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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세계’와 성(聖)의 세계 / 류성민
[60호] 2014년 12월 01일 (월)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개콘)’를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프로에는 ‘큰 세계’라는 코너가 있다. ‘큰 세계’는 제일 뚱뚱한 사람이 최대의 대우를 받는 세계이다. 얼마나 많이 먹는가, 얼마나 악착같이 먹으려 하는가가 사람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먹는 데 환장한 사람이 최고가 되는 세계이다. 너무 뚱뚱하여 신발 끈도 맬 수 없고 목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자랑이고 유세가 되는 세계이다. 항상 ‘먹기 좋을 때’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더 많이 더 치열하게 먹으려 하는 사람이 이기며 끝난다. 그래서 ‘큰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날씬한 사람들은 무시되고 다이어트는 죄악처럼 여겨지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 ‘큰 세계’가 우리를 웃게 한다. 반전(反轉)의 묘미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비록 비현실적인 ‘큰 세계’이지만, 일상화된 미적 가치를 뒤집어보는 재미가 있다.

종교의 세계도 ‘큰 세계’에 못지않게 우리의 일상이나 세속과는 다른 가치와 삶의 기준이 적용되는 세계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종교를 창시한 분들이 그러한 세계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온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예쁜 부인과 잘난 자식을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했다. 나사렛 예수는 부귀와 권세와 영광을 모두 물리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석가도 예수도 또 다른 ‘새 세계’를 이룩했다. 비록 세속에서는 어리석고 비천한 삶일지라도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기초를 놓았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을 좇아 종교의 세계를 구축했다. 불교와 기독교에서는 그들 각각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고 삶의 모범을 보여준 본보기가 되었다. 종교의 세계는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여긴다. 그러한 성인을 따르는 사람들의 세계가 바로 ‘성스러운 세계’이다.

세속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나 일을 하지 않고 평생 성스러운 세계에서 성인들을 따르기로 전념한 사람들을 ‘성직자(聖職者)’라고 한다. 스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모두 성직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부처와 같이, 예수와 같이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 여기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돈이나 권력에 욕심을 내지 못하도록 다양한 계율을 지키게 한 것도 모두 성스러운 일에 전념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성스러운 세계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신자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는 것은 그러한 성스러운 세계에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움(the sacred)’이라는 말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다르다’이다. 종교의 세계는 성스러운 세계이고 성스러움을 가치 있게 여기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속(俗)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일찍이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성스러움의 의미》라는 책에서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을 ‘전혀 다른 것’으로 표현한 바 있다. 적어도 일상적인 삶과는 전혀 다른, 그래서 세속의 가치와 삶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 때, 그 삶에서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음을 오토는 간파했다.

우리가 성직자에게서 그 성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면, 성직자는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없다면 그/그녀는 성스러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권력과 명예와 부귀를 추구한다면 그들에게서 성스러움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온갖 더러운 일이 비일비재한 속세에 살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을 때 성스러움을 풍길 수 있고, 우리가 기대하는 성직자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종교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가 주로 성직자들의 비리와 비행, 부도덕한 행위에 있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보다 더 사리사욕에 이전투구를 하는 성직자들은 비록 소수라도 그 파장은 크다. 더군다나 폭력이나 권력을 남용한다든지, 노름과 방탕을 즐기든지, 간통이나 성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단 한 명의 성직자가 있어도 종교의 세계는 지탄받게 된다. ‘큰 세계’에서 조금만 살이 빠져도, 먹는 데 약간만 소홀히 해도 금방 비난의 대상이 되듯이, 성스러운 삶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결코 존경의 시선을 보낼 수 없는 곳이 성스러운 세계이다. 성인은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으로 추앙되는 것이다. 성직자는 자격증으로 따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 의해 성직자로 인정되고 존숭을 받는 것이다.

가끔 TV나 언론을 통해 ‘큰 세계’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성직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살찐 사람이라고 성직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성스러운 삶을 살면서 누가 보기에도 매우 뚱뚱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뚱뚱한 사람이 모두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먹지 않고 뚱뚱하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성스러운 삶을 살면서 그렇게 ‘큰 세계’에서 세도를 누리는 사람과 같이 될 수 있을까? 성직자라고 가난하라는 법은 없지만,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돈이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 속세에서 성스럽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렵겠다!

그러고 보니,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진언(眞言)이 떠오른다. 옴 마니 파드메 훔! 진리는 연꽃 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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