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이 있는 관악산을 올랐다. 오랜만에 올라가는 관악산이었다. 나는 40대에서 60대 초반까지 고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20여 년간 격주로 주말등산을 했다. 수도권 지역의 산들을 주로 올랐다. 가끔은 원거리의 유명한 산들도 등반했다. 수년 전부터는 장시간 산행 시에는 무릎에 부담이 와서 양재천 걷기로 운동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산만 보면 언제든 올라가 보고 싶다.

대부분의 산에는 절이 있어서, 산에 자주 다닐 때는 언제나 절에 들렀다. 경내에 들어가면, 불교 믿는 친구들은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를 올렸다. 나는 불교에 적을 두지는 않았지만, 불교적 세계관에 공유하는 바가 많아 늘 문밖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뒷날 나는 교회에 적을 올렸다. 한 가족끼리 종교적으로 따로국밥 같은 처지가 되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한 등록이었다. 그러나 주일예배를 빼먹고 산에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아내가 불평했지만 “나는 높은 산에 가야 하나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고 농을 했다.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은 종교적 수행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육체적 고통을 견뎌야 하는 산행은 종교적 극기의 수행과 닮은 데가 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매우 하이브리드적이다. 불교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을 나름대로 내 안에서 융화시키려고 한다. 믿음과 깨달음은 종교적 구원의 두 날개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산행 동기가 감천을 시켰는지 며칠 전 관악산에 오르던 날은 새벽까지 퍼붓던 비가 아침이 되자 뚝 그쳐서, 선선해진 기온에 산행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나는 전에 자주 오르던 과천향교에서 시작하는 제1코스로 길을 잡아 산행을 시작했다. 계곡 등산로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옛날보다 한결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이틀간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의 물소리가 산 입구에서부터 오랜만에 나선 나의 산행을 환호하며 반겨주었다.

나 홀로 산행은 자유롭고 나 자신과 장시간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과 페이스를 맞출 필요도 없고 힘들면 언제든지 아무 데서나 쉴 수 있어 편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깔딱고개를 오를 때는 앞서가는 엉덩이를 미끼처럼 바라보며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올라갔다. 체력이 달려서 결국엔 그 예쁜 엉덩이를 떠나보내고,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아내가 챙겨준 파프리카를 먹으며 원기를 보충했다. 배터리 충전 후 다시 다른 방뎅이를 쫓아 올라갔다. 허벅지와 장딴지의 통증을 참고 숨이 턱에 차도록 헐떡이며 오르는 나의 산행은 그 자체가 고행이고 수행이었다. 웃으며 하산하는 사람들이 마치 수행을 마치고 득도하고 내려오는 도반같이 대견스럽게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는데, 이 무슨 변고인지 어느 순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등산용 내비게이터가 있었다면 ‘경로를 벗어났습니다’라는 경고가 있었을 텐데, 계곡 물소리에 홀려 생각 없이(무념무상?) 가다가 주 등산로를 벗어난 것이다. 희미한 옛길의 흔적을 따라 혼자 산비탈을 헤매다 보니 어지럼증이 생겨서 한참을 숨 고르기를 해야 했다. 겨우 등산로를 찾아 나오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천상에서 들리는 구원의 소리 같았다. 나는 그동안 연주암 맞은편 산비탈 쪽으로 헤매었던 것이다. 연주대 쪽 주 등산로에서 연주암 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계단 길을 올라갔다. 계곡의 물소리는 아득히 사라지고 극기로 버티는 고행의 산행이 되었다. 수없이 이어지는 계단길 위로 하늘이 천국의 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라톤 골인하듯 연주암 경내에 들어섰다. 절에 당도하자 별관으로 새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에서는 점심 공양을 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예전에는 발우에 음식을 담아주었는데 기업체 식당처럼 식판으로 공양을 하는 것이 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오늘은 공양을 받지 않았다.

옛날 연주암에서 하던 공양은 발우공양이었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절밥이어서 배낭에 김밥이 있었는데도 절밥을 먹어 보고 싶어 줄을 섰다. 음식 준비에 고생하는 보살님들을 위해서 시주함에 배춧잎도 넣었다. 고추장에 비벼 먹는 산채 비빔밥이 아주 맛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곁들여 나온 미역국도 간이 입맛에 잘 맞았더랬다. 음식에 대한 경건함과 감사함을 갖는다는 건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불교에서는 발우공양을 수련과 수행의 하나로 간주하여 법공양이라 하여 중히 여기고, 기독교에서도 먹기 전에 감사의 식사기도를 한다. 절에서 먹는 한 끼의 공양이 이런 것을 깨우쳐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하산 중에 그만 왼쪽 등산화 밑창의 접착이 떨어져서 발을 질질 끌며 조심조심 내려와야 했다. 다행하게도 밑창은 거의 다 내려와서 떨어져 나갔다. 십여 년 이상 나의 발을 감싸주었던 녀석인데 길도 없는 산비탈에서 헤매다 소임을 다하고 순직한 셈이다.

처음 출발했던 향교 앞에 당도해서 시간을 보니 오늘 산행시간이 무려 6시간 30분이나 되었다. 비록 길을 헤매고 등산화까지 폐기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무릎이 건실하고 심폐기능이 양호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산정에서 발아래 마을을 솔개처럼 바라보며 일상의 걱정거리를 바람에 날려버리고, 마음의 무게를 한껏 감량한 수행적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큰 보람을 느낀 하루였다. ■                   
 

김영철 / 김영철내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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