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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독일 내 한국불교와 신도 현황 /만프레드 후터
만프레드 후터 mhutter@uni-bonn.de / 혜유 역 buddhanatur@daum.net
[59호] 2014년 09월 01일 (월) 만프레드 후터 mhutter@uni-bonn.de

독일 인구는 현재 약 8,200만 명에 달하며, 독일은 오랜 기간 개신교와 가톨릭의 영향권에 있었다. 지금까지도 인구 대부분이 개신교 혹은 가톨릭 신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비기독교 신자들이 점차 발생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종교의 다원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이는 1960년대 이슬람교도인 보스니아인 및 터키인들이 취업을 위해 독일에 이주해 왔고, 그 이후 티베트 승려들과 많은 베트남 난민들이 독일에 정착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를 통해 독일이 다종교 사회로 나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독일 내 불교가 알려진 것은 19세기였다. 1988년 프리드리히 치머만(Friedrich Zimmermann)이 상좌불교의 원전을 근거로 불교입문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 불교는 소수인들만의 종교였으며 별로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58년 독일 내에서 최초로 종파를 초월한 불교 상부 조직인 독일불교연합회(Deutschen Buddhistischen Union)가 설립되었는데, 당시 독일 내 불자 수는 약 2,000명에 불과했다. 1960년대 초 독일의 경제 발전으로 아시아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학 또는 장·단기 취업을 위해 독일로 이주하면서 불교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 독일에 온 아시아 불자들은 대개 한국인과 일본인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아시아 내 정치적 혼란으로 스리랑카, 베트남 불교도들이 독일로 망명했으며, 태국 불교도들 또한 독일에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들은 30년 이상에 걸쳐 독일 내 불교의 다원화에 기여했다.
최근 불교 현황에 따르면 독일 내 베트남계 불자 수는 약 6만 명, 태국 불자 수는 4만 5천 명에 달하여 이 두 그룹이 독일 내 아시아계 불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 번째로 큰 아시아 불자 그룹은 한국인이다. 독일 내 모든 아시아계 불자 수는 약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라인-마인 지역(Rhein-Main-Gebiet) 및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 그중에서도 특히 뒤셀도르프(Düsseldorf), 루르 공업지대(Ruhrgebiet), 하노버(Hannover)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 한국 이민자

현재 독일에는 약 3만 2천여 명의 한국인들(그중 북한인은 1,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 다수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 및 프랑크푸르트(Frankfurt)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유럽에서 독일 한인 사회는 영국 다음으로 크다. 독일 내 전체 한국인 중 약 12,000명이 기독교인이다. 그중 3분의 1은 가톨릭에 속하며, 3분의 2 정도가 개신교에 속한다. 한국 가톨릭 교인들은 독일 가톨릭 교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의 종교 활동을 통해 독일 가톨릭 신도들은 한국 문화를 배운다. 반면 한국 개신교인은 독일 개신교인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예배를 본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한국인들에게 타향에서 한국어를 고수하고, 한국 지인들과 사회적 만남을 갖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내 한국 불자 수는 약 1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기독교도와 불교도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인 숫자는 한국 본토에서도 그러하듯이 특별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인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한국 이민의 역사는 50여 년 전 독일과 한국 간 체결된 파독 협정에 의해 시작되었다. 1963년 11월 16일 첫 한국인 광부들이 루르 공업지대의 새 일자리를 찾아 독일에 도착했다. 1953년 6·25 전쟁 후 서독에는 일정 수의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고, 동독에는 북한 유학생 및 약 600여 명의 북한 고아들이 있었으나 1962년 북한과 동독 간 교류가 중단되면서 이들은 북한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한국 유학생들은 공부를 마치면 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첫 파독 광부 263명은 1963년 12월 21일~27일 사이에 독일에 도착했다. 이후 1977년까지 약 8천 명의 한국인 광부들이 루르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이들 파독 광부 대부분은 전문 광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내 피폐한 경제 상황 때문에 구직 기회를 위해 한국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1966년 발효된 파독 간호사 협정을 통해 약 1만여 명의 젊은 한국인 여성들이 독일로 오게 된다. 1970년대에 숫자 변동이 많은 이유는 고용 계약 기간이 3년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간호사들은 3년이라는 제한된 체류 기간 및 주로 기숙사에 생활했으므로 초창기 독일 사회에 동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종교 단체도 구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독일 내 무기한 체류가 가능해지면서 상황이 변하게 되었다. 계약직으로 독일에 온 한국인 중 절반 이상이 독일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이들 한국 근로자들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동화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여기에 종교단체도 공헌했다. 1960년대 후반경 이미 독일 내 한국 개신교도들을 위한 종교 모임과 목사들의 목회 활동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인들의 첫 가톨릭 모임들이 형성되었으며, 정기적으로 미사가 개최된다. 이러한 작은 한국 교회 모임들은 교회 구조 덕분에 독일인들과의 교제를 위한 교량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초기 한인 사회와 독일 사회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독일인들과의 혼인을 통해 한국인들의 독일 내 체류 가능성 또한 한층 개선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지난 30여 년간 독일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우수한 교육도 기여한바, 한인 2세 중 70% 이상이 고졸 혹은 대졸자이다.

