날 뿐이다. 하늘의 기틀을 빼앗아 참된 조화를 이루니, 몸 속에 저절로 옥청천이 있네.
陳希夷云, 邈無蹤跡歸丹房, 潛有機關結聖胎.(中略)
張紫陽云, 嬰兒是一含眞炁, 十月胎圓入聖基.
呂純陽云, 天生一物變三才, 交感陰陽結聖胎.(中略)
張紫陽云, 相吞相咽卻相親, 始覺男兒有孕身.
鐘離翁云, 胎內嬰兒就, 勤加溫養功.
陳泥丸云, 男兒懷孕是胎仙, 只爲蟾光夜夜圓. 奪得天機眞造化, 身中自有玉清天. (『性命圭旨』利集)

『성명규지』는 이러한 내단의 프로세스와 동일한 가르침으로 『능엄경』의 십주(十住)를 들고 있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도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능엄경』에서 말한 것과 같이, “행위가 부처와 동일하니 부처의 기운을 받는다. 그것은 마치 중음신(中陰身; 아직 태속에 들어가지 못한 몸)이 스스로 부모를 구하면 그 신실함이 비밀스럽게 통하여 여래의 씨앗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이를 생귀주(생명의 존귀함을 받는 단계)라 한다. 이미 도태 속에 유영하고 있으니 친히 깨달음의 결과를 받든다. 태가 완성되면 사람 모습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를 방편구족주(방편이 모두 갖춰진 단계)라 한다. 용모도 부처와 같고 마음 역시 그러하니, 이를 정심주(바른 마음을 갖춘 단계)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함께 완성되어 하루하루 자라나니, 이를 불퇴주(물러남이 없는 단계)라 한다. 열가지 몸의 영묘한 모습이 한 때에 모두 갖추어지니, 이를 동진주(참된 아이가 된 단계)라 한다. 몸이 완성되어 태를 벗고 나오니 친히 아기부처가 된다. 이를 법왕자주(진리의 왕자가 된 단계)라 한다. 성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면 일국의 대왕이 여러 나랏일을 태자에게 나누어 맡기고, 저 카트리야 왕세자가 장성하여 관정의 예를 받는 것과 같으니, 이를 관정주(머리에 관을 쓴 단계)라 한다.

여래의 씨앗에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종성을 여래의 씨앗으로 보는 것으로서, 스스로 조화를 일으켜 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도태’라 하고 ‘각윤’(覺胤: 깨달음의 결과)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미가 낳는 아기와 도교(현문)의 태선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이 완성되어 태를 벗어나 친히 아기부처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르면 (여동빈이 말한) “진인이 출현하니 대신통이로다. 이로부터 천선이 되니 경하할 만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至于釋教教人, 亦不外此. 如『楞嚴經』曰, “行與佛同, 受佛氣分, 如中陰身, 自求父母, 陰信冥通, 入如來種, 名生貴住; 既游道胎, 親奉覺胤, 如胎已成, 人相不缺, 名方便具足住; 容貌如佛, 心相亦同, 名正心住; 身心合成, 日益增長, 名不退住; 十身靈相, 一時俱足, 名童真住; 形成出胎, 親爲佛子, 名法王子住; 表以成人, 如國大王, 以諸國事, 分委太子, 彼剎利王世子長成, 陳列灌頂, 名冠頂住.” 夫入如來種者, 以種性而爲如來之種子, 以自造化如來也, 故曰“道胎”, 又曰“覺胤”, 其與婦人之胤兒, 玄門之胎仙, 亦何以異?及至“形成出胎, 親爲佛子,” 豈不是“真人出現大神通, 從此天仙可相賀”耶?(『性命圭旨』利集)

보살에서 부처가 되는 단계에 대한 언설들은 지론(地論)의 유행이나 중국선술불전, 화엄학의 발전에서 보듯 중국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였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보살지의 문제는 오랜 기간 중국인들의 마음에 자리하면서 신선이 되는 과정을 밝힌 내단학과 함께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성명규지』의 독자층이 단지 도사나 서민층이 아니라, 서문을 쓴 추원표(鄒元標; 1551-1624)가 대변하듯, 고반룡(高攀龍; 1562-1626)이 이끌었던 명대 주자학의 모범 동림서원(東林書院)의 멤버들이었으며, 이 텍스트가 문인들의 심신 수양법으로 실천되었다는 점이다. 명청시대 문인들과 종교인들은 이들 상징을 인간 초월과 변용의 표상으로 읽어온 것이며 그 저변에는 불교와 도교의 일치를 시도했던 송원시대 내단학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2) 『혜명경』의 도태도

