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내셔널리즘을 말하다

1. 서론: 예견된 미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로 활약하던 프랑스인 에릭 발리(Er-ic Valli)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1994년 그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하는 《히말라야의 카라반(Caravans of the Himalaya)》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하였다. 그 후 5년 뒤, 그의 사진집은 영화 〈히말라야 지도자의 어린 시절(Himalaya-l’enfance d’un chef Ca-ravan)〉로 거듭난다. 영화는 히말라야 산맥의 고도 17,000피트에 달하는 극한의 생존조건 속에서 인간 대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과의 갈등과 교섭 과정을 촘촘히 보여준다. 압도적인 풍광과 브뤼노 쿨레(Bruno Coulais)의 배경음악은 탁월하다. 그런데 20년 전 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내용이 오늘날 티베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감독의 예리한 예단(豫斷)에 놀라움을 감추질 못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선명한 이중적 구조로 되어 있다. 야크 대상(Caravan, 隊商)을 이끌고 히말라야를 넘어 소금을 식량과 바꾸어 생활하는 마을의 늙은 촌장 띤레(Tinle, 티베트 이름 틴렌론둡, Thilen Lhondup)와 그의 대를 이어 마을의 촌장을 이을 것으로 기대했던 큰아들 락파(Lhakpa, 티베트 이름 락파참최, Lhakpa Tsamchoe)의 죽음, 그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아들 락파의 친구 칼마(Karma, 티베트 이름 구곤 꺕, Gurgon Kyap)와의 대립, 전통과 현대, 성(聖)과 속(俗), 낮과 밤, 신구(新舊)의 대립적 구도가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마을에서 가장 권위적인 촌장인 띤레가 야크 대상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아들의 친구 칼마를 받아들이지 않는 장면이다. 띤레는 야크를 끌고 히말라야로 떠나려면 여전히 전통적인 티베트의 방법, 즉 경험이 많은 점성사(무당)로 하여금 길조를 받아 신께 기도하고 떠나야 한다고 고집하는 반면, 젊은 칼마는 이를 무시하고 힘과 패기로 마을의 전통을 거부하고 밀어붙이는 장면이다. 젊고 인기가 많은 칼마와의 힘겨루기에 밀려 마음이 조급해진 촌장은 큰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원에서 탱화를 그리며 수행하는 둘째 아들 노르부(Norbu, 티베트 이름 까르마 뗀싱 니마, Karma Tensing Nyama)를 찾아가 히말라야의 동행을 부탁하고 차기 마을의 촌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어린 손자 츠링(Pema ciling)도 함께 데리고 간다. 영화는 히말라야의 극한 생존 상황 속에서 살아나려면 자연과 대지, 나무와 호수 그리고 파란 창공의 하늘의 신들에게 절박하게 기도드리고 순응해야 함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필자가 대만 유학 시절 상영관에서 우연히 본 영화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감독은 티베트의 미래가 영화 속에서처럼 무소유와 소유, 노인과 젊음, 전통과 현대, 중앙과 변방, 속과 성의 경계 속에서 혼란스럽고 마찰할 것이라 예견한 것 같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점을 친 라마승의 지시대로 움직이려는 마을의 촌장과 이제는 그런 것(전통과 관습)을 버리고 변화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젊은 티베트 청년, 그런 촌장을 여전히 따르려는 늙은 세대와 티베트 청년(칼마)이 활쏘기를 통해 보여준 힘과 판단력을 따르려는 젊은 세대들. 영화는 이들이 심리적으로 마주하는 경계선을 생동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중간중간 티베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장면을 보여주며 전형적인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전통과 관습을 부각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치 이것들이 미래에 사라지리라는 것을 예견하듯 말이다.
3년 뒤, 필자는 대만국립정치대학교(臺灣國立政治大學校) 민족연구소 주최로 열린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몇 년 전 보았던 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감독이 예견했던 장면들이 사실로 현실적으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즉 티베트는 은둔의 공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개방화, 현대화로 전환하였고 티베트인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량의 인적 물적 접촉의 대가로 현실과 타협하며 곤경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 필자가 유학하고 있던 대만은 티베트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중국과의 경제적, 문화적, 학술적 교류 속에서 중국에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독립을 선언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된 상황이었다. 이에 관한 일반 시민들, 학계, 정치권이 제시하는 미래의 대만에 대한 견해는 전부 달랐다. 심지어 극렬한 민족주의 형태를 모방한 시위와 폭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필자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를 공부하면서 지도교수의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직접 가보라.’였다. 하여 2004년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거의 매년 티베트 지역을 답사하고 있다. 이런 주관적 경험과 학습의 시간을 근거로 이 글은 오늘날 티베트불교가 처한 현실에서 그 질문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은 5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티베트불교가 티베트 민족주의를 대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티베트불교의 역할과 힘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하여 논의하며, 2장에서는 오늘날 중국의 공격적 민족주의와 이에 대응하는 티베트의 수비적 민족주의 상황을 비교하여 그 중심에 놓여 있는 티베트인들의 곤경을 파악하고, 3장에서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소위 민족주의적 표현에 가까운 행동(예를 들면 분신 혹은 폭동) 등에 대한 원인과 목적을 추정하고 4장에서는 티베트인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지속 혹은 전변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측정할 것이다. 그리고 5장에서는 결국 티베트에도 찾아온 디지털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불교도들의 임무가 있다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더불어 이 모든 현실의 정점에 존재하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입장을 들어보고 임종 전 마지막 임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이다.

