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접점에서 교학을 꽃피우다

지관 스님
(智冠, 1932~2012)

한국의 불교학은 근대 한국학의 변천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교학에서 근대적 학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최근까지 전통 강원(講院) 교육이 유지되어 왔고 아직도 선원(禪院)의 선 수행은 전통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 학문 분야보다는 전통적 경향이 강하게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20세기에 활동한 한국의 불교학자 중에서 전통식 교육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이들은 전통과 근대 학문의 접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전통과 근대적 학문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성과에 머문 경우도 많겠지만, 이상적인 경우에는 전통 교학 수련 체계를 근대적 학문 영역에 유익하게 접목시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 드문 예 중의 하나이다.

수행과 교육과 교화가 하나 된 삶

지관 스님은 포항 청하면에서 경주 이규백(李圭白)과 금녕 김선이(金先伊)를 부모로 1932년에 태어났다. 5세에 모친을 여읜 스님은 10세 이후 이름 모를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이다가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청정도량에서 관음진언을 염송하여 완쾌되는 영험을 겪었다. 마침 해인사에서 탁발 나온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고, 15세에 해인사로 가서 당대 최고의 자운(慈雲) 율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1947년에 스님은 성철·청담·보문·우봉 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은사 자운 율사와 함께 참여하여 정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빨치산의 준동으로 회상은 해산되었고, 스님은 울릉도 성인봉 밑의 주사굴에 들어가 치열한 생식(生食) 정진을 하였다. 이후 오대산으로 한암 선사를 찾아가다 6·25전쟁을 만나 길이 막힌 스님은 보경사 서운암 용화선원에서 쉼 없는 정진을 이어갔다.

해인사에서 운허 스님에게 수학한 것을 계기로 스님은 본격적인 강백의 길을 걸어, 20대였던 1959년 표충사 강사를 시작으로 동화사 강원 등에서 명강의로 학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1960년에 29세로 최연소 해인사 강주를 맡아 10여 년간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수많은 전승 교학의 주석서를 찬술하였다. 뜨거운 열정과 물 흐르듯이 막힘없는 강의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겨우 명맥만 이어오던 불교 교학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지관 스님은 1975년 동국대 교수가 되어 많은 후학을 양성하며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스님은 학승(學僧)으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직책을 맡아 종무 행정에도 역량을 발휘했다. 1970년 젊은 나이에 해인사 주지를 맡아 대중을 외호했고 조계종 중앙종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동국대 총장이 되어 종립교육도량의 진흥에 헌신하였고, 2005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아 안정된 행정력으로 종단의 중흥과 사회 계도를 위해 앞장섰다.

총무원장 시절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 수행풍토 진작을 역설하면서 솔선수범한 스님은 종단 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씻고 화합의 새 장을 열었으며, 종조 도의 조사 선양 등 종단 정체성 확립에도 힘을 쏟았다.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을 질타하며 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범불교대회를 연 것은 한국불교에 극히 드문 일로서, 스님의 원칙과 소신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특히 대중결계(大衆結界)와 포살을 시행하여 수행종풍을 진작한 것은 남다른 업적으로 꼽힌다. 평소에는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모습으로 대중을 품어 안았지만, 원칙을 내세울 때는 오래 수행에서 나온 촌철살인의 단호함을 불사하였다.

1991년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열어 보다 깊이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삼학원(三學院)을 개설하여 경전을 비롯한 다양한 내외 전적을 강의하였다. 특히 삼학원에서는 한국불교 주요 전적을 차례대로 강의하여 전통 강원을 재연하는 교학의 터전을 이루었다. 연구원의 개창과 함께 1982년 경국사에서 삼천 배를 올리고 서원했던 가산불교대사림 편찬 사업도 시작하여 1998년 이후 연차적으로 사전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모든 소임을 물리치고 대사림의 완간을 위해 불철주야 진력하다 2012년 열반에 드니 세수 80, 법랍 66이었다.