유화양(柳華陽, 1735-1799)의 『혜명경』은 『성명규지』의 내용과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유화양이 출가한 승려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오수양(伍守陽; 1573-1644?)의 내단설을 불가 수련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여 『능엄경』과 『화엄경』, 『육조단경』을 기반으로 내단설을 융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유화양은 혜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그 기본적인 입장이 역시 삼교합일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혜명이란 석가여래가 처음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던 이름을 취한 것이다. 이는 서방의 범어로서 중국사람에 있어서는 ‘본원(本源)’이라 하며 유자들은 이를 ‘선천의 기(先天炁)’라 말한다. 이는 부처가 되는 수련의 방편이고, 조사가 되는 수단이며,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방법이다. 慧命者, 乃如來當初所取以示人之名也. 是西方之梵語, 中華人之本源, 儒謂之先天炁也. 是修佛之舟梯, 作祖之權柄, 即孟子所謂善養浩然之炁者, 是也.
(「集說慧命經」)

유화양은 홍도 (현재의 강서성 남창) 지방 사람으로 어려서 불교를 좋아하여 절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다. 수련을 위해서 선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수양의 도를 만나게 되어 비밀스런 뜻을 전수받고 혜명의 도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곧 자기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임을 깨달았으며, 후에 호운(壺雲)노사를 만나 수도에 정진하고, 그 가르침들을 책으로 엮어 『혜명경』이라 명명했다.

그는 도를 구하는 이들이 선어록을 숭상하지만 어록중에는 진실된 말도 있지만 망령된 말도 있다고 하면서, 하학(下學)들이 여래 혜명의 길은 모르고 선어록의 상투어들만 입에 달고서 결국 하우(下愚)가 되어 또 선어록을 전수해간다고 비판한다. 그는 여러 경전들을 읽어가며 오수양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능엄경』, 『화엄경』, 『육조단경』 만이 진실된 말을 담고 있으며, 선사어록이나 화상어록 등은 망령된 말을 담고 있다고 여겼고, 수련의 도는 실어가 아니면 그 참된 뜻을 헤아릴 수 없으며 진실된 말이 아니면 허망을 피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유화양은 「도태도」가 『능엄경』에 원래 존재하던 오의를 나타낸 것인데, 속승들이 이를 알지 못하여 이 그림이 전해지지 못했다고 하며, 이를 통해 “여래(의 가르침)에 도태(道胎)가 있고 진실된 공부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태가 대체 무엇인가.

태라는 것은 형상이 있거나 어떤 다른 것이 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 자신의 신[神]과 기[炁]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신이 기 속에 들어가고 후에 기가 신을 감싸고, 신과 기가 결합하여 의식이 움직임 없이 고요해지는데, 이것이 이른바 ‘태’이다. 또한 (순화된) 기가 응결한 뒤에 신이 영명해지니, 이것이 『능엄경』에서 말하는 “친히 깨달음의 결과를 받든다”는 것이고, 두 가지 기가 서로서로를 기르니, “하루하루 자란다”고 하는 것이며, 기가 충만하고 태가 완전해지면 정수리에서 나오니, 이른바 “몸이 만들어지면 태에서 나오니, 친히 아기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蓋胎者, 非有形有像而別物可以成之, 實則我之神炁也. 先以神入乎其炁, 後炁來包乎其神, 神炁結而意則寂然不動, 所謂胎矣. 且炁凝而後神靈, 故經曰, 親奉覺應; 二炁培養, 故曰, 日益增長; 炁足胎圓, 從頂而出, 所謂形成出胎, 親爲佛子者矣. (「道胎圖」)

즉 『혜명경』에서 ‘도태’란 인간의 정신과 원기가 결합하여 의식이 부동의 고요를 찾는 열반삼매의 상태를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화양이 말하는 『능엄경』에 원래 존재한다는 ‘도태’란 어떤 것일까. 이는 앞서 『성명규지』에서 인용된 부분, 즉 석가여래가 아난에게 설명한 보살이 갖추어야할 열가지 마음가짐[十心, 十住]으로 이야기 된다. 이는 수도자의 마음 상태를 태아가 형성되어 아기로 태어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 빗댄 것이다.

