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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열린논단’ 방청 후기 / 이혜숙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이혜숙 금강대 응용불교학과 객원교수

아시다시피 《불교평론》은 매월 셋째 목요일 공개강좌로 ‘열린논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2월, ‘열린논단’이 개설된 지 60회를 맞이하여 기획특집 ‘한국불교 정말 괜찮은가’가 마련되었다. 2월 26일은 그 첫째 날로 신라대 조명제 교수의 특강, ‘수행, 정말 잘하고 있는가’를 들을 수 있었다. 당일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평소보다 좀 더 많은 인원이 참석하였고, 불교평론 세미나실은 항상 그랬듯이, 시종일관 너무 뻑뻑할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였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조 교수의 첫 말씀이 다소 의외였다. 요즈음 불교 공부가 ‘재미없다’는 것. 그래서 ‘열린논단’에 발표 섭외를 받았을 때 처음엔 거절하였는데, 거기서는 강사가 제 하고 싶은 말을 뭐든지 해도 된다는 중간 교섭자의 말을 듣고 수락했다는 것이다. 청중은 순간 멈칫하는 눈치였지만, 강사의 어조가 진솔하게 전해졌는지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 같았다. 비교적 젊은 불교학자께서 그간에 하지 못한 말씀을 실컷 할 수 있도록 밀어주겠다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 자리에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불교 공부 재미없다’는 말머리 때문에 오히려 그의 강연이 더욱 재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청중 가운데 연세가 지긋한 전직(前職) 교수 한 분도 “열심으로 하는 이 불교 공부가 난 정말 재미있는데, 왜 재미없다고 할까?”라며 바짝 관심을 드러냈다. 더욱이 ‘뭐든지 말해도 된다’는 점에 끌려 지방에서 서울까지 먼 출강을 수락했다고 하니, 바야흐로 그가 뭣인지 깊이 묻어두었던 속말이라도 해줄 요량인 것 같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지나가는 말처럼, 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이런 자리도 별로 없다는 인사의 말씀을 덧붙였다. 불교신자들이 그리 많은 부산에 불교를 거침(?)없이 말해볼 자리가 딱히 없다는 고백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강연의 요지는 이랬다. 인도불교의 선 수행이 중국을 거치면서 공안(公案)-간화(看話)의 방법으로 특화되어 우리나라 조계종에 이어진 계통을 설명하였고, 그런 가운데서 불교의 명상과 유사한 수행전통이 고대 중국에도 있어 왔음을 소개하였다. 또 한편으로, 불자들이 참선과 같은 수행 방법만을 의지해서 깨달음을 추구한다면, 참선이 자칫 “본래계로부터 현실계로 떨어져 있는 인간 실상의 궁극을 살피지 못하고 깨달음 지상주의에 의해 망령된 무리를 낳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그는 지적하였다. 거기다가 오늘날 불교학은 서양 학문의 방법론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문헌에 의존하는 연구 즉 ‘아카데미즘 불교학’이 되었고, “역사적 현실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므로 현실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조 교수께서 학자로서 혹은 불자로서 요즘 불교 연구가 ‘재미없다’고 말하게 된 내막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의 지적대로 오늘날 ‘불교학과 불교계가 분리’되고, 불자 신행에 대한 논의가 현실의 삶과 유리된 방향으로 기울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 역시 바로 그런 점에서 불교학이 재미가 없고 불교계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능하다고 느끼던 터였으므로 그의 관점에 깊이 공감하였다. 만약 불교학 관계자들이 불교계 안팎의 다양한 현상들을 불교 기반으로 해석하는 데 지금보다 더 참여적이고 유능하였다면, 그런 전문가들의 올바른 해석이 그대로 불자 일반에게 공유되었다면, 불교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충실한 신행의 장이 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교평론》 ‘열린논단’의 백미(白眉)는, 초장에 강사의 발제를 듣고 나서 일단 참석자 모두가 깔끔한 간편식을 먹은 다음 작정하고 문을 여는 종장의 토론 시간이 아닌가 싶다. 청중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는 대개 조용히 진행되는데, 그날도 예외 없이 식후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열의에 찬 질문들이 쏟아졌다. ‘열린논단’의 청중은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듯 대부분 질문이 길어지는데, 반드시 본인이 ‘길게 발언해서 미안하다’는 인사 말씀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수행, 정말 잘하고 있는가’는 도전적인 기획 주제다. 한편, 《불교평론》을 읽고 ‘열린논단’에 참석까지 하는 불자들이라면 당연히 독실한 신행자일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인지 강사가 특히 작금의 불자 신행에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서, 청중의 반응이 예민해졌고 질문들은 더욱 날카로웠던 것 같다.

참고로, 2014년도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표본 1,500명)의 50.5%가 명상이나 참선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반면, 불자 응답자 중에서는 30.5%만이 관심 있다고 했다. 불자들이 국민 평균치보다 낮은 비율로 참선과 명상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명상수행을 “한다”는 응답자의 경우 개신교인 27.6%, 가톨릭교인 18.3%, 불교인 8.7%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참선이 아니라 기도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비율이 개신교 신자 40.4%, 가톨릭 신자 28.0%, 불교 신자 12.3%……. 그뿐만 아니라, 계율을 준수한다는 응답자도 개신교인 49.5%, 가톨릭 40.9%, 불교인 21%……. 게다가 경전을 자주 읽는지에 대해서는 개신교인 37.8%, 가톨릭교인 29.3%, 불교인 7.9%……. 신앙인으로서 해야 하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불교인은 셋 중 꼴찌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반성해야 할까.

발제자 조 교수가 말한 것처럼 “불교는 새로운 경전을 형성하고 새로운 사상가와 운동을 낳아 전통이 쇄신되고 힘을 회복하고 진행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의 문제는, 이 시대에 충분히 들어맞도록 불교를 훌륭하게 재해석하는 사상가도 없고 현실 적용을 통해서 전통을 쇄신하려는 불교다운 불교 운동도 사라졌다는 점이다.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여전히 많겠지만 불교 행자로서 실천해야 할 고유의 덕목들을 제대로 따라 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는 무늬만 불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불자라면 누구나 수시로 불교승가다운 공동체에 모여서, 불교에 대한 자기 해석을 솔직하게 점검함과 아울러 현실의 맥락을 통찰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지혜를 키워가는, 신해행증(信解行證) 일치 운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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