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 이영도 〈비〉 전문

비 내리는 밤, 허전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면 이영도 선생님의 작품 〈비〉를 떠올리고는 한다. 단정히 빚어 올린 긴 머리, 단아한 한복 차림, 다정다감한 음성이 귓전을 울리며 그리움에 젖게 하는 것이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소설가 손소희 선생님이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으로 계실 때였다. 그해 이른 봄날, 선생님께서 합정동에 위치한 교회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그 전화는 등단 초년생인 내게 무척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약속된 일요일, 합정동에 위치한 교회로 갔다. 예배가 끝난 시간이어서 교인들이 빠져나간 교회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 맨 앞자리에 앉아계시던 한복 차림의 선생님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손을 들어 보이셨다. 당시 선생님은 그 교회 권사 직분을 맡고 있었다.
“니는 교회 안 다니나?”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첫마디가 ‘교회 안 다니느냐’는 물음이었다.

“예.”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앞으로 이 교회에 나오거라. 나와 같이 교회에 다니자.”라고 하셨다.
그 말에는 자신이 없어 대답 대신 씽긋 웃어 보였다. 그 후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그 교회에서 만났다.

어느 날엔가는 예배가 끝나자 선생님 댁으로 가자고 했다. 처음 가본 자택은 규모가 작은 집이었으나 그 후 새로 이사한 서교동 자택은 전에 살던 집보다 큰 이층집이었다. 1층 현관을 들어서자 넓은 거실에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감과 소형 자동차가 비치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거처하는 방은 2층이었고 거실에는 여러 개의 난초 화분들이 거실 가운데 놓여 있었다. 벽 한편은 꽂혀 있는 책들로 가득했다. 서가 바로 아래에는 배달되어 온 책을 꺼낸 뒤 모아둔 누런 대봉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마주 앉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주로 문단과 따님을 비롯한 식구들 얘기였다.

그러다 내게 입회원서 한 장을 내놓으면서 한국여성문학인회에 가입하라고 했다. 단체 가입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터였으나 그 자리에서 곧바로 원서를 써 드렸다. 그것이 지금의 한국여성문학인회이다.

신입회원으로 가입한 그해, 선생님 권유로 한국여성문학인회가 주최한 문학기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경북 황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김천 직지사에 들렀다. 사찰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던 나였다. 선생님을 따라 직지사 사천왕문을 지날 때 문안에 서 있는 4개의 사천왕상 앞에 서자 겁부터 났다. 짙은 눈썹 아래 둥근 눈, 꽉 다문 큰 입에 우람한 몸집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 사천왕문을 지나자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 대웅전 앞으로 이끌었다. 열린 정문에서 바라본 대웅전 안에는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의 불상이 높이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내 손을 잡은 채 대웅전 옆문으로 발길을 옮긴 후 안으로 들어섰다. 덩달아 나도 들어갔다. 선생님은 대웅전 한가운데 높이 앉아 있는 부처님 앞에 잠시 서서 부처님을 우러르더니 겸손하고도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머쓱하게 서 있는 내게 물으셨다. “절에 처음이가?” “예.” 대답하다 문득 선생님이 교회 권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교회에 나가시잖아요. 권사라는 직분도 맡고 계시고요. 근데 부처님께 절하셔도 돼요?” 성경에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한 구절이 생각나 여쭈었던 것이다. 그러자 선생님은 크게 웃으며 의외의 답변을 했다.

“야 야, 니는 남의 집 방문했을 때 그 집 주인한테 인사드리지 않나?” “물론 인사드리죠.”

“그래 그 집 큰 어른한테 제일 먼저 인사를 여쭈제. 절집에 왔으니 절집 큰 어른이신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가, 절 주인이 바로 부처님이니라.” 하셨다.

직지사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옆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을 바라보며 종교의 벽을 넘어 넓고 깊은 사랑을 품고 계신 모습에 큰 감동이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절집이든 어느 종교단체를 방문하든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곳 큰 어른께 인사드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주옥같은 작품을 숱하게 남기신 채 세상을 떠난 정운 이영도 선생님. 뇌내출혈로 돌아가시던 날도 아침 일찍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서교동 자택에 맨 먼저 도착했던 일이 기억난다. 2층 방안에 반듯하게 눕혀진 채 덮여 있던 흰 보자기를 누군가 벗겨 내게 선생님 가시는 마지막 얼굴을 보여준 일이 엊그제 같다.
선생님이 가신 지도 어언 40여 년(1976년 작고)이 가까워오는 지금, 따님과 함께 사시던 서교동 이층집은 누가 살고 있는지…… 선생님의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과 남겨진 빛나는 작품들은 숱한 이들에게 깊이 새겨져 영원을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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