지관 스님의 삶은 한 경계에 머물지 않았다. 수행은 항상 수반하는 것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강의를 중심으로 한 포교와 대중을 위한 교화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다. 주지나 총장의 직임을 맡으면서 경학 노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총무원장 시절에도 저녁에는 반드시 대사림 원고를 집필하고 밤새도록 교열에 열중하곤 했다. 안과 밖으로 향하는 열정이 시종일관 한 자리에서 만났던 삶이 곧 지관 스님의 생이었다.

전통 교학의 결정체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와 계율 연구

지관 스님은 여러 편의 논문을 집필했다. 승가교육과 관련하여 〈승가교육의 오늘과 내일〉(1973), 〈현대의 승가상〉(1975), 〈뿌리 있는 교육과 종단발전〉(1978), 〈한국승가교육의 사적 고찰〉(1980)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교학과 관련해서는 〈금강경주해 및 사기에 대한 고찰〉(1974), 〈연담 및 인악과 그의 교학관〉(1975), 〈의상의 화엄 일승법계도〉(1979), 〈한국불교에 있어 화엄경의 위치〉(1983), 〈간당작법에 대한 고찰〉(1982), 〈지눌의 정혜결사와 그 계승〉(1984), 〈저서를 통해 본 조선조의 정토사상〉(1985), 〈연수의 선정겸수관〉(1985), 〈경설상의 관음신앙〉(1988), 〈대장경 전래 및 재조본 인경고〉(1992), 〈나반신앙고〉(2000) 등을 발표했으며 〈경전상에 나타난 효〉(1977) 등 여러 논문을 썼다.
그러나 강원의 강주(講主)라는 전통 교학의 주체와 동국대학교 교수라는 현대 학문의 실행자의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지닌 지관 스님의 보다 의미 있는 업적은 저술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불교학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학문은 전통 학문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현대 학문이라는 이름 아래 전통 사유와 지식 체계가 냉대받고 외면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관점에서 지관 스님이 두 경계를 아우르면서 전통 교학을 효율적으로 현대 체계에 전승 발전시킨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지관 스님의 학문적 자취는 강사로 학인들을 지도하면서 사기(私記)를 펴낸 데서 시작되었다. 《초발심자경문사기》 《치문경훈사기》(1963) 《대혜서장사기》(1963) 《선원제전집도서사기》(1963) 《고봉화상선요사기》(1964) 《법집별행록절요사기》(1964)가 그것이다. 이 시기에 《능엄경약해》(1967)와 《선종약사》(1964)도 출간하였다.

사기는 조선 후기에 강원에서 교재의 어려운 구절이나 해석상의 차이 등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을 말한다. 조선 후기 교학의 활성화를 보여주는 사기는 여러 종류가 강원에서 대대로 계승되어 왔고, 근자에 들어서 이에 대한 사상적 분석이 시도되고 있는 의미 있는 강학 자료이다. 이 때문에 학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를 배려하여 스님은 자신의 강학 경험을 정리하여 이력과정의 각종 사기를 펴낸 것이다. 전거를 일일이 찾아내어 참된 뜻을 밝힌 사기는 스님의 학문적 자세를 보여주는 비망기로서, 학승으로서의 면모가 선연히 드러나는 초창기 업적이다. 이 사기들은 지금까지도 강원에서 애용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능엄경약해》를 비롯하여 《화엄현담강의》 《기신론해동소강의》와 같은 강의록은 교학 해석의 길잡이가 되는 저술들이다. 한국불교 교학의 중심을 이루는 화엄과 원효학에 대한 해박한 해석이 강의록에 살아 있다. 한편 《금강경오가해》 《전등록》 《선문염송》 강의록은 종사의 선에 대한 조예를 말해준다. 그리고 선교 겸통의 관점에서 《불교교단 발달사》(1977) 《조계종사》(1979)가 이루어졌다.

사기와 강의록과 같은 한국 전통 불교 교학의 교재에 대한 저술 중에서 결정체가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韓國佛敎所依經典硏究)》(1969)이다.

