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다

1.

《한국불교사 탐구》
박문사 2015년 2월,
832쪽 49,000원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의 삶에 대한 붓다의 지혜를 배우기 위함이고 인도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이 땅의 불교를 올바로 알고 해명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불교사 탐구》는 단순한 한국불교사의 진술을 넘어선 진실한 한국불교를 바로 밝혀내려는 저자의 탐구열이 그대로 느껴지는 저술이라고 여겨진다. 한 조각 한 조각 역사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고, 한 가지 한 가지 사연(事緣)을 꿰맞추어 완성한 한 챕터 한 편마다의 글 속에는 그동안 저자의 한국불교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배어 있어서, 결코 쉽게 완성된 저서가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기존의 개론서나 인물 연구서가 아닌 많은 자료의 섭렵과 한국불교에 대한 고뇌를 담은 연구논문을 모아 편찬한 것이어서 그동안 저자가 추구하고 탐구해온 한국불교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한국불교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지의 문제와 호국과 호법의 문제 등 적지 않은 여러 난제들에 대해서 학계의 깊은 연구와 통찰력 있는 연구를 고대하였다. 이러한 차제에 한국불교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서가 출간되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이 저서에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인 고영섭 교수는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로서 한국불교사학회 회장과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을 맡는 등 매우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공인 한국불교사 외에도 동아시아불교, 유식학, 기신론 화엄학, 선사상을 섭렵하여 이 분야에도 적지 않은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저자가 추구한 인도불교에서부터 동아시아 불교학의 여러 분야는 결국 한국불교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온 실크로드의 간이역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동국대학교에서 한국불교를 전공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고려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남다른 학구열을 가지고 있다. 이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류코쿠대학교에서 한국불교 교환강의를 하였으며,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연구학자를 역임하였다. 이 책의 제목인 《한국불교사 탐구》는 이러한 저자의 그간 탐구 이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탐구 또는 탐색은 그의 학문적 열정을 보여주는, 아마도 저자가 좋아하는 단어인 듯싶다.

저자는 이미 《바람과 달빛 아래 흘러간 시》 《황금똥에 대한 삼매》 등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글에는 늘 시인의 열정이 배어 있고, 다시 갈아서 다듬은 듯한 우리말 표제어가 등장한다. 심혈을 기울여 저술했던 《한국불학사》에서는 한국불교를 “소승과 대승의 대립을 넘어선 일승의 기호로 종합하여 ‘비빔’의 불교로 발효시켜내었다”고 하여 ‘비빔의 미학’을 강조하기도 했고, 한국불교가 “중국의 13종을 일미의 코드로 삼투시켜 ‘곰’의 불교로 숙성시켰다”는 표현으로 한민족의 상징으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의 불교학’을 펴기도 했다. 또 지눌의 정혜론에서는 “영지(靈知)·화회(和會)·오수(悟修)의 얼개”라고 하여 ‘얼개의 철학’을 말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출판한 《한국불교사 탐구》도 예외가 아닌 듯 서문에서 ‘마중물 한 우물론’을 펼치고 있다.

‘한국사와 한국불교사, 한국사상과 한국불교사상의 전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는 저자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가 함께 느끼고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지 1,700여 년이 지나면서 불교는 이제 한국인의 주체적 노력과 능동적 역할에 의해 한국사회에 뿌리내렸다고 주장한다. 곧 우리와 인연 지어 우리 삶의 도리이자 문화가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사는 한국불교사와 한 우물이 되었고, 한국불교사는 한국사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불교는 우리에게 철학 하는 법과 사유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한국인의 국가윤리, 식습관 등 한국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니 이 땅에 깊이 토착화되었다고 한다. 이를 저자는 “한국 사상은 한국불교 사상과 한 우물이 되었고, 한국불교 사상은 한국 사상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곧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불교와 한국은 역사·사상·문화적으로 이미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한다. 한 우물에서 마중물은 누가 주체이냐의 문제이지만, 맞아들여서 한 우물이 되고 나면 모두 같은 일미의 우물이 되고 만다. 서문에서 “한국불교는 이 땅에서 어떻게 주체화되고 자내화되었을까”라고 밝힌 대로 저자는 한국에서 불교가 어떻게 이와 같이 한 우물이 되었는지를 밝혀보고 싶었던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은 한국불교사, 고대불교, 조선 후기 불교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자연스럽게 한국불교사 전체를 포괄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그 내용에서 방대한 양을 담고 있어서 여느 서적의 2권에 해당하는 중량감을 보인다.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일반 독자들이 끝까지 읽기에 다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한 사건 한 사건 정리하고, 내용을 따라 하나씩 자료를 점검하다 보면 어느덧 반 권이 훌쩍 넘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전체 내용은 4부로 나누고 목차를 분류한 것이나, 각 장의 글마다 다시 큰 글씨로 목차를 앞머리 두어서 그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본문을 읽게 한 것은 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방대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는 때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페이지 숫자를 진하고 크게 하여 책장 넘기는 재미를 추가하였다. 뒷면에 있는 참고문헌에 배색을 주어 정리한 것 또한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라고 여겨진다.

이 글이 인용 내용과 자료의 방대함으로 자칫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서문을 우선 읽고 본문 읽기를 권하고 싶다. 서문에서는 각 부와 각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중요한 핵심 내용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어서 그 요점을 알고 읽으면 글 읽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 책의 말미에는 영문 목차와 영문 초록을 넣어 외국인들에게도 한국불교를 소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3.

