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제 한글대장경’ 간행을 염원하며

1. 들어가는 말

고려 때 우리나라가 대장경을 판각해 소장함으로써 이웃 나라들로부터 많은 부러움과 시기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장경을 가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적인 역량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문화적인 역량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도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 하는 말일 것이다. 고려시대와 비교할 수 있는 일은 못 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인 고려재조대장경(高麗再雕大藏經)을 역시 자랑스러운 우리글인 한글로 번역해 ‘한글대장경’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글대장경 완간 사업은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숱한 어려움과 위기를 헤치고 이룩해낸 대작불사라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한글대장경이 고려대장경을 완역한 결과물이고, 318책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왔으니 겉으로는 다 마무리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탈자는 물론 일관된 편제 없이 그냥 한곳에 모아 놓았음을 금방 알 수가 있을 정도로 많은 허점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반드시 새로운 편제하에 새로운 한글대장경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의 노력은 곁들여져야 완간이라는 이름에 덜 부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대장경은 1차적으로 고려대장경의 완역 간행, 즉 완간이지 한글대장경의 간행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글대장경이 완간된 지도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편제 한글대장경 간행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단지 시대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전산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인 수정 작업에 머물러 있을 뿐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동국역경원을 통한 역경사업은 분명한 청사진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그에 따른 역경 인력의 확충이나 자체 재정의 확보를 통해 이루어져 온 것이 아니다. 국가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일이 진척되기 어려운 매우 열악하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30년 전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도리어 그때보다도 더 못한 실정이다. 하지만 신편제 한글대장경의 간행은 우리 시대에 반드시 감당해야 할 불사라는 측면에서 그간 한글대장경 편찬 간행 사업이 이루어져 온 과정을 돌아보면서 문제점과 개선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글대장경 간행과 편제

한글대장경의 간행 역사는 일단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역경원을 개원해 한글대장경 첫 권을 간행한 1965년부터, 일련번호 부여를 버리고 단행본 형태로 간행하기 시작하기 전인 1985년까지이다. 두 번째 단계는 단행본 형태로 간행하기 시작한 1985년부터 다시 일련번호를 부여하며 고려대장경을 완간한 시점인 2001년까지이고, 세 번째 단계가 2001년부터 시작된 개역(改譯) 전산화(電算化) 사업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편의상 제1단계 한글대장경 목록을 ‘구판 한글대장경 목록(1965~1985)’이라 부르고, 제2단계 목록을 ‘신판 한글대장경 목록(1985~2001)’이라 부르며, 제3단계 목록을 ‘신편제 한글대장경 목록(2001~ )’이라 부르기로 한다.

1) 구판(舊版) 한글대장경(1965~1985)의 간행

구판 한글대장경이란 역경원 개원 이듬해인 1965년부터 1985년까지 101책으로 간행된 붉은색 표지로 된 한글대장경을 말한다. 당초 한글대장경은 전 250책 한 질로 번역 완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대장경 전체를 다 번역한다면 그쯤 되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전 139책으로 간행할 계획으로 구체적인 목록까지 작성했었다. 이 목록은 고려대장경 목록과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목록을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인도 찬술의 한역본을 중심으로 아함부를 비롯해서 전 16부 1,418경을 번역하려 했다고 적고 있다. 그 후 한국 찬술부와 사전부, 사휘부, 남전부가 추가되어 실제로는 총 20부로 구성되었다. 당초 목록 중 16부로 간행하려던 구체적인 계획 중에서 다른 부들은 그런대로 최소 한두 권씩이라도 간행했으나 밀교부만큼은 전 12책으로 간행하려 했던 계획과는 달리 손을 대지도 못했다. 어쨌거나 16부 139책으로 간행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밀교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나름대로 지켜진 셈이었다. 당초 계획에 없던 한국 찬술부가 간행된 것은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사전부와 사휘부의 전적들은 활용도 측면에서 먼저 번역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한글대장경 간행 계획은 사전의 충분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이 구비되지 못함으로 해서 도중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겹침으로써 역경사업의 지향점을 잃어버리고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대장경을 간행하고자 하는 줄기찬 신심(信心)과 원력(願力),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종단과 동국대학교의 지속적 관심을 통한 자금과 인력과 조직 등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중간에 한글대장경의 완간 간행사업의 포기나 다름없는 전질 형태를 버리고 단행본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련번호 부여 형태에서 통권번호가 없는 단행본 형태로의 전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일련번호 체제 간행을 지속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실제 간행을 함에 있어 번호체계가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더 큰 이유는 당시의 역경원은 한글대장경 간행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역경원이 번역사업을 하는 기관이니까 명목상으로만 역경사업을 벌여나가고 있었을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구판 한글대장경의 간행은 1985년 일련번호 없는 단행본 개념의 신판(新版) 한글대장경을 간행하기 시작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어쨌거나 역경원은 종단 3대 사업의 하나인 역경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고, 일이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다소의 혼란과 경제적인 손실을 기꺼이 감당했어야 했다. 한글대장경 완간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 채 그냥저냥 명맥만 유지하자는 식이었기 때문에, 정작 완간 회향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을 때는 도리어 그때 잘못한 일들이 볼모가 되어 일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때 대충대충 지내온 그 과보가 신판 한글대장경에도 그대로 이전되었고, 완간 회향을 하고 난 지금은 더더욱 새롭게 고치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과의 논리가 이토록 역연함에도 여전히 인과를 무시하는 일들이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겠는가?