2. 소리의 나라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시(視)나 간(看)을 쓰지 않고 왜 관(觀)을 썼을까?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또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불교 고유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 현상학적인 것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시’나 ‘간’을 쓸 일이다. 그러나 티베트에서 소리를 듣는 것은 그저 생명체의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일 즉 명상을 통한 수행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관(觀)이란 대상을 눈으로 보고 미추(美醜)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달라이 라마는 이미 소유와 경쟁 감각의 세상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티베트는 ‘소리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티베트는 본질적으로 문헌과 기록보다는 ‘소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자를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소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만, 사실 소리는 문자와 비교하면 훨씬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록이나 문헌을 중시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오래도록 기억 보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문자의 장점이라면, 반면에 이것은 소리의 약점이기도 했다. 사실 소리는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소외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소리에는 현상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가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의 소리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듣는, 또는 감각 그 자체를 초월한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 즉 육감(六感)으로 느끼는 것이다. 소리의 본질적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 인성구기(因聲求氣), 소리에 근거하여 기를 추구한다. 즉 소리의 내면성은 소리의 가장 큰 특징이다. 현상학적으로 외면으로 분출되는 ‘소리’보다는 삼라만상의 ‘내면적 본질’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빛이나 기의 존재 형태가 소리의 내면성과 상관관계가 깊다. 두 번째, 소리의 또 다른 특성은 결합성이다. ‘결합성’이란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생명체의 감정을 굳게 결합시키는 감성적 특성을 말한다. 여기에는 이성전정(以聲傳情)이라는 중요한 특징이 작용한다. 즉 소리를 주입하여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소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다. 사실 언어는 사람들을 굳게 결속하고 집단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결합시켜주는 통합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소리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문자는 소리를 보관하는 녹음기와 같은 기계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리의 장점과 특징은 티베트에서 빛을 발한다.

티베트에서 불경이란 문자의 예술인 동시에 소리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원의 수행승들이 매일같이 중얼거리는 경전 읽는 소리는 언어의 멜로디로 볼 수 있다. 즉 불경을 읽는 소리는 언어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생명력이 충만한 소리로 딱딱하고 건조한 글을 다시 탄생시키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경전 읽는 소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티베트에서는 소리(독경/낭송/집단암송)로 경전이 구전되고 전승된다. 불교사원에서 들리는 모든 독경, 낭송, 음송, 집단적 경전 읽기는 티베트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공부의 한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소리는 결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스승과 제자 사이 또는 집단으로 불경을 읽게 하면 정신과 감정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사원 한구석에서 스승과 제자가 밀경(密經)을 주고받는다. 이때 제자는 티베트어 특유의 억양과 리듬의 변화를 구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감을 주입하고 반대로 스승은 그 소리를 듣고 분위기와 정감을 공유한다. 여기에서 충만한 생명력이 생기고 심경(心境)이 하나 될 수 있다. 대대로 전승되고 계승되어온 읽기의 리듬과 주법, 호흡, 발성 근육을 똑같이 모방하면 오래전 스승들이 느꼈던 그 정서와 정신세계도 똑같이 ‘전이’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베트의 불경 소리는 차갑게 죽어버린 문자가 아니고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티베트의 불풍(佛風)은 고대로부터 소리로 계승되고 소리로 유지되어 왔다.

