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관점의 차이에 대한 비판과 회통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적 이해
김호성 지음 | 올리브그린
최근에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연구 서적이 두 권 출간되었다. 하나는 문을식의 《바가바드기타: 비움과 채움의 미학》(2012)이고 또 하나가 김호성의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적 이해》(2015)이다. 기존의 국내 《바가바드기타》 관련 출판물들이 대개 번역이거나 실천수행적인 관점에서 기술되었던 것에 비해 이 두 책은 전문적인 학술서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 박효엽의 《불온한 신화 읽기》(2011)도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기존의 ‘낭만적’ 관점이 아닌 메타적 관점의 독법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현재 학계의 연구 경향을 보여준다 하겠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및 대학원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호성 교수의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적 이해》는 저자가 지난 23년간 《바가바드기타》를 연구하며 국내외에 발표한 21편의 논문 중 5편을 모아 단행본으로 발표한 것이다. 21편의 논문 중에는 《바가바드기타》와 한국불교의 접점을 논의한 연구와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지만, 이번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샹카라(8세기 후반)와 틸락(19세기 후반)의 《바가바드기타》 해석을 고찰한 논문들을 모아 엮었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방법론비교’라는 제하에 〈샹카라의 호교론적 해석학〉 〈틸락의 분석적 독서법〉의 두 편이 실려 있다. 전자에서 김호성 교수는 샹카라의 주지종행적(主知從行的) 《바가바드기타》 해석을 불이론 베단타의 종파주의적 입장에 입각한 것으로 비판하고, 후자에서는 틸락의 《바가바드기타》 해석 태도를 분석적 독서법이라고 명명하면서 틸락의 독법이 샹카라와 비교하여 학문적 분석이 엄밀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2부는 ‘주제론 비교’라는 제하에서 샹카라와 틸락이 《바가바드기타》의 주제를 무엇으로 파악하였고, 또 그런 관점이 타당한가를 고찰한 논문 3편을 싣고 있다. 먼저 〈샹카라의 주제 파악과 틸락의 비판〉에서는 샹카라와 틸락 양자의 《바가바드기타》를 해석하는 관점 차이를 해설하였다. 다음으로 〈샹카라의 지행회통 비판〉에서는 지혜만이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 샹카라의 지혜일원론을 소개하고, 이러한 샹카라의 관점은 《바가바드기타》의 원래 입장을 왜곡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틸락의 행동주의적 해석〉은 《바가바드기타》의 주제는 행위의 길에 있다고 생각한 틸락의 소위 ‘행동주의’를 소개하면서, 그의 행동주의도 기존의 전통적 주석가들과 마찬가지로 종파성을 가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3부 ‘에세이’ 제하의 〈나는 왜 아직도 《기타》에 빠져있는가〉 1편은 논문이 아니라 《바가바드기타》를 연구하게 된 소이와 향후 연구에 대한 여러 소회를 피력하는 글이다.
이와 같이 기존 논문 5편과 에세이 한 편을 묶어 엮어낸 이 책은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샹카라와 틸락의 관점을 방법론적 측면과 주제론적 측면이라는 구조 속에서 설명하여 기존 연구 성과들보다도 한층 넓어진 외연과 심화된 내용의 논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지혜의 길(갸냐마르가), 행위의 길(크리야마르가), 믿음의 길(박티마르가)의 세 가지 해탈도를 보여주는 《바가바드기타》를 샹카라는 지혜의 길, 틸락은 행위의 길만을 강조함으로써 원래의 문헌이 가진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김호성 교수는 발군의 창의와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이고 학문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바가바드기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은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샹카라가 주지종행적 종파적 해석을 하고, 틸락이 행위 중심의 행동주의적 관점을 취한 ‘사실’은 잘 드러내었으나 왜 그들이 그런 해석을 했는가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가바드기타》는 바라문교와 힌두교의 분기점에 있는 문헌이다. 이 시기에 《바가바드기타》의 사명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 시기에 대두된 민중 중심의 인격신 신앙을 기존의 베다적 가치관 내에 포섭하고, 둘째 흔들리던 베다적 가치관(특히 제사로 대표되는 사성계급 제도)을 재확립하는 것이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이성적인 지혜를 기반으로 기존의 제사 개념을 일반적 행위로 재해석함으로써 제사, 혹은 사성계급의 의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민중들의 인격신 신앙(믿음)을 새로운 해탈도로 받아들임으로써 민중의 신앙을 기존의 바라문 가치관 속에 포괄하였다. 8세기 후반 인도의 복잡한 사상적 지형 속에서 샹카라는 제사보다는 지혜를 통해 보다 이성적으로 전통적 가치를 설명하려 했고, 비바라문적인 인격신 신앙보다도 지혜를 우위에 둠으로써 정통 바라문의 가치로 회귀하려 한 보수적인 정통 바라문 사상가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지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을 다룬 글들이 1부 ‘방법론비교’와 2부 ‘주제론비교’에 이어 실렸다면 샹카라가 제사나 신앙보다도 지혜를 더욱 중요시한 이유가 뚜렷해졌을 것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불교에 비유한다면 바라문교라는 소승에서 힌두교라는 대승으로 변화하는 분기점에 서 있는 문헌이다. 그래서 간혹 인도 종교의 대승적 형태를 나타낸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승적 사고는 수많은 인도종교에서도 특히 불교에 강렬하게 나타나는 불교적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바가바드기타》가 불교의 용어인 대승적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인도의 대승불교가 종교 엘리트인 사문들의 범위를 벗어나 민중들의 신앙을 반영하고 있듯 이 문헌 역시 당시의 지배계층인 바라문의 범위를 벗어나 민중들의 신앙을 포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문제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나와 너 사이의 관계라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윤리 문제를 중요시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종교적 추구를 시작하는 계기는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사문유관의 신화이다. 