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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불교와 불교적 보편주의
서재영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8호] 2006년 12월 10일 (일) 서재영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 머리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근대와 함께 도래했듯이 민족주의 역시 근대성과 함께 대두했다. 특히 동북아에서 근대성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궤적을 함께 했던 이유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근대적 시공을 공유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여기서 민족주의에게 맡겨진 역할은 외세에 맞서 민족의 독자성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한국불교 역시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띠었다. 조선불교를 일본불교로 동화하려는 정책에 맞설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수단은 민족주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근대사에서 민족주의는 남북을 가르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 이유는 제국주의가 내세우는 동일화의 담론을 저지하고 민족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민족’이라는 차별화의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근대의 시공에서 민족주의는 긍정적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차이와 개별성을 강조하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불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세속적 인식을 초월하여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지향한다. 주지하다시피 불교는 사바세계 전체를 정토로 만들고자 하며, 일체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자비의 실천을 다짐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이런 이상에 비추어 본다면 민족불교라는 것은 불교를 특정한 인종과 지역으로 제한하는 것이며, 민족주의라는 인식으로 불교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족불교라는 것은 불교의 보편성을 민족적 개념으로 분할하는 것이며, 불교의 우주적 포용성을 인위적 담론의 틀 속으로 구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지향점이 서로 다른 민족주의와 불교를 접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선택인가라는 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나아가 불교의 본래적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뛰어넘어 불교 정신에 입각한 보편주의의 확립이 필요함을 제언하고자 한다.

2. 근대 민족주의의 성립과 불교

중세 유럽은 기독교적 전통에 근거한 종교적 보편주의에 의해 통일된 세계였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는 완벽한 조화 속에 있었으며, 모든 존재들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찰스 테일러의 표현을 빌자면 이 시대의 이미지는 ‘존재의 거대한 고리(great chain of being)’에 의해 삼라만상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로 이해되었다. 근대적 자유란 바로 이 같은 구시대의 형이상학적 지평들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민족주의 역시 기독교적 통일성이 해체되고 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국가가 등장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보편성에서 벗어난 국가의 등장은 자연히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필요로 했고, 그 역할은 민족주의에게 맡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근대성의 한 요소로 성립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 민족주의는 서양과는 반대로 근대성의 대립 항으로 성립되어 왔다.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다가온 서양세력은 한편으로는 근대의 얼굴을 한 선진문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의 존립을 위협하는 약탈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시아의 국가들은 가시 돋친 꽃을 탐닉하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근대적 문물에 현혹되어 개방과 화친을 꾀하고, 또 한편으로는 침략에 맞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아시아의 역설적 상황은 여기서 기원한다.

서양과 동양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나타난 이상과 같은 양상은 동북아의 근대성과 민족주의의 성립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북아에서 근대성은 서양이라는 대타자(大他者)에 의한 동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다. 반면 민족주의는 서양으로의 동일화를 거부하는 차별화의 몸짓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서양에서 민족주의는 중세의 보편성을 극복하기 위한 근대성의 한 측면이었지만 아시아에서는 근대의 야만성을 비판하고, 근대의 폭력적 동일화를 초극하고자 하는 몸짓으로 평가된다.

