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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스님의 「인도불교사」를 읽고
인도불교사의 종합적 고찰
[28호] 2006년 12월 10일 (일) 이병욱 고려대학교 강사·본지 편집위원

   
언젠가 후배가 유럽에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한국에 많이 소개된 미국과 일본의 불교학과는 다른 그 무엇이 유럽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오래된 정신문화가 쌓아있는 유럽문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불교학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게 이 후배의 생각이었다. 유명 연예인을 사모하듯이, 평자도 유럽의 불교학은 무언가 다른 저력이 있으리라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 번역된 유럽학계의 거목 에띠엔 라모뜨(Etienne Lammotte)의 『인도불교사』1ㆍ2권도 유럽문화의 힘을 잘 보여주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방대한 분량과 세밀한 부분에 대한 치밀한 고증은 책을 읽은 평자에게 서평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였다.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밀한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그것을 평가할 수 있을 만큼의 공부량이 평자에게는 없다는 점을 우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좋게 말하자면, 평자는 철학쪽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역사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옛말에 입이 모든 재앙이 근원이라고 하였는데, 그만 입을 잘못 놀린 구업(口業)으로 인해 수영실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처지에 태평양바다를 향해서 무도한 돌진을 감행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익사하지 않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서평의 원래형식에서 벗어나서 이 책의 특징과 개성이라고 평자가 판단하는 대목의 일부분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진행하고자 한다.

◇언젠가 학회에서 어느 선생님이 ‘불교의 생명사상’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할 때였다. 그 때는 평자는 불교의 생명사상을 보여주는 경전이 불교의 핵심을 드러내는 요의의 경전인지, 그렇지 않은 불요의의 경전인지부터 먼저 결정하고, 그리고 나서 분석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반론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모뜨도 초기불교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서 결정적인 의미(了義, ntrtha)와 잠정적인 가치(不了義, neyrtha)를 구분하고 있다. 한자술어로 요의와 불요의로 잘 알려진 이 구분은 하나의 경전에 통째로 적용되어서 이 경전은 ‘요의’이고, 저 경전은 ‘불요의’라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구분법을 초기불교의 내용에 적용하고 있다.

라모뜨는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는 샤캬무니(kyamuni)와 붓다고사(Buddhagosa, 佛音), 나가르주나(Ngrjuna, 龍樹), 아상가(Asaga, 無着)에게 계승되어온 핵심 가르침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따라서 독자부(犢子部)에서 뿟갈라(Pudgala, 人我)를 주장하고, 나아가 아트만(Atman)이 존재한다고 해석하는 건 ‘잠정적인 가치’라고 라모뜨는 주장한다.

◇기독교에서 신(神)이 우주를 창조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신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으면 대답이 궁하듯이, 불교에서도 무명(無明) 이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평자는 강의시간에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색안경의 비유를 들곤 한다. 색안경을 끼고 있으면 사물의 고유한 색깔을 볼 수 없듯이, 무명 속에 있으면 무엇이 무명인 줄 알지 못하고, 무명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무명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그리고 나서 이것도 궁색한 답변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평자의 사견(私見)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대승불교의 최대이론서인 『대승기신론』에서는 무명은 홀연히 일어난다고 한다. 그에 비해서 라모뜨는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무명이 연기 사슬의 시작이지만 원인은 있다고 지적한다. 무명은 5개(五蓋) 곧 탐욕, 진에, 수면(睡眠), 도회(悼悔), 의(疑)를 양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5개’는 신(身), 구(口), 의(意)의 악행(惡行)으로 영양을 취한다. ‘5개’는 감각을 억제하지 않음, 불쾌한 감각적 반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핍, 피상적인 생각, 의혹심, 법(法)을 청취(聽取)하지 않음, 수행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서 생긴다.