그 소리는 티베트의 어떤 공간과 장소에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바로 불교사원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본래적인 자아 회복과 자아의 감수성 회복은 신체에 대한 반복적인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욕망과 소비의 공간이 아닌 심신을 단련시킬 공간이 필요하다. 자아를 들여다보고 찾는 일은 무엇보다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서를 이루는 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빛과 소리라면 특정한 수행공간이 필요하다. 불교사원은 티베트에서 스스로 출가한 수행승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최적의 공간이 된다. 자기 빛깔과 자기 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사원은 욕망하는 중생들이 모여드는 최고의 수행환경을 구비하고 있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순수해지고, 궁리를 하며, 가장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깊은 것을 들여다보게 되고, 높은 것에 눈을 주게 되고 죽음과 영원 같은 것을 헤아리게 된다고 믿는다면 독거(獨居)할 수 있는 수행 방이 필요하다. 티베트 신자들에게 삶의 무소유와 사색의 여백을 주는 불교사원, 그곳은 건강하고 푸른 사적인 공간이며 홀로 지내는 수행승들에게 자기 내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다.

삶과 깨달음은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티베트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각한 진리나 깨달음을 말과 글로 남기는 것보다 소리로 전달하는 전통을 선호했다. 그들은 일찍부터 내면의 소리가 중요하며 그것을 스스로가 찾아내어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차렸다. 그런 환경 속에서 티베트불교는 형성됐고 지속돼 왔다. 그리고 그러한 티베트불교는 티베트의 모든 질서와 규율 그리고 권력을 대표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것이 결핍된 생존환경에서 희망을 안겨주는 강력한 이론체계를 구축한 불교와 그를 수행하는 수행승들과 결국 깨달음에 이른 고승들(활불/ 달라이 라마)이 티베트 사회 전면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3. 티베트불교의 곤경

2004년 한 이방인이 해발 4,000m 상공의 티베트 불교사원(카규파)에 잠입했다. 잠입의 목적은 사원의 전통적인 교학(敎學) 방식에 대한 관찰과 수행승들과의 인터뷰다. 하지만 사원의 책임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느 날 들이닥친 중국 공안에 발각되면 사원이 위태롭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이방인은 빌고 간원(懇願)하고 지위가 높은 중국 관료의 추천서를 디밀고서야 잠시 머물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사원 책임자가 두려워한 중국(漢族)은 어떤 존재들이고 그들은 사원을 어떻게 감시하는 걸까?

오늘날 티베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를 받는 중국 소수민족들 가운데서 그 정체성을 가장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역사 공동체 중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역사 공동체를 특정한 활동공간과 생활습속, 문화와 언어, 역사적 경험과 역사의식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규정할 수 있다면, 티베트야말로 중국에서 전형적인 역사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역사 공동체는 티베트불교라는 강인한 종교적 접착제가 있었기에 지속이 가능했다. 티베트불교는 그들만의 경전과 의례 그리고 티베트 사회를 리드하는 수행승들을 통하여 민족과 신도들의 안전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티베트불교와 정신적 리더들만으로 황량한 고원 위의 불교신자들을 견인할 수 있었을까. 그러기에는 티베트불교의 종교성과 대중성의 간극이 컸다. 이는 티베트불교의 역사가 종파 간의 전쟁이라 할 만큼 평화롭지 못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티베트불교가 티베트를 대변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사원이 튼튼했고 자생력이 왕성했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불교사원은 내밀하고 치밀한 구조로 구성돼 있다. 티베트에서 제법 크다고 하는 불교사원은 조직적이고도 유기적인 내부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사원의 심장은 ‘찰창(Yig-tshang)’이다. 찰창은 사원 안에 또 다른 독립된 사원 조직이다. 여기는 자체적으로 경당과 불전, 수행승 등을 갖추고 있고, 관할하는 토지와 목축, 농노도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사원이다. 사원 속의 사원이라고 볼 수 있다. 찰창은 크게 ‘현종찰창(顯宗, 현종학부)’과 ‘밀종찰창(密宗, 밀종학부)’으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어 라싸의 철방(哲邦, 겔룩파) 사원에는 네 개의 찰창이 존재하는데, 3가(家)의 현종과 1가(家)의 밀종 찰창으로 구분되어 있다. 반면 색랍(色拉, 겔룩파) 사원에는 모두 세 개의 찰창이 있는데 두 개가 현종, 하나가 밀종(密宗)의 작은 사원으로 구성되었다. 감단(甘丹) 사원에는 두 개의 찰창이 있는데 모두 현종 사원이다. 찰창에는 자체 규모와 자산을 기준으로 ‘승열(僧悅)’이라고 하는 학년이 분반되어 있다. 이는 공부하는 경전과 난이도에 따라 학년이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큰 사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찰창은 13개의 승열(학년)까지 나누어진다.

