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석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연구팀장

왜 이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아니 이 땅에서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나 자신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에 부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 속에서 시달리다보니 그것으로부터 해탈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자기중심이 서 있지 못하고 대상에 매달려 살다보니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고 대상의 향방에 따라 희로애락의 부침에 쌓여 일희일비하면서 늙고 병들어가며 시간을 갉아먹고 사는 꼴이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은 요즘 사람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수행으로 눈길을 돌린다. 아무리 고매한 지식을 가진 이도, 아무리 불교에 대해 이론적으로 해박하게 꿰차고 있는 이라도 수행을 통한 내면의 변화와 자기 확신 없이는 어느 지식도, 어떤 문자도, 부처님의 말씀이나 옛 조사의 어록도 어쩌면 한가한 잡담이나 앵무새 소리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간화선 수행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이 간화선을 통해 깨달은 선지식들의 향훈이 우리 주변을 감돌고 있다. 더구나 그 수행전통이 전통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활발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해마다 2000여 명의 수선 납자들이 산중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고 있으며 재가자들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모습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이렇게 간화선의 전통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수행하고 있는 나라는 그 어느 곳도 없다. 일본에도 간화선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간화선은 좋게 말해서 현대적으로 실용화되었고 나쁘게 말해서 좀 변질되어 있다. 순수한 간화선 혈통은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에 조계종은 조사선과 그 조사선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간화선을 중심 수행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다. 우리들이 간화선을 올곧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깨달음을 향한 강한 집착, 생활과 수행이 일치되지 않는 모습, 선방에서 가부좌 틀고 앉아 있을 때는 부처인데 방문을 나서는 순간 중생의 모습으로 변하는 이중적인 태도,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수행자의 행동 등 그런 정황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심지어는 10년, 20년 수행했다는 참선 수행자가 결국 화두 참선을 포기하고 다른 수행의 길로 진로를 바꾸는 안타까운 현상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경험해 본 일이지만, 학창 시절 수련대회를 가면 화두 참선 시간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 뿐이다. 참선하는 동안에 도대체 어떤 설명도 없이, “이 뭣고” 또는 “무”하라고 해서 그 화두를 들어보니 도대체 의심이 걸리지 않는 화두를 들어본들, 그것이 마음에 확고하게 걸릴 리 만무하지 않았던가. 잠시라도, 순간만이라도 화두가 들리지 않으니 온 시간을 망상과 씨름하거나 인내력과 씨름하다 시간을 보내고 만다. 그도 아니면 혼침에 빠져 졸다가 죽비세례를 맞고 깨어나기가 다반사다. 그래서 오히려 참선 시간이 고통의 순간이요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지 않았는가. 가만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그랬다고 한다. 그렇게 해도 해도 안 되니 지도 법사스님이 수식관을 권해서 다행히 그것을 통해 정신 집중을 해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간화선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 일상 속에서 명멸하는 팔풍경계를 대처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 행복을 심어 주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 않았던가.

조사선을 부흥시킨 마조 도일 선사도 일갈했듯이 깨달음과 수행은 일상의 일이요, 일상에서 그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간화선을 체계화한 대혜 스님 역시 당시 대표적인 지식인들이었던 사대부를 대상으로 간화선을 지도했으며, 상당수 깨친 이들이 재가자 속에서도 나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사선, 간화선은 생활선인 것이다.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빛을 발해야 하는 선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하여 조계종단에서는 이러한 간화선을 체계적으로 알리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선원의 대표적인 수좌스님들과 연구 노력하여 『간화선-조계종 수행의 길』을 편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이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은 행정적인 명칭이라서, 곧 이것을 대중에게 다가가는 이름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은 간화선에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을 위하여 간화선 수행의 가치와 간화선의 의미, 화두 참선법 등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하여 제시한 것이다.

이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의 목적과 특징, 그리고 목표를 하나하나 설명해 가면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 목적
○ 조계종 핵심신도 양성
○ 생활수행으로 간화선 정착, 확산

▶ 특징
○ 간화선의 올바른 이해를 통한 실참 수행
○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 들기
○ 철저한 자기점검으로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심을 키움

▶ 목표
○ 부처님 말씀에 대한 체계적 이해로 정견을 세우고 신심과 발심을 일으킴
○ 일상생활 속에서 혼자서도 화두를 들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함
○ 진정한 평화와 마음의 안정,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조건과 기반 마련

