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불교의 국제구호 활동

1. 들어가는 말

한국의 개신교회는 구한말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의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의료선교와 교육선교 그리고 장애인들을 돕는 특수한 사회봉사적인 선교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봉사적인 선교인 섬김의 사역을 통하여 기독교의 사랑이 실천되었고 이는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상황을 호전시켜서 복음도 전할 수 있게 되고 교회도 설립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봉사와 사회복지적 사역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한국인 목회자들은 주로 교회 설립과 복음 전도 등에 전력했다. 개신교회의 선교 초기 역할은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고 교인을 만들어 양육하는 일뿐만 아니라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며,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삶과 미신과 비위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경건하고 절제하는 생활습성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을 멀리하게 하며 계몽적이며 사회개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선도적 가치관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하였다. 기독교 신앙에는 애국애족의 사상이 들어 있어서 비록 일제 치하였지만 1919년의 3·1 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 국채보상운동, 농촌운동, 절제운동 등이 이어지면서 나라 사랑, 민족 사랑을 항상 강조하며 실천하려고 힘썼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선교 1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의 개신교회의 모습은 여러 교단으로 분열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해외선교에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도 이들의 선교사역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차원의 사회복지와 기독교 문화와 사회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는 교회가 되었다. 근자에는 교회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양한 차원의 반성적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회봉사에 더욱 힘쓰고 있다. 나아가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자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상황으로 인식하여,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목회자 윤리지침서까지도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세계로부터 원조를 통하여 구호품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며 생존을 유지하는 일에 한국교회는 구호품을 받아서 나누어 주는 일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저개발국가의 사회발전을 위한 지원과 재해구호에 힘쓰는 교회로 발전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면서 세계 10대 무역국에 들 정도로 경제가 발전했는데 이에 따라서 세계로부터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어려운 세계의 빈곤 국가들을 돕고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다양한 재난재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신속하게 대응하여 긴급재해구호를 실시하며 중장기 복구사업에 이르기까지 힘쓰는 사례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개신교회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도 영혼구원과 사회구원 모두를 다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책임적이며, 사회참여적이며, 사회봉사적인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려고 힘쓰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이상 예장) 통합 측 총회를 중심으로 해외 재해구호 사업을 소개하며, 교회들의 연합된 사업을 또한 소개하고자 한다. 지면상 개신교회에 속한 NGO 단체들의 사업과 활동은 생략한다.

인도네시아 머라이화산 폭발 이재민 구호사업(2010).

2. 사회봉사에 관한 신학적 근거와 배경

개신교회 사회봉사에 관해 구약성서에서는 정의, 평화, 사랑, 자비, 은혜, 긍휼 등의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히브리어의 체다카, 헤세드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레위기》 19:18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율법서와 예언서 여러 곳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히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불의한 행위를 고발하고 비판하며 정의를 회복시키는 일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며 빚을 탕감시켜주며,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일을 중심적인 개념으로 봉사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부부로 만드실 때에 이들은 최초의 이웃관계로서 한 몸의 관계로 이웃이며 상대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돌보며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셨다. 그래서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로다”라는 사랑의 고백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인간사랑, 이웃사랑, 섬김의 정신은 휴머니즘적인 차원을 넘어서 어떠한 어려운 조건과 형편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과 자세가 요구된다. 