2. 최초 불교의 흔적들

한국 이민자들이 서서히 독일 사회에 자리 잡아 가면서 불교도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이민자들을 위한 최초의 불교 조직 단체는 일본 니치렌종이었다. 니치렌종은 일본 불교 개혁파인 니치렌(1222~1282)의 불교 해석에 근거하고 있으며, 20세기 초 일본에서 생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소카 가카이는 창가학회(가치창조협회)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일제 식민 종교’라는 이유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 종교의 수용 관련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한국인 광부들이 독일 내 니치렌종에 가입하여 일본 이민자들과 함께 불교를 수행했다. 한국인 니치렌종 불자들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을 니치렌종에 교화시켰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 니치렌종의 신도 수는 뒤셀도르프(Düsseldorf),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카이저스라우터른(Kais-erslautern)을 중심으로 약 40여 명 정도로 최고에 달했다. 1994년 독일 주둔 미군의 철군으로(이로 인해 한국인 부인들 또한 미국으로 귀국) 니치렌종의 신도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이와 더불어 종교 내부의 분열은 독일 내 한국 니치렌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3년 창가학회 일본 관장인 다이세츠 이케다(Daisetz Ikeda)는 일련정종(日蓮正宗)파와 결별하고 국제창가학회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을 재조직했다. 독일 내 대부분 니치렌종 불자들(일본인과 독일인 소수)은 새롭게 결성된 조직에 남았지만, 한국인 니치렌종 불자들은 이러한 니치렌종의 구조 및 내용적 변화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한국인 불자 수는 일본인 불자 수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였으며, 미군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이 미국으로 귀국함으로써 한국인 불자 수는 더욱 감소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 니치렌종 불자들의 자립적인 종교 단체 활동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마침내 1990년대 중반 독일 내 최초 한인들의 불교 활동 형태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한국인만이 독일 지부 국제 소카 가카이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3. 원불교 세계화를 위한 전도사로서 이민자