지관 스님은 서문에서 이 책을 펴낸 의의를 밝혔다. 현재 한국불교의 법맥 계승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달마의 법손 격외선종으로서 소의경전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제방 강원에서 중심 과목으로 배워 왔던 이력의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 수의과의 교과목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실질적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이력에 선종, 율종, 정토종을 더하여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를 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계초심학인문·발심수행장·자경문·치문경훈, 대혜서장·선원제전집도서·고봉화상선요·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대불정수능엄경·대승기신론·금강반야바라밀경·대방광원각경, 대방광불화엄경, 대승묘법연화경·경덕전등록·선문염송, 선종약사, 사미율의요략·범망경·사분율, 정토종의 모두 21개 장의 내용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해인사 강주로서 10년을 지내며 축적한 에센스가 집약된 한국불교 소의경전에 대한 다방면의 상세한 개요서이다. 특히 간행 판본에 대한 조사까지 포함된 것은 활동 무대가 대장경판이 보관된 해인사라는 환경 특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각 항목 곧 개별 경전에 대한 서술은 대체로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에서 가장 중심 되는 경전의 하나인 《금강경》을 예를 들어 보자. 첫째 해제(解題)에서 전반적인 설명을 한다. 범어명과 수록 장경, 이칭, 근본 의의 등이 여러 견해를 대비하여 제시된다. 둘째 전역(傳譯)은 한역으로, 6종의 번역과 그 차이를 기술한다. 셋째는 내용의 대요이다. 32분과에 따라 일일이 내용의 대강을 소개한다. 넷째는 《금강경》과 같은 계열인 4처 16회 반야부를 소개한다. 다섯째 과판(科判)은 《금강경》의 대의를 읊은 미륵의 80게송, 무착의 19주위(住位), 천친의 27단의(斷疑), 소명태자의 32분과를 각각 소개하고, 이들을 서로 대비하는 표를 덧붙였다. 여섯째 주석서는 인도, 중국, 한국 일본으로 나누어 각각 4종, 122종, 11종 61종을 수록하였다. 일곱째는 여섯 번역본의 문구적 차이를 수보리의 칭호를 비롯한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여덟째 전래와 유통은 모두 49종의 판본을 간기와 체재까지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아홉째는 《금강경》의 글자 수를 32분과별로 구분 제시하고 총 5,174자임을 밝혔다.

전래와 유통에서 밝힌 방대한 판본의 존재는 그 자체가 한국불교 경전 유통사로서 시기별 경전의 간행 추이와 경전의 유행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알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을 알고자 한다면 첫손 꼽힐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저서를 펴낸 중에서도 전통 불전과 짝하는 지관 스님의 역저가 계율 관계 저술들이다. 스님은 《남북전 육부율장 비교연구(南北傳 六部律藏 比較硏究)》(1976), 《비구니계율 연구(比丘尼戒律 硏究)》(1977), 《계율론》(1978), 《한국불교 계율전통(韓國佛敎 戒律傳統)》(2006) 등의 율장과 《불교교단발달사(佛敎敎團發達史)》(1977), 《조계종사(曹溪宗史)》(1979) 등 교단사를 정리한 여러 저술을 통해 한국불교 계율의 근간을 세우고 한국불교의 정체성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중에서도 《한국불교 계율전통》은 계율 연구가 집약된 책이다. 이 책은 먼저 경율과 사전(史傳)에 나타난 계맥과 남산율종의 조승(祖承)을 살펴봄으로써 계율의 의의와 전통을 시원부터 확인한다. 다음에 출가대중의 수계와 그 전승, 대승 유가계와 보살계 및 선종의 청규 전승을 자세하게 확인한다. 그리고 한국 근대 16개 계단(戒壇)의 호계첩문(護戒牒文)을 일일이 소개하여 현대 계율 전승의 직접적인 뿌리를 제시하였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굳건하게 교단의 지주인 계맥을 계승해온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현대 한국 계율의 대종을 이루는 백파계 등 주요 전승을 분석하고, 한국불교 전 시대의 계법 전수록과 전승표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에 갈마와 발로 칠멸쟁법 등 화의와 화쟁의 규범들을 모아 소개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서 지관 스님은 다중적이고 자주적인 계법의 전승을 한국불교 계율의 결론으로 제시하였다. 즉 한국불교는 사분율에 의거한 매우 강한 구족계 전통과 대승계법이 동시에 계승되고 있고, 대승계를 출가대중은 물론 재가대중에게도 적극적 수지하도록 한다는 점을 특색으로 지적하였다. 또한 불법이 쇠퇴하거나 계율정신이 소진되었을 때 원력 깊은 율사들에 의해 전개된 자서수계(自誓受戒)에 의한 서상(瑞祥) 수계 전통과 선종에서 실천해 온 청규 전통도 한국 계율의 특색으로 들었다. 이러한 계율 중시의 힘이 1,700년 동안 불법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자주적 면모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계율의 특색은 곧 한국불교의 중요한 특성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지관 스님이 체계화한 계율 연구의 의의가 있다.