도태는 그러한 열가지 마음 상태 중 다섯 번째 단계, 즉 방편구족주의 “이미 도태에서 유영하고 있으니 친히 깨달음의 결과를 받든다. 태가 완성되면 사람 모습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과 같다”는 구절에 보인다. 또한 유화양이 인용한 다른 『능엄경』의 구절은 일곱 번째 불퇴주, “몸과 마음이 함께 완성되어 하루하루 자라난다”, 그리고 아홉 번째 법왕자주, “몸이 완성되어 태를 벗고 나오니 친히 아기부처가 된다”는 부분이다(T19, 142b).

『혜명경』은 이러한 『능엄경』의 도태를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와 유사한 형태로, 다만나체로 수행하는 불보살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역시 복중의 아기부처를 열어 보여주는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능엄경』의 이미지는 「출태도(出胎圖)」에서도 시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그림은 여래의 백호에서 발산된 빛 속에서 연꽃이 나타나고, 다시 작은 부처가 그 연화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이는 능염경에서 여래가 이러한 신이한 현상을 보이며 신주를 설하는 장면을 취한 것이다. 그림 형식은 『성명규지』의 「단공명심도(端拱冥心圖)」와 「양신출현도(陽神出現圖)」를 복합해 놓은 도상인데, 이 그림을 『혜명경』은 “양신의 출현(陽神之出)”으로 해석하고 있다.

능언경의 주문에서 말하기를, “이 때 세존이 육호에서 온갖 보배로운 빛을 내시니, 빛 속에서 천개의 꽃잎이 있는 연화가 생겨났고, (화신으로서의) 여래가 그 보화 속에 앉아 정수리에서 시방으로 온갖 보배로운 빛을 내시어 두루두루 비추시니, 대중들이 우러러 보았고 방광여래는 신주를 설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양신의 출현이다.

『楞嚴』咒曰, “爾時世尊, 從肉髻中湧百寶光, 光中湧出千葉寶蓮, 有化如來坐寶花中, 頂放十道百寶光明, 皆徧示, 大衆仰觀, 放光如來宣說神咒”者, 即“陽神之出”也.
(※능엄경 원문은 다음과 같다. 『楞嚴經』卷一(T19, 106c) 于時世尊頂放百寶無畏光明, 光中出生千葉寶蓮, 有佛化身結跏趺坐, 宣説神呪; 卷七(T19, 133c) 爾時世尊從肉髻中涌百寶光, 光中涌出千葉寶蓮, 有化如來坐寶華中, 頂放十道百寶光明, 一一光明, 皆遍示現十恒河沙金剛密跡, ・・・大衆仰觀, 畏愛兼抱, 求佛恃怙, 一心聽佛, 無見頂相放光如來, 宣説神呪.)

이상에서 보았듯이 『혜명경』의 「도태도」, 『성명규지』의 「영아현형도」의 사상적 배경을 찾아가면, 삼교일치 혹은 선불동원의 입장에서 저술된 내단설과 중국불교의 수도단계론과 만나게 된다. 다음에서는 도교에서 ‘성태’와 ‘영아’의 상징이 가진 의미와 내단 사상의 전개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불전에서 ‘성태’가 어떻게 이야기 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영아의 상징과 내단

성태와 영아의 상징은 도교사에서 그 근원을 찾아가면 『노자』의 ‘적자赤子’, ‘영아’ 그리고 육조시대 도경에 나타난 ‘태선胎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자』에서 영아는 “혼백을 지니면서도 하나되어 (심신을) 분리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에 집중하고 부드러움을 유지하여 영아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겠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제10장), “남성(적인 강함)을 알면서도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지킨다면 세상을 담는 골짜기가 된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된 (무위의) 덕이 떠나지 않고 영아로 돌아간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제28장)는 구절에서 보이는데 모두 작위하지 않는 도와 하나가 된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비유하고 있다. 또한 영아와 같은 의미를 가진 ‘적자’는 “깊이 (무위의) 덕을 품은 사람은 갓난아기(적자)와 같다 (含德之厚, 比於赤子)”(제55장)에서 보이는데, 이 역시 도가의 궁극적인 이상인 무위 자연의 도를 체득한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 도교사의 전개에 있어서 이러한 갓난아기, 젖먹이의 비유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명상의 대상이 되고, 여러 경전에 도상적 표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4세기의 계시문헌으로 성립한 상청경류에서는 수행자의 단전 속에서 태어나는 태선(胎仙)이 강조되며(『黃庭内景經』), 체내의 기와 신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궁극적인 자아, ‘제일(帝一)’이라는 신개념이 등장하는데(『大洞眞經』), 이들 모두 갓난아기의 형태로 표상되었다. 내단설이 대두하면서는 이러한 영아는 체내에서 합성되는 금단의 상징으로 여러 도교 서적의 도해 속에 사용되었다.