원불교는 현재까지도 독일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16년 대각을 한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이 불교 개혁을 통해 원불교를 창설했다. 박중빈은 1924년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조직화하기 위해 불법연구회를 설립했다. 또한 박중빈은 재가신도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수월하게 하도록 한문으로 된 불교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복잡한 불교 의례를 간소화했다. 기독교의 일요 예배에 착안하여 일요일마다 법회를 개최했고, 재가신도들의 적극적 법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찬불가를 도입했다. 박중빈의 제자인 송정산과 김대산은 박중빈의 가르침을 체계화하여 한국 전역에 원불교 교세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독일 내 원불교 유입은 원불교 교조 100주년 탄생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원불교 세계화와 관계가 있다. 당시 원불교 종법사인 김대산은 원불교가 통합 종교로서 인간 이익을 위해 세상에 알려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먼저 미국, 캐나다, 일본, 태국, 프랑스, 독일에 원불교 센터를 설립하는 계획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1981년 최초로 원불교 교무가 독일 쾰른(Köln)을 방문하여 독일 원불교 센터 설립 가능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1984년 유학생으로 온 두 명의 교무가 독일에서 원불교 활동을 시작하여, 1986년 4월 8일 독일 쾰른에 ‘원불교 유럽 교당’이 등록되었다. 한국인 원불교 교무와 포교를 담당하는 대변인이 독일에 파견되어 이 교당을 이끌었다. 1987년 원불교 교무는 공식적으로 독일 내 원불교 포교 작업을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까지 원불교 신도 수는 약 70여 명 정도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 신도들은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루드비히스하펜(Ludwigshafen), 쾰른(Köln),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아샤펜부르크(Aschaffenburg), 마부르크(Marburg)에 지역 교당을 세웠다. 초창기 10여 년간 원불교의 특징은, 독일 신도들의 경우 한국인 부인과 함께 원불교 교당을 다니는 독일 남성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원불교 활동의 주목표와 대상이 독일인과 결혼했거나 한국과 떨어져 거주하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불교에서 멀어진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불교 초기 불자 중 일부는 한국 교회나 성당에 소속되었다가 개종한 경우였다. 원불교 포교의 주된 목적은 낯선 문화인 독일 환경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고유의 한국 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변화를 살펴볼 때 나타나는 특징은 독일인들(한국과 문화적 뿌리가 없는)이 각 교당의 명상과 법회에 참석하는 빈도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각 교당 행사에 참석자 수는 별로 많지 않다. 현재 중심 교당은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교당과 베르기쉬-글라트바흐(Bergisch Gladbach) 교당이다. 베르기쉬-글라트바흐 원불교 교당에서 개최하는 매주 일요일 11시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신도 수는 평균 8명 정도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 개최되는 다도명상에 참석하는 숫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2명의 교무가 교당을 이끌고 있고, 이들은 2007~2008년 한국 원불교 본사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과거 방앗간을 교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독일뿐 아니라 이웃 국가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이점을 지녀 중요한 교당으로 승격한 베르기쉬-글라트바흐 교당에서 열리는 원불교 4대 특별법회에는 일반 법회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 특별법회는 신도가 아닌 일반 한국인들과의 교류 기회로도 활용된다. 이 4대 행사란 새해 1월 1일, 부처님오신날인 4월 8일, 원불교 교조 대각일인 4월 28일, 원불교 설립일인 8월 21일을 말한다. 이 4대 행사는 여타 불교 행사와 달라서 종교사적으로 흥미롭다. 원불교의 경우 부처님오신날만을 한국 대승불교의 전통에 따라 치르고 있다. 양력 1월 1일에 새해 법회를 개최하는 것은 불교에 근간을 둔 것이 아니라, 불법의 세계화를 위해 새로운 종교로서 원불교를 서양 전통과 의식적으로 합일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교조 대각일과 원불교 설립일은 원불교 자체 역사와 관련된 행사이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불교 종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종파의 설립자 또는 위대한 스승의 축일을 기리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원불교의 경우 교조 대각일과 원불교 설립일을 부처님오신날과 같은 차원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교의 전범적 개혁이라는 원불교의 특별한 위치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원불교는 한국불교의 주된 흐름에서 분리되어 완전한 독자적 형태를 지니게 된다.

4. 한국 선 전통과 조계종

한국불교의 역사는 약 1700년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일제로부터의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 한국불교는 수차례에 걸쳐 조직적·구조적 개혁을 거친다. 1967년에 한국불교는 조계종, 태고종, 법화종, 진각종, 원불교 등의 대형 종단들을 최초로 조직적으로 결속하게 된다. 이 결속 조직의 이름 및 임원 숫자도 수차례에 걸쳐 변경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종단은 1962년에 설립된 조계종으로, 이 종단에는 결혼하지 않은 비구 및 비구니만이 소속될 수 있다. 밀교로 구분되는 진각종과의 차이점은 조계종의 수행 방식이 선불교라는 것이다. 조계종의 본사는 서울 소재의 조계사이며, 이 종단에 현재 3,000개의 절과 약 12,000명의 비구, 비구니가 소속되어 있다. 조계종의 스님들이 국제 종교 행사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7년에 조계종의 주요 사찰인 해인사 스님들이 독일과 한국 간의 문화 및 종교 교류 목적으로 독일의 로르쉬 수도원(Kloster Lorsch)을 방문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 밖에도 조계종은 독일 내 모든 한국 선불교 사찰 및 이들의 활동에 대한 소관처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선불교는 1990년까지는 독일에서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으며, 일본 선불교만이 독일에 알려졌고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한국 선불교는 확장기로에 있는 일본 선불교와 비교하여 조금씩 독일 사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에 서술된 3개의 사찰이 주목할 만하다.