구약성서의 모범적이며 봉사적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은 자녀들과 수많은 재산을 잃게 되고 몸에 병도 얻어서 힘들과 괴로운 처지에서 죽지 못해 살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다시금 처음보다도 더 풍성한 축복을 받았던 고대의 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욥기서》 31:16-2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 본 체했다면,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만일 나를 도와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내 팔이 어깨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신약성서에서는 사회봉사와 연관한 중요한 세 가지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라는 단어이다. 이는 봉사 혹은 섬김, 때로는 직분을 의미하는 명사형의 단어이다. 둘째는 ‘섬기다’라는 동사형의 단어 디아코네인(διακονέιν) 그리고 셋째는 ‘섬기는 자’라는 명사형 단어 디아코노스(διακόνος)가 있다. 동사형 디아코네인은 여러 의미 중에서 대표적인 뜻이 ‘식탁에서 시중을 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을 본으로 보였고, 섬김에 대하여 강조하며 가르치셨으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고, 배고픈 자들을 오병이어의 기적적 사건으로 배불리 먹이기도 하셨다. 장애인들을 비롯한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죄인으로 여겨진 창녀와 세리 등의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늘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그들을 목자 잃은 양 떼들과 같이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셨다. 즉 그의 생애 전체가 섬김의 종으로서 사신 삶이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6-28)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강도 만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에게 물을 먹이고 다친 곳을 응급처치로 싸매어주고 여관 주인에게 맡겨서 안전하게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도록 조치한 비유를 들어서, 강도를 만나서 재산을 빼앗기고 매 맞아 죽어가던 사람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서 필요한 도움을 주어 그의 생명을 살리도록 하였다. 응급구호 이후에도 확실하게 생명을 보존하고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이차적인 구호까지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비유를 통하여 가르쳐주신 것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러한 삶은 어떤 특별한 경우나 특정한 사람들만이 할 일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의무임을 《마태복음》의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날의 비유를 통해서도 잘 가르쳐주셨다. 즉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사람,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마실 것, 먹을 것을 주며, 옷을 입히고, 병든 자를 돌아보며, 옥에 갇힌 자를 찾아서 돌보며,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이 곧 예수님에게 접대를 한 것으로 여기며, 그들에게 사랑으로 섬기지 않은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유일한 근거로서 섬기는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를 심판하여 의인과 불의한 사람으로 구별한다는 무서운 말씀이며 예외가 없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근거가 됨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과제와 책임은 예배, 친교, 봉사, 교육, 선교 등으로 구분되며 발전해 왔다. 즉 섬김 사역 사회봉사는 어떤 단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상의 어떠한 교회라고 공히 감당해야 할 본질적인 책임이요 사명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는 대부분의 교회가 보수적인 차원에서 복음 증거와 교회 설립 등에 주력하였고 사회책임적이며 사회참여적이며 사회봉사적인 실천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선교사들의 한국교회 지도에서 적극적으로 사회봉사를 가르치지 않았던 문제, 종말론을 강조했던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의 경향, 선교 중심에 힘썼던 보수적 복음주의의 영향 등이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목회자를 양육하는 신학 교육과정에 사회봉사를 강조하는 커리큘럼이 부족하고 앞으로 필수과목으로 자리 잡아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기독교의 정신이고 가치관인데, 한국교회는 다분히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전력투구하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은 이 두 가지의 계명과 핵심가치가 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디아코니아 신학적 해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정신이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잘 이해되도록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일반화된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더한층 사회봉사와 사회복지에 크게 힘쓰게 될 것이다. 기독교 사회복지가 크게 발전한 독일의 개신교회는 사회봉사에 관련한 재정이 기독교인들의 종교세를 통해서 의무화되고 직장을 통해서 원천징수하는 제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기구화된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지고 있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크게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해외재해구호사업에 대한 고찰과 현황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의 해외구호사업을 중심으로

필자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1907년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독노회가 결성된 이후, 1912년 9월 1일에 드디어 총회가 창립되었다. 그런데 장로교의 총회가 창립되기도 훨씬 이전인 1890년대, 한국교회는 너무나도 어린아이와 같은 시절이었고, 교회의 조직도 연합회도 신학교도 없이 초기 선교사들의 지도에 의하여 갓 신앙을 얻어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영접하며 전도에 힘쓰는 일에 전념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인도에 수해가 났다는 보도에 얼마 되지 않는 한국의 개신교회의 성도들은 뜨거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헌금하였으며 1백 달러 미만의 모금액을 인도의 수해로 인한 수재민 구호를 위하여 전달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국 교회 최초의 해외재해구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기록되는 모든 통계는 매년 개최되는 총회에 보고된 공식적인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통계를 근거로 하고 있다. 총회의 창립 이후 해외재해구호에 관한 첫 보고는 1931년 제20회 총회 보고서에 나타나는데 중국의 수재로 인한 대참사의 수재민들과 만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돕기 위하여 전국교회가 특별헌금을 하기로 가결하였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기록은 1939년에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의 선양(옛 이름 봉천)을 중심으로 한 봉천노회로부터 수해로 인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청원에 총회가 구제비를 위한 헌금을 할 것을 결의한 내용이다. 특이한 역사로 볼 수 있는 것은 1948년 중국의 만주지역에서 목회하던 목회자들이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서 남한으로 피난을 오게 된 피난민 목회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구제부에 맡겨서 헌금을 하고 돌보도록 한 내용이 있다. 구제의 대상은 한국 목회자들이지만 해외 지역에 있던 동포 목회자들의 피난생활을 돕고 새로운 정착을 돕는 구제활동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일제 강점 치하에서는 교회의 유지 자체가 어려웠고 박해를 받으며 고난을 받던 시기였으며 경제적으로도 일제에 수탈을 당한 때여서 목회자들의 생활도 어려웠다. 따라서 교회의 형편은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신앙의 열정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고난을 받으며 순교를 하기도 하였고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제에 항거하며 학교가 폐쇄당하는 역사도 있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을 온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구제를 위하여 세계교회로부터 많은 구제품을 받아 나누어주는 구제활동을 하였다. 특별히 기독교 세계봉사회를 통하여 의류와 식량과 각종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받아 나누어주는 활동을 개시하였다.

