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성
본지 주간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누누이 강조한다. 수없이 나오는 ‘보시공덕’은 이웃과 나누고 봉사하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부처님 자신이 어려운 이웃을 보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사실은 한두 경전만 읽어보아도 금방 확인된다. 먼저 증일아함 32권 역품(力品) 제11경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여름안거를 보낼 때의 일이다. 그해 여름 이웃 나라인 베살리에서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도 죽는 사람이 수백이 넘었다. 사람들은 얼굴과 눈이 누렇게 되어 3, 4일 만에 죽어가자 매우 두려워하며 한곳에 모여 의논했다.

“베살리는 크고 번성해서 사람도 많이 살고 물자도 풍성해서 저 제석천왕이 사는 궁전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역신(疫神)의 해침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쓸쓸하기가 산이나 들과 같다. 누가 이 재난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무렵 부처님은 왕사성에서 아자타사투 왕의 공양을 받으며 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의논 끝에 최대(最大)라는 장자를 대표로 뽑아서 부처님에게 보내 베살리로 와주실 것을 청했다. 소식을 들은 아자타사투 왕은 부처님의 여행을 반대했다. 그러자 베살리의 사자는 왕을 만나 급박한 사정을 말한 뒤 부처님을 모셔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왕은 부처님을 베살리로 보내드리는 것이 선업을 짓는 것이라는 말에 설득되어 부처님을 모셔가도 좋다고 했다. 부처님은 안거 중임에도 제자들을 데리고 베살리로 갔다. 베살리에 도착한 부처님은 성문에 이르러서 물청소를 하며 게송으로써 말씀했다.

“여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시며/ 그 가르침은 우리를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며/ 비구들은 여러 수행자 중에 가장 훌륭하시니/ 이 거룩하온 삼보에 진심으로 귀의하면/ 베살리 성에는 모든 재앙이 없어지리라.// 두 발 가진 사람도 안온을 얻고/ 네발 가진 짐승도 그러하리니/ 길을 가는 이도 행복하고/ 길을 오는 이도 또한 그러하리라./ 밤이나 낮이나 안온을 얻어/ 귀찮게 구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모든 귀신은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모든 병자들은 병이 낫게 되었다.

이 경은 상업도시 베살리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가 배경이다. 그때 부처님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베살리를 찾아가 전염병 퇴치활동을 했다. 이 이야기를 기원으로 해서 남방의 상좌부불교에서는 피릿(pirit=paritta)이라는 일종의 소재(消災)의식이 전승되고 있다. 이 얘기에서 주목할 점은 호주(護呪=피릿)를 외우면 정말로 재앙이 극복되느냐가 아니다. 부처님의 구호활동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뒷날 의식으로까지 발전했을까 하는 것이다. 당시의 베살리는 경전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는 재난지역이었다. 부처님은 아자타사투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데리고 전염병이 창궐한 곳으로 찾아가서 마을을 청소하고 병자를 치료했다. 이것이 중생을 고난에서 해탈시키고자 하는 불교의 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남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증일아함 31권 역품에 나오는 제자의 옷을 꿰매주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뒷날 천안제일로 불리는 아니룻다는 어느 날 졸다가 꾸중을 들은 일이 있었다. 이후 그는 잠도 자지 않고 수행하다가 눈병이 생겨 실명하게 되었다. 아니룻다는 옷을 기우려고 했으나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었다. 그는 ‘복을 구하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실을 꿰어 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바늘을 가져오라. 내가 꿰매 주리라. 이 세상에서 복을 얻고자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여섯 가지 일에 게을리하지 말라고 한다. 첫째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요, 둘째는 남을 가르치는 것이며, 셋째는 억울함을 참아 견딤이요, 넷째는 계를 지킴이요 다섯째는 중생을 감싸고 보호함이요, 여섯째는 가르침이요,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다.”

봉사의 삶을 강조한 경전도 있다. 잡아함 36권 997경 《공덕증장경(功德增長經)》은 불교도가 해야 할 봉사활동의 요목을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와 부처님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부처님 어떻게 해야 공덕이 밤낮으로 항상 증장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죽은 뒤에도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원컨대 저를 위해 그 방법을 일러 주십시오.”

“젊은이여. 공덕을 짓고자 한다면 동산에 과일 나무를 심으라. 그러면 나무에는 그늘이 맑고 시원한 여러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으니 훌륭한 공덕이 될 것이다. 다리를 놓거나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게 해주는 것도 훌륭한 일다. 또 배고픈 사람들은 도와주는 복덕의 집을 짓고 보시를 하거나 우물을 파서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객사를 지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쉬게 하는 일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이렇게 하면 그 공덕은 밤낮으로 자랄 것이다. 만약 그대가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법답게 정해진 계율을 지키라. 그러면 그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나게 되리라.”

이 경에서 적시한 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각종 사회복지사업에 해당된다. 배고픈 사람을 위해 복덕의 집을 지으라는 것은 대량실업의 시대에 실직자를 위한 음식 나누기를 하라는 것이다. 객사를 지어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라는 것은 노숙자를 위한 숙소 제공과 같은 사업을 하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회심곡(回心曲)〉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보급했다. 그중 일절을 옮기면 이렇다.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구제 하였는가.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 하였는가./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행인공덕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 하였는가./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 하였는가./ 높은 산에 불당 지어 중생공덕 하였는가. 좋은 밭에 원두 심어 행인해갈 하였는가.

가사의 내용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염라대왕의 공초를 받을 때의 장면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불교는 여기서 적시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고려 때는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인 대비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시설인 광혜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월천공덕을 생각하며 많은 다리도 놓았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옛날의 돌다리는 모두 스님들이 손수 놓은 것들이다. 산길을 가다 보면 누군가가 파놓은 우물을 볼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목마른 사람이 있으면 마시고 가라고 스님들이 파놓은 우물이다. 최근에도 불교계는 양로원, 고아원, 사회복지관 같은 것을 운영하면서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활발하게 펴고 있다. 매우 잘하는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만 결식아동이 수만 명이 넘는다. 노인빈곤도 심각하다.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더 하다. 제3세계의 빈곤국가에서는 어린이들이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이들을 외면하고는 부처님의 자비를 말할 수 없다. 불교가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빈민구제와 재난구호활동에 나서야 할 이유다. ■

2015년 3월

홍사성(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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