내단설의 대두는 도교사의 관점에서 중국의 중세와 근세를 구분하는 큰 변화의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당송변혁기를 거치면서 사회구조가 바뀌고 국가에서 지원되던 도관시스템 역시 약화되었는데, 내단설은 도교가 이렇게 변화된 사회구조와 새로운 신도층(상인과 사대부 계층)에 적응하면서 유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내단서는 기존의 도관시스템에서 입문한 도사들에게만 비전되던 도경들과 달리 도사에 국한되지 않고 문인들 사이에 널리 읽혔으며 송대 이후 출판기술의 발전과 함께 동아시아 각국에까지 보급되어 널리 읽히고 실천될 수 있었다.

내단설이 태동한 동인은 외단(外丹)의 발달과 쇠퇴에 있다. 외단이란 앞서 본 포박자 갈홍이 인간이 신선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외단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고, 금단(金丹)으로 불렸다. 시들어 사라지는 약초를 사용한 치료약들은 단지 병을 고칠 수 있을 뿐 죽음을 면할 수는 없으며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광물이야말로 인간의 육체에 영원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으로 여겼으니, 금단은 바로 신비한 광물의 합성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당 황실은 이러한 금단 제조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와 함께 연단의 프로세스와 언설은 다양하고 복잡해졌지만, 그 과정은 대체로 대극적인 성질을 가진 두 광물, 즉 ‘수은[汞=龍]’과 ‘납[鉛=虎]’을 ‘화로와 솥[爐鼎]’에 넣고 불을 떼서[火候] 두 광물의 합성체[黃芽]를 승화시켜 금단을 얻는 것이었다.

금단 제조의 이면에 인체 내에서 금단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병행하여 존재했고, 그에 따른 명상과 신체기법들도 실천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내단설이 유행한 것은 금단의 제조에 대한 황실의 지원이 끊기게 되면서 부터이다(북송 1068년경). 이러한 외부적 요인 이외에 사상적 동인으로서는, 도교의 일체경인 삼동경 시스템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고전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재발견과 『주역』을 근거로 한 도교우주론의 재해석을 들 수 있다.

송대이후 내단학의 계보를 흔히 불교의 선종과 유사하게 남종과 북종으로 나누곤 하는데, 북종은 왕중양(王重陽; 1112-1170)의 전진교 내단설을 주로 지칭하며, 남종은 『오진편悟眞篇』을 저술한 장백단을 필두로 강남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들(석태石泰, 설도광薛道光, 진남陳楠, 백옥섬白玉蟾, 팽사彭耜등)을 중심으로 계보화되었다. 그러나 사실 양종의 내단설은 모두 오대말 북송기에 유행한 『주역참동계』와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의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으며, 양쪽 모두 선불교와 도교의 일치를 주장하는 입장이 강했다. 특히 송대 이후 도교 내단설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정신성[神]을 인간 내면의 본성[性]에, 기질의 측면[氣]을 타고난 육체적 특징[命]에 배당하게 되었다. 정좌(靜坐)가 성공(性功)이라면 육체의 불사를 추구하는 것은 명공(命功)으로 여겨 이 두 가지의 종합, 즉 성명쌍수(性命雙修)가 이론화되었다.

『주역참동계』를 기반으로 『종려전도집』의 내단설을 도식화하자면, 수은과 납대신에 체내의 수화(水火), 즉 신장의 원기[水中氣]와 심장의 혈액[火中液]을 역의 감(坎☵)괘와 리(離☲)괘에 빗대어 신장에서 진양(眞陽)의 기를 추출하고 심장의 진음(眞陰)을 대체하여 단전을 화로와 솥으로 삼아 이 둘의 결합체를 얻어 승화시켜가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성태는 바로 음양의 기가 결합하여 생긴 새로운 생명, 신선이 될 태아이다. 이를 잘 길러 승화시킨 양신(순수한 양의 정신)은 육체를 초월하여 생겨난 자기 자신이며 이것이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여 초월적인 존재, 즉 신선(천선)이 된다는 것이다. 『종려전도집』의 다음 구절은 이러한 내단 프로세스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내단의 약재는 심장과 신장에서 나오니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단의 약재는 본래 천지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화후(불조절)는 일월이 왕래하는 수를 말하니, 그 수행은 마땅히 부부가 교합하는 것을 본따야 한다. (부부가 교합하면 태아가 생겨나듯) 성태가 이루어지면 진기가 생겨난다. 기 속에 기가 있으니 마치 용이 여의주를 기르는 것과 같이하면, 대약이 완성되고 양신이 출현한다. 양신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몸 밖에 존재하는 몸이며,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 출현하는 것이다. 內丹之藥材, 出於心腎, 是人皆有矣. 內丹之藥材, 本在天地, 天地常日得見也. ・・・火候日月往復之數, 修合効夫婦交接之宜, 聖胎就而眞氣生. 氣中有氣, 如龍養珠, 大藥成而陽神出. 身外有身, 似蟬脫蛻.(「論丹藥」)

