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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이승훈 지음 《선과 아방가르드》/ 이덕주
선(禪)과 현대시의 만남, 그 당위성
[60호] 2014년 12월 01일 (월) 이덕주 djl2000@hanmail.net

1. 선과의 인연

   

선과 아방가르드  
이승훈 지음|푸른사상  펴냄

선의 시각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이승훈의 시론집 《선과 아방가르드》(푸른사상)가 지난 8월 출간되었다. 이 시론집은 현대 선시의 이론적 토대의 깊이를 더하는 선사상 연구의 결과물이다. 인간 본성으로 회귀하고자 그 대안으로 선을 앞세우는 시기에 시의적절한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선을 중시하며 선의 세계관이 시의 지평을 넓혀간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사상과 시학을 폭넓게 접목하며 현대 선시의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은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성의 성찰’의 지침으로 ‘선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사유체계를 부정하고 해체하면서 전혀 새로운 직관을 통한 대상 파악은 선이 목적하는 사유의 혁명이다. 이런 선은 아방가르드 예술 정신을 추종하는 시인들에게 무한한 창조력을 배가시킨다고 할 수 있다.

선의 정신은 창조적 작업의 종사자, 특히 시인들을 높은 깨달음의 정신세계로 인도한다. 때문에 선시는 깨달음의 시 쓰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선시는 깨달음과 시의 미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특별한 문학 장르이다. 그런 면에서 선에 침잠하는 창조적 시인들은 선에 몰입하는 자체로 독창성과 창조성을 생생하게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선과 아방가르드》는 이승훈이 제12시집 《인생》(민음사, 2002) 이후 시도했던 자신의 시 특히 현대 선시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다. 그는 《인생》이 발간되기 전 1990년대 말에 자아탐구와 자아소멸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활로를 찾고자 고심했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를 거쳐 새로운 시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금강경》 〈대승정종분〉의 “약보살(若菩薩)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즉비보살(卽非菩薩)”이라는 구절을 접하게 된다. 마침 ‘아상(我相)을 버려야만 보살’이라는 그 구절에서 자신이 40여 년간 분별적 자아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었음을 충격적으로 인식하고, 자아불이(自我不二), 자아불이(自我不異)의 세계로 다가가는 전기로 삼는다.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분명하게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맺은 《금강경》과 기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불교적 사상인 선으로 전환한다. 자신이 그토록 추동했던 아방가르드 정신이 선을 접하면서 선의 정신이 시와 시론의 전형이 된 것이다.

이승훈은 “시론이 없는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라는 그의 지론대로 《반인간》(조광출판사, 1975) 이후 《영도의 시쓰기》(푸른사상, 2013)까지 35권의 시론과 이론서를 저술했다. 시집 역시 《사물A》(삼애사, 1969)에서 최근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시와세계, 2014)까지 24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다. 수필과 번역집 등 기타 저술까지 합하면 약 70여 권의 저서이다.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그의 필력은 오직 선행적 시인이며 시 이론가로서 행로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아방가르드 정신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는 이 책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호학의 관점에서 선사들의 공안을 해석한 《선과 기호학》(한양대출판부, 2005), 선의 시각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을 해석한 《아방가르드는 없다》(태학사, 2009), 하이데거 철학을 선시를 중심으로 해석한 《선과 하이데거》(황금알, 2011), 선의 시학을 모색한 《영도의 시쓰기》 등 현대적 선학을 시와 접목시키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진력했다. 《선과 아방가르드》는 그런 면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은 저자가 《인생》 이후 시도한 시 이론서의 연장선에서 필연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종합 시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2. 선의 구분을 통한 현대시의 방향
 
이승훈 시인은 선과 현대시의 만남, 그 당위성을 나름 시학적 체계를 세우며 제1장과 2장에서 밝혀 나간다. 지금까지 시단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이론체계다. 선과 시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으면 《선과 아방가르드》를 읽기가 편해진다.

