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종합상황실에서 긴급신고를 받는 경찰관은 하루 평균 약 200여 통의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고자들의 비명과 분노의 소리를 들으며 근무를 한다. 그러면서 신고자의 급한 호흡, 긴 호흡 등 여러 가지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나는 매 순간 긴급 신고에 대비해서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내 호흡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간혹 신고자들은 긴급 상황이 아닌데도 전화를 하여 근무자들을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경찰 민원과 관계없는 개인 상담, 만취 전화, 흥분 상태에서의 욕설, 무목적 횡설수설 등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112에 전화를 해서 해소하려고 하는 것들이다. 점차 각박해지고 힘든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분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112는 국민의 생명과 안녕에 직결되는 1차 소통기관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관들이 비신고 전화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때,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경기도는 2012년 오원춘 사건과 2014년 검은 봉지 사체 토막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명 구조를 놓쳐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요컨대 2012년 수원시 오원춘 사건은 1차적으로 접수 경찰관이 피해여성의 신고 장소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는 비판의 여론이 높았다. 피해 장소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못 내린 지령 탓에, 출동한 경찰들은 사건 장소에서 떨어진 주변을 수색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피해 여성은 오원춘에게 살해당하여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경찰은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무자들이 마음의 상태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좀 더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구조는 관계와 조직의 문제이지만 정신은 근무자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경찰관의 정신 상태는 민원인과 직결되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업무는 민원인과 경찰,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므로 경찰관은 순발력과 판단력으로 사건 상황을 압도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나는 우리 같은 근무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행을 하듯 ‘알아차림’ 상태에서 신고를 접수받을 때, 조금 더 실수를 줄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수행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일할 때는 좌선을 하는 것처럼 호흡이나 마음을 몸의 일부분에 머물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이란 마음을 관찰하다가 잡념이 생기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차리고 호흡이 아닌 현장에 마음을 두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선 각성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변화하는 마음과 호흡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깨어 있어야 한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의 일부분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은 수행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다. 수행은 반드시 어떤 형식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현재에 마음을 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후회와 반성, 즐겁고 괴로운 느낌, 좋아하고 미워하는 생각, 마음속에 희로애락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차린다. 이를테면 근무를 하다가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마음!’ 불필요한 욕망이 생기면 ‘욕망!’이라고 알아차리고 다음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판단을 멈추고 현재 하는 일로 빠르게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일을 할 때 현재 하는 업무에 마음을 두고 집중하면 저절로 알아차림이 이어져서 고요해진다. 결국 각성이 세밀해지게 되면 잡념이 생기기 직전에 원인도 알게 되고 반응을 하는 나 자신의 상태도 알게 되어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일을 하면 번뇌가 없는 선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높아지고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일찍이 존자가 말했듯이 어디에서나 자기가 맡은 업무에 한눈팔지 않고 충실하다는 것은 이미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하는 ‘명상가’라는 점이다.

이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말하려는 의도와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의 의도를 면밀하게 관찰하면 상대방의 반응 또한 이해하기 쉽다. 나와 남을 하나로 성찰하게 됨으로써 주관적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다.

2015년을 꽃피울 봄이 찾아오고 있다. 이번 봄은 112 종합상황실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계절이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화사한 봄날처럼 올 한 해는 국민 모두 아픔을 딛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주말에는 겨우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그동안 찾아가지 못했던 집 근처 ‘죽림정사’를 들러서 마음수련을 해야 하겠다. 그리고 오랜만에 뵙는 주지 스님에게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쭙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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