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영적 전통이 전하는 진정한 비전

존 M. 콜러 저, 허우성 옮김
《인도인의 길》
‘인도인의 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의 범위 내에서 ‘인도인의 길’의 함축적 의미를 도출해보기로 한다. 저자는 인간이 “궁극 실재에 참여한다는 기초적 비전과 인간 존재의 영적 변화라는 목적이 인도 철학과 종교 사상을 인도해 왔고 인도인의 길을 형성해왔다.”고 말한다(28쪽). ‘인도인의 길’은 그러한 비전과 삶의 목적을 추구한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인도인들의 삶의 길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도라는 국가 혹은 인도의 문화를 이룩한 주체들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인도인들이 추구한 삶의 길을 이해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고대 선사시대에 인도아대륙에서 인도인 선조들의 집합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하고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이 미친 영향도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인도인의 길의 몸통은 무엇보다도 베다인들과 인더스 문명을 이룩한 토착민들에 의해 이룩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48-49쪽).

‘인도인의 길’이 함축하는 전체론적 비전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새삼 물음을 던지게 된 계기는 철학이론들에 대한 비중은 다른 철학서들에 비해 적은 반면, 칼리, 끄리슈나 같은 학문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힌두교 신들을 의외로 자세히 다루기도 하고 모슬렘들의 인도 침입을 비롯해 이슬람교의 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저자는 고대, 중세, 근현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역사적 흐름의 틀을 내용으로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주요한 주제들로 채운다. 문화적, 종교적 측면을 보면 가장 오래된 특징인 희생제의를 비롯해 시바, 칼리, 끄리슈나같이 힌두교의 주요 신들을 꽤 상세히 다루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의 기초 교리를 별도로 다루는 의외성을 보이기도 하며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만남에 의해 싹튼 시크교 그리고 힌두교와 수피즘의 상호작용에 의해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문화적 현상들을 상술한다. 이 책의 이 같은 구성을 볼 때 저자는 저자가 섭렵한 인도 철학, 종교,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토대로 저자의 눈에 비친 인도의 이미지를 투영해 보고자 한 것 같다. 저자는 철학을 고차원적인 것으로 부각시키지도 않고 다신교와 우상숭배로 특징지어지는 대중신앙을 저급한 것으로 경시하려는 의도도 엿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구성을 통해 철학적 지식보다 더 상위 범주인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삶과 문화의 본질은 영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에게 가장 큰 범주는 삶이며 종교, 철학,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은 그 부분들이다. 이 모든 분야의 학문은 삶의 질을 최고의 수준인 영적인 차원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실질적 수단들이어야 한다.

이 책에서 철학 이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를 찾아보면, 특이하게도 저자는 방대한 인도 철학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체계 중심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제 중심으로 접근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인도에서 철학 체계들이 생겨난 계기가 유물론자, 결정론자, 회의론자들의 도전에 응수하기 위해서 실재, 인과율, 지식에 대한 합리적인 이론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507쪽). 인도철학적 교의에 따르면 실재는 직접적 통찰을 요하며 논리적인 철학적 지식은 이성의 산물이며 허구적이다:

실재 그 자체는 모든 개념, 이론, 견해의 저 너머에 있다. (중략) 그 실재가 갖는 운동의 충만한 풍요로 향해 열려 있는 완전한 개방성을 통해서만 실재는 정각 안에서 경험될 수 있다. (중략) 유기적이고 상호 관련된 실재를, 개념이나 이론이라는 논리적 구성물로써 접근할 때 실재를 분리된 파편으로 쪼개버리고 이 파편들을 실재 자체로 오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유희하는 아이를 정지된 사진으로 찍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중략) 우리의 개념적 구성물도 존재의 흐름을 고정적 개념과 이론 안으로 ‘얼리고’ 있다(559-560쪽).

초월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를 아우르는 인도철학에서 논리적인 철학 이론은 상대적으로 세속적 지식에 속한다. 인도의 영적 전통이라는 몸통에 비해 철학 이론들은 가지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해서 철학 이론이 영적 전통으로서 인도인의 삶에 점하는 위치가 이 책에 할애된 비중에 걸맞을지도 모른다.

철학자들이 이론에 매몰된 상태에서 빠져나와 철학을 삶의 맥락에서 되살려낸다면 철학은 다시 환영받을 것이다. 죽은 철학이 자유로 비상하려면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다. 우리의 자아는 (중략)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만들어진 자아이다. 자아를 영원하고 불변의 실재로 여기는 우리 생각이 우리 자신의 존재의 생생한 실재로 오인될 때, 우리는 (중략) 모든 격정과 생명력을 그 이상적 자아의 손아귀에 맡길 것이다. 이것이 두카 즉 실재에 대한 무명에서 초래된 소외이고 불안이며 고다(560-561쪽).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각 장에서 다뤄지는 주제와 관련된 뛰어난 통찰로 넘쳐난다. 그러한 통찰은 철학이론서들을 아무리 읽어도 찾을 수 없는 지적 터득의 기쁨을 준다. 예를 들어, 야즈냐(희생축의적 제의)의 의미가 삶이 존재의 신적 에너지의 수혈을 통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창조의 시원적 기운들에게 우리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388쪽), 궁극 실재의 힘은 속박 안에서 업으로 경험되는데, 이 업은 과정들과 사건들을 연결해 주는 행위를 통해서 생성되고 방출된 에너지 유형들이라는 것(36쪽), 진리의 검증은 실천이라는 것(566쪽), 자신의 다르마를 수행한다는 것은 실재에 부합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187쪽) 등이다. 다르마의 교의는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가장 뛰어난 통찰은 인도의 영적 전통을 관통하는 전체론적 비전이다. 인도의 영적 전통을 이루는 양대 산맥인 우빠니샤드와 불교 모두 전체론적 비전을 내포한다: “존재의 모든 형상이 그것들의 존재 바탕으로서의 브라만 안으로 결합한다.”(157쪽) “공 이론은 모든 과정의 상호 의존성을 선포하고, 존재들이나 요소들이 그것들 자신의 본성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를 공격한다.”(558쪽)