한국 역시 이상과 같은 동일화와 차별화의 길항(拮抗)관계 속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때로는 아시아의 연대와 동아협동체를 주창하고, 때로는 대동아공동체라는 장밋빛 환상을 내세워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고자 했다. 그들이 이 같은 태도를 취한 것은 동양의 전통을 바탕으로 서양이라는 대타자의 동일화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불행히도 서양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또 다른 대타자가 됨으로써 아시아를 일본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서양이든 일본이든 한반도의 존립과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차별성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는 서양과 일본을 포함해 모든 제국주의적 동일화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되어왔다. 민족주의를 통해 한민족은 국가를 강탈당한 상황에서도 구심점을 잃지 않았고, 저항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일본제국주의라는 근대적 적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증폭되고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외세의 억압이 강해지는 것에 비례하여 민족적 자각은 깊어졌고, 민족주의적 구호는 강력한 응집력으로 작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근대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1600년을 민족과 함께 부침해온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민족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곧 불교의 존립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가 민족주의와 접목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민족주의와 불교의 결합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불교의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민족주의는 저항의 중심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대중들은 민족주의를 통해 식민지 민중의 고단한 삶을 초극하고자 했다. 불교는 중생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지향하는 종교인만큼 대중적 열망과 정서에 부응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불교의 정신이 민족주의와 부합해서라기보다 중생들의 현세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식민지 민중들에게 고통의 원천은 제국주의의 압제와 수탈이었던 만큼 해탈이라는 종교적 이상은 조국강탈이라는 현세적 고통의 초극으로 대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한 것은 중생의 현세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방편적으로 수용한 교화방편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물론 한국불교가 처음부터 민족주의적 관점에 섰던 것은 아니다. 개항 이후 한동안 한일 불교계에는 우호적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승 사노는 김홍집 내각에게 승려의 도성출입을 허가해 줄 것을 건의하고 승려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희망했다. 이에 대해 조선불교계는 적극적인 환영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 사노와 일본 불교에 대해 극진한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 식자층과 불교계에서 ‘한중일 삼국이 힘을 합쳐 서양 세력에 대응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아시아 연대론이 대두하자 한일 불교계에서도 종교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연대의식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연대의식은 일본의 침략으로 그들의 저의가 폭로되면서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둘째,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단적 차원에서 민족주의와 결합했던 측면을 들 수 있다. 한일합방과 때를 같이 하여 일제는 한국불교를 장악하고 일본불교화하기 위해 일련의 정책을 시행했다. 사찰령을 비롯한 일제의 불교정책은 정치적 침략과 보조를 맞춘 종교적 차원의 동일화 과정이었다. 대표적으로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합병하려는 시도들을 꼽을 수 있다. 승려의 도성출입을 건의했던 사노의 의중은 종교적 연대의식이 배경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의 또 다른 저의는 한국불교를 일본불교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행보는 원종(圓宗)을 이끌고 있던 이해광에 의해 되풀이 되었다. 이해광은 일본으로 건너가 조동종과 원종의 합병을 합의하고 돌아왔지만 불평등한 조약이 폭로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불교계는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임제종을 창종하게 되고, 만해를 중심으로 한 임제종 운동은 일본 불교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 역시 조선불교의 독자성을 지켜내기 위한 차원에서 민족불교, 내지는 민족적 성향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민족주의의 이중성과 왜곡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일제치하에서 민족주의와 민족불교는 긍정적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독립투쟁을 선도한 것도 민족주의였고, 제국주의의 문화적 동일화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민족주의였다. 그런 점에서 근대사에서 민족주의는 정의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민족불교 역시 중생의 현실적 고통에 동참하고 이를 해소하려는 대승적 보살행에 대한 자기 다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언제나 옳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도 그것을 주창하는 주체에 따라 두 가지 측면으로 분화되기 때문이다. 우선 침략자의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일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복자들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침략의 논리로 작용한다. 반면 약소국의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침략자의 폭력에 맞서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되고 부당한 침략에 대항하는 투쟁의 논리가 된다. 따라서 일본이 한반도를 병탄했을 때 조선의 특수성을 지키고 이에 대항하는 논리는 저항적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독재 권력이 등장하면서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의 원동력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일본을 타자로 규정하고 조선의 차별성을 지켜내고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했던 민족주의는 독재자와 권력에 대한 동질화로 변모해 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승만은 일민주의(一民主義)를 내세워 정치적 다양성을 억압하고 오직 이승만 정권의 동일성을 위해서 복무하도록 만들어 갔다.