총회의 구제사업은 주로 구제부를 통하여 해오다가 1961년에 와서는 사회부가 설치되었는데 총회의 사무국에 상주하는 직원이 있는 부서가 아니고 총대들로 구성된 사회부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본격적인 사회봉사의 사역을 감당하는 상임부서로서 총무가 있고 직원이 있는 신설사업부서로 된 것은 1978년이었다. 이는 산업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하여 응답하며 사회선교에 눈을 뜨고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가진 본격적인 섬김의 사역 즉 디아코니아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선진 기독교 국가인 독일교회의 디아코니아 기금이 지원되기 시작하면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선교 훈련프로그램이 1980년부터 시작될 수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통하여 목회자들이 사회적 책임과 사회 참여적이며 사회봉사적인 신앙의 정체성 확립과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1970~80년대에 이르러 급격한 교회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경제발전과 함께 교회도 같이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너무나 지나치게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는 비판과 반성도 뒤따르고 있으며 성숙에 대한 자성과 노력의 필요성도 함께 대두되고 있는 문제이다.

본격적인 해외 재해구호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83년의 레바논 난민을 위한 구호금 1천 달러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다양한 재해구호에 힘쓰게 된 것은 1988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1980년대 초부터 한국교회가 경제적으로 조금 안정되면서 큰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경쟁적으로 해외선교에 힘쓰게 된 영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밀림의 훼손과 난개발로 인한 자연의 황폐화 현상이 오존층의 파괴로 이어지고 기후 이상으로 인한 엘리뇨, 라니뇨 등의 현상으로 지구촌에는 폭설과 홍수 태풍 지진 화산폭발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종 분규와 내전 등이 자주 발생하였고, 종교 간, 인종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살인, 학살, 방화 등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파괴하는 등의 참사들이 발생하게 되는 현상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티 지진 재해지역의 고아원 학교 건립 사업(2010).

이러한 현상으로 인한 각종 다양한 재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게 되었고, 경제적 성장과 세계선교에 힘쓰게 된 한국교회는 파송 선교사들과 긴밀한 정보의 교류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재해구호에 힘쓰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순수한 사회봉사(디아코니아)에 대한 의식과 신학적 훈련이 부족했던 때였기 때문에 선교에서 더 효과적이고 유익한 결과를 기대하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순수한 신앙적 열정과 복음의 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과 의지를 강하게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8년부터 지속적이며 빈번하게 발생한 해외재해에 대하여 총회가 어떻게 구호사업을 실시해왔는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988년 제73회 총회는 총회재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재해가 발생할 경우 구호헌금을 언론사가 아닌 총회에 직접 보내달라는 결의를 하였고 재해구호헌금을 받는 계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이해에 구소련 아르메니아공화국 난민구호금 4백여만 원을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서 전달했고, 1989년에는 월남 난민 구호에 197만 원, 필리핀구호에 1만 달러, 이란에 5천 달러를 지원하였다. 1990년에는 이란지진 이재민구호에 8,100달러, 필리핀 지진이재민 구호에 1만 7백 달러, 방글라데시 난민구호금 3천 달러, 쿠르드 난민구호금 2천 달러, 중국동포 특별구호에 1백만 8백원을 지원했다. 1991년에는 미주지역(LA) 폭동으로 피해를 본 재미동포 구호를 위해서 2억 3,150만 원가량을 모금해서 LA 재해구호비로 6만 6천 달러를 지원했다. 1992년에는 소말리아 등 해외 재해구호를 위해서 398개 교회가 나서서 1억 3,807만 원을 모금했고, LA 폭동 2차 구호금으로 6,316만 원을 전달했다. 소말리아 1차 긴급구호금으로 2천만 원을 지원했다. 1993년에는 소말리아 의료봉사 및 구호를 위해서 사회봉사주일에 240개 교회가 헌금하여 7,271만 원을 모금했다. 총회사회부는 이때부터 전국 교회가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이라는 캠페인을 실시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운동으로 다양한 국내외적인 사랑의 실천을 위한 구호활동이 전개되었음을 볼 수 있다. 재해가 발생할 경우 긴급재해구호에 힘썼을 뿐 아니라 향후 재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트라우마 치유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뒷받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첫 사례가 1993년 LA 폭동으로 인한 재미교포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도움을 주기 위하여 샬롬(shalom)프로젝트를 실시한 것이다.