◇한국불교사 전공자에게 들은 말인데, 『삼국유사』를 번역본으로 보면 술술 읽히지만 한문으로 읽으면 아무 것도 아닌 글자 하나에 막혀서 하루 종일 그것만 가지고 씨름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 터인데, 이제는 그것이 도통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10대들이 쓰는 말에 ‘열공’이 열심히 공부한다는 의미라는데, 이는 10대들이나 아는 말이지 다른 세대의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처럼,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전혀 다른 의미도 해석될 수 있다.

불교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다. 초기불교시대에는 무아와 업의 상속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부파불교시대에 들어서면서 무아와 업의 상속이 서로 대립된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다시 말해서 불교에서는 무아를 주장하므로 어떻게 업이 상속되는지, 다른 말로 하자면 업이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여러 부파불교에서 자신의 학설을 제시하였다. 이 대목에 대해 라모뜨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우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득(得, prpti)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는 마음과 물질[色]에도 속하지 않는 14개의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의 하나이다. 자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업이 유지되는 것은 득이고, 그 업에 상응하는 과보가 발생하면 득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경량부(經量部)에서는 업이 발생하면 그 업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상속전변(相續轉變)으로 설명한다. 자아는 없지만 업이 끊임없이 상속전변하면서 이어져서 과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독자부(犢子部)와 정량부(正量部)에서는 정의할 수 없는 개아(avaktavya pudgala, 不可說 個我)를 주장하였다. 이 부파에서는 뿟갈라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자아가 아니면서도 자아처럼 업보를 유지시켜 주는 존재이다.

◇열반이란 무엇인가? 초기불교에서는 실천적인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열반의 개념 정의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부파불교시대에 들어서면서 열반의 개념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등장하였다.

이런 부분에 대해 라모뜨는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다. 우선 상좌부(上座部) 곧 붓다와 직계제자들의 고대 사고방식에 따르면 열반은 견고한 거주처처럼 이해되었고, 요가수행자들이 말하는 신비적 세계처럼 생각되었다. 이는 드 라 발레 뿌셍(de La Vallee-Poussin)의 주장이고, 엘리아데(M. Eliade)의 연구도 이런 해석의 한 종류이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열반은 실체(dravya)이고, 유일자이며 해탈[出離]인데, 열반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량부에서는 열반은 존재의 법들과 번뇌가 소멸한 후 그것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독자부와 정량부에서는 열반한 자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일종이 열반-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 상태는 어떠할까?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1588~ 1679)는 인간의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이 작동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도자(왕)를 뽑았다는 것이 홉스의 주장이다.

하지만 불교교단의 경우는 홉스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다. 라모뜨는 불교교단의 특색으로서 ‘권위의 부재’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붓다는 후계자도 정하지 않고 교단의 위계(位階)도 정하지 않고 열반에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붓다는 사원에 직무상의 서열을 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전교단을 통솔할 정신적 지도자를 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람의 귀의처가 될 수 없기 때문이고, 어떠한 인간적 권위도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며, 붓다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논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알고, 보고, 이해한 것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전체의 불교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라모뜨는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교리와 계율문제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붓다가 교단을 통솔한 정신적 지도자를 두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의 불교 역사 가운데 교단에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교리나 계율의 문제점에 관해서 비구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을 때는 화해하려고 노력했고, 이 노력이 실패했을 때는 비구들은 갈라져서 자신의 부파불교를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인도라는 지역의 광활함으로 인해서 부파불교는 많이 생겨났지만, 비구들의 지혜와 관용 때문에 종교전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고, 논쟁은 학구적인 차원에서 머물렀다. 비구들은 자신들이 소속한 부파불교를 초월해서 서로 간에 왕래하였고, 서로를 환대하였다.

◇언젠가 불교교양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을 때 열심히 강의를 듣던 어느 분이 질문을 하였다. 나는 불교에는 아주 뛰어난 가르침이 있다고 강의했는데, 그렇다면 인도에서 왜 불교가 사라졌는가 라고 물었다. 대답이 궁했던 평자는 일반불교신도라면 상당히 궁금해할 만한 사항이라고 질문에 대해 칭찬해 주면서 일반론으로 마무리하였다. 그것은 인도민간신앙인 여신(女神)숭배의 성력주의(性力主義)와 결합한 좌도밀교(左道密敎)의 타락 때문이고, 엘리트 불교와 일반 민중의 신앙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라모뜨는 엘리트 불교와 일반 민중 신앙 사이의 괴리를 다른 각도에서 풀이한다. 다시 말해서, 출가수행자들과 재가신도 사이의 느슨한 연대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한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자이나교의 교단에서는 재가신자들이 출가수행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라모뜨는 지적한다.