이 입문 프로그램의 목적으로서 조계종 핵심신도를 양성하자는 것은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간화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그것에 맞추어 자기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신도들을 길러내자는 것이다. 즉 무늬만 조계종 신도인 것이 아니라, 조계종이 지향하는 가치대로 신행과 수행생활을 해 나가는 신도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계종단이나 조계종 신도들이 한 목소리를 가지고 향상하는 앞길을 힘 있게 열어 나가며 종단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장애와 난관도 일치된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생활수행으로 간화선 정착은 간화선이 우리가 발을 붙이며 살고 있는 이 현실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그것이 지향하는 바 효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화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이 기쁘고 행복하고 평화로울 때, 그리고 각자가 당당히 앞길을 개척해 나갈 때 그 수행의 가치가 이 현실에서 역력하게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간화선이 추구하는 길과 그 깨달음은 저 언덕 저편에서 무언가 신비한 무지개가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풋풋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간화선 실참 수행지도가 핵심

이 프로그램의 특징으로서 중요한 것은 간화선의 올바른 이해를 통한 실참 수행이다. 도대체 간화선이 무엇인지, 간화선은 무엇을 지향하는지, 화두란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믿고 알고 실천 수행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간화선 수행이 너무 체계 없이, 심하게 말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어 별다른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고, 간화선을 체험해 보겠다는 불자들을 중도에서 좌절케 했다는 절망어린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간화선은, 화두는 사실 발심이 되었을 때 문고리가 문지방에 탁 걸리듯 마음의 중심에 와서 착 자리 잡는다. 내가 화두를 들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내가 화두를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며, 화두를 들고 나갈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마련이다. 화두를 들면서 물러나지 않는 마음도 여기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화두를 들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없으니, 즉 발심이 안 되어 있으니, 그 화두가 잘 들릴 리 없고, 좀 들린다 한들 장애가 닥쳐오면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발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도대체 화두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알려 주고자 하였다. 화두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지적해 줌으로써 그것이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깨닫고 체험케 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떻게 화두를 들고 나가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어 화두를 들 때 일어나는 망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애를 제거해 나가면서 마음을 맑고 고요하며 평화롭게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점검해야 화두의심 키워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철저한 자기점검으로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것이다. 화두는 의심이 되어야 들린다. 그것은 억지로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다. 진정코 나는 누구인가, 왜 그런가하면서 생각이 끝나는 지점까지 물어가는 것이다. 이성의 판단작용이 갈 곳을 잃어버리는 지점까지 가서,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왜 그런가? 라고 의심이 올라오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지점이 굉장히 힘들다. 이 도리가 무엇인지, 왜 그런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의심을 내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정말 참 어렵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아직 완벽하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이 문제를 풀어가는 길을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진정한 의심을 일어나게 할 것인지는 계속 점검하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목표로서 제시된 중요한 사항은 ‘부처님 말씀에 대한 체계적 이해로 정견을 세우고 신심과 발심을 일으킨다’는 사항이다. 여기서 요긴한 대목은 정견을 세우는 것이다. 정견의 확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 즉 연기 무아, 중도 공을 정확히 이해하고 출발하자는 의미이다. 연기, 무아, 중도, 공은 나를 비롯한 우주의 존재 원리이기도 하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궁극적인 지점이다. 이러한 법에 대한 이해 없이 수행했을 때, 그것은 자칫 외도 수행으로 빠지거나 삿된 길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해 나갈 때 올바른 불교 수행길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법을 내 문제로 가슴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자기에게 부딪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부처님 법을 통해 해소해 나가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는 내가 본래 부처라는 철저한 믿음을 강조한다. 내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자기 긍정 없이 수행하다면 그것은 간화선 수행과 십만팔천 리 멀어져 나간다. 본래 부처라는 믿음은 나와 현실에 대한 대긍정이다. 여기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중요하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도 본래 부처임을 확신하는 것이 간화선이다. 이 본래 부처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화두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간화선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간화선 입문 수행은 11차례의 강의와 심참 실수를 통해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수행일지 쓰기와 수행담 나누기 과정을 거친다. 수행일지 쓰기는 매번 각 주제(품)별 강의가 끝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수행 과제를 주면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해 보고 그 느낌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것은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적용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자기 점검을 통해 발심을 촉발하고 분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며,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정진을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수행담 나누기는 당일 배운 사항이나 지난 주 수행 과제에 대해 자신이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일종의 자기 체화 과정이다. 이때는 모둠별로 한 조를 이루어 도반들과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는다. 도반들과 만나며 또 다른 생활 법문을 듣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배운 내용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실천의 장에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느껴 보도록 한다. 이것은 또 다른 자기 발견의 시간이요 살아 있는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은 두 차례의 시범운영과 다시 두 차례의 정식으로 운영해 보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간화선 수행에 관한 얘기로는 이렇다. 간화선에 대해 확신이 섰으며, 간화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이전에 막연히 화두를 들고 공부한 것보다 훨씬 공부 진척이 잘 되었다. 화두가 성성하게 들리며 다양한 수행 체험을 해 너무나 기뻤다. 내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확신이 섰다.