1994년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종족 간(후투족과 투치족)의 분규로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후투족 주도의 정부가 투치족을 집단으로 대량 학살하는 사건으로 5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의 사람들이 비참하게 학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총회사회봉사부는 르완다 난민 긴급구호를 위해서 1억 845만 원을 지원했고, 일본 지진으로 인한 재해구호에 57,173,990원을 지원했으며, 아프리카 르완다장로교신학대학교 급식소 구호를 위해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을 통해서 5만 달러를 지원했다. 르완다를 위해서 총회는 총 16만 달러를 아프리카 선교사의 개척자와 같은 임종표 선교사의 한아구제개발선교회를 통해서 지원했다. 소말리아를 위해서도 한아개발선교회를 통해서 구호금 5만 달러와 구호품으로 2만 달러어치의 식량과 생필품, 교육사업, 지하수 개발, 의료지원, 간이진료소 설치, 장애인센터와 장애인재활사업, 난민촌 방문 등의 사업을 실시하였다. 러시아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급식소 구호를 위해서 250만 원을 지원했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예수그리스도교 총회본부 재해구호비지원으로 250만 원을 지원했다. 이해에 르완다 구호금 총액은 348,438,425원 그리고 소말리아 구호금 총액은 2,349,030원이었다. 일본의 지진 재해구호를 위한 헌금은 73,350,880원이었다. 여러 건의 해외 재해사건이 발생한 이해에는 또한 국내적으로도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로 인한 사고가 나서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을 위한 모금과 함께 전국 교회가 재해구호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많은 헌금을 헌신적으로 해주었다.

1995년에 들어와 북한에 수해가 발생하여 수해구호를 위해 7,792만 4천 원을 모금하였고, 북한 귀순동포 위로회와 북한 식량지원과 구호사업에 힘썼다. 1996년에는 북한 식량구호를 위해 옥수수 1만 톤을 구입하여 지원하느라 계약을 맺고 1차분 2천 톤을 보내는 데 572,269,029원을 지원했다. 이해에 북한동포돕기 헌금에 동참한 교회는 1,483개 교회이며 헌금 총액은 1,624,685,735원이었다. 그다음 해인 1997년에 들어와 북한돕기 구호금으로 904,010,377원을 지불하였고, 세계선교협의회(CWM)에 북한동포돕기 사업을 위해서 25,000파운드를 요청하였다. 북한동포돕기 헌금에 동참한 교회는 508개 교회이며 389,486,114원을 모금했다. 1998년에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7천 달러를 지원했고, 방글라데시의 수해지원금 3천 달러, 온두라스,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재해구호금 2만 달러, 르완다 난민구호금 5천 달러, 인도네시아 종교 갈등 긴급지원금 3천 달러, 코소보 난민구호금 1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1999년에는 대북식량구호금으로 밀가루 1,200톤을 보내는 데 1억 2천만 원, 중국 왕청 평안의집 지원금으로 480만 원, 조선족 선교센터 선교비 지원금으로 6백만 원을 지원했다. 또 대만 지진구호금 3만5천 달러, 터키 지진피해 구호금 3만 달러, 인도 오리자 지방 태풍 재해구호비 5천 달러, 남동부 아프리카 지역 교회방문 지원금 3백만 원 등을 지원했는데, 터키 및 대만 지진구호 헌금 총액은 86,194,943원이었다. 여기에 해외 기아난민 구호헌금으로 991,070원을 모금했다.