결국 외세에 맞섰던 저항적 민족주의는 독재정권에 의해 자국민을 억압하는 권력자의 담론으로 변질되면서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된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외세와 대비될 때에는 동일화의 폭력에 맞서는 차이의 이념이 되지만 그것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게 될 때에는 또 다른 폭력적 담론으로 변모됨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가 갖는 또 다른 양면성은 약자였을 때와 강자가 되었을 때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이 약소국이었을 때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로 기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제적 위상이 변화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록 우리 역사에서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성격을 띠었지만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고집하게 되면 자연히 억압적 민족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높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 10위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적 위상 변화와 함께 피억압자의 신분에서 탈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피억압자 시절에 배태된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억압적 민족주의로 전이될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만약 민족주의가 약소국에 대한 냉대와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한민족에 대한 우월성과 자부심이 인종차별로 이어진다면 민족주의는 그 스스로가 억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일예로 근대 중국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는 저항적 민족주의였지만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을 앞세우며 또 다른 억압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저항적 민족주의가 약소국에 대한 억압적 민족주의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는 비록 특수성과 개별성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것을 신봉하는 주체의 힘이 강력해지면 보편적 담론으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류를 통해 우리 문화가 아시아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것 역시 이런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동남아 소녀들이 자신들의 생김새를 혐오하며 전지현이 되기 위해 성형외과 앞에 길게 줄을 선다면, 그들의 문화와 정신세계에 한국 문화가 덧칠되는 현상을 두고 한국문화의 세계화로 생각하여 민족적 우월감을 느낀다면 민족주의는 왜곡될 소지가 높다.

이것은 약소국을 향해서 우리 스스로가 억압적 민족주의자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삐뚤어진 민족적 우월감은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는 코드가 되어 있고, 한국인과 결혼한 수많은 아시아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일부에서 나타나는 왜곡현상에 불과하겠지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숭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4. 불교적 보편주의 확립의 필요성

‘민족’이란 ‘우리’와 ‘그들’에 대한 구분을 통해 형성되는 집단적 인식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혹자는 민족에 대해 ‘우리’를 ‘그들’과 구별하는 습관적 실천의 총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불교에서 민족주의를 경계해야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불교는 끊임없이 차별적 변견(邊見)을 극복하고자 한다.

존재의 보편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가치의 평등성을 확립하는 것이 불교가 지향하는 종교적 입장이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의 피부색이나 문화적 차이에 의해 차별받거나 배제될 어떤 이유도 없다. 한 개체를 결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의 업(業)일 뿐이지 민족과 국적은 무관하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나와 너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성립되고 유지된다. 이는 동북아 삼국의 관계를 보아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자기 민족에 대한 지나친 우월의식 때문에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를 강탈하려 한다.

물론 이 같은 현상에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깔려있고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를 민족주의로 포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집단적 이기주의로 몰고 가는 원동력이 민족주의라면 불교와 민족주의의 결합에 대해 진지하게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는 외부의 적과 내부구성원을 구별 지움으로써 내적 결속을 다지려는 정치에서는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과 강력한 충돌로 이어지면서 더 큰 비극과 슬픔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무수히 보아왔다. 따라서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구별 짓기에 동참하는 것은 결코 불교의 사상과 자비에 부합될 수 없다. 불교는 통합과 바다를 지향하는 보편적 전통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인간들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인위적이며 실체 없는 관념의 소산일 뿐이다. 용수는 이 같은 이념을 번뇌의 뿌리가 되는 ‘희론(戱論)’이라고 비판했다.

주지하다시피 부처님 당시 인도사회는 엄격한 계급사회였다. 부처님은 그 같은 세속적 틀을 극복함으로써 종교적 보편성과 권위를 확립해 갔다. 부처님이 성도 후 카필라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명의 왕자들이 출가했다. 그 때 부처님은 이발사 우팔리를 먼저 출가시킨 다음 왕자들에게 자신들의 하인이었던 우팔리에게 경배하게 한 뒤 사형(師兄)으로 섬기게 했다. 그 때 부처님이 하신 설법이 바로 강물과 바다의 비유를 통한 종교적 보편성이었다.