재가신도들이 불교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조상들로부터 이어오던 신앙과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던 종교적 실천을 버리도록 재가신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예컨대, 재가신도들은 불교의 3보(三寶)이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신(神)들과 자신이 속한 카스트의 신들과 자신이 선택한 신들을 숭배할 수 있고, 그 신들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래서 종교교육이 불충분한 우바새는 불교와 다른 종교의 의식(儀式) 사이에서 타협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점으로 인해서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었다고 라모뜨는 보고 있다.

◇요즘 이혼이 늘고 있고 재혼도 많다. 더 이상 이혼이 세간의 입방아가 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재혼의 가정에서는 이복형제끼리 물과 기름처럼 서로 화합하지 못해서 상처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마찰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이는 불교교단에도 적용된다. 출가수행자와 재가신도가 둘다 붓다의 제자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경향을 나타내었고, 재가신도쪽이 대승불교로 이어졌다고 라모뜨는 주장한다. 출가수행자쪽은 욕망의 포기와 개인적인 성화(聖化)가 이상이었고, 재가신자쪽은 적극적인 공덕과 이타(利他)적인 관심이 주된 흐름이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형성된 것은 비구의 엄격주의에 대해서 우바새의 인간애가 승리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라모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라한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비구가 붓다의 법을 따른다면, 재가신도는 보시와 인욕과 정진을 통해 여러 전생 동안 자비를 완성한 샤꺄무니에게 더욱 가까운 것이 아닐까? 단지 비구만이 완전한 해탈 즉 열반을 얻을 수 있고 재가신도는 단지 천상과 인간세계에 좋은 조건으로 다시 태어날 뿐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그리고 재가신도도 아무런 제한 없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웃따라빠타까(Uttarpathaka)의 북파(北派)에서 주장하였고, 나아가 아라한도 타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출가수행자들에게 공세적 위치에 서기도 하였다. 이는 정량부(正量部), 독자부(犢子部),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대중부(大衆部), 북산주부(北山住部)의 유명한 5부파들이 채택한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승불교가 출현함에 이르러서 재가신도의 열망이 이루어졌다. 대승불교도들은 사후에 열반에 들어가는 것보다 완전한 이타심으로 고취된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였다.

◇한국불교학계에서 불교사 관련 연구가 호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불교를 지원했다고 하면 무조건 뛰어난 인물로 묘사하고, 그 동기도 고결한 것이라고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오히려 불교학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불교의 이미지도 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라모뜨의 연구는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라모뜨가 밀린다의 질문이라는 의미의 『밀린다빤하(Milindapanha, 那先比丘經)』로 유명한 메난더(Menander)가 그리스인이면서도 불교를 택한 이유에 대해 추정한 것이 상당히 객관적이다. 라모뜨는 메난더가 4성계급 가운데 바라문과 끄샤뜨리야에게는 지지를 얻지 못할 위치에 있었고, 도시의 중산계급과 이해관계에 맞았기 때문에 그들이 종교인 불교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메난더는 가문, 결혼, 전통으로서는 그리스인이었지만, 코카서스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까삐쉬(Kpi)에서 태어났다. 메난더는 인도에서 사는 것이 타향에 와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메난더가 토착세계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관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고, 왕으로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다.

메난더가 인도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된, 슝가(uga)왕조의 뿌샤미트라(Pusyamitra)와 싸워야 했던 정치적 상황에 처했을 때, 그는 백성들 가운데 자신의 행동을 지지할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메난더가 이방인이라는 사실, 나아가 만약 그가 그리스인 아버지와 토착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면, 이 사실을 너그럽게 보아주지 않았던 바라문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었다.