제1장과 2장에서 송대(宋代) 언어 인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선시의 발전과정을 통해 선시가 돈오(頓悟) 시학의 범주이며 선의 시 쓰기는 점수(漸修) 시학의 범주에 든다고 구분한다. 경계가 해체되는 불립문자, 논리 밖의 선은 선이 강조하는 중도, 불이, 공사상과 통하는 데 기초하여 ‘선의 시학’ 측면에서 현대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나아가 선을 매개로 현대 선시가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수용되면서 노장사상, 유학과 결합되어 발전하는 선종을 중심으로 선을 여래선과 조사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6조 혜능 이전(북종 포함)을 여래선으로, 혜능 이후 정립된 남종을 조사선으로 선종의 발전과정과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능가선, 우두선, 유식사상도 다루면서 선이 그만큼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계가 있음을 예시한다.

제4장의 혜능과 신수에서 비롯된 돈오와 점수, 남종과 북종의 변별을 살펴보며 결국 깨달음이 궁극적 목표임을 설파한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어떤 문제든 이항대립, 양변을 포월하고 중도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실천하자는 입장이며, 이런 중도가 부처님의 뜻이고 혜능이 시도한 선의 뜻임을 강조한다(p.129).

제5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의 전환이 여래선 시학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여래선의 시 쓰기는 달마의 면벽과 혜가의 자연지심을 강조하는 간심간정(看心看靜), 도신의 섭심수심(攝心守心), 홍인의 수본진심(守本眞心) 등(p.138)에 상응하는 시 쓰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임을 드러낸다. 여래선과 시, 여래선과 동시(童詩)를 예로 들며 자아가 없는 청정심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청정심과 평상심, 무위자재로 서정주의 〈동천〉을 살펴보며 김춘수의 〈깜냥〉 역시 시인이 대상을 소멸시키는 청정심을 지녔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시임을 간파한다. 오규원의 〈봄과 밤〉 또한 청정심과 중도가 시 속에 스며 있음을 내세운다. 이런 것은 결국 무심, 무아, 선적 깨달음, 혹은 자성청정심을 그대로 말하는 ‘보여주기’라고 말한다.

제6장에서 연이어 조사선 시학이 무념식정(無念息情)을 강조하는 데 연관이 된다고 기술한다. 마찬가지로 평상심이 도임이 제7장 마조선 시학이라고 강조한다. 이승훈은 자신의 시 〈속초에서〉 전문을 인용하며 백담사 하안거 해제일에 설악무산 스님에게서 전당게를 받은 인연 때문에 임운자연(任運自然)에 따른 선의 일상화가 이루어졌음을 고백한다.

제8장 “시를 만나면 시를 죽여라.”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임제선 시학도 구분은 하지만 넓게 선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같은 맥락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위진인이 되기 위해서는 차별과 분별을 떠난 불성이 우리 몸을 지배하지만 그것조차 떠나야 함을 강조한다. 무위진인이 되는 그 자체가 시 쓰기의 태도와 시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어디서나 시 쓰는 주인이 되고[隨處作主], 서는 곳이 바로 진리[立處皆眞]라고 역설한다.

임제선 시학은 이 책에서 언급한 전통적 인습과 권위, 곧 근대 시학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시학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선의 시각에서는 이름, 형상 등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라는 즉 분별과 조작을 버리는 행위와 통한다. 저자는 무위진인, 수처작주, 입처개진이 시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며 시의 정신임을 계속 강조한다.

3. 현대시와 선의 세계

이승훈은 지금까지 자신이 깨달은 선의 세계가 설악무산 스님의 시집 《절간이야기》(고요아침, 2003)에 그대로 시현됨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p.293). 〈절간 이야기 2〉의 “어제는 바다가 울었는데 오늘은 바다가 울지 않는군요”라는 문면에 무주(無住)의 시학이 녹아 있음을 깊게 인식한다. 선이 강조하는 무분별에 기초하여 무아의 경지에서 나오는 지극한 무위의 미학이 현시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선을 매개로 선과 함께 선을 지향하지만 끝내 선 그 자체도 없다는 설악무산이 자신의 시를 통해 현대 선시의 아방가르드를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한다.