즉, “여기 네 갈래 큰 강물이 있으니 모두 아녹달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넷인가? 곧 강가 강, 신두 강, 바차 강, 사다 강이다. 이 네 갈래의 강은 동서남북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나 이 네 갈래 강물은 바다로 들어가면 본래의 이름은 없어지고 다만 ‘바다’라고만 불린다”는 것이다. 불교의 세계로 입문한 이상 갖가지 세속적 차별과 인식을 버리고 ‘석가의 자녀[釋迦子]’라는 불교적 보편성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부처님은 세속적 담론과 종교적 정신세계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는 차별이 아니라 ‘아녹달 샘’ 또는 ‘釋迦子’로 대변되는 보편적 동질성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세속적 관념으로 만든 민족과 이데올로기라는 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이 불교이다. 분별적 인식이 사라진 곳이 바로 열반의 큰 바다[大海]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언제나 허망한 분별과 구별 짓기를 좋아한다. 선어록에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표현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강물에 칼을 빠뜨리자 뱃전에 칼을 잃어버린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표시한 것은 바다가 아니라 뱃머리일 뿐이다. 우리가 민족이다, 국가라고 표시하는 것도 결국은 본질적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타고 있는 인식의 뱃머리에 새겨놓은 실체 없는 기표일 따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민족불교 역시 망망대해에서 경계를 나누는 행위일 수도 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면 짠맛으로 통일되고, 다양한 신분도 출가하면 부처님의 아들일 뿐이다. 이는 불교가 지말이 아니라 근본을 지향하며,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보편적 동일성을 지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문에 들어 온 이후에도 세속적 담론에 의지하여 사량분별을 쉬지 않는다. 여기서 한국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를 구분 짓고, 망망대해에서 경계를 나누고 차별과 배제의 담론을 생성한다. ‘열반에는 이름이 없다[涅槃無名]’고 했듯이 진제(眞際)의 세계는 민족과 국가의 차별성을 초극해 있다.

따라서 세속적 가치기준, 도덕적 잣대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틀 지워진 인식의 장벽을 허물고 불교적 평등성과 보편성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연기(緣起)의 바른 자각이며, 무분별(無分別)의 실천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불교적 보편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교적 사유와 세속적 담론을 구분하고, 전자를 통해 후자를 극복하려는 종교적 차별화이기도 하다.

불교를 설명하는 말이 많겠지만 한마디로 설명하면 그것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일 것이다. 나와 남의 불이성(不二性)을 체득하고 모두가 하나임을 깨달아서 큰 자비를 베푸는 것이 불교적 삶이다. ‘한 몸[同體]’으로 보면 적이 이웃이고, 타자가 바로 나의 모습이 된다. 민족불교라는 것은 동체대비의 대상을 민족적 단위로 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비를 실천해야할 대상은 민족이라는 단위가 아니다. 부처님은 태란습화(胎卵濕化)로 탄생하는 사생(四生)의 자비로운 아버지로 불리며,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한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개념과 결합된 불교는 결코 불교의 보편적 자비를 대변할 수 없다.

불이(不二)와 동체대비를 말하는 종교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를 논하고, 그 하위 개념으로 귀속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결국 세속적 가치체계 앞에 굴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교는 우주적 생명과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생태적 위기 역시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주를 통해서는 극복될 수 없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보다 확장된 자아관을 바탕으로 무연자비(無緣慈悲)의 실천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제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양하고 범지구적 공동체를 고민하는 것이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불교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불교가 민족주의 틀 속에 갇혀 있었다면 불교는 인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는 절대적 평등성과 보편성에 입각해있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불교를 믿고 수용한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범세계적 보편성과 문화현상에 동참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불교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불교를 통해 보편적 정신세계를 구축해 왔던 자랑스러운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불교가 민족의 틀을 넘어,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틀을 넘어 세계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보편적 자비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런 혜택을 누려온 한국불교가 민족주의 속에 안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 우리도 범세계적인 인식의 지평을 갖고 과거의 위대한 전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편적 가치와 자비의 실천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민족주의라는 인식에 안주하기에는 불교적 사유가 너무도 장대하며, 국가적 틀 속에 머물기에는 불교의 이상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5. 불교적 보편주의의 성격

혹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들어 세계적 연대와 협력을 논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며 종교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가 보편성을 상실할 때 종교는 편협한 세속적 테두리에 갇혀 갈등과 분열을 증폭할 위험이 높다. 실제로 민족주의와 결탁한 종교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서 첨병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례를 역사적으로 체험한 바 있다.

