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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님과 《반야심경》/ 김연종
[61호] 2015년 03월 01일 (일) 김연종 김연종내과의원 원장

숙모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평소에도 법복을 입으시고 연로한 나이에도 시시때때로 108배를 올린다. 염주 목걸이를 늘 목에 걸고 다니며 《반야심경》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반야심경》 독경 소리를 처음 들을 것은 어머니 사십구재에서였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삼우제에 황망히 길을 떠났다. 나는 두 분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으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들었다. 부모님을 나란히 망월동 묘역에 안장하고 숙모님이 다니던 조그만 절에 위패를 모셨다.

어머님의 기일에 맞추어 사십구재를 모시기로 한 그날, 웬만큼 시간이 흘러 슬픔의 농도가 약해졌으려니 생각했는데 감정의 정리가 쉽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여전히 내 정신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위패를 모셔 둔 사찰에서 확성기를 통해 《반야심경》이 흘러나왔다. 내용도 의미도 모르는 독경 소리에 묘하게도 마음이 끌렸고 편안해졌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 테이프를 구해 아침저녁으로 독경을 들었다. 반복하여 듣다 보니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절에 위패를 모시게 한 숙모님께 새삼 감사했다.

그때까지 나는 숙모님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온통 나를 지배했던 감정이었다. 어떤 연유로 싹텄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엔 숙모님에 대한 증오심으로 들끓었다.

나는 명절 때마다 새엄마처럼 행세하는 그녀가 싫었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싫었고 그녀가 손수 장만해 온 제수 음식이 싫었다. 어머니의 부석한 파마머리 대신 윤기 있고 찰랑거리는 그녀의 생머리가 싫었다. 명절 때마다 그녀가 사 가지고 온 설빔도 싫어했다. 그 옷은 내 또래의 사촌 형제들이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옷이었지만 내게는 겉옷처럼 헐거웠다. 나는 그 옷을 끝내 입지 않았다. 

소위 명절증후군은 젊은 주부들만 앓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 적 나도 명절증후군을 앓았다. 설날이 되면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배가 뒤틀려 더는 집 안에 머물러 있기 힘들었다. 나는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부리나케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거기에는 벌써 떡국을 먹고 설빔을 차려입은 애들이 빳빳한 세뱃돈을 만지작거리며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방금 뛰쳐나온 집안의 풍경은 명절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밭은기침을 쏟아내고 있고 어머니는 일찌감치 뒷방에 누워 있다.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다가 지친 어머니가 명절이 되면 술병으로 드러눕는 것이다. 힘들고 고단한 삶을 견디던 어머니에게 명절은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쑥대밭이 된 집을 나보다 먼저 빠져나간 형제들은 집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평소보다 오히려 더 쓸쓸한 집안은 정적에 휩싸여 있다.

그때 저만치 우렁찬 경적 소리와 함께 택시 한 대가 마을로 들어선다. 택시 안에는 건장한 체격의 숙부님과 한복을 곱게 입은 숙모님, 그리고 내 또래 사촌 형제들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힘차게 사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숙부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설빔으로 차려입은 사촌들이 내 이름을 부른다. 분명 집안에 사람이 있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는 더욱 잦아든다. 보다 못한 숙모님이 방문을 열어젖힌다. 뚜껑이 열린 채 굴러다니는 술병들, 생기를 잃고 구석에 처박힌 과일들, 여기저기 널브러진 초라한 행색의 살림살이들이 무표정하게 그들을 맞이한다.

도저히 명절이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지만 숙모님은 준비해 온 음식으로 차례상을 차린다. 다른 친척들이 도착하기 전 재빠른 손놀림으로 멋지게 상을 차리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세배를 드린다. 숙모님은 내 손에 세뱃돈을 쥐여준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그 돈을 드린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조카들에게 다시 세뱃돈을 나누어 준다.

그 당시 세뱃돈은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숙모님에 대한 증오심만 키웠다. 나는 그녀가 불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처님을 싫어했다. 그녀가 찬송가를 부르며 성경책을 들여다보았더라면 예수님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나는 사십구재에서 처음으로 숙모님의 눈물을 보았다. 단정하고 꼿꼿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늙고 초라한 보살 한 분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연신 108배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부여잡고 조용히 통곡하고 있었다. 춘삼월 지나 오월에 접어든 절의 풍광 속으로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젖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숙모님께 다가갔다. 그동안 나는 왜 한 번도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지난날 어머니를 대신한 손이었지만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손이었다. 무엇인가 사죄의, 그리고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었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이제 숙모님은 기억 대부분을 잃고 요양원에 계신다. 그토록 잘 보살펴주려 했던 이 못난 조카의 모습은 이미 잊으셨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숙모님을 잊고 사는 것처럼.

숙모님은 요양원에서도 《반야심경》을 암송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어서 온갖 괴로움을 없앤다는 《반야심경》을 기억의 끝에서 붙잡고 계시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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