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타 스님의 추억

아주 오래전 일타 스님이 써주신 ‘참을 인(忍)’ 자 글을 꺼내본다. 인(忍)의 글은 외자이지만 설명으로 “진시심중화(瞋是心中火)니, 성을 냄은 마음속에 불꽃이 능소공덕림(能燒功德林)이라, 공덕의 숲을 불태우나니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인욕이다”라고 적으셨다. 두인으로는 ‘세계일화(世界一華)’를 쓰셨다.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쓰면 세계는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 함자 곁에는 ‘삼여자(三餘子)’로 사용하셨다. 삼여자란 세 가지의 여유를 의미한다. 첫째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둘째는 하는 일에 여유를 가지고, 셋째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라는 뜻이었다.

참으로 따뜻하고 자상하신 마음으로 써주신 이 글귀를 보면서 스님의 생전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스님은 늘 웃는 모습이셨고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는 따뜻한 말로 행복을 알게 해 주시며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아무리 수행이라 하지만 살아가면서 어찌 화낼 일이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더욱 편안한 모습으로 마음을 내려놓으셨기에 능히 참는다는 마음 없이도 참아 오셨던 것 같다.

힘들 때는 하늘을 보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는 그 어떤 바람도 장애가 없듯이 우리의 마음도 허공처럼 비우면 미워하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고 하셨다. 구름은 하늘을 가리지만 결코 흘러갈 뿐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시비치 말라 하셨다.

꿈속에서 억만장자가 꿈을 깨어보면 허망한 현실일 뿐이지만 꿈속에선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 또한 한세상 꿈같은 삶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일까 느껴보며 나를 위해 어떤 인욕을 했고 주변 사람들의 화합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이 참을 수 있었는지, 오늘 이 글을 통해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만난 것이다.

부산 감로사에서 뵌 일타 스님의 추억도 잊을 수 없다. 어느 해 일타 큰스님이 오셔서 내게 방생을 가자고 했다. 구포 강으로 가서 고기를 사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내 고기 사이소.” 하면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고기 저 고기 중 제일 크고 건강한 고기를 골라 사기로 생각하고 있는데, 스님은 “이 고기 모두 얼마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스님, 이 많은 고기를 왜 다 사려 하십니까? 이 고기는 곧장 죽겠는데……” 하니, “가만히 좀 있어 봐라. 죽고 사는 것은 제 명이고 살려줄 때의 마음은 평등해야 하는 거야.” 하셔서 나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법정 스님의 가르침

1967년 11월 중순이 지난 추운 날이었다. 해인사 수련회를 갔을 때 법정 스님을 처음 뵈었다. 그날 우리가 법문을 청했을 때 스님은 첫 법문 서두에 “해인사 큰스님들이 지금 출타 중이라 안 계셔서 부득이 조무래기 스님인 내가 법문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우리에겐 크고 작고가 아닌, 스님으로만 마냥 따르고 기쁘기만 하였는데, 그때 스님이 했던 시원시원한 말씀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후 가끔 스님께 편지를 썼다. 그때마다 스님은 꼭꼭 답장을 주셨다. 훗날 연꽃모임이란 단체를 창립하여 큰스님들을 두루 친견하고 법문을 들으려고 버스 두 대를 대절하여 송광사에 갔다. 그 후 스님은 우리의 안부를 늘 “버스 두 대분은 잘 있어?”라고 물으셨다. 불일암 오르는 오솔길에 앉아 야단법석도 열었고 자유로이 스님을 친견하며 마냥 행복했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연하엽서  중에 내가 좋아하는 글이 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 밑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조차 없네.

스님은 말미에 “대원성도 이와 같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썼다. 나는 이 글을 만나면서부터 내 삶의 지표로 삼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이 글귀가 나를 길들이는 스승이 되었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불일암에서 또 스님을 뵐 때면 그때그때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부쳐드리곤 했다. 답장이 왔다. “사진과 사연 기쁘게 잘 받았다”며 “사진 솜씨가 보통이 아니니 간판 내걸어도 손색이 없겠다”고 하시고는 “채소밭에 자라고 있는 상치와 아욱이 가득한데 혼자서는 다 먹을 수가 없으니 가까우면 좀 뜯어갔으면 좋겠다”는 일상적인 삶을 이야기 해주시곤 했다.

스님은 이렇게 손수 공양을 지으시고 밭도 가꾸셨다. 농담 같은 충고도 빼놓지 않으셨다.

“처사님이랑 집안 두루 청안하신지요? 장마철이라 집안일에 열심일 줄 믿습니다. 아이들께는 엄마의 일거일동이 그대로 산교육입니다. 집안 너무 비우지 말고 맛있는 것 해 주십시오.”

겉으로는 굉장히 차갑게 보일지도 모르는 스님의 속마음은 참으로 따뜻하고 소박하고 진실한 그대로를 전해주기 때문에 멀리서, 가까이에서 스님 뵙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스님이 해마다 보내주신 연하장 속에도 충고가 들어 있었다.

“어제오늘은 참으로 춥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았는지요? 올해는 목소리를 좀 낮추는 연습도 하십시오. 처사님과 아이들 두루 건강하고 즐거운 나날 이루십시오. 겨울이 가면 부산에 한번 들리겠습니다. 갑자년 아침에.”

이제는 뵐 수 없는 스승님! 그러나 스님의 큰 가르침은 나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리움과 함께. ■

이대원성 / 부산 연꽃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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