2000년에 들어와서 85회기 총회에서는 북한동포 겨울옷 보내기 사업이 전개되면서 총 129,404,717원과 북한 식량지원 1만 달러, 중국 왕청 평안의 집 매달 선교비 40만 원과 연변지역 평화의 집 지원 매달 50만 원, 단동 실도교회 지원 매달 50만 원, 연변 희망복지촌 건축비 및 운영지원비 5백만 원,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돕기 3백만 원 등을 지원했다. 필리핀 쓰레기 매립장 붕괴사고로 인한 구호에 2천5백 달러, 몽골 선교지 자연재해로 인한 구호금 2천5백 달러, 인도차이나 지역(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홍콩 CCA 등) 불우이웃돕기 구호금 6천 달러, 인도지진 재해구호금 3만 5천 달러,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정착촌 발전기 지원금 5백만 원, 엘살바도르 지진구호금 5천 달러 등도 지원했다.
2001년에는 미국 테러참사사건 구호금으로 3만 달러를 지원하고 기독교사회봉사회를 통해서도 1백만 원을 지원하였다. 아프간 난민을 돕기 위해 1만 8천달러를 지원하였고, 2002년에는 이라크 구호금 50,048,624원과 동티모르와 아프가니스탄 구호를 위해서 31,100,366원을 모금했다. 2003년에는 북한의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구호금 64,770,304원을 지원했고, 이라크 구호금으로 1천만 원, 조선족 동포돕기에 1천5백만 원을 지원했다. 2004년에는 스리랑카, 콜롬보, 인도네시아 아체, 메단과 태국 팡아 지역 등 재해에 대해서 세계선교부와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를 통하여 각각 1만 달러씩 지원했고 ACT를 통해서도 1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태국 12만 불, 인도네시아 20만 6천 달러, 스리랑카에 대구사회선교협의회를 통하여 3만 달러를 지원했고 필리핀 태풍재해구호에 1만 달러, 쿠바 태풍피해구호금으로 5천 달러를 지원하였다. 특별히 북한구호에 힘썼던 해였는데 밀가루 780톤 246,958,140원을 지원하고, 못자리용 비닐방막 지원으로 180,919,200원을, 남선교회 전국연합회를 통해서 북한에 성경 보내기 사업에 1백만 원을 지원했다. 평양의 제1, 2온실 추가지원비 25,000,000원을 지원했고,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통해서 밀가루 600톤 1억 5천8백만 원을 지원했다. 사회봉사사업을 위해서도 3천 달러를 지원했다.

2005년에는 인도네시아 재해구호 2차 지원금으로 1억 295만 원, 스리랑카 생계기반 지원 2차분으로 22,649,000원, 미국 카트리나 재해구호금으로 87,724,074원, 파키스탄 지진구호금으로 7천만 원, 필리핀 레이테주 산사태 구호금으로 6천만 원, 인도네시아 지진구호비로 5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북한에는 나선시 보육원 설립 협력사업비로 10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대북지원 민관정책협의회와 합동사업비로 3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2006년에는 필리핀 레이테주 산사태 구호금으로 1억원, 필리핀 태풍구호금으로 1천만 원, 파키스탄 지진구호 2차 지원금으로 7천만 원, 태국 팡아 지역 고아원 건축비 지원금 97,965,000원, 인도네시아 사회교육센터 건립지원금으로 5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이 같은 지원으로 태국의 팡아 지역 고아원 준공식과, 필리핀 레이테주 사랑의 집짓기 준공식이 이루어졌다.