1) 베를린 국제선원

독일에서 한국 선불교의 시작은 조계종 소속의 스님이 여러 도시에서 참선 강좌를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참선 강좌는 조직적이지 않았으며, 비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1994년 ‘베를린 불교회’에서 정기적으로 경전 독경(특히 조계종에서 인기 있는 《금강경》), 법문, 참선, 서예와 같은 강좌들이 개설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영산성도 스님이 ‘베를린 국제선원’을 설립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성도 스님은 한국의 고승인 만공 스님(1871~1946)과 혜암 스님(1884~1985)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1970년대부터 서구 여러 나라에서 선 수행이 일상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불교 형태라는 것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99년 10월부터 선원은 베를린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뿐 아니라 독일인들도 선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베를린 국제선원의 선 수행은 좌선을 통한 화두참선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매일 정기 예불(새벽 5시, 오전 10시, 오후 5시)이 개최되고 있다. 정기 예불 외에도 매월 3일간의 용맹정진과 매년 두 차례 10~15일간의 참선수행을 통해 선 수행을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2) 독일 관음선종

1990년 조계종 선 전통에 근간을 두고 있는 관음선원이 베를린에 설립되었다. 관음선종은 1972년 한국의 선사 숭산 스님(1927~2004)에 의해 설립되었다. 숭산 스님 또한 만공 스님 및 그의 제자인 고봉 스님(1890~1962)의 계보를 잇고 있다. 숭산 스님은 미국, 동유럽, 서유럽 등 해외에서 활동한 첫 선사이며, 살아생전 20만 명의 사람들에게 한국 선불교를 전파했다. 조계종은 숭산 스님이 불교에 관심을 보이는 신도들을 지나치게 빨리 법사로 인가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개신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스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조계종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48년 출가했다. 스님은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1972년 도미했다. 미국에서 선 센터를 설립했으며, 이 센터는 국제 관음선종의 본체가 된다. 국제 관음선종은 현재 수많은 국제 선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숭산 스님의 선불교 가르침은 스님의 강연을 기초로 하여 작성된(그중 일부는 제자들이 발간) 여러 서적을 통해 알려졌다.

숭산 스님의 미국의 첫 제자 중 한 명이 유태계 폴 야콥 펄(Pole Jacob Perl)이다. 폴 야콥 펄은 1972년부터 숭산 스님과 교류가 있었고, 그로부터 20년 후 숭산 스님에게서 관음선종의 유럽 본부 주요 법사로 인가받아 우봉이라는 불명을 받았다. 우봉 스님은 2008년부터 베를린 센터에서 최고직의 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법사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베를린 센터는 유럽 관음선종 본사의 위치로 승격되었다. 우봉 스님은 2013년 4월 17일 열반에 들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관음선종은 한국에서 직접 독일로 유입된 것이 아니고 숭산 스님의 영향으로 미국을 거쳐 독일로 들어왔다. 이 사실은 관음선종에 ‘국제적’이라는 방향성을 부여했으며, 이는 임원들의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여타 한국불교 사찰과 비교해볼 때, 관음선종에는 독일인 불자와 수행자 수가 한국인보다 훨씬 많다. 베를린 센터 외에도 드레스덴(Dresden), 함부르크(Hamburg), 쾰른(Köln), 바트 브람슈테트(Bad Bramstedt) 센터가 있으며, 모든 센터는 유럽 내 여타 센터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센터들에서는 정기적인 참선 수행 외에도 강연, 정기적인 용맹수행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관음선종이 다른 어떠한 한국불교 종파보다 불교적인 배경 없이 성장한 서구인들에게 더 강력히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선종은 아시아 지역의 불교가 북미와 유럽으로 전파된 예로서, 국제적인 면모를 띠고 있으면서도 한국 조계종과의 구조적 연계로 인하여 한국적 고유성 또한 보존하고 있다.

3) 한마음선원

독일에 또 다른 한국 선 전통 사찰인 한마음선원이 1996년 대행 큰스님에 의해 설립되었다. 대행 큰스님(1927~2012)은 1945년에 조계종에 출가했고, 1950년에 당시 조계종 종정이신 한암 스님(1876~1951)의 제자가 되었다. 출가 후 잠시 부산에서 보살행을 했고, 그 후 1960년대까지 거의 10여 년에 걸쳐 산중에서 홀로 고행과 수행을 했다. 이 시기 대행 큰스님의 수행에 대해 스님의 행장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내면의 소리는 나에게 길을 일러주었고 항상 내가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다. 한번은 밤중에 길을 걷는데, 갑자기 다리가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니 바로 한 걸음 앞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였던 것이다……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을 참나가 행했던 것이다. 나를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간 것도 참나였고, 죽음 직전에 나를 구한 것도 참나였다. 나는 한 번도 먹을 것, 혹은 겨울옷 한 벌도 챙긴 적 없이 다녔지만, 이런 식으로 나는 10년 넘게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은 참나, 주인공의 힘이었다.” 1950년 말부터 큰 깨달음을 얻은 비구니 스님이 있음이 알려져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신들 삶을 짓누르는 일상의 문제들에 대한 선사의 도움과 충고를 얻기 위해서 스님을 찾아왔다. 그 결과 대행 큰스님은 1972년 서울 남쪽에 위치한 안양에 첫 번째 한마음선원을 건립했다. 한마음선원은 안양 본원을 비롯하여 16개의 국내 지원이 있으며 미국, 아르헨티나, 태국, 브라질, 캐나다, 독일에 10개의 해외 지원이 있다. 이들 선원에서 대행 큰스님은 2012년 5월 입적할 때까지 어떻게 사람들이 그들 내면의 불성을 발견하고 계발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일상의 삶을 참나, 불성에 근거하여 꾸려나갈 수 있는지 설법했다.