〈신사와 갈매기〉에서 일상어로 쓴 설악무산의 시가 일상어와 시어가 해체되며 아이러니와 함께 선시가 되고 있다고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자갈치 아즈매와 갈매기〉는 역시 설봉 스님과 자갈치 시장의 아주머니가 갖는 지극히 순수한 정경을 통해 일상과 선의 구별이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시라고 말한다. 선의 극한에는 선이 없고 일상 자체가 선임을 그는 덧붙인다.

설악무산의 〈백장과 들오리〉 또한 객관적 인식에 의한 양변을 버리라는 일상어/선어/시어의 경계가 해체되었음을 보여주는 선시라고 강조한다. 〈절간 청개구리〉에서 설악무산이 ‘시를 지으려다가 못 지었다’는 고백 자체가 그대로 언어를 초월하는 선시 그 자체였음을 파악한다. 나아가 〈불국사가 나를 따라와서〉는 두두물물이 화엄법계에 녹아든 정경을 무애의 경지에서 노래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하나와 일체가 융합하여 하나 속에 우주의 모든 활동이 전개되는 융통무애(融通無碍)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이승훈은 설악무산의 시를 현대적 전위시인 동시에 현대 선시의 전형으로 간주한다. 설악무산 스님이 무아와 무애를 자신의 시와 시조 속에 여시하게 녹여냈다고 찬하면서 ‘아방가르드가 선이고 선이 아방가르드’라는 자기 의견을 덧붙인다.

이승훈은 제9장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선시에 대해 과거의 고정된 격식과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때문에 현대 선시의 새로운 출구 즉 현대 선시가 올바르게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선이 보여주는 파격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선과 아방가르드의 회통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선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김수영의 시 〈등나무〉처럼 일체의 시적 규칙이나 표현방법을 부정하는 무위진인의 시가 되어야 한다고 김수영의 시 정신을 높인다(p.330). 시간도 해체되고 공간도 해체된다며 〈등나무〉의 파격이 선과 통한다고 예찬하는 이승훈에게서 그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4. 선과 아방가르드
 
이승훈은 평생 아방가르드 정신을 앞세웠다. 등단 이후 잠시도 쉬지 않고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골몰했고 새로운 시를 뒷받침하는 시론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왔다. 자신의 시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향해 독려의 채찍을 가해 왔으며 자기진화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70여 저서 목록이 그가 평생 기울여온 그간의 열정과 결실을 반증한다. 그는 《선과 아방가르드》를 출간하기 두 달 전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시와 세계)를 발간했다. 이승훈의 《선과 아방가르드》 이론이 유효하게 실증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무작(無作), 무설(無說), 무학(無學)이 자신의 시작(詩作) 방식이며 그 또한 자신의 시론임을 그는 주장한다. 그 역시 《선과 아방가르드》에서 전개된 시론이다. 시집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를 보며 그의 시론에 동의를 보낸다. 《선과 아방가르드》를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승훈의 시작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하게 될 것이다. 선의 중심사상을 통한 시학에 대한 새로운 선적 접근이 이 책을 발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선의 시각으로 현대시가 지닌 문제를 고찰하고 마조, 임제시학 등 선의 다양한 적용과 실증을 통시적으로 예시하며 현대시의 발전 방향을 탐색한 것이다.

이승훈은 시력 50년이 넘는 시인이며 동시에 시 이론가이다. 그를 아는 시단의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그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우리 시단의 첨병에 서서 전진기지를 구축해왔다. 선과 아방가르드를 접목해서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공로도 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훈의 역저 《선과 아방가르드》는 앞으로 우리나라 현대시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을 것이다. 눈 밝은 독자들의 구전에 의해 이 책의 독자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예견해본다. 전위적 사유를 앞세우며 아방가르드 예술정신을 선을 통해 시현하는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

 

이덕주 / 문학평론가. 한국 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2012년 《시와 세계》(평론)로 등단. 시집 《내가 있는 곳》이 있다. 현재 계간 《시와 세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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