2) 신판(新版) 한글대장경(1985~2001)의 간행

구판 한글대장경은 1985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간행하지 않게 되었다. 구판이 막을 내리기 몇 개월 전부터 단행본 형태의 신판 한글대장경을 간행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구판과 신판이 같이 간행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구판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구판과 신판을 구분하면 위의 〈표 2〉와 같다.

신판 한글대장경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출간된 기존 세로쓰기판을 그대로 영인해서 간행한 판이고, 다른 하나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새롭게 번역하면서 출간한 가로쓰기로 된 판이다.

(1) 세로쓰기판 한글대장경

세로쓰기판 한글대장경은 구판의 내용과 체제가 똑같다. 단지 책의 쪽수와 겉모양만 다를 뿐이다. 구판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라면 구판은 경명이 밖으로 도출되지 않아 그 책 속에 어떤 경이 들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없는 단점이 있었던 반면, 신판은 경명을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어떤 경이 들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경이 하나일 경우는 쉽지만 작은 분량의 소경(小經)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경우는 무슨 무슨 경 외(外)라는 표기를 했기 때문에 목차를 펼쳐보지 않는 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경명이 밖으로 나옴으로써 필요로 하는 경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리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구판은 활자조판본으로 활자조판 인쇄가 사라지기 전에는 활자조판으로 인쇄되어 표면을 만져 보면 활자의 요철(凹凸)감을 느낄 수 있어 쉽게 구분할 수도 있다. 나중에 활자조판 인쇄가 사라진 후에는 판을 통째로 촬영해서 필름으로 인쇄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책이라도 활자조판 인쇄의 느낌이 없는 책이 있기도 하다.

이때 간행한 신판 한글대장경의 또 하나의 특징은 판권을 인쇄하면서 통상 많이 쓰는 ‘초판’이라든가, ‘제1판’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중판’이라거나 ‘신판’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썼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새 책이 나온 줄 알고 구입한 독자들이 예전에 나온 책과 똑같음을 확인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당시의 역경원 상황으로 봐서 다시 일련번호 체계로 한글대장경을 완간하려는 계획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단행본 형태의 한글대장경 간행이 1994년까지 이어져 약 70여 책이 간행되었다. 1994년 정부로부터 국고지원이 재개(再開)되고 고려대장경 완역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폐기했던 일련번호를 다시 붙이기 시작했고, 구판의 일련번호 형태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포기했던 일련번호 체계를 뒤늦게 채택하다 보니 제대로 될 수가 없었다. 책 표지에는 표시할 수가 없었고, 책 케이스 뒷면에만 표시하는 편법을 썼다.