2007년에는 페루 지진구호를 위해서 1천만 원, 도미니카 허리케인 피해구호를 위해서 1천만 원, 방글라데시 사이클론 피해구호를 위해서 3,500만 원, 케냐 인종분규 사태로 인한 난민돕기에 1,934만 원, 중국 동남부 지역 폭설 피해구호금으로 19,907,960원, 미얀마 사이클론 긴급구호금으로 1억 원을 지원하고 어린이학사관 구입비 1억 원과 대나무 집짓기 사업에 2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특별히 미얀마는 당시 군부독재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은행을 통한 송금이 어려웠고, 부당하게 떼이는 경우가 많아서 위험하였기 때문에, 아시아교회협의회를 통한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라운드테이블이 마련되어 태국에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였다. 결국 임원들이 직접 가지고 들어가 전달하였고, 양곤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시골 지역까지 직접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 내륙 깊숙한 지역까지 들어가서 카렌족 교회들의 피해 상황과 지원 현황을 모니터링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 쓰촨 성에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는데 긴급구호비로 6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한국교회봉사단을 통해 중국지진재해구호금 4억 5천만 원을 지원했고, 세계선교협의회(CWM)을 통해 미얀마장로교회(PCM)에 1천만 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통해 미얀마교회협의회에 6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북한 수해구호금으로 5천만 원, 밀가루 지원금으로 5천만 원, 북한 긴급식량구호금으로 1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2008년 93회기 총회에서는 중국 쓰촨 성 지진구호가 계속되면서 2천만 원을, 미얀마 사이클론 나르기스 재해구호 추가지원금 1천만 원, 태국 팡아 지역 사회봉사관 건립 및 운영비 지원금으로 4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2009년 제94회기 총회에서는 필리핀 태풍 캣사나 구호지원금으로 5천만 원, 인도네시아 지진구호금 6천만 원, 대만 지진재해구호금으로 1만 달러, 사모아 지진구호금으로 5천 달러를 지원하였다.
2010년도에 들어와 1월에 아이티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인구 950만 명 중 이재민 350만 명이 발생하였고 23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건물 150만 채가 무너졌다. 근래 최대 규모의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전국 교회가 모금에 참여하여 모두 36억 4천4백만 원을 2년에 걸쳐서 모금하였다. 예장총회는 전과 달리 아이티재해구호전문위원회를 조직하였고, 한국교회 아이티 재해구호를 위한 에큐메니칼 연합기구로서 ‘한국교회아이티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국내의 여러 교단과 국제적인 재해구호 전문단체인 NGO 단체들이 함께 모여서 연합조직을 갖추고 대책을 숙의하며 통계를 공유하는 등, 서로 힘을 모아 국제적인 재해구호사업을 함께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장총회 사회봉사부는 아이티 지진 재해구호를 위하여 1차 긴급구호에 3만 달러, 2차 긴급구호에 3만 달러, 3차 긴급구호에 5만 달러, 4차에 5만 달러, 5차에 2만5천 달러, 한국교회봉사단에 8백만 원을 지원했다. 또 중장기 지원을 위한 연구보고서 및 홈페이지 구축 등에 1천8백만 원을 지원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3천만 원, 해비타트를 통한 임시가옥 집짓기에 10만 달러,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클레어어 성경책 지원 5만 달러, 월드비전의 난민촌 위생수보급 및 위생화장실 사업에 10만 달러를 지원했다. 기아 대책의 일환으로 이동도서관 사업에 10만 달러, 굿피플을 통한 고아원과 학교건축 사업에 20만 달러, 컴패션을 통한 어린이 양육사업(양양공급)에 10만 달러, 군 농어촌 선교부를 통해 농업지원 및 개발사업에 10만 달러, 유엔평화유지군 단비부대 위문에 1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이때에 칠레의 지진재해도 잇따라 발생하여 1차에 5만 달러, 2차에 3만 달러 그리고 3차에 3만 달러를 지원하여 겨울철 쓰나미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칠레의 이재민들에게 임시가옥과 담요, 식량 등을 공급했다. 또한 중국 쓰촨 성 지진피해구호를 위한 추가 구호사업에 2천만 원, 파키스탄 홍수구호에 3만 달러, 호주연합장로교회를 통한 북한 나진·선봉 지역의 결핵 이동진료장비 구입비 5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이후 현재도 호주장로교회총회의 유나이팅 월드(Uniting World)와 멜버른 한인교회, 예장 총회는 협력해서 나진·선봉 지역의 디아코니아적 선교를 위해서 별빛재단이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함께 협력하고 있다.
2010년 제95회기 총회에서는 아이티 지진 재해구호 사업이 계속되었는데 클레어어 성경책 기증사업에 5만 달러, 교회 재건축 콜레라 퇴치 및 예방사업 등 2만 2천 달러,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시의 지진재해구호에 6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뉴질랜드 남섬인 이 도시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고 예장의 한인 선교사 4명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뉴질랜드노회 소속 피해교회 복구비를 지원하여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구호적 협력을 통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현재 예장 한경균 선교사가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로 총회를 위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도 홍수가 나서 1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인도네시아 지진구호를 위해 3만 달러, 개척자들의 자원봉사센터건축비 지원으로 1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이 회기 중 2011년 3월에는 일본 센다이시 가까운 바다 밑에서 진도 9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으로 인한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와서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것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생방송되는 생생한 모습을 온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 끔찍한 재앙이었다. 사망자 15,879명, 실종자 2,712명, 부상자 6,126명에 간접적 요인에 의한 재해 관련 사망자가 3천 명에 달했고, 3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거기에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여 방사능이 유출되는 바람에 일본열도와 전 세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원자력발전에 의존해온 여러 나라 특히 우리나라와 독일 등 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를 고쳐서 10년씩이나 연장하려고 하는 나라들은 지금까지 유심히 이를 지켜보며 그 폐해를 면밀히 참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가 그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혼슈 열도 700여Km 전체가 쓰나미의 피해를 보았고 해변으로부터 약 2~4Km가 초토화되었다. 수많은 강도 높은 여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방사능에 노출된 해수의 불법적인 방출 문제가 심각해졌고 우리나라에까지 수입되는 해산물의 방사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구호사업을 위해 예장총회는 11억 원을 모금하였고, 필자는 이해에 일본을 네 차례 방문하여 사업을 지원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10년 아이티 지진재해를 경험하면서 조직 운영되었던 연합기구를 또다시 만들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동일본 지진재해구호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조직했다. 위원장에 예장 총회사회봉사부장이었던 김점동 목사, 이승열 목사(필자)가 서기를 맡았다. 긴급재해 구호금으로 5만 달러를 지원하면서 LED 전등이 달리고 태양열을 5시간 축적하면 9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태양열 전등을 200대를 공급했는데 오랫동안 전기가 복구되지 못한 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2차 구호 시에는 선교사 14가정이 사역하고 있는 일본의 피해 지역과 가까운 가정에 방사능측정기 한 대씩을 지원해주면서 5만 달러를 지원했고, 3차에는 전동자전거 30대를 지원하면서(3백만 엔) 일본그리스도교단총회에 교회건축비로 700만 엔,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에 2천만 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3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일본그리스도교단은 이후 이렇게 지원된 재정과 자신들이 모금한 돈으로 피해 지역에 새로운 교회 예배당을 건축하여 입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장총회가 지원했던 오우교구 지역은 혼슈열도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고 위험하고 가난한 지역이어서 우정 이곳을 택하였고, 감리교는 센다이 지역 그리고 기장은 관동 지역을 맡았다. 나중에는 오우교구에 선교사 한 가정이 파송되어 특별한 관계에서 협력선교를 하게 되었다.