신선이란 ・・・납에서 진음을 추출하여 수은의 진양에 더해[추연첨공] 순수한 금의 정기를 두정에서 제련하고[금정연정], 거기서 나온 옥액환단으로 육체를 연화하여 기의 상태로 변화시킨다[연형성기]. 오장에서 승화된 오기가 머리위 천궁에 조알하고[오기조원] 삼양의 기가 두정에 모이면, 공이 가득차 육체를 잊고 태선이 저절로 생겨나며, 음이 소진되고 양이 순화되어 몸 밖에 몸이 생겨나니[신외유신], 물질세계를 벗어나 승선하며, 범속을 초월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간다[초범입성].

神仙者, ・・・抽鉛添汞, 而金精鍊頂, 玉液還丹, 鍊形成氣, 而五氣朝元, 三陽聚頂, 功滿忘形, 胎仙自化, 陰盡陽純, 身外有身, 脱質升仙, 超凡入聖. (「論眞仙」)

사실, 『종려전도집』의 신선론은 단계설을 포함하고 있어 인선人仙, 지선地仙, 천선天仙의 단계로 나뉜다. 인선은 삶을 안락하게 하고 수명을 늘리는 소승의 법문으로 신장의 기와 심장의 액을 교합시키는 것을 통해 얻어진다. 지선은 장생불사하는 중승의 법문으로 연화된 기를 꼬리뼈의 미려尾閭에서 두정頭頂까지 상승시켜 신체 전체에 흐르게 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얻어진다. 천선은 범속의 상태를 초월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대승의 법문으로서, 연화된 진기(영아)를 양신으로 변화시켜 두정에서 몸 밖으로 초탈시켜 천계에 비상시키는 단계로 묘사된다.

앞서 보았던 『성명규지』에 인용되었던 장백단의 『오진편』은 이러한 내단의 프로세스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3. 보살의 마음과 장양성태

초월의 가능성, 즉 신선과 부처가 될 자기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는 ‘성태’가 도교 내단설에 중요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이 용어는 사실 5세기 경 성립된 중국선술불전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서 비롯한 것이다. 『인왕반야경』에는 불성론과 보살의 수도 단계론이 혼합되어 있는데, 信心, 精進心, 念心, 慧心, 定心, 施心, 戒心, 護心, 願心, 迴向心을 보살의 종성십심(種性十心)으로 들며, “모든 불보살이 이 열가지 마음을 기르고 키워 성태(부처가 될 기초)를 만든다(一切諸佛菩薩, 長養十心爲聖胎也)”고 말하고 있다. (T8, 826b)

길장(吉藏; 549-623)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인왕반야경소』에서는 이 보살의 열가지 마음에 대해, “(불보살이 되는) 대승의 법신종자를 이루는 것이니, 이를 성태라 이름한다(成大乘法身種子, 名爲聖胎也)”고 주석을 달고 있으며(T33, 329a), 당대 화엄학의 대가 징관(澄觀; 738-839)은 위의 『인왕반야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들 열가지 마음은 습종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십주의 원인이 된다(此之十心, 是習種性中, 爲十住因)”고 설명하며 『화염경』의 보살 십주십설과의 정합성을 구축했다(『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T36, 289c).

이러한 보살의 수도단계에 대한 논의는 육조시대부터 화엄학이 발달한 당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이를 주제로 한 중국선술불전이 성립되었다. 그 중에는 『인왕반야경』 이외에도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범망경梵網經』(5세기~6세기초)과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6세기경)이 있다. 『인왕경』은 보살의 수도단계를 41위설로 제시했고, 『범망경』는 40위, 『영락경』은 『화엄경』의 설(十信・十住・十行・十回向・十地)을 도입해 52지설을 제기했다. 『범망경』은 『인왕경』의 설에 기반하여 十發趣, 十長養, 十金剛, 十地의 위계설을 제시했는데, 이 중 ‘열가지 장양의 단계[十長養]’가 『인왕경』의 “長養十心爲聖胎”에서 온 것임은 명백하다.