그러나 일반 사원의 경우에 경비와 경전 그리고 스승의 부족으로 5~8개 정도의 승열만이 존재한다. 찰창의 종교적 수장은 켄보(堪布, mkhan-po)인데 사원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린포체(仁波切)’라고 불린다. 이는 상급 단계인 라길(喇吉)의 승인하에 임명된다. 켄보는 사원 내에서 수행승들의 불교수업과 교학을 책임진다. 켄보의 임명은 달라이 라마 또는 사원 내의 고승 활불이 인준하고 결정한다. 임기는 5년이며 두 번의 연임이 가능하다. 찰창 내부에는 사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하여 체계적인 소규모 조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강사달(强斯達, 사원의 재정 총괄), 격사귀(格斯歸, 사원 계율 담당), 옹사달(翁斯達, 교학 담당) 등이다. 살펴보면 강사달은 찰창 소유인 재산과 토지, 부동산, 목축과 농노 등을 관리하는 직무를 담당한다. 격사귀는 속칭 철방라마(棒喇)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의 기율과 질서를 책임지며 승려의 출가와 환속·사망 등의 내용을 명부에 기록하고 승려 간의 분규를 조절한다. 옹사달은 라마승들의 경전 염송을 담당하는 수장이다. 찰창의 상급 단계이며 전체 사원을 관리하는 최고위원회를 ‘라길’이라고 한다. 라길은 각 찰창의 방장으로 구성되며 경당의 일반 사무를 관리한다. 라길의 최고 수장을 법대(法臺)라고 하고 활불 중에서 연령이 가장 많은 사람이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를 갖춘 사원들은 티베트에서 비교적 대형 사원에 속한다.

티베트에서 불교사원은 스스로의 재정적 능력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이 모든 체계의 중심에 활불(活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활불은 일반적으로 ‘린포체’란 칭호를 들으며 사원의 건립과 재정확보 그리고 켄보(堪布)와 치바(赤巴, 라마승들의 폐관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를 직접 안배하고 결정하는 일을 한다. 사원은 자신들만의 종파 이론을 심화 확대하고 상징성 있는 종교적 인물을 배양하여 신도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신도들의 확보는 사원의 재정과 연계되고 종파의 안정성에 큰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종파의 사원들은 좀 더 대중적인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예를 들면 관혼상제(冠婚喪祭)와 오락, 종교축제 등이다. 티베트에서 사원의 이런 입체적인 역할과 노력은 결국 티베트를 하나의 역사 공동체, 영혼 공동체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최근 그 공동체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라는 침입자가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티베트의 근간이자 뿌리인 불교사원을 붕괴시키고자 마음먹었다. 사원이 흔들리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티베트는 쉽게 중국에 병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베트 신자들과 승려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경전과 법기를 내려놓고 과감한 폭동과 시위로 자신들의 입장과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은 총과 탱크로 무장하고 티베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14대 달라이 라마가 나섰다. 경전을 내려놓는 대신 마이크를 붙잡고 티베트를 살려달라고 국제사회를 돌며 호소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권과 자유를 강조하는 나라들(한국을 포함해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은 애처롭고 안타까운 동정의 눈빛을 티베트에 보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국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어느덧 국제사회에서 몸집이 비대해진 중국이라는 거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옳고 그름보다는 이해득실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한 티베트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중국이 개입된 현실의 삶이 불안한(정체성의 유지와 변화 사이에서)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전자는 독실한 티베트 불교신자들로 중국의 멀티적 공세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오히려 그들의 진입과 참여를 반기는 티베트인들이다. 전자의 고민이 얼마나 유효할지, 즉 그들의 불교적 신념은 그들의 정체성을 얼마나 견디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처음의 그 질문, 그들(중국 정부)은 어떻게 티베트 불교사원을 관리하고 감시하는가에 대하여 잠입한 이방인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기적으로 사원에서 숙소(심지어 동굴)를 옮겨가며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야 했다. 또한 중국 정부에서 파견한 민족종교사무국 관리들이 사원에 들이닥쳐 불경을 공부하는 수행승들에게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에 관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만약 이를 거부하면 사원에서 나가야 한다. 서럽고 슬픈 일이다.