(2) 가로쓰기판 한글대장경

새로 번역 출간된 가로쓰기판 한글대장경은 1994년에서 2001년 사이에 간행된 책으로 구판의 복각본은 하나도 없고 전부 새로 번역 간행한 책들이다. 국고지원을 받으면서 한글대장경을 간행하려다 보니 일 년에 몇 책을 간행하고 전체 몇 책이 된다는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전체 한글대장경의 통권번호를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단행본 형태로 70책 이상 간행되었고, 아직 구판 중에서 복간하지 않은 것이 많이 있었으므로 이들 책에 대해 통권번호를 부여하면서 새로 번역 간행하는 책들에 대해서도 번호를 붙여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역시 이미 통권번호 없이 간행한 책들이 많이 유통된 상태였고, 아직 간행되지 않은 경전들을 간행하면서 새로 번역 간행하는 책들에도 통권번호를 붙여야 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여건상 제대로 발행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때 역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결정되고, 먼저 시작해놓고 차츰 일을 진행해 나가다 보니 중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책 표지에는 통권번호를 붙일 수가 없었고 케이스에만 부별(部別) 번호와 함께 통권번호를 붙이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일련번호를 다시 붙이기 시작하긴 하였으나, 확정된 편제의 일련번호에 따른 순차적인 간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련번호가 가지는 의미는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때그때 간행되는 순서에 따라 일련번호를 매긴 결과 그것을 다 취합해보니 전체 318책이 된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본다. 이것이 오늘날 신판 한글대장경의 전체 목록이 되었다. 

이 신판 한글대장경 속에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지 않은 경들이 다수 들어가 있고, 특히 한국고승부로 분류되어 있는 한국 찬술 불서들이 한글대장경 속에 군데군데 혼재되어 있다. 이 신판 한글대장경은 구판 한글대장경과 마찬가지로 고려대장경의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았고, 일본 대정신수대장경의 분류체계를 따르면서 남전부와 한국 찬술부를 끼워 넣은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신판 한글대장경의 부별 명칭은 다음과 같다. 아함부, 본연부, 반야부, 법화부, 화엄부, 보적부, 열반부, 대집부, 경집부, 밀교부, 율부, 석경론부, 비담부, 중관부, 유가부, 논집부, 경소부, 율소부, 제종부, 사전부, 사휘부, 목록부, 남전부, 한국찬술부 등 총 24부로 구성되어 있다.

3) 신편제(新編制) 한글대장경(2001~  )의 간행

기존의 신판 한글대장경은 먼저 편제를 확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한 한 질로서 편제를 갖춘 대장경이 될 수 없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뒤섞인 형태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새로운 편제에 의한 한글대장경의 간행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그러나 그 요구를 언제쯤 충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편제에 의한 전자책(電子冊, e-book) 한글대장경 구축은 물론 종이책 한글대장경의 간행 사업은 동국역경원이나 조계종, 나아가 전 불교계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요불가결한 과제다. 이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들인 공력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종이책이 지니는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생각할 때도 그러하다. 또한 기존 한글대장경을 구입한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도 물론이거니와 한글대장경을 통해 한국의 불교문화를 외국에 널리 알린다는 차원에서라도 새로운 편제의 한글대장경 간행은 필수적인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입장에서 새로운 편제의 한글대장경을 어떻게 간행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이 분명하기에 우선적으로 새로운 편제를 정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새로운 편제의 한글대장경을 간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한글대장경이 지니고 있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편제의 한글대장경 체제를 결정함에서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첫째, 순수 고려대장경 속에 있는 경전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것은 당초의 취지나 정부로부터 국고를 지원받으면서 한 약속이나 명분상으로 볼 때는 그 대상을 고려대장경으로 한정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렇게 해버리면 고려대장경이 재조(再雕)된 것이 750여 년 전의 일이고, 그 이후에 추가되거나 찬술된 문헌들은 포함시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구판 한글대장경에도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지 않은 경전들을 상당수 번역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꼭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것만을 번역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고려대장경에 한정시켜버리면 지금까지 애써 번역한 비(非)고려대장경본을 완전히 배제해야 하기에 좋은 방법은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고수해야 할 만큼 고려대장경이 완벽한 편제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굳이 그렇게 고집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 방식은 고려대장경을 번역했다는 명분에 충실한 말이 될 뿐이다.