종교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전쟁이나 민족분쟁 같은 비극에 대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며, 거대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종교라면 개개인의 삶을 담보할 수도 없다. 따라서 불교는 민족적 테두리, 국가적 범주를 초극하여 보편적 가치와 동체대비 사상에 근거한 불교적 보편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이는 작은 테두리를 벗어나 전지구적 문제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불교, 인류의 보편적 문제에 대해 응답하는 불교가 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불교적 보편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민족적 틀을 벗어나 종교적 보편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분열, 국가주의 등 갖가지 인식체계에 의해 분열된 중생계를 자비의 관점에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 때 불교는 민족과 인종,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보편적 자비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있는 곳에 민족적 틀이 사라지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이 사라질 때 비로소 불교는 불교일 수 있다. 따라서 불교적 보편주의는 인위적 차별성을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의 윤리를 위한 것이며,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 자비와 평등에 입각한 동체대비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넘어갈 대목은 불교적 보편주의가 중세 유럽의 경우처럼 획일화된 가치와 행동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불교적 보편주의는 각국의 불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불자로서의 공동체적 인식을 갖고 연대적 실천을 지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교적 보편주의란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통합하는 중세 유럽의 보편주의를 재건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불교적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자는 것이며, 불자의 종교적 사명이 인류 보편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불교가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는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보편성과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구 문화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버팀목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서구적 보편성에 맞설 수 있는 저지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다. 하지만 각국의 불자들이 불교적 보편성에 입각하여 실천한다는 것은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보편성에 대항하는 또 다른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 불교적 보편주의는 민족, 인종, 국가 등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견지하지만 제국주의적 문화와 폭력적 획일성에 대해서는 차별성을 강화하고 잘못된 가치와 문화에 맞서는 새로운 구별 짓기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따라서 민족불교를 넘어서자는 것은 민족과 국가와 인종이라는 틀 속에서 불교를 해방하는 대신 보다 큰 가치론적 측면, 사상적 측면, 실천적 측면에서는 차이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6. 맺음말

한국근대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치기준은 언제나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왔다. 따라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여타의 다른 가치 위에 군림해 왔으며, 이 같은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과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아마도 이것은 이민족의 침탈과 동족상잔이라는 불행한 과거사에서 비롯된 트라우마(trauma)일 것이다. 불교 역시 이 같은 시대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호국불교나 민족불교는 외적의 침탈에 맞서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하고자 했던 자비정신의 발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불교의 본질 내지는 전부인 것처럼 되풀이 하는 것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획일화에 불교가 동화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교가 불교다운 종교가 되려면 민족과 국가라는 세속적 범주에서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사상적으로 불이(不二)를 지향하고 실천적으로 동체대비를 내세우며 화합과 공존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실은 분별심에 매몰되어 구별 짓기에 여념이 없고 이에 따라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 한다. 여기서 불교마저 이 같은 범주 속에서 사유하고 행동한다면 불교 역시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를 증폭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불교가 인류의 보편적 종교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민족과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는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보편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불교는 사생자부라는 포괄적 생명에 대한 자비를 지향하는 만큼 차별과 변견을 넘어 통합과 공존을 위한 보편적 가치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민족적 틀 속에서 불교를 사유하는 것은 불교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며, 인류와 중생에 대한 보편적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민족주의만을 강조한다면 우리민족에 의해서 탄생되지 못한 불교를 믿을 근거도 없으며, 다른 민족이 쓴 경전과 논서를 교리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뿐만 아니라 해외포교를 논할 필요도 없다.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민족불교가 보살정신의 실천일 수 있지만 항시적으로 민족불교를 주장하는 것은 불교적 보편성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제 인류보편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보다 큰 테두리에서 자비가 논의되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보다 원대한 불교의 자비사상을 고민하는 것이 불교적 사상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재영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본지 편집위원.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禪의 생태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텔레비전 PD, 불교신문 논설위원, 한국선학회 운영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후 ‘서재영의 불교기초교리 강좌(www.buruna.org)’로 조계종 포교대상(인터넷 부문)을 수상했다. 논문으로 「조선불교유신론의 소회 폐지론과 선종의 정체성」 「선(禪)의 불성관과 생명의 내재적 가치」 「퇴옹성철의 백일법문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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