끄샤뜨리야도 자신의 일거리를 빼앗아간 메난더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메난더는 도시의 부유한 중산계급의 힘을 빌렸다. 이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과 카스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정치보다는 사업에 몰두하였다. 이 중산계급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줄 사람이면 누구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교가 잘 포교된 대상도 바로 이 중산계급이었다.

왜냐하면, 샤꺄무니의 교리는 재가신도에게도 출가 수행자처럼 높은 도덕적 이상을 일러주면서도 재가신도들이 물질적 이익에 관심 갖는 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재가신도들은 내적 훈련을 쌓았고, 이는 일상생활의 훈련만이 아니라 사업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메난더는 이 중산계급을 자신의 군대원정과 왕권을 지켜주는 지지세력으로 삼았고, 이 계급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불교학에 대해 혹평하는 사람은 너무 고증의 문제에만 치우친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철학의 묘미가 없다는 지적이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고증의 문제에서 문헌학의 엄격함을 배울 수 있다. 사실 한국불교학계에서는 문헌에 대해 엄격하게 접근하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라모뜨의 연구에서는 마하데바(Mahdeva)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추적하면서 문헌학의 엄격함을 보여주고 있다. 마하데바는 5사(五事)를 주장해서 아라한의 특권을 부정하고자 한 인물이다. 먼저 5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라한은 타인에게 유혹될 수 있다. 둘째, 아라한에게는 아직 무지(無知)가 남아 있다. 셋째, 아라한은 아직 의심이 남아 있다. 넷째, 아라한은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도 있다. 다섯째, 목소리를 냄으로써 불도(佛道)에 들어갈 수 있다.

마하데바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설일체유부 쪽에서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고, 대승불교 쪽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을 희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나아가 마하데바가 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도 여러 문헌을 통해서 읽을 수 있다. 라모뜨에 따르면, 마하데바에 관한 설명은 설일체유부의 논사(論師) 바수미뜨라(Vasumitra, 世友)가 처음 하였고, 이러한 설명이 설일체유부의 주석서를 의미하는 비바사(Vibhs)에 의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에 따라 설일체유부에서 열광적으로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대승불교의 논사들에 의해서 근거 있는 것으로 수용되었지만, 대중부의 마하데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자세한 내용은 진제(眞諦, Paramrtha, 500~569)와 현장(玄, 600~664), 그리고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 632~682)의 한역(漢譯)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한편 대승불교의 바뱌(Bhavya, 淸辯)는 정량부에서 전해져온 마하데바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스승의 견해도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문제가 되는 마하데바가 아닌 제2의 마하데바의 존재도 앞에서 말한 바수미뜨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2의 마하데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는 라모뜨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독자가 판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라모뜨의 『인도불교사』1권ㆍ2권은 분량도 방대하고, 내용도 상당히 섬세하고, 인도불교현상에 대해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유럽유학을 갔다 온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한 권의 좋은 책이 번역된다는 것은 우리 학계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외국어에 웬만큼 숙달되지 않는 한, 외국서적을 읽고 어떤 학문적 관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인도불교사분야에서 고전으로 알려진 좋은 책이 우리 글로 번역되었다. 교통이 좋지 않아서 갈 수 없었던 좋은 뷔페식당이 이제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과 비슷하다. 마음을 내어서 좋은 음식을 어떻게 맛볼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달렸다. 끝으로,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을 이 책의 번역에 바쳤을 번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병욱
고려대학교 강사ㆍ본지 편집위원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ㆍ박사 과정(동양철학). 박사학위논문으로는 「천태지의 철학사상논구」(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1995년)가 있으며, 저서로는 『천태사상연구』(경서원, 2000년), 『고려시대의 불교사상』(혜안, 2002년), 『에세이 불교철학』(운주사, 2003년), 『인도철학사』(운주사, 2004년), 『천태사상』(태학사, 2005년) 등이 있다. 현재는 고려대, 강원대, 중앙승가대 강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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