둘째, 고려대장경에는 없지만 기왕에 한글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간행된 전적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것이 《경덕전등록》과 ‘한국고승부’ 속에 들어 있는 문헌들이다. 《전등록》의 가치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필요한 문헌이므로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고승들이 찬술한 문헌들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우리나라 고승들이 찬술한 문헌 중에서도 들어가 있는 것과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구분한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구분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고려대장경의 편찬 시기로 봐서 그 이전에 찬술된 우리나라 스님들의 문헌이 다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신라와 고려 초기에 찬술된 우리나라 스님들의 문헌 중 고려대장경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문헌이 훨씬 더 많이 있고, 그 후대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전부 빼버린다면 모를까 포함시킨다면 일정한 기준이 필요한 법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한국고승부’로 명명된 한국 찬술 불서들은 한글대장경 속에 포함시키지 말고 별도로 분리해서 간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셋째, 고려대장경과 대정신수대장경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구판 한글대장경으로 7책 분량이 되는데 대부분이 남전부 계통의 경전들이다. 빨리어로 된 니까야는 역경원이 아닌 외부 다른 기관이나 개인 차원에서 빨리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 간행하고 있기에 굳이 한글대장경 속에 넣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한글대장경은 어디까지나 한역 대장경이 주축이 되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저본으로 삼아 한글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니까야와 같이 빨리어에서 직접 번역한 경전은 한글대장경과 별도로 간행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넷째, 고려대장경에는 없지만 대정신수대장경과 만속장경 등에 들어 있는 중요 문헌들을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고려대장경에 들어 있지 않음에도 중요한 문헌이라 해서 《전등록》을 번역했다면 적어도 이에 상응하는 선종 문헌인 《벽암록(碧巖錄)》 《무문관(無門關)》 《서장(書狀)》 《선요(禪要)》 《임제록(臨濟錄)》 등도 포함시켜야 마땅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고려대장경에 포함되지 않은 중요 경률론 삼장을 포함시켜 번역 간행하려면 부지하세월일 것이다. 이는 현재 불교계가 처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제반 사항을 고려해 실현 가능하면서도 보다 나은 편제로 새로운 한글대장경을 편찬 간행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종이책 한글대장경의 간행은 전자책 한글대장경과 달리 한번 간행하고 나면 다시 간행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3. 맺는말

한글대장경 간행의 역사는 한국의 불경번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 면에서나 소요시간, 참여 인원, 소요 비용 등 모든 면을 통틀어서 볼 때 이렇게 일컬을 수 있다는 말이다. 번역의 충실도나 편제의 완결성은 차치하더라도 일단은 3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고려대장경을 완역해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한글대장경 간행을 27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중대한 일을 함에 있어 이 일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수 있는 인력과 재정과 기구의 구비 없이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일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이를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수 있는 여러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점, 특히 진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이를 수정하고 새롭게 고쳐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 외형적으로는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 3대 중점사업의 하나이자 숙원사업이라고 하면서도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지극히 미미했다는 점, 종단과 동국대의 전폭적인 지원과 완비된 시스템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동국역경원이라는 개별 기관에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다는 점 등등이 결국 한글대장경의 간행을 힘들게 만들었고 그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 요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어쨌거나 동국역경원이라는 기구가 존속하며 거칠게나마 이 일을 일단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불교계가 처한 현실에 비춰볼 때, ‘역경사업을 이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라는 비아냥 아닌 비아냥의 말을 사실로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불전 번역기관 동국역경원이 처한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상계의 일이란 시대 상황과 동시대인들의 신심과 열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과거에는 그러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경률론 삼장(三藏)을 이렇게 두서없이 대충 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된 것을 안 현시점에서는 이를 시정할 수 있는 후속적인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그러한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과연 우리 불교계가 역경사업에 대한 의지와 관심과 열정이 있느냐고 진심으로 묻고 싶은 심정이다. 제대로 된 한글대장경을 간행하고자 하는 신심과 원력이 있다면 잘못된 줄 뻔히 알면서 고치지도 못한 채 그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국역경원이 처한 현실과 한국불교계가 지금까지 보여준 신행 풍토로 봤을 때는 이대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적인 마음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말과 글의 소중함을 모른다면 말과 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다. 그 피해자는 한국불교인 전체가 될 것이고, 불교가 이 땅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큰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1,700여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교가 제 나라 말로 제대로 된 편제의 대장경을 가지지 못한다면 선대(先代)에 대한 참괴스러움은 그만두고라도 자라날 후손들에게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편제의 한글대장경 간행을 위한 보다 완비된 체제를 하루빨리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역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때는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당하던 한글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다시금 그 우수성이 부각되고 있고, 불교가 서구 유럽의 지성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종교가 되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 문화의 자랑인 한글로 된 부처님 말씀의 곳간인 한글대장경이 새롭게 편찬되고 아름답게 다듬어져서 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시금 살아나야 나라의 장래가 밝고 건강해진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가꿀 때 남도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한국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선양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길이 한글대장경 속에 있음을 깨달을 때 한국불교인들 스스로 자기 가치를 높이는 길이 열릴 것이다. ■

 

박종린 / 전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 현재 불교계 유일의 ‘니르바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후원회장이며 ‘부처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불력회)’ 대표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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