스님이 특히 계율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은사 자운 스님이 한국 근대 계맥의 중흥조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다. 이런 학문적 바탕이 있었기에 총무원장 시절에 전 승도의 수행종풍 진작을 위해 대중 구성체인 현전승가의 진흥을 위하여 대중결계와 포살의 시행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시행해 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지관 스님의 말은 그런 사정을 말해 준다.

한국불교는 선교(禪敎)의 전승과 계율전통에 있어 중국이나 일본불교와는 다른 독특하고 힘 있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늘 강조해 왔지만 율장과 청규 등 불교교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승가의 대중공화전통은 인류사에 가장 독특하고 자랑할 만한 유산입니다. 그 유산을 가장 잘 보전, 전승해온 한국불교를 이웃 나라 불교도들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 토대인 가족은 물론 생산과 잉여활동을 근거로 한 사적인 소유를 단호하게 뒤로하고 오직 공적인 대의만으로 살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 절집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대단히 영웅적이기에 무상법(無上法)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꽃 속에 빙설처럼 살아가야 하니 위태롭고 힘든 여정입니다. …… 대중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라는 은사 스님과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소임 중에 결계와 포살전통을 복원하였습니다. 결계는 일체대중이 빠짐없이 공의의 현장으로 들어오게 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민주시민의 권리를 실현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대중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결계의 공간이 합법적으로 마련되면 대중들은 그곳에서 논의하고 탁마해 화합하는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 2011년 5월 〈법보신문〉 인터뷰

승단의 원만한 운영은 화합에서 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승가 공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 공의의 장에 떳떳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의 그늘 뒤에 숨어 불선업을 일삼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에 의해 실상이 왜곡되고 승단의 불행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승가는 대면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그 얼굴과 이름을 내건 당당한 대중 화합의 힘이 오늘날 한국불교를 있게 했음을 지관 스님은 확신했다. 그렇게 추진한 획기적인 사업인 대중결계와 포살은 지금도 계속되는 종단의 자체 반성의 기회이다.

금석문 연구의 새 지평

금석문 자료는 당대의 역사를 여실히 말해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비문의 주인공이라든가 금석문 제작 시의 연관 상황이 실시간 기록된 자료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뒤 수백 년 후에 일정한 관점에 따라 정리된 역사서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상황이 담겨 있다. 그런데 금석문의 주류를 이루는 비문(碑文)은 당대 최고의 문장이 지은 명문이다. 온갖 화려한 수사와 해박한 전거가 수없이 담겨 있지만 당연히 아무런 인용 전거도 주석도 없다. 따라서 고전에 두루 통달한 박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해석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관 스님의 내외 고전에 대한 해박한 식견에서 가능했던 업적이 역대 고승(高僧)들의 비문을 십수 년 강의하고 이를 책으로 엮은 《교감역주 한국역대 고승비문(校勘譯註 韓國歷代 高僧碑文)》이다. 전통시대 고승들의 비문 중에서 승려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활동하던 고려시대까지의 비문 자료 전체와 조선시대 주요 비문을 정리한 것이 신라 편 1권(1992), 고려 편 4권(1994, 1995, 1996, 1997), 조선 편 1권(1999)의 6권으로 간행되었다.