『인왕반야경』에서 비롯한 ‘장양성태’라는 표현은 불교와 도교를 막론하고 육조시대 말부터 당대에 유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선사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이 유명한 평상심을 설하면서 ‘장양성태’란 표현을 전용하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마음[마음이 공한 이치]을 깨닫는다면, 때에 따라 옷을 입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며 성태를 기르면서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길 수 있으니 달리 무슨 일이 더 있겠는가?

若了此心, 乃可隨時著衣喫飯, 長養聖胎, 任運過時, 更有何事? (『景德傳燈錄』巻六 T51, 246a)

부처가 되는 길, 성태의 기름은 무사태평한 일상의 행위와 평상심 속에 이루어진다고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성명규지』와 『혜명경』 모두에서 도교의 내단의 프로세스와 일치하는 것으로 읽힌 『능엄경』은 마조가 활약하기 전, 중인도 승려 발랄밀제(般剌蜜帝, Pāramiti)에 의해 705년 한역된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현대 학자들은 중국에서 선술된 위경이라고 보고 있다. 『능엄경』의 십주설이 『인왕반야경』에서 이야기된 십심설과 보살의 수도위계론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불전에 나타난 ‘성태’와 ‘도태’ 등의 비유적 표현이 같은 시기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던 도교의 수련전통과 결부되어 이해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중국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개복현불의 도상에 대해, 그 연원을 도교와 불교 양면에서 살펴보았다. 수련 전통 뿐 아니라 문학 작품에 있어서도, 도교와 불교는 중국의 문인들에게 관료생활 너머에, 하지만 가까이 존재하는 초월의 세계로서 무한한 상상력의 자원으로 작동했다. 현세의 몸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중국인들에게 서로 다른 초월을 이야기하는 도교 불교는 어느 하나가 버려져야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이해해야할 것이었고, 이러한 ‘선불일치’ 나아가 ‘삼교일치’의 입장에서 도경과 불전을 읽고 이를 내면화한 문화의 담지자들—문인, 도사, 승려들에 의해 『성명규지』와 『혜명경』에서 볼 수 있는 대담한 융합과 초월의 상징을 낳은 것이다.

다만 중국인에게 새로움의 창조란 늘 남녀와 음양의 결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는 우주론과 생성론의 기본 관념이 존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미 아비 없이 태어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새로운 자아의 생성은 그것이 초월적 존재일지라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존재해야 하며, 태아가 뱃속에서 소중히 길러져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초월적 자아 역시 신중한 기름의 과정을 거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원전 4세경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야기 되었다는 점도 말이다.

나가는 말

이러한 성태나 도태의 상징이 한국의 현재 불교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여기서 소개한 『혜명경』 은 1994년 석원태씨에 의해 한글로 번역된 바 있고(서림문화사), 필자는 이 책을 오대산 영감사(靈鑑寺)의 법산(안영헌)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법산스님은 오대산 영감사에 계시다가 90년대에 신자의 보시를 받아 양평에 영감난약을 세우고 현재에도 양평에 계시는데, 『혜명경』을 비밀수행법의 하나로 여기며 필자에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전해주셨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한국의 스님들이 어느 정도 이들 도서를 접하며 수행하고 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몇몇 사찰에서 『혜명경』 강해를 한 적이 있고, 『불교승리신문』이라는 곳에서는 「불경연구」 칼럼에서 『혜명경』 의 도해를 다룬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불가수행법으로서도 어느 정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명규지』는 조선시대의 필사본이 국립중앙도서관 및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것들이 있어, 조선시대의 내단학과 함께 명맥을 이어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혜명경』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도서관 소장본으로서 1883년 인쇄된 목판본 『화양금선증론華陽金仙證論』(『혜명경』과의 합각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2011년에 이윤희씨에 의해 새 번역본이 나왔다(여강출판사).

도교에서 유래한 갓난아기의 도상이 불성의 상징으로서 불가의 수행법속에 현재도 살아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수련의 전통은 우리에게는 이미 잊혀졌으나, 내단 실천에 심취해있던 사대부가 존재했던 조선시대에 더욱 깊이 이해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념이나 도그마가 아니라 몸을 기반으로 한 수행의 입장에서 접근해보면 서로 다른 종교간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풍부하고 깊은 차원의 대화와 상호이해가 존재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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