이 책은 전체를 제1부 한국사와 한국불교사의 접점, 제2부 한국불교와 국가 사회, 제3부 한국불교와 역사 인물, 제4부 한국불교와 시대정신으로 나누어 광대한 한국불교사를 치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제1부에서는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과 한국에 전래되면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토착화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중국에서는 불전을 소개하는 경전역경기, 초기의 격의불교기를 거쳐, 연구기에서 교상판석을 통하여 이른바 중국적 불교로 정착하였다. 우리나라는 전래승과 구법승에 의해 전래된 (중국적) 불교가 고대국가 형성과 맞물려 정치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정착하였다. 이를 저자는 한국사와 한국불교사의 접점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불교사의 전개를 이해하면서 이 접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제1장의 ‘한국불교사 기술의 방법과 문법’에서는 이러한 접점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강조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나 김부식의 《삼국유사》에서 보았듯이 사가의 올바른 사관은 역사를 보는 중요한 안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래 한국불교사를 검토하면서 사가들의 시대구분 방법, 역사서술 문법, 사관과 주체, 주체와 쟁점, 사건과 제도, 학통과 인물 등에 있어서 이 인식의 틀을 탐색해 보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바람직한 한국불교통사의 간행의 요건으로 한국불교사 기술의 방법과 문법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통한 업설, 연기설, 중도 등에 대한 확고한 사관이 필요하며, 불교사 장면의 주체를 사부대중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하고, 인간과 세계 인식에 대한 본질적인 주제와 쟁점 확보 등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제2부 한국불교와 국가 사회에서는 한국 고대불교의 수용의 특징, 국가불교의 호법과 호국의 문제, 국가불교의 불교인식에 대해 서술하였다.

한국 고대불교의 수용과 전개과정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의 분석을 통하여 고대 한국불교사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한국불학사》에서 제시한 사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시대의 시대 구분에 의하여 사국, 통일신라, 대발해 시대 불교를 평가하고 있다. 이 시기는 한국불교의 서두로서 인도·중국불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해 가는 과정이었으며, 그 특징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에 비해 교학과 실천을 아우르는 한국불학의 틀을 형성하였다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한국불교의 전통과 고유성으로는 원효의 교학과 종파를 뛰어넘는 통합불교 이념을 들었다.

정중무상 선사의 연구는 그동안 학술대회를 통하여 발표하고 연구해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라의 왕자로 알려져 설왕설래가 있었다. 저자는 이를 신문왕의 셋째 아들 부군(副君)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또한 마조도일과 보당무주 정중신회를 배출한 그의 선사상이 인성염불선(引聲念佛禪)이라는 독자적 가풍이었음을 밝혔다. 교계의 관심을 끌었던 한국불교의 호법 호국에 대해서, 붓다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보호하려는 제왕 주도의 호법불교를 “타자화된 국가불교”라 하였다. 이에 비해서 불자에 의해 주도된 호국불교는 “주체화된 참여불교”라는 견해로 정리하였다. 조선시대 광해군의 불교 인식에 대해서는 재위 15년간의 전후 문화복구 사업을 높이 평가하여 백성들을 최우선시한 지혜로운 군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의 불교 인식은 경직된 유교 사유만이 아니라 유연한 불교 사유에도 관심을 기울여 유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다고 평가하였다.

제3부 한국불교와 역사 인물에서는 그동안 임란과 호란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승군제도에 대해 연구하였다. 승군과 승역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승군이 상설제도화되고 승역이 행해져서 대내외로 불교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전란 이후 유자와 불자들의 교유가 빈번해지면서 승려들의 행장과 비문 찬술을 유자에게 부탁함으로써, 유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빌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립하려고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새롭게 조명한 사찰의 역사와 인물로는 북악사(영일암)의 역사와 나옹, 낭규, 삼각산 화계사의 역사와 탄문 이후의 주석자들을 밝혔다. 근현대 인물로는 동국대 전신이었던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정신적 사상적 좌표를 제시한 영호정호의 업적을 밝혔고, 육당 최남선의 《삼국유사》 인식과 해제에서는 육당이 《삼국유사》의 해제를 쓰면서 불함문화론을 입론하여 민족의식을 수립한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제4부 한국불교와 시대정신에서는 한국불교 전통의 변화를 갈구하는 근현대기 조계종 총림의 역사와 전통 가풍과 문화 등을 고찰하여 전통과 시대정신의 함수관계를 조망하였다. 총림의 3대 지표였던 역경과 포교, 도제양성의 명약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평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확보가 과제임을 제시하고 있다. 현대불교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저자는 교육공동체 확보와 수행공동체 확산을 들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이론과 실천의 균형인 교육과 수행의 통섭을 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한국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현대불교가 나아갈 방향임을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동국대 법당 정각원의 역사와 위상을 통하여 저자가 몸담고 있는 동국대 정각원의 불교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조명하였다. 동국대와 정각원은 동국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구현하고 교육목적인 인재양성의 센터로, 불교종단의 대표적 법당의 모델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동의보감과 천태의학의 상관성연구〉 〈고려의 법화삼매 수행법 재조명〉 등이 있고 저서로 《법화삼매의 수행과 전승》 《한국불교와 법화사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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