스님은 역대 고승들의 비문을 역해하고자 뜻을 낸 까닭이 난해한 문장과 그 풀이에 막혀 선승(先僧)들의 고고하면서도 찬연한 수행과 교화의 자취가 갇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고 술회하였다. 수려한 문장과 촬략(撮略)한 내용의 금석문은 역사연구의 일차 자료로서만이 아니라 그 내용에서는 사상, 역사, 교리, 철학, 민속, 문학, 서예, 미술 등 그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가치들이 어우러진 종합 문학이다. 그러나 미술과 외양에 대한 분야는 그런대로 연구되어 왔으나 내용과 사상 연구의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한국불교 금석문’이라는 강좌를 개설하여 신라 편부터 순차적으로 역주 작업을 진행하여 책으로 펴냈다는 것이다.

《교감역주 한국역대 고승비문》의 조선 편 한 권에서 다루지 못한, 그러나 훨씬 많은 양의 비가 남아 있는 조선 고승 비문은 근현대 자료와 함께 원문을 모아 《한국고승비문총집(韓國高僧碑文總集) 조선·근현대편》(2000)을 간행하여 자료를 제시하고 이후 연구에 토대가 되도록 하였다.

금석문 해석은 온갖 분야에 통달한 학식을 갖춘 박학강기(博學强記)한 이만이 해낼 수 있다. 비문에 담긴 세세한 면면들, 고승들의 구체적인 생애와 인연담, 사상의 세부적인 모습, 시대인들의 생활과 신앙 등등을 기초적이나마 탐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책 《역대고승비문》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런 성과는 고전에 두루 해박한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다. 여섯 책에 수록된 해석과 세세한 주석은 누구도 선뜻 추진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지금까지 《나말여초 금석문》이라는 고려 초 비문을 해석한 책 이외에 다른 연구서가 나오지 못하는 것만 보더라도 금석문 해석의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더 자세한 분석과 풀이가 이루어져야겠지만, 그런 작업에 이 책은 변함없는 토대가 될 것이다.

금석문 연구와 함께 자료 중시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가야산해인사지(伽耶山海印寺誌)》(1992)의 편찬이다. 《해인사지》는 해인사의 역사와 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엮은 종합 자료집이다. 다른 사찰의 사지(寺誌)도 다수 간행되었지만 이 《해인사지》만큼 방대한 구성을 갖춘 사지는 찾아볼 수 없다.

《해인사지》는 무려 28편의 많은 항목에 다시 다수의 소항목을 둔 체재로 이루어졌다. 항목이 많은 만큼 수록해야 할 자료가 다양하고 많음을 뜻한다.

제1편은 해인사의 연혁으로 여기에는 위치, 가야산, 사명, 사격(寺格) 등을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2편 해인사의 전당(殿堂)은 대장경 판전을 필두로 대적광전, 명부전, 삼성각, 응진전, 응향각, 퇴설당, 해행당, 관음전, 수정실, 궁현당, 경학원, 삼소굴, 구광루, 보경당, 사운당, 범종각, 청화당, 적묵당, 해탈문, 명월당, 국사단, 천왕문, 일주문 순서로 이들의 관련 기록을 모두 망라하여 수록하였다. 3편 국보 고려대장경판은 팔만대장경의 의의와 새긴 장소, 연판과 필체, 체재와 수량, 교정과 실물, 강화도에서의 이동, 인경 연대, 연구자료를 수록하였다. 4편 인경발문(印經跋文)에는 고려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을 필두로 20종의 대장경 간행 관련 기록을 집성하였다. 5편 경판 목록은 고려대장경과 해인사 사간장경판(寺刊藏經板) 목록 및 유학자문집판 목록을 실었다. 6편에는 조선왕조실록 중의 해인사 중수와 고려장경판 관계 기록을 실었고, 7편 경판과 해인사의 수호에서는 한국전쟁기에 이르기까지의 보존과 전래 관련 사실을 모아 수록하였으며, 8편 해인사 고기록에는 16종의 해인사 기록을 수록하였다. 9편 산내 암자에는 16개의 암자를, 10편 석불 석탑 부도 석등 비석에는 석불 4, 석탑 10, 부도 1, 석등 3, 비석 25, 정기(亭記) 1, 소고 1, 기념비 1, 정례석 1의 기록을 일일이 수록하였다. 11편은 불화와 영정, 12편은 가야산 기행문과 관련 문헌, 13편은 해인사의 유지(遺址) 기록을 수록하였다. 14편은 가야산 내의 명소, 15편은 해인사 역대 고승, 16편은 해인사 역대 주지를 수록하였다. 17편은 해인사 본말사법, 18편은 해인총림의 설치, 19편은 해인사 강원 자료이다. 20편은 해인사의 보물과 유물, 21편은 해인사의 토지, 22편은 해인사 소유 재산목록, 23편은 해인사 재적승 명부, 24편은 해인사 경내지 정화 기록이다. 25편은 해인사의 전설과 일화 8편, 26편은 해인사 전당의 편액과 주련, 27편은 각종 단편자료, 28편은 최고운 행적자료를 수록하였고 마지막에 색인을 붙여 1,250쪽에 이르는 사상 초유의 방대한 사지를 완성하였다.