이 회기에는 특별히 자주 발생하는 해외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재해구호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해외재해구호 매뉴얼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매뉴얼이 개발되어 선교사들에게 보급되었고 재해 발생 시 긴급하게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시범적으로 자주 재해가 발생하는 인도네시아 선교사 회장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미화 1만 달러를 현지 선교사 회장이 보관하고 있다가 긴급한 재해 발생 시 신속하게 국내와 실무적으로 협의하여 비상비축기금으로 긴급재해구호사업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체결을 맺게 되었다. 이 조치는 1년 만에 효과를 보게 되었다. 즉 인도네시아 머라피 화산의 폭발사건과 먼타와이 군도 인근 지역의 쓰나미가 같은 날 동시에 발생하자, 두 재해에 긴급히 5천 달러씩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3만 달러를 더 지원하여 두 지역의 재해에 각 1만 달러씩 지원하고 나머지 1만 달러는 다시 비상비축기금으로 현지 선교사 회장이 보관하게 되었다. 이때 국내에는 어떠한 교단이나 다른 구호단체도 재해구호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긴급 협력체계를 수립한 덕분에 예장 측만 발 빠르게 대응하여 현지 주민들과 교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현재도 이 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 회기에 태국에도 큰 홍수가 나서 5만 달러를 지원했다. 특별히 정수시설을 장착한 차량 두 대를 지원해서 넓은 지역에 오염된 식수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도 태풍이 발생해서 1만 달러를 지원했다.

2012년 97회기에는 특별히 월드비전과 협약을 맺어 협력단체로 협력사업을 실시했다. 당시 동아프리카 즉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소말리아 등 4개국 지역이 6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사람과 가축이 목말라 고통을 겪는 사태가 발생했다. 평소에 아프리카는 멀고 가난하고 말라리아와 에이즈에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곳 그리고 독재자들이 정치하고 부패와 부정과 가난의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가 있지만 전도하고 교회 세우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디아코니아적 선교의 모델을 보여주고 조사해서 향후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도움을 주고자 월드비전과 우물 파는 사업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해가는 시범 사업을 하게 되었다. 1억 원 규모의 예산을 세워, 에티오피아 노노사업장에서 10년 동안 우물 파는 사업을 해 온 월드비전의 현장에 8천9백만 원을 지원, 깊이 70m 이하를 판 핸드펌핑 우물 5개와 학교 한 곳의 교육시설 개선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아이티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쪽 국경선 지역인 히마니에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선교센터를 건립하려고 부지 매입 계약을 했고, 교회 건축사업, 보수공사, 콜레라 치료 및 예방사업, 빈민촌 급식지원사업, 성서와 찬송가 보급사업 등을 계속했다.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지진이 발생한 중국 쓰촨성에 3만 달러의 긴급구호비만 지원해서 선교사들이 조심스럽게 어려운 분들을 구호하는 형식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2013년 11월 18일에는 필리핀에서 슈퍼 태풍 하이엔이 발생해서 레이테주를 휩쓸었다. 주수도인 타클로반(Tacloban)의 95%가 파괴되었고 주 전체의 코코넛 나무들 대부분이 쓰러져서 가난한 소작농을 하는 주민들의 생계 문제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교회는 또다시 연합재해구호기구를 결성했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교회연합(CCIK)가 연합하여 50여 개 이상의 대규모 교단과 기독교 NGO 단체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결성하여 12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마련하게 되었다.

