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나의 우둔함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십여 년 전 뜨거운 한여름에 혼자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경주 남산도 혼자 올랐고 여행지에서의 고적한 밤과 새벽도 온통 내 차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여행이었다. 왜냐하면, 경주 남산 여행은 원래 학술 모임에서 프로젝트로 잡은 일종의 답사길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숙소 예약을 맡았던 나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숙소를 취소하면 되었지만, 참석 인원 변동으로 이미 수차례 방을 교체한 탓에 콘도 예약권을 빌려준 지인에게 낯 뜨거운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만의 여행을 강행하게 된 데는 평소 고건축과 고미술품에 관심이 많던 나의 취향도 한몫 거들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고분의 능과 경주 남산 그리고 경주 남산에 산재한 부처와 관련한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내심 기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공무원 시험 준비하듯, 그렇게 경주 남산이며 일련의 유물들이 밑줄이 그어진 채 형광펜 빛을 내며 내게로 걸어 들어왔다.

여행의 시작은 즐겁고 나른하고 유쾌했다. 나른하고 유쾌한 만큼 낯설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압도할 만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고속버스 창가를 채웠다 사라지는 낯선 풍경들이 비로소 내가 여행길에 올랐음을 일깨워주곤 했다. 특히, 경주는 초입부터 기와를 올린 한옥이 듬성듬성 섞인 풍경으로 나를 압도해왔다. 불국사를 오르는 길도, 불국사의 커다란 부처도 내겐 모두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존재들이었다. 돌부처를 만지면 그 온기가 느껴졌고 능의 풀을 만지면 옛사람의 비단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능 주변을 걸으면 죽은 자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선가 비단옷을 입은 나인이 재빨리 숨는 모습도 보였다. 나직하게 달빛을 벗 삼아 시를 읊조리는 과객이 보이기도 했다. 가끔 그 멋진 것들을 함께 감탄할 동행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토함산 위의 석굴암과 불국사를 걸으면서 신라의 거석숭배 신앙과 더불어 그 커다란 돌을 끌고 높은 산에 이룬 불국토의 대업 뒤에 감춰진 민초의 땀과 눈물과 한숨 소리도 느껴졌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수학여행차 경주에 왔었지만, 종알거리는 여고생 계집애들 한 무리와 함께 시끄러운 잡담으로 산만해진 눈으로 바라본 경주와는 많이 달랐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 혼자만의 여행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경주는 내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석굴암의 거대한 불상과 돌부처의 눈빛과 절간 입구의 사천왕상의 표정 하나하나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생과 멸에 대하여 생각하기도 했다. 

경주를 느긋하게 구경하고 남산 등반 일정은 맨 마지막 날로 잡아 놓았었다. 그간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긴장감도 다소 느긋해졌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그리 걱정할 것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내 안에서 잘 익은 독 안의 술처럼 괴어올랐다. 그 안도감이 문제였을까. 남산을 오르면서 나의 안온하고 부드러운 여행은 나의 우둔함의 기록으로 전환된다. 미리 경주 남산에 관한 여행안내서와 관련 책자를 닥치는 대로 읽은 터라 무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인 7시경에 산을 올랐다. 남산 초입, 머리 없는 부처가 있는 등산로 대신 아는 이들만 택한다는 코스를 따라 올라갔다. 왜냐하면 그 길엔 이름 없는 소박한 불상을 볼 수 있어서였다. 될 수 있으면 발품을 팔아야만 볼 수 있는 숨겨진 유물도 이번 기회에 보려는 게 나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 지도를 보고 표지판을 보며 찾아간 곳에는 키가 큰 잡풀 사이에 초라한 돌부처가 금이 간 몸과 눈으로 바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처의 돌 눈에는 천 년의 바람이 다 담겨 있었다. 경주 여행을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스쳐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먼저 보내면서 느긋하게 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 가니 조그만 암자와 깨끗한 약수터도 있었다. 바람이 시원했고, 나는 약수를 달콤하게 마신 후 간단한 기도를 올리고 산 아래를 향해 내려왔다.

그러나 하산길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산에는 대개 사람들이 낸 좁은 길이 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런 좁은 산길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중 사람이 많이 다녔을 것 같은 길을 택했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느린 걸음으로도 네댓 시간이면 충분히 하산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두어 시간 째 산허리께만 빙빙 돌고 있는 형국이었다. 절벽 바로 앞에서 멈추기도 했고, 내가 지닌 생수병이 나 대신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때의 두려움은 내 온몸에 거대한 절벽이 들어찬 것 같았다.

물론 가끔 등산객을 만나기도 했다. 내가 긴장해서인지 낯선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거리를 두고 조심스레 뒤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나무 사이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팔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오랜 시간 헤맨 탓에 얼굴이며 목과 팔과 다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몸은 이미 땀범벅이 됐고 산길에서 길을 잃었다는 두려움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는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라는 동물이 우글거리는지를 깨달았다. 그 길고 좁은 경주 남산은 거대한 한 권의 미로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두려움의 미로는 결국 나의 내면 풍경이기도 했다. 나의 언덕을 지나고 돌부리와 절벽을 돌아 나를 넘어 나를 보는 하산길이기도 했다. 온갖 두려움을 넘은 끝에 산 입구에서 배리삼존석불이 소박하고 온화한 웃음으로 나를 정겹게 맞아주었다.
나는 가끔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경주 남산을 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산 중턱에서 길을 헤매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삶 역시 내 안의 경주 남산은 아닌지. 내게 밝은 심안이 없어 우둔하게 같은 길을 돌고 도는 것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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