4. 즐거운 현재와 그리운 과거

티베트인 부부가 저녁을 먹으며 싸우기 시작했다. 먼저 옷에 관해 시비가 붙었다. 남편은 내일 중요한 업무가 있어 한족식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고 아내는 티베트 복식을 고집했다. 예민해진 남편은 저녁 식단을 가지고 늘어졌다. 중국 칭다오(청도) 피지우(맥주)가 시원하고 맛있는데 왜 우리는 매일 야크 젖과 칭커지우(티베트 곡주)를 마셔야만 하나? 아내가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당신이 사원에 가서 봉사를 한 날이 언제인가요? 이젠 부처님 모시기를 포기했나요? 남편이 한마디 던지곤 나간다. 부처님이 밥 먹여주나? 중국이 밥 먹여주지!

한 개인 혹은 한 민족의 정체성 변화는 두 가지 유형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받아 마지못해 변화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내부로부터의 주체적인 변화다. 최근 티베트에 관한 문제는 그동안 ‘그들이(티베트인) 누구인가’에서 이제는 ‘그들은 왜 자신들이 누구라고 말하는가’로 전환되었다.

필자가 경험한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필자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윈난성(雲南省) 디칭(迪庆) 티베트자치주(藏族自治州) 샹그릴라현(香格里拉县)을 현지답사하고 현지의 티베트인들을 관찰하였다. 그들이 티베트인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문화 특질 즉 종교, 언어, 복식, 음식, 혼인, 상·장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의외로 그들이 느끼고 있는 심리적 상태였다. 요컨대 위에서 티베트인 부부가 식사하며 겪는 심리적 마찰과 같은 경우다.

티베트인들의 심리구도(schema)를 관찰하면 그들이 외부인(한족/외국인)과 혼재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심리구도는 과거의 경험과 현 세계에 대한 인상의 결집이다. 모든 사회집단은 어떤 특정한 심리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런 심리 경향은 그 집단의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는데 개인마다 외부의 상황을 관찰하고 과거 기억들과 결합해서 자신들이 외부 세계에 갖고 있던 인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의 경험과 인상은 또다시 개인의 심리구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인들은 과거 한족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족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리적 경계를 강압적으로 허물고 들어온 한족들은 티베트인들에게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억은 오늘날 한족의 행위와 정책을 바라보는 티베트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즉 자신의 기억과 구전으로 들었던 한족에 대한 형상과 언행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찾아내어 그 민족은 역시 ‘한족’이며 우리와는 다른 타민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관찰하여 얻은 경험과 재구성한 기억은 다시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 한족에 대한 인상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샹그릴라 현에서 티베트 노년층과 여성들은 이런 경향(경계심)을 주로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젊은 층이나 한족과의 교류가 빈번한 티베트인 공무원은 그렇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는 기억은 과거를 구성해서 현재의 인상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즉 티베트인 일부(노년층과 여성층)는 한족의 부분적인 과거를 강조하고 부각시켜서 구전(口傳)하고 경계심을 보이는 반면, 다른 일부(공무원과 젊은 층)는 과거와 전혀 상관없이 지금의 한족을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이 지역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티베트 권역(중국 청해, 감숙, 사천, 티베트자치구)은 1990년대 이후 지리적, 민족적 경계가 무너지면서 외부의 물질, 재화, 가치관 등의 요소들이 강력하게 경계를 허물고 침투해 들어와 이전 개념, 즉 티베트 민족의 정체성, 역사의식, 공동체적 종교관 그리고 객관적 문화특질들(언어, 복식, 풍속, 종교적 사유체계)을 대체하거나 변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티베트인들(주로 승려)의 분신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분신 목적은 무엇이고 분신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스로 살생을 감행하는 분신이라는 행위를 호전적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들의 분신으로 인해 티베트가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민족의 문화특질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종족의 정체성의 위기를 강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설득력과 공감이 불충분한 개인적 분신으로 인한 강렬한 민족주의 형태는 티베트의 위기감을 설득하고 인정받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한다. 티베트인들이 동조하지 않고 국제사회가 냉담하기 때문이다.