사지 하나의 편찬에 이처럼 방대한 분야의 정보를 담아 펴낸 것은 장차 대사림 편찬을 향한 지관 스님의 자료 확보와 정리 중시 경향을 알게 한다.

현대 한국불교의 세계적 성과 《가산불교대사림》

지관 스님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첫손 꼽아야 할 일이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의 간행이다. 스님이 30년 동안 매진했던 작업이고 스님 이후에도 10년을 더 노력해야 완결되는 작업이다.

대사림 첫 권이 출간된 것은 1999년이다. 그러나 이미 1982년에 불교사전 편찬을 발원하고 자료 수집에 열중하는 시간을 거쳐 1991년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개원과 함께 본격적인 사전 편찬이 시작되었다. 스님의 대사림 편찬 의지는 명확하다.

1982년에 3천 배를 마치고 지은 7언 11구 300여 자의 발원문에서 역대의 수많은 구법승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법을 구해 와서 국민을 이롭게 하려는 뜻이 거룩하나 범어 한자어의 어휘를 쉽게 알지 못해 공부하는 학인들이 골치를 앓으므로 이를 해결하고자 사전을 편찬하여 한국불교를 선양하려는 큰 원력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대사림 간행사에서는 불교가 생겨난 지 2,6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그 나라마다 문화와 역사의 깊은 연원이 되어 삶의 모습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은 세기를 넘어서는 인류의 구원(久遠)한 지혜로 그 여광을 발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그리고 1,700년 역사를 간직한 한국불교는 사상과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우리 민족사를 주도해 온바, 한국불교사에서 불교대백과사전의 편찬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 교리는 방대한 체계로 이루어졌고 그 안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다양한 술어와 심오한 법상(法相)이 담겨 있어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어휘 채록과 연구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근대의 작업으로는 일본의 《망월불교대사전》이 가장 방대한 사전으로 평가되고, 우리말 사전은 1961년에 간략한 내용으로 간행된 운허(耘虛)의 《불교사전》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삼학을 연찬하는 승가의 후학들과 한국학 및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불교 술어를 정리하는 일이 더없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동남아 불교권에서 불교종합사전들이 발간되는 것을 보고 그 뜻을 더욱 굳혀 불교대사전 편찬이 불교연구와 그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불교중흥이 근간임을 자각하고 사전 편찬의 원력을 다졌다고 피력했다.

지관 스님이 1982년에 서원을 세운 이후 학교의 책임 직책을 맡아 사전 편찬에 전념하기 어렵게 되자 자료수집본부를 꾸리고 기초 자료조사를 시작하였으나 계속된 직책으로 십여 년의 자료조사 기간이 소요되었다. 1991년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편찬 사업에 들어갔다. 기존 수집 자료를 정비하고 2차 자료를 채록하며 전산화 작업의 도움으로 편수 지침을 새롭게 정비하여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연구원에 편수실을 설치하고 편찬 이념, 편찬 목표, 편수안 등을 재검토했으며, 항목의 범위와 분류 및 확정을 새롭게 검증하여 분과별 분류코드 1,232종을 프로그램화하였다.