이 신화는 인생의 무상성과 해탈이라는 인도종교의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처님이 종교적 삶을 일관했다면 불교는 결코 인도의 여타 종교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불교가 여타 인도종교와 다르게 되고 또한 대승불교의 원인이 되었던 맹아가 나타나는 또 하나의 종교적 추구의 계기는 부처님의 어린 시절 농경제 체험이다. 여기서 어린 고타마 싯다르타는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생의 본질을 보게 된다. 고생하는 노동자와 그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 계급, 더 나아가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농부 때문에 죽게 되는 벌레, 그리고 살기 위해 그 벌레를 잡아먹는 새를 보며 깊은 충격을 받은 고타마 싯다르타는 비로소 인생 최초의 깊은 명상에 도달하게 된다. 부처님이 기존 바라문이나 사문의 선정을 진작 성취하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침내 연기법을 깨달아 성도한 것이나 성도 직후에 대열반에 들지 않고 평생을 바쳐 중생 구제에 나서게 되는 계기를 보여 주는 범천권청의 신화는 불교 최초기부터 내재한 대승정신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골육을 죽여야만 하는 전쟁터에서 전쟁의 의미를 묻는 아르쥬나 역시 고타마 싯다르타의 농경제의 체험과 유사한 문제의식 앞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농경제의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너와 나 사이의 관계라는 윤리의 본질을 묻는 보편적인 것인 데 비해 《바가바드기타》의 딜레마는 크샤트리아의 전투 의무가 정당한 것이냐를 묻는 다분히 인도사회의 특수한 문제의식이다. 다시 말해 불교의 문제는 인류 보편의 문제라고 한다면 《바가바드기타》의 문제는 인도라는 특정된 사회의 윤리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에 의해 불교는 연기라는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오늘날 세계종교가 된 반면, 힌두교는 인도라는 특수한 지역의 문화와 종교로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사성계급 제도를 완전히 부정하고 인도를 넘어서는 대승이라는 거대한 종교사상을 형성한 데 비해 후대의 힌두교는 비록 일부의 철학에서, 특히 불이론 쉬바파 탄트라에서 《화엄경》 유의 법계연기설과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코 바라문교의 사성계급 제도를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기존 사회체제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복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인도에서 급속히 힌두교를 잠식한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일한 문제 상황 속에서 불교가 기존 사회체제의 질서를 혁명적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 데(물론 이것은 사문종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비교한다면 《바가바드기타》는 기존 질서를 오히려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반동 내지는 보수적인 문헌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민중들의 종교적 욕구를 포섭했다는 점에서 《바가바드기타》는 대승불교와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결코 대승불교와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이와 같은 《바가바드기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다루어 이 문헌의 성격 이해와 그리고 샹카라와 틸락의 해석이 가진 특징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점이다. 
김호성 교수도 말하고 있지만 《바가바드기타》를 주제로 계속적인 연구를 행하는 학자는 국내에서 극소수인 것 같다. 이것은 국내 인도철학 연구자의 수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일 테고, 한편으로는 김호성 교수의 말처럼 어느 정도까지는 《바가바드기타》의 연구가 성취되었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연구의 성취란 세계 학계의 상황일 뿐, 국내의 《바가바드기타》의 학술적 연구는 이 책을 포함하여 앞서 거론한 책 두세 권을 제외하고는 아직 없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김호성 교수의 이번 출판은 학계의 큰 성과로 국내 《바가바드기타》 연구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 대비한다면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나아가는 지점에 서 있는 《바가바드기타》의 연구는 인도 정신의 핵심적 문헌으로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그 문헌적인 연구와 사상적인 연구는 일정 정도 성취되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재해석이나 또는 불교와의 비교 연구 분야에서는 아직도 연구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바가바드기타》의 회통적 성격과 《법화경》의 회통적 성격은 유사한 점과 더불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차제에 더 많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길 바란다.
오랜만에 새로운 내용과 깊은 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호성 교수의 계속되는 《바가바드기타》 연구를 기대한다. 책 뒷부분의 에세이에서 저자가 “믿음과 행위의 회통 속에서 진정한 비폭력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한 사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

 

심준보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외래강사.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박사). 주요 논문으로 〈선가와 쉬바파 일원론의 깨달음 개념의 비교〉 〈카쉬미르 샤이비즘의 우파야론 연구〉 〈한역불전에 나타난 베탈라(기시귀)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 《쉬바파 일원론의 연구》 등이 있다. 현 백화도량 상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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