분신과 관련하여 인도에 거주하는 달라이 라마는 폭력은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행위라고 피력했다. 따라서 분신도 일종의 스스로에 대한 폭력이라고 한다면 달라이 라마의 생명에 대한 원칙과 위배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족이라는 거대한 야망의 세계에, 소수민족들이 공존하는 중국이라는 정글의 영토에서 달라이 라마가 주장하는 비폭력의 가르침은 유효할까? 이 또한 유효하지 않다. 중국은 영토의 수호와 민족의 단결을 위해 비폭력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이 그간 소수민족에 보여준 힘의 논리와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인간집단이 공동의 목표, 공동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민족주의를 표방하려면 공감하는 ‘힘’이 필요하다. 공동이 수렴하는 지침과 리더가 필요하다.

따라서 티베트는 공간의 특수성과 그로 인해 배양된 티베트불교의 힘을 유지하고 전승하는 것이 우선이다. 불교사원과 그 속에서 수양하는 구도자 그룹, 그리고 그들이 주도하는 티베트 사회와 정치 정신의 리드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흩어지고 잃어버리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정체성과 응집력을 회복하는 길이다.

5. 속(俗)과 성(聖)의 경계에 주저앉은 사람들

티베트 정교(政敎)의 중심 라싸. 그곳에 중국은행이 새로 생겼다. 티베트인들만 살던 때는 필요성이 없었는데 외부인들(한족/관광객)이 용의열차(칭짱열차, 2006년 개통)를 타고 진입하면서부터 은행의 기능이 필요해졌다. 한 티베트 여인이 은행으로 들어선다. 두리번거리며 창구 쪽으로 다가간다. 창구 안의 여자가 큰 소리로 물어본다. 뭐 필요해? 티베트 여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창구 안의 여인은 신경질적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뭐가 필요하냐니까? 티베트 여인은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다. 창구 안의 여인은 조그만 창구 밖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중국어 몰라? 그럼 배워서 다시 와. 티베트 여인은 아무런 말없이 나간다.

경계선이 무너지고 티베트인과 한족이 공동의 경제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언행과 심리적 상태를 보일까. 관찰해보면 한족이든 티베트인이든 자신들만의 특정한 문화특질을 강조하여 자신들만의 ‘경계선’을 한정시키고 타인(또는 타 종족)을 배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거나 구사할 수 있는 언어, 종교, 복식, 음식, 상·장례 등을 가지고 타인과의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본원적 정감 애착(primordial attachment)에서 나온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한 사람이 어느 하나의 집단 안에서 나서 자라는 동안에 기정된 혈연, 언어, 종교, 풍속습관을 배우게 되고, 따라서 그는 집단 안에서 본원적 애착 때문에 다른 구성원과 뭉칠 수 있는 근원적 뿌리다. 이런 본원적 정감은 개인이 혈연적 친속집단에서 나고 자라면서 혈연, 언어, 종교, 풍속습관 등 기정 자원(assumed givens)에서 발생된다.

티베트인들과 한족이 공동의 공간에서 마주할 때, 어떤 자칭을 사용할 것인가는 매우 예민한데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타인들과 교제할 때 티베트인들은 최소한의 공동 정체성을 밝혀서 서로 최대한 응집력을 증진시키려고 한다. 그렇게 정감적으로 하고 싶어 한다. 언어 선택은 접촉하는 대상의 신분과 당시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이 언어를 사용하여 최대한 많은 사람을 배제하고 그들끼리 가장 작은 울타리 안에서 서로 친밀감을 증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정체성은 다변적이고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본원적 애착을 강하게 느끼고, 경계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남이라는 느낌(the sense of otherness)을 갖고 있다.