예장에서는 9억 5천만 원을 모금하였고 8억 원짜리 재해구호 사업계획을 세워서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주요 사업은 무너진 교회보수공사, 무너진 학교 5개 세우기(전체 3,200여 개의 학교가 무너졌다.), 필리핀 UCCP 교단 소속 베다니 병원의 교회 및 감독의 행정사무실 건물건축비 지원, 무료급식 사업 등이다. 주민 생계지원 대책사업으로, 팔로(Palo) 시로부터 5헥타르(약 1만5천 평)의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한국군 종합지원단으로 간 아라우(Araw, 태양이라는 뜻) 부대(부대장 이철원 대령)의 도움을 받아서 중장비로 한 번도 농사를 짓지 않은 원시림 같은 땅을 개간했다. 그래서 필리핀 국민들이 즐겨 먹는 18가지 야채를 생산하여 소득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농민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주고, 농사훈련을 시키며, 주민 생계복지에 힘쓰는 시범농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사업의 이름은 바하이쿠보(Bahai Kubo)-김치 시범농장 프로젝트이다. 바하이쿠보는 필리핀의 전통적인 농가의 초가집을 일컫는 말이다. 두 나라를 상징하는 단어로 이름을 붙여 양국 간 협력적 재해구호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특별히 아라우 부대의 도움이 컸는데, 아라우 부대는 2014년 12월에 1년 동안 성공적인 해외재해구호사업을 마치고 철수하였다. 세계월드뱅크의 김용 총재도 이곳을 방문해서 격려해준 적이 있다. 필리핀 재해구호사업은 2014년 한 해만도 다섯 번을 방문 지도하며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3. 나가는 말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날이 갈수록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국내에서도 다양한 자연재해와 더불어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안전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국가의 재난대처 능력과 안전시스템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정부도 국가안전처를 신설하였지만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여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 노약자,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그리고 다문화 가정이나 새터민, 에이즈 환자, 독거노인 등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복지는 평상시에 예측이 가능하고 학문적으로도 많이 연구가 축적되어 상당 부분 체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복지정책에 예산에 반영되어 있어서 부분적으로 미비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재해의 발생은 예측이 어렵고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재해를 대비한 안전시스템 구축이 중요하고 긴급히 투입하여 생명을 지키고 살려내며 구호할 수 있는 구조체계와 예산이 항시 준비되어야 한다. 평상시에 재해를 대비하여 자원봉사자 훈련을 시키고, 조직을 관리하는 것과 함께, 긴급재해 구호비라도 비축해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불어 온 지구촌 세계의 사람들과 이웃이라는 의식,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도 경제발전을 이룩한 덕분에 잘살게 되었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경제의 10% 이상을 담당할 정도가 되었고 결혼 이주민들도 늘어나 외국인 130만 명 시대가 되었다. 해외의 어려운 나라들에서 각종 재해가 발생할 경우 재해구호사업은 종교적인 가치관을 떠나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함께 협력해주고 도와주어야 할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생명 살리기 운동 내지 사업이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도록 왔고, 섬기러 왔다.”고 했다. 생명 살림을 위한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지구의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생태계 환경의 보존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며 돕는 봉사가 체계화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

 

이승열 / 목사. 예장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기독교 사회봉사신학 석사, 신학박사(실천신학, 디아코니아 전공). 대치동교회 담임목사,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주요 논저로 〈한국 개신교회의 디아코니아 역사와 그 디아코니아 사역의 갱신에 대한 전망〉 등의 논문과 《빈곤복지선교론》(공저) 외. 현재 한국종교계 사회복지협의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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