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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참 쉬운 자비 실천하기 / 우승미
[63호] 2015년 09월 01일 (화) 우승미 smimage@naver.com

김중미가 쓴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인 인천 만석동은 6·25 전쟁 직후부터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살면서 생긴 쪽방촌이다. 괭이부리마을에는 360여 가구 6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중 230가구 300여 명이 쪽방 주민이다. 쪽방 주민들은 낡고 열악한 건물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지난 6월 인천 동구청은 마을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는 마을 내 2층짜리 주택을 리모델링해 괭이부리마을 생활 체험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참가비 1만 원을 받을 예정이었다. 다른 지역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숙박하며 흑백 TV, 다듬이, 요강 등 옛 생활 공간을 체험하도록 한다는 의도였다. 이곳이 관광지가 되면서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 마을이 변화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구청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과 가난마저 상품화시키고 있다는 언론의 뭇매를 맞고, 이 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연민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자비(慈悲)의 비(悲)에 해당한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자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말고 헐뜯지도 말지니,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서로에게 고통을 바라지 않나이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애(慈)라면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연민(悲)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겨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계의 바탕이 되는 숭고한 감정이다. 나에게는 연민의 실천이 자애의 실천보다 어렵게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연민의 밑바탕에 우월감, 열등감 같은 것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곧 그들에 비해 열등한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불쌍하다고 느끼는 것은 죄악이 될 수도 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불쌍하다는 감정 아래에 ‘나는 저 이보다 낫다’는 마음이 깔려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을 돕는 일 앞에서 늘 주저한다.

열등감, 우월감, 동등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의 뿌리를 모두 제거하라고 이르신다. 우월하다든가 열등하다든가 혹은 동등하다는 것은 자기를 세우고 남과 비교했을 때 발생하는 관념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허구를 만들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연민에 이를 수 있다. 

남편의 주머니에는 종종 껌이 들어 있다. 씹지도 않는 껌을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잔돈이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종로의 식당가에 앉아 있다 보면 껌을 파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남편은 할머니들을 좋아한다. 할머니들이 아이처럼 귀엽다고 한다. 잔돈이 있으면 껌을 사고 없으면 이야기만 나눈다. 너무 편하게 대하는 나머지 간혹 반말을 섞기도 한다. 왜 모르는 분에게 반말을 하느냐고 지적하면 자기가 그랬냐며 오히려 내게 되묻는다. 정작 할머니들은 남편의 그런 태도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이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를 대할 때와 비슷하다. 할머니들이 남편의 스스럼없는 태도를 반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태도가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은 그 사이에 우월감이나 열등감 같은 것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대하는 것처럼 할머니를 대하는 남편이 나는 늘 부러웠다.

《상윳따 니까야》를 읽다가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글을 읽었다.

수행승들이여,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남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열등하지도 않다.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으므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저 이는 한때 나의 어머니였고, 형제자매였고 친구였다. 이렇게 자애의 마음이 일어나면 자연히 깊은 연민에 이르게 된다.

쪽방 체험과 관련된 행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쪽방 체험은 하루 동안 좁은 공간과 불편한 시설에서 생활하며 쪽방 주민의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좋은 의도를 지닌 행사이다.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루 숙박에 1만 원을 받는 한 칸의 생활 체험관이 상품으로서 역할을 얼마나 해낼지도 의문이다. 구의 의도 자체는 쪽방 체험을 팔아먹으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일의 문제는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타인의 시선을 달가워하는 이는 없다. 수혜를 논하기 전에 자신의 삶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의 입장을 먼저 살폈어야 했다. 우리도 한때 열악한 상황에서 극빈의 삶을 살았던 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진정 그들을 돕는 일인지도. ■


우승미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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