민족 경계가 무너진 티베트의 새로운 생태환경의 변화는 생존경쟁의 심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티베트인들을 현실적 곤경에 빠뜨리고 있으며 유대감의 분열을 촉진하고 있다. 즉 전통을 고집하여 불리한 생활환경을 스스로 강화시키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한족과의 영리한(?) 혼종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부류가 출현한 것이다. 심각한 현실은 이제는 티베트인 스스로가 한족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변화(혹은 전환)를 자발적으로 시도한다는 것이다. 주로 통혼, 직업 등을 통한 신분의 전환이 목적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국은 그동안 티베트를 리드하고 생활의 리듬을 규정해주었던 불교사원과 정신적 지도자들의 역량이 줄어든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현지에서 관찰한바, 티베트인들이 신분의 전환을 통해 한화(漢化, sinicization)로 정착하는 원인과 이유는 무너진 경계 속에서 좀 더 안전하고 존엄 받는 사회적 신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그러고자 노력하는 티베트인들과 전통을 지키려는 티베트인들 사이의 정감의 심리적 대결이 불가피하다.

다음은 티베트 마을에서 발견한 사례다. 중국 쓰촨 성 아바(阿覇) 티베트자치주 흑수현(黑水縣).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티베트인들의 집단 거주지다. 그런데 최근 이 마을은 매일 입는 옷을 두고 같은 티베트인들끼리 심리적으로 마찰을 겪고 있다. 요컨대 이들은 최근 들어 티베트 전통복식에 대한 남녀 간의 집착이 다르다. 여성들은 반드시 티베트 전통의상과 장식, 화장을 갖추려고 하는 데 반해, 남성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성들은 거의 모두 자기 지역 마을에 살기 때문에 자기 지역 복식을 입어서 인근 지역 사람들과 구별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항상 밖에 나가서 일을 처리할 때 타인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좀 더 대중적이고 자유로운(일반 한족의 의복) 편리한 복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 사례는 복식의 사회적 기능을 잘 표현한 것이다. 즉 복식으로 민족 신분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숨길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과거 티베트인들은 자신들만의 생활 리듬과 종교적 신념을 지켜왔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한족과 같은 관리직이나 관광업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한족과의 혼인을 통해서 좀 더 유리한 신분을 확보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들이 추구했던 물질보다는 정신, 소유보다는 이타행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삶의 방향은 이제 사라진 것인가? 지키려는 자와 전환하는 자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티베트의 하늘은 설명이 불가능한 파란색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파란색과는 전혀 다른 파란색이기 때문이다. 그런 티베트의 파란 하늘을 계속 지킬 수 있을까.

6. 결론: 티베트와 디지털 시대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을 때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속도에 의해 공간이 살해당해버렸다.” 당시가 ‘살해’라면 오늘날은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오늘날은 디지털 시대다. 즉 속도와 정보의 시대의 시대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노동의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시끄럽다(소음)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몸의 노곤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와 속도만이 휩쓸고 간 자리는 의미 없는 말이나 음식물 쓰레기들이 넘쳐난다. 배설이다. 고원 위의 티베트는 어떠할까. 파란 하늘과 녹색의 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크와 양들의 세상에서 디지털의 전파와 보급은 유효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부보다는 ‘환영’받고 있다. 사원의 수행승들은 좋은 핸드폰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성능 좋은 컴퓨터를 통하여 불교경전의 보급과 학습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인해 티베트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나 내면세계의 탐구와 천착을 통해서 깨달음에 가고자 하는 불교신도들과 사원의 수행승들은 디지털이 주는 매력에 과연 저항할 수 있을까? 보아하니 차단과 거부는 불가능한 것 같다. 개방과 현대화 그리고 하늘 위로 놓인 칭짱열차 덕분에 내지의 한족은 물론이고 외부의 이방인들이 끊임없이 소음을 내며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접촉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과 공간을 점유당하고 있다. 덕분에(?) 티베트인들에게도 소유와 소비의 시대가 왔다. 물질경쟁과 소비에 대한 욕구는 결국 소유욕과 폭력성을 동반한다. 이는 어찌할 것인가? 어떤 자세와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소비와 소유의 시대는 결국 질투와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과정에는 분노와 증오가 있어서 그것은 언제든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지혜가 필요하다.

