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2015 만해실천대상 수상자 천노엘신부

아일랜드 출신 천노엘 신부(83)가 대표인 무지개공동회는 광주광역시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을 시작하면서 발달장애인을 우리 사회 안에서 떳떳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운 단체이다.

무지개공동회 대표인 천 신부는 장애인을 위해 한 일로 상을 받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에서 상을 수여하려 했으나 ‘나는 그들과 친구’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2014년 포스코청암상도 그래서 무지개공동회 이름으로 받았다.

그러나 무지개공동회의 활동을 천 신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천노엘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이다. 1957년 처음 한국에 온 천 신부는 20여 년간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일반 성당 사목을 했다. 그랬던 그가 당시엔 정신박약자로 불리던 발달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한 무연고 발달장애인 소녀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성당 신자들과 가끔 봉사활동을 가던 광주 무등갱생원에서 만났던 당시 19살짜리 ‘김여하’라는 소녀가 갑자기 위독하게 됐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임종한 것. 그가 손을 잡아주자 김여하는 어눌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졌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장례를 잘 치러드릴 테니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해달라’고 했다. 그는 ‘19년 동안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살다가 떠난 여하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거절하고 광주 양산동 천주교 묘원에 매장했다. 지금도 그가 세운 비문에는 “사회를 용서해주시렵니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천 신부는 요즘도 매년 명절 때면 김여하의 묘를 찾아 벌초하면서 초심을 되새긴다.

천 신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수용시설이나 집안에서만 살아온 발달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결심한다. 알코올중독자나 다른 신체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의사 표현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헌신을 다짐한 것이다.

그는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에 안식년을 얻어 유럽과 호주, 미국, 캐나다 등을 다니며 발달장애인 돌봄의 현장을 확인했다. 결론은 ‘장애인도 산속의 대규모 시설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주대교구에 사제가 부족한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천 신부는 당시 윤공희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특수사목을 시작하게 됐다. 첫 결실은 1981년 광주 시내 주택가를 빌려서 문을 연 그룹홈이었다. 장애인시설에 있던 무연고 여성과 봉사자와 함께 그룹홈을 열자 여기저기서 ‘미쳤다’고 했다.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게 가장 좋다’고도 했다. 그러나 천 신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역사회 안으로 데려와 ‘거주, 여가, 직업’을 함께 하도록 이끌어냈다.

그렇게 시작한 살림이 하나씩 늘어 현재 무지개공동회는 광주 시내 아파트에 위치한 그룹홈 6곳과 엠마우스복지관, 엠마우스산업, 유치원에까지 이른다. 특히 1991년 하남산업단지에 입주한 엠마우스산업은 40여 명의 발달장애 근로자가 화장지와 양초를 생산하며 자립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이다. 양초는 연간 10만 개를 생산해 국내 각 교구의 성당에 전례용으로 공급되며, 화장지는 2년 연속 인천국제공항에 납품하고 있다.
만 35년간 그룹홈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고 현재도 20~60대 장애인 4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천 신부의 꿈은 더 크다. 장애인들이 그룹홈에서도 독립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립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배드민턴, 축구, 볼링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 엠마우스복지관 출신 130여 명이 하남공단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반 공장에서 일하는 것 등이 그에겐 자랑거리다.

천 신부는 발달장애인 문제에서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오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뉴욕에 내렸을 때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접하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그때는 식당에도, 버스에도 흑인이 들어올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흑인이 대통령이 됐잖아요?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태도가 문제입니다. 장애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설립한 그룹홈과 회사는 이름이 모두 ‘엠마우스’다. 엠마우스는 부활한 예수를 찾아 제자들이 찾아가는 곳. 그러나 제자들은 바로 곁에 부활한 예수가 함께 가고 있어도 알아보지 못했다. 바로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이 아니냐는 따끔한 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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