계몽주의 시대 유산인 백과사전 편수 계획을 전면 수정해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등 불교 전통에 근거한 최대 어휘결집이라는 명분과, 전거에 의한 용례결집과 번역이라는 편수안에 의거한 한국불교 고유의 백과사전 편찬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않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사전 어휘를 한글자료화하고, 한국불교 항목을 대거 추가 추출하여 15만 항목의 기초자료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토대로 1994년에 본격적인 집필과 윤문 작업에 착수, 1999년에 제1권을 출간한 이후 연차적으로 간행하여 2013년에 14권을 간행하였고, 2020년 본책 20권과 보유 부록을 합친 전 22권의 《가산불교대사림》 완간을 예정하고 있다.

불교 연구와 한국학 연구의 토대가 되도록 하겠다는 편찬 의도는 내용 서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원전에 기초하여 내용을 서술한다는 원칙으로 서술문에 원문을 밝혀 정확한 사전을 지향한 대사림의 특색이 그것이다.
대사림 전체 15만 항목을 살펴보면 그 광범위함과 면밀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관 스님이 오랜 기간 해인사 강주를 지내며 불교 술어와 역사적 사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져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이 읽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법한 자료가 꼼꼼하게 항목으로 뽑혀 있고, 항목 추출 자료에는 반드시 전거가 달려 있다. 수십 년 동안 갖가지 책을 읽으며 오로지 사전 편찬을 염두에 두고 항목을 뽑아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산불교대사림》의 편찬 방향은 ‘편찬의 기본방침’에 잘 제시되어 있다. 대사림은 불교사상 및 문화 일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불교사전의 범주를 근본 불교술어는 물론 범불교권 국가에서 변형하거나 새로이 창출된 각종 술어도 포함하여 불교문화에 대한 특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이해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인의 불교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불교 전래 후 1,700여 년에 이르는 토착화 과정에서 정착된 한국불교 고유의 사상적 문화적 관련 항목을 최대한 발굴, 정리하여 자주적이고 종합적으로 서술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대내적으로는 한국불교 및 민족문화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와 긍지를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한국불교 문화의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인에게 불교 사상과 문화를 폭넓게 이해시키기 위해 일차적으로는 불교항목 전반에 대한 백과사전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한국의 불교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오랜 기간의 준비를 거쳐 마련된 편수원칙에 따른 1,232종의 분류코드에 입각한 항목 분류는 체계적이고 균형 있는 분류체계와 서술을 지향한다. 불교종합백과사전이 될 수 있도록 시간상으로는 불교 발생기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인도로부터 티베트 중국은 물론 구미지역에 이르기까지, 문헌상으로는 초기 불전에서부터 최근 문헌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모든 용어를 가능한 한 총망라하여 어휘를 채집 수록하는 것을 항목 선정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세부 원칙으로는 사상·공안, 언어·문자, 인물, 사건, 교단 및 의례, 문헌, 예술, 문화재, 기타로 분류하였다.

기존 불교사전의 대명사라 할 《망월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범자(梵字), 술어, 명수(名數), 경명, 서명, 불명, 보살, 명왕, 신명(神名), 천부, 귀류, 수법, 행사, 종명, 유파, 지명, 계명(界名), 사명, 당탑, 도상, 인명, 직명, 역명(役名), 물명, 동물, 식물, 비유, 풍속, 잡명(雜名), 잡어(雜語)의 30종으로 분류하였다. 60여 년의 시간 간격이 있지만 《가산불교대사림》은 현대 사회의 다기화된 지식 체계와 전산작업의 도움에 힘입어 훨씬 방대하면서도 체계적인 분류 코드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망월대사전》은 서문에서 작업자가 편찬원 신분의 집필진 18명, 집필기고 14명, 교정 7명, 지도 5명이라고 주관자인 모치즈키 신코는 밝혔다. 《가산불교대사림》은 전문연구원 20명과 해당 분야의 전문 항목을 집필 감수하는 전문연구위원 20명으로 구성된 집필진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역시 전산작업의 효율성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소수의 인원이지만 내용에서 훨씬 방대한 용량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1,200쪽으로 시작한 제1권이 13, 14권에 이르러서는 200자 원고지 2만 매 분량에 해당하는 1,570쪽으로 분량이 늘어났으나 《가산대사림》 편찬은 무리 없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관 스님이 대사림 편찬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편찬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관 스님의 대사림 편찬에서의 역할은 대사림 편찬 총괄자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권당 200자 원고지 2만 매 정도의 사전 원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직접 원고를 썼다. 아울러 자신이 집필한 원고를 포함하여 사전의 모든 원고는 일일이 직접 교정 과정을 거쳤다.

