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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걷기 좋은 행복한 도시 / 김선희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김선희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국불회 회장

2012년 10월,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시작한 안식년 생활은 나를 행복한 순례자로 만들었다. 직장생활 30년 만에  얻은 안식년은 지나온 인생 55년을 뒤돌아보며 오로지 내 몸과 맘에 집중해서 사색하고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직장 일로 바쁜 남편과 학업 등으로 함께 가지 못한 아들들 덕분에 오롯이 나 혼자 평화롭고 충만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5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 사람들도 역사적인 고도 교토에서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축복’이고, ‘일본에 교토가 있어 참 좋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말 많은 ‘4대강 살리기 백서’ 작업을 어렵게 마무리하고 도망치듯 달려와 시작한 안식년 생활은 피폐해진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치유하고 매일 매일을 설레게 해주었다. 크고 작은 국책 연구과제 수행과 일 년에 4~5개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매일 밤 11시까지 연구실에서 무리하게 혹사당해온 나의 눈과 자라목, 허리와 어깨, 위와 간, 다리와 발바닥, 거칠어진 피부와 머리카락까지 보듬으며 그들을 위해 음식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배려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단풍과 매화와 벚꽃, 이름 모를 작은 새와 작은 풀꽃 등 계절과 자연을 관찰하고 음미하면서 교토고소와 가모가와 강변을 하루에 3시간 이상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생활을 시작하자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 역시 너그러워졌다. 춥고 외로울 때마다, 짐 속에 챙겨간 소중한 책 《금강경의 이해》(국토연구원), 《허접한 꽃들의 축제》(한형조)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거센 비바람도 향기로운 꽃바람도 그저 바람 그대로 순하게 맞을 정도로 내 마음의 여백은 커져갔다. 매일 매일 가족이 있는 쪽을 향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온 맘 다해 108배를 올리고, 돌아가신 친정아버님과 시어머님을 위해 기도하는 평화로움도 누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과 색채를 찾아 연꽃, 코스모스, 아기단풍, 은행잎, 도라지꽃, 나팔꽃, 가지, 오이, 유자, 매화, 벚꽃, 참새, 소나무, 이름 모를 작은 풀꽃 등 내 주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생명들을 나만의 빛과 각도로 사진에 담고, 그걸 수채화로 그려보았다. 교토 산주산간도(三十三間堂)에서 만난 92세 여승, 세도우치 자쿠초(瀨戶內菽聽)의 법문과 《50부터라도 늦지 않아: 인생의 기쁨은 50부터》라는 그녀의 책은 내 가슴을 뛰게 해 주었다. 나를 행복한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교토에서 생산된 나의 졸시 몇 편을 소개해 본다.

오늘도 수행승들은/ 비 오는 도게츠교(渡月橋)를 건넌다./ 이쪽과 저쪽의 맘이/ 시시각각 다르다. 끊임없이 변화한다.// 오늘도 다이도쿠지(大德寺) 큰 스님은/ 정원의 모래를 쓴다./ 아침과 저녁의 빛의 변화를 본다./ 지금이 늘 출발점이다.// 오늘도 덴류지(天龍寺) 방장은/ 소겐지(曹源池) 정원을 바라본다./ 한 방울의 물로 폭포도 만들고, 용도 만든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짐을 본다.// 오늘도 나는/ 내 가슴 속 불법을 찾아 108배를 올린다./ 해마다 봄이 되면 피는 저 벚꽃처럼/ 내 가슴 속 불성(佛性)을 조금씩 조금씩 키운다.
— 〈수행(修行)〉

2012년 초가을/ 와카야마(和歌山)의 키미이데라(紀三井寺)를 찾았다./ 구세관음총본산이구나/ 일본 최대 대천수십일면(大千手十一面) 관음상이 봉안된 곳이구나.// 막 피어난 연꽃을 안은 행복관음은/ 태평양 바람에 미소 짓고 있다./ 바람이 분다/ 연꽃이 피어난다./ 향기롭고 평화롭다.// ‘벼랑 위의 포뇨’ 애니에서/ 관음은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주는 바다였다.//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엄마// 행복관음은 도처에 있다./ 키미이데라(紀三井寺)에도/ 산센원(三千院)에도/ 에이칸토(永觀堂)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맘 속에도
— 〈행복관음을 찾아서〉

이처럼 교토의 안식 생활은 나를 행복한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혼자 사는 즐거움, 오롯이 나를 만나는 시간, 형용할 수 없는 충만감과 평화로움.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안식년을 마치고 연구원에 복귀한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는 예전과 같이 많지 않지만, 뒷방노인 취급하는 연구원 분위기와 나이 듦에 내 마음은 이유 없이 초조하고 산란해진다. 체중은 다시 불고 혈압은 올라가고 있다. 아무리 충만된 시간을 가졌다 해도 슬며시 날아오는 먼지와 잡념들…… 매 순간 깨어 있음과 매일 매일의 수행이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느낀다. 일찍이 의상 대사께서는 “허공에 보배로운 비가 가득한데 그릇이 큰 사람은 많이 담을 수 있고, 그릇이 작은 사람은 적게 담을 수밖에 없다”고 설하신 바 있다. 작은 먼지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간장 종지만 한 내 마음의 그릇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행하여 김장독처럼 크고 넉넉한 그릇으로 키워야겠다.

오랜 가뭄 끝에 봄비가 내리니 온 대지가 촉촉하고 생명력이 가득하다. 꽃비 떨어지는 금선사의 연둣빛 신록이 시시각각 눈부시다. 어제 내린 비로 우리 국토는 2,500억 원 가치 이상의 혜택을 받았다는 수자원 전문가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내 마음의 도량을 크게 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배로운 비를 가득 담을 일이다. 그리고 잠시 1년간 체류하는 여행자까지도 순례자, 시인으로 만드는 교토처럼, 우리 도시들도 걷기 좋고, 안전한 환경으로 가꾸어, 국민 모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행복한 수행자가 되길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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