저자는 서구에서 탈근대적, 철학적, 문화적 변혁 이후의 학문적 추세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인도인의 길’이라는 타이틀 아래 인도의 영적 전통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인 학문의 추세를 볼 때 원자론적 세계관이 비판받고 유기체적 세계관의 등장 이후 세계관의 문제에 있어 전체론적(holistic) 접근법이 지배적이다. 물론 일부 다르게 보는 학자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 문화적(종교, 철학, 정치 등 포함) 배경과 함께 인도인들의 삶을 획기적인 부분적 사건들을 선별하여 묘사하면서 그것이 어떤 특징을 지닌 영적 전통인지를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 자세로 보여주는 데 충실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선별한 소재들, 예를 들어 인도의 르네상스를 이끈 4인의 인도 사회지도자들 등을 생각할 때 저자는 영적 전통을 이룬 인도인들 삶의 길이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 이 시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실천적 지혜의 원천이라고 권하는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인도인들의 문화, 철학, 종교에 관해 번뜩이는 통찰을 담아내려 부단히 애쓴 것도 삶에 응용 가능한 실천적인 지혜로 전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우빠니샤드의 대문구인 “탓 트밤 아시(내면적 자아는 궁극적 실재와 동일하다)”에 함축된 전체론적 비전은 “자아라는 실재는 분리나 소외가 아니라 만물의 실재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실존의 영적 중심은 존재의 완벽한 양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732-733쪽).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사회는 자아들 사이의 유기체적 관계 안에 존재론적 뿌리를 두고 있고, 각 자아는 궁극 실재의 가장 내밀한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733쪽).

저자는 이와 같이 인도의 영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체론적 비전이 삶의 기초라고 천착한다. 인도의 영적 전통은 그 독특한 문화적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수용가능한 보편성을 담고 있다. 비록 문화적 토양은 다르더라도 우리가 전체론적 비전이 의미하는 살아 있는 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신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존재의 생명력을 살려내는 길일 것이다. 이것이 삶의 의미이다.

이 책이 걸작인 이유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인도의 영적 전통의 본질인 영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도 땅에서 그 오랜 세월동안 전개되어 온 인도의 문화를 간접적이지만 그 어떤 책이 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깝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라 이론에 살아 있는 인도 문화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번역자의 작업에도 찬사를 보낸다. 항상 번역서를 읽으며 직면하는 문제는 원전과 대조해 볼 필요성을 느끼는 것인데 이 책의 번역은 영어와 한국어의 구문론적 차이에 따르는 번역상의 까다로움을 매끄럽게 극복했을 뿐 아니라 내용의 깊이를 매우 적절한 용어로 풀어내어 이해의 흐름이 끊기질 않게 한다. 가장 찬사를 보내는 부분은 영적 질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번역의 백미는 끄리슈나가 브린다바나에서 여인들에게 남성으로서 신적 매력을 발산하는 이야기에 대한 부분이다. 학자이면서 그러한 로맨틱한 이야기에 담긴 질적 요소를 필자 개인적으로 세포를 깨울 만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 책은 인도철학에 대한 이론 지식이 축적된 인도철학 전공자들이 추상적 이론 지식의 벽을 넘어 인도인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처방으로 적합할 것이다. 또한 학자적 역량을 지닌 비전공자들이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정통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할 때 적합한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현 시대인들이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이 시대가 점하는 의미를 성찰해보고 바람직한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와 대안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도인의 길에 등장한 모든 사건과 철학적 종교적 이념들을 영적 전통이라는 장에 끌어들여 지혜로운 현실적 대안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적 발전이라는 선택의 여지 없는 유일한 목적을 추구해온 우리나라에는, 유교적 소양이 다분한 우리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돈을 우상시하는 졸부의 근성이 팽배해 있다. G10이라는 국제적 위상을 지닌 경제적 통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에 강박을 느끼고 창의성이 폐쇄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괴리를 매울 정치적, 문화적, 가치론적 이념들과 실천 수단들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책 속에 묘사된 인도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우리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상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도외시됐던 간디가 제시한 이념들에 다시 관심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이상을 외면하려는 것은 현실에 대한 탐욕스러운 집착 때문이다. 간디가 말했듯 인간은 진실한 만큼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길을 외면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일 뿐 일보도 밝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상적 진리를 이념으로 믿고 추구하다 보면 이상이 현실이 된다. 그 과정이 진정한 진보다. 이상을 외면한 진보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와 진보는 통한다.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것은 전통적 가치를 찾고 지키는 일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여 실천하는 일 모두 진리에 무지한 인간에게는 끝없는 자기극복의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즉, 누구도 자신들이 옹호하는 진정한 가치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 ■

이자연 / 경희대학교 철학과 강사.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인도철학(인도 바나라스힌두대학교)과 현상학(독일, 마인쯔대학교) 분야에서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사념처 수행과 호흡에 대한 사띠 수행의 관계, 샹까라의 수행관과 식(識, vijñāna)〉 “Mindfulness Meditation as a Therapeutic Method for Philosophical Counseling” 등과 저서로 《제5의 물결 녹색인간》(공저)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경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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