문화 전반의 다양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 방대한 종합 사전의 특성은 한 사람이 이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양이다. 그 때문에 전문 연구진과 편수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발원자 자신에게 있다. 오랫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련된 체계적인 편수안은 애초 발원자인 지관 스님의 입적 후에도 이 사업이 원만하게 회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주고 있다. 특히 스님이 자신이 집필할 예정이던 항목을 모두 집필 완료하고 입적하였고, 기왕의 연구진이 구성원의 변동 없이 그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처음 기획했던 편수안 그대로 완간할 것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사전 편찬 작업은 워낙 고난도에 무한 투자와 장기전을 요하는 작업이라 편찬을 시작한 이들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후에 출간하거나 중도에 폐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 불교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망월불교대사전(望月佛敎大辭典)》의 경우 주 편찬자인 모치즈키 신코(望月信亨, 1869~1948)가 1906년부터 1936년까지 30년 동안의 세월을 들여 편찬하였다.(1권 1931년, 2권 1,932권, 3권 1933년, 4권 1935년, 5권 1936년) 본책 전 5권, 6권 연표, 7권 색인으로 구성된 대사전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보유 내용을 완결하지 못해 쓰카모토 요시타카(塚本善隆)가 중심이 되어 1958년에 증보 1권(제8권)을 간행하고, 보유 1권(제9권)과 보유 2권(제10권)을 더해 모두 10권에 이르는 전편을 완간한 것은 1963년이었다.

이에 비해 자신의 집필 항목을 모두 완수하고 입적한 지관 스님의 혼이 깃든 《가산불교대사림》은 발원자의 의지와 손길이 그대로 살아 마지막 권까지 무난히 완간될 것을 확신한다. 이는 《가산불교대사림》이 현재 소개된 세계 불교학의 모든 성과를 반영한 최신이자 가장 방대한 세계적인 불교사전이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산불교대사림》은 구성의 방대함과 내용의 최신성에서 세계 불교사전의 으뜸 자리에 위치할 것이다. 그래서 이를 구상하고 이끌어 완성한 지관 스님의 업적은 21세기 불교학의 저명한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인류 문화의 보편적 가치는 변할 수 없다. 우리가 학문을 비롯한 현대 문화를 보다 굳건하게 이해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전통문화의 자산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토대이다. 특히 전통적 교단 형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현대 사회의 의미 있는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 한국불교에서 전통불교의 역량은 소중한 자산이다. 강원의 강주를 토대로 한국불교의 전통을 다졌고 대학과 연구원에서 현대적인 학문 체계를 따랐던 지관 스님의 성과는 전통과 현대가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하나로 결합한 데 있다. 소의경전에 대한 상세한 길잡이가 그렇게 고승비문의 현대적 해석이 그렇다. 그리고 이를 모두 집약한 《가산불교대사림》 20권에 한국불교와 세계불교, 전통과 현대의 이해가 모두 녹아들어 있다. 이를 선도하고 완결 지은 것이 지관 스님의 학문적 성과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
 

정병삼 /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박사). 간송미술관 수석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다. 주요 논저로 《의상화엄사상 연구》 《그림으로 보는 불교이야기》 《나는 오늘 사찰에 간다》 《일연과 삼국유사》 《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공저)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공저) 등이 있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