티베트불교는 공동체의 유지에 엄격한 계율이 필수라고 보았는데, 이 계율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감각적 쾌락’을 줄이는 것이었다. 감각적 쾌락은 느낌(또는 감정)에서 오고, 사람이 느끼기 위해서는 접촉할 사물이나 사람을 반드시 소유해야 하고, 그 소유를 위해서 경쟁이 필수적이라면, 쾌락에서 폭력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적, 쾌락적 감각을 줄이고 본성과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깊은 생각, 공감, 동정심의 상실. 성찰의 힘을 감소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티베트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제 티베트에도 풍요와 성장은 저 아래 문명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윤회의 악순환이 아니다. 티베트의 파란 하늘을 계속 지켜야 한다면 고원의 주인인 티베트불교와 신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전통의 방법을 고수하고 계승하면서 불교도로서 자기를 철저히 몰아붙이는 수행, 요컨대 명상과 몸을 통한 수행을 통해 감각적 자극을 줄이고, 사물의 유혹을 극복하고 내 안에 먼저 평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제아무리 중국과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속도의 무기를 가진 디지털이 유혹한다 해도 티베트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티베트인들의 수장 달라이 라마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80세인 고령의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인간적, 종교적 소임은 무엇일까. 2014년 9월 달라이 라마는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후임자는 필요 없다.” 요컨대 본인이 티베트의 마지막 달라이 라마가 될 것이며 이는 티베트불교에는 많은 인재, 정신적 리더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환생된 활불이 없어도 민주주의를 잘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건강해서 오래 살 것 같은데(당시 79세) 본인 생전에 중국은 반드시 무너지고 티베트가 독립한다고 말했다.

당시 달라이 라마의 인터뷰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필자는 여기에 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선 뒷부분 달라이 라마의 예상(본인 생전에 중국은 반드시 무너진다)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중국은 앞으로도 하나의 통일된 중국(One China)을 유지할 것이며 세계 강국 중의 하나로 우뚝 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굳이 달라이 라마의 수명과 중국의 수명을 견준다면 토끼가 낮잠을 자면서도 쉬지 않고 달리는 거북이에게 지는 것보다 확률이 높지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마지막 달라이 라마라고 예단하는 것이 과연 티베트불교와 티베트 민족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다. 아마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인도에 자리 잡고 있는 망명정부와 티베트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터뷰는 안타깝다. 달라이 라마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그는 티베트의 해와 달 같은 존재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해와 달은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도보다 중국 안에서 힘겹게 살아 숨 쉬고 있는 티베트인들에게 필요한 존재다.

역사적으로 볼 때 티베트는 합리적인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시스템 속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믿음 속에서 유지돼왔던 불교국가였다. 비록 중국의 강제적 짝사랑 속에서 오늘날 모든 것이 변화되고 전환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공기와 물, 돈과 생필품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달라이 라마일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위태로운 티베트의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변하지 않는 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여 필자는 낭만적인 상상을 해본다. 그것은 그가 임종 전에 인도에서 자신의 고향인 라싸의 포탈라 궁으로 돌아와 모든 티베트인들의 배웅 속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다. 그리고 임종 전에 또다시 명확하게 15대 달라이 라마를 예언하고 지목하는 것이다. 다시 환생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만약 나의 낭만적 상상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즉 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달라이 라마의 활불제도가 폐습 된다면 티베트의 미래는 어떤 색으로 하늘을 뒤덮을까. 아마도 파란색은 아닐 것이다. 중국의 통치와 달라이 라마의 부재는 티베트 불교 왕국의 최종 붕괴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14대 이후 15대 달라이 라마의 연속성은 매우 중요하며 의미를 가진다. 전세와 환생의 전통적 절차에 의하여 탄생되는 새로운 15대 달라이 라마가 탄생할 때 티베트는 생명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가 비록 만들어진 티베트의 신(神)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길 기도한다. ■

 

심혁주 /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연구교수. 한신대학교 중어중문과, 대만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 졸업(티베트학 박사). 주요 논문으로 〈티베트지위에 관한 중국정부와 달라이 라마의 태도 분석과 전망(1950-2002): ‘티베트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등과 《아시아의 죽음문화》 《티베트의 활불(活佛)제도》 《대만의 티베트史 연구경향》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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