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정월 초하루 날이면 눈부신 동자 하나 만나러 이른 새벽 눈 덮인 동네 뒷산을 오르셨다. 겹겹이 쌓인 산을 타고 오르는 어린 동자 앞에 온몸을 다 해 한없이 빌었다. 어머니에겐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나 큰 산으로 간다’는 화려한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정월 초하루 날에는 산에서 새로운 해가 뜬다고만 믿었다. 그리고 하산하여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삼십 리 길 걸어서 부처님을 찾아갔다.

서른 살에 남편을 여의고 4남매의 가장이 된 어머니는 보리죽인지, 물죽인지 분간이 안 되는 죽을 먹고 사는, 참으로 처절한 삶 속에서도 일 년을 하루같이 한 숟가락씩 떠서 모아놓은 보리쌀 포대를 머리에 이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눈 덮인 산길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찾아갔다. 두 손 모아 108배를 올렸다고 했다. 나는 그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108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우리의 삶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즉 삼업(三業)에 의해 과거는 현재에 닿아 현재를 결정하게 되고 현재는 미래에 닿아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진행되며 책임과 의무는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가 오늘 밥이라도 먹고 사는 것도, 아이들이 잘 자라서 제 길을 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 어머니가 빌어준 덕분이라 하겠다.
어린 날 어머니는 나를 ‘허풍’이라고 불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가 아프도록 들려주었는데도 매사에 현실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마치 바다를 지나가는 배가 바다에 그려놓은 물거품 같은 흔적들은 허풍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런 연줄도 자원도 없이 두 다리 덕분에 살던 가난에 얼어터진 고향을 가출하여 서울에 온 것도, 서울에서 중소기업가가 된 것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것도, 내 삶은 온통 허풍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허풍으로 출가한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러나 그 허풍은 도전 정신으로 승화되었고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내 야심의 뗏목이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허풍이라고 불렀지만, 어머니의 말씀 즉 부처님의 말씀은 늘 나의 중심에 있었다. 연줄도 없고 자원도 없는 막막한 가시밭길에서 절제를 바탕으로 봉사하고 마음을 비웠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 봉사하고, 공손한 언어로 봉사하고, 남을 위하고 기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움과 봉사와 베풂의 정신만이 내가 살아가는 길이었고 그것은 별 재주 없는 나에게 반듯한 길을 열어주었다.

어머니 무덤, 누렇게 내려앉은 잔디 위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야! 허풍아 밥이라도 먹고 사니?’ 지금도 어머니는 걱정하고 계신다. 그리고 덧붙인다. ‘공(空)과 불이(不二)를 아는 것은 중도를 아는 이치’란 말씀을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라고 하신다. 지금 어머니와 세상과 또 다른 세상으로 헤어져 살아가지만 어머니는 나의 곁에서 항상 강인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해 벽두,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고속버스는 5시간의 긴 시간을 지칠 줄 모르고 달렸다. 남해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20분, 주차장에서 또 20분 걸어 올라갔다. 기암절벽과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 엉겨 붙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사는 작은 생명들과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누구인가? 소나무인가 아니면 바위인가? 소나무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바위일 수도 있다. 현실의 생활에 매달려 산다는 것, 바위와 소나무 관계처럼 서로 뿌리를 박고 공생하는 것은 아닌지에 생각이 닿는다.
‘관음기도 도량’으로 이름이 알려진 보리암을 홀로 찾은 것은 누가 떠밀어서 온 것이 아니다. 현실의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한 것도 아니다. 고희가 넘어서 미래의 삶에 새롭게 도전하는 일은 참으로 모험이고 무모한 일이고 이것 또한 허풍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지금 나에겐 세속화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세의 확립만이 가장 중요한 때이다. 나는 처절하게 가난을 겪은 사람이고 현실의 이재에 너무 밝은 사람이다. 돈을 벌기 위해 33년간 중소기업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러면 이제는 쉬어야 할 때이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실을 알차게 관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진짜 산다는 것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인수봉의 아스라한 절벽을 밧줄을 감고 오르는 사람들을 본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수봉은 말한다. ‘아스라한 절벽도 산봉우리도 오르는 자의 것이고 꿈도 꾸는 자의 것’이라고. 그 장엄한 광경은 장엄한 깨달음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깨달음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소중한 눈을, 세상의 말들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귀를 선물한다. 어찌 보면 ‘이젠 됐어’라는 말은 나의 사전에는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보리암에서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108배를 올렸다. 어린 날 먹지 못한 설움에 식탐이 생겨 33년 동안 원 없이 먹었다. 그래서 많이 뚱뚱하고 배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세월 부처님께 절을 올렸지만 다섯 번 이상 올린 적이 없고 올릴 수도 없었다. 고희가 넘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오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직도 쓰임이 있고 굳건히 존재하는 존재감으로서 기쁨이 있다. 지독한 마음으로 108배를 올리기로 다짐했다. 뚱뚱보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고 세 시간이나 걸렸다. 어머니가 실천하신 것에 비하면 참으로 부끄럽지만, 어머니의 말씀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많은 사람이 쌓아올린 돌탑에 나도 허리를 펴고 개성 있는 돌 하나 얹어 본다. 남해의 세찬 바람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하나를 얹어 놓고 독경소리에 귀 기울이며 돌아갈 길을 찾는다. 쉬지 않고 돌아야 하는 슬픈 UFO를 다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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