그 다음, 생활의 변화 측면을 보면 이렇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발생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 대인관계가 원만해지고 좋아졌다. 화를 다스릴 수 있었으며 하심 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 참여했을 때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으며 삶이 여유로워졌다.

물론 모든 참가자가 이러한 체험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화두가 잘 안 들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진단을 내리기 조심스럽지만, 그것은 프로그램이 다소 미흡했거나 제대로 내용이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올인 하듯이 매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프로그램을 제대로 맛보려면 가급적 한번이라도 결석하지 말아야 하며, 지도자가 주는 수행과제를 실천하고 수행일지를 제대로 써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참하고 일상에서 점검하고, 그것을 다시 묻고 탁마하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한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체험 강도는 내가 얼마나 확신과 애정을 가지고 참여했느냐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유능한 지도자라면 그러한 모든 것을 감안하고 세심하게 지도하여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실토해 보건대, 사실 화두가 한결 같이 지속적으로 들리는 경지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아차!’ 하는 순간 망상이나 혼침으로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초심자의 경우, 화두 드는 것이 그렇게 녹녹하겠는가. 누구나 쉽게 화두를 들 수 있다면 사실 누구나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화두를 드는 데는 끊임없는 노력과 발심,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물러나지 않는 지극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가는 습관을 규칙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그러면 화두가 일상생활 속에서건 그 어디서건 올 곧게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갈 방향

조계종단에서는 이러한 입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다양한 계층별, 기간별 프로그램을 개발해냈거나 개발해 낼 예정이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주부, 군인, 재소자, 노인층을 위한 계층별 프로그램은 물론 1일, 1박 2일에서 일주일까지 진행되는 기간별 프로그램이 그것들이다.

그렇다면 도심사찰이건 산중사찰이건, 시민선방이건 선 센터건, 학교건 직장이건, 그 어디서건 선의 가르침을 듣고 참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교과과정의 정기 커리큘럼으로 등재되어 학생들은 학점 취득과 더불어 간화선 수행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 기분 좋은 일 아닌가?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너무 간화선, 간화선 하면서 간화선 제일주의, 간화선 배타주의로 나가는 것이 아니냐? 되지도 않는 간화선을 왜 그렇게 강조하느냐, 우리 종단에는 간화선 수행밖에 없느냐? 간화선 수행을 해서 그것이 종단 발전에 얼마나 힘을 주었느냐?

그렇다. 물론 간화선 제일주의나 우월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간화선을 수행하는 이들이 다른 수행을 폄하하거나 다른 신도를 얕보고 오만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은 간화선 수행자들이 철저히 조심해야 할 점이다. 간화선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것 역시 부처님 법이다. 부처님 법에 우열은 없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 가운데, 조계종은 간화선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조계종은 간화선을 최고 가치로 삼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들어서 설명하겠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간화선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공동체로서 세계가 하나로 묶여지고 있는 이 때 우리만이 잘 간직하고 실천하고 있는 독특한 수행법을 제대로 알리고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선을 이 땅에 흔들림 없이 심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빼어난 모습을 세계화하는 길이요, 한국 불교를 내외에 알리는 탁월한 문화 브랜드인 것이다.

아울러 간화선은 굉장한 응집된 힘과 단박에 곧바로 질러 들어가는 예리함과 날카로움이 있다. 그러면서 단조롭고 심플하며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맛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삶의 공간에서 화두를 들고 단박에 진리와 일치되어 진리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되지도 않는 간화선 운운하는 것은 간화선 수행 길을 잘못 인도했거나, 잘못 수행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그래서 종단에서는 이렇게 간화선을 프로그램화해서 체계적으로 그 갈 길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이러한 간화선을 대중화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프로그램의 내용도 더욱 갈고 닦아내고 정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지도할 훌륭한 운영할 지도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현재 이 지도 인력을 종단에서는 선 포교사로 명명하여 입법 예고 중이며, 올해 지도 인력 육성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제 종단은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한다.

불자나 일반인들에게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간화선을 제대로 알려 생활 속에서 선이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그래서 장바구니 들고 시장 가는 부처,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부처, 들판에서 땀 흘리는 부처, 직장에서 일하는 부처 등등이 시시처처에서 동에서 정으로, 정에서 동으로 호호탕탕거리며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정말 좋고 좋은 일이다.

고명석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연구팀장.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국불교연구원 연구교육 간사를 거쳐 대원정사에서 출판일 맡았으며 대중불교 편집장을 거쳤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연구과장을 거쳐 현재 포교원 포교연구실 연구팀장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번역서와 논문으로는 『100문 100백답- 불보살 신중편』(상ㆍ하), 『유쾌하게 읽는 불교』 『불교교리 개론』, 「허망분별의 전환구조와 삼성설에 대한 연구」 「불교의 시간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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