카아스트(Kaarst)의 독일 선원에는 네 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상주하며, 사찰의 일상 이외에도 매주 11시에 일요법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명상과 설법의 시간을 제공하고, 또 수요일 저녁에는 정기적으로 참선법회를 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선원들과는 다른 한마음선원만의 독특한 점이라면 큰 불교 경축일에 열리는 행사에 독일 전역에서, 또 인근 국가들에서도 신도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연중 행해지는 의식들 중 부처님오신날에 행해지는 경축 행사는 한국 대승불교 전통의 한마음선원에서 그 구심점을 이룬다. 불자들이 참석하여 《천수경》을 독송함으로써 올해의 이 중요한 법회를 열어갔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중심이 되는 경전으로 독송에 40여 분이 소요되는데, 명상적 예식의 성격을 가진다. 연이어 신도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부르는 선법가 합창이 분위기를 충만하게 했다. 부처님오신날이라는 종교적 경축일에 대행 큰스님의 업적과 가르침을 되새기고 부처님오신날에 대한 대행 큰스님의 설법과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 종교 행사가 종료되었다. 총 두 시간이 넘는 행사였다. 불교를 일상 삶에 직결시켜야 한다는 것이 대행 큰스님의 근본 가르침인데, 이에 대한 실천인 듯 신도들의 점심 공양 또한 종교의식으로 행해졌다. 공양은 종교의식임과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공동의 문화적 유대감을 공고히 하기 위한 세속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종교, 일상의 삶 그리고 문화가 정확히 구획되어 있지 않음은 법회 중 합창 공양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노래를 통해 종교적 내용과 한국의 정체성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부처님오신날 행사에 이어 당일 저녁예불은 경전독송, 좌선, 비디오 법문, 공부 체험에 대해 서로 대화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 외에 한 해의 중요한 행사로서 새해맞이 촛불재와 칠석과 백중이 있다. 위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절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신도들과 손님들이 많이 온다. 또한 연중 2~3회 주말 템플스테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절에서 생활하면서 선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런 활동들은 한마음선원이 현재 독일의 다른 한국 선불교 단체들보다 더 많이 알려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매해 가을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정기적으로 불교 서적을 소개함으로써 한층 더 심화된다. 이 국제적인 큰 행사에 불교 서적 강독과 설법을 함으로써, 한마음선원의 신도들은 많은 방문자들에게 한국불교의 내용을 알릴 뿐 아니라, 한국의 뿌리를 가진 시민들의 종교 수행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독일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제공한다.

5. 맺는말

독일에 거주하는 동양 불교도들 중 한국불교도들은 베트남과 태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불교도들은 독일 내 불교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일과 한국 사이의 문화 중개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첫 이민자들이 독일에 온 지 50여 년이 경과한 현재 성공적인 사회 통합에 대한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한마음선원 또한 약 10여 년 전부터 독일어로 된 불교 서적들의 번역·출간 작업을 함으로써, 지난 50년간 한국과 독일 사이의 ‘문화 중개자’라는 중요한 역할에 참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선불교는 일반 독일인들에게 불교의 다양성을 인지시켜왔다. 결론적으로 한국불교가 지난 20여 년 동안 독일 내 불교 다원화에 기여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여타 아시아 불교 종파와 더불어 한국불교 종파 또한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는 독일에서 불교가 낯설거나 머나먼 나라의 것이 아닌 21세기 유럽 문화사 일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

만프레드 후터(Manfred Hutter) / 독일 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학장. 오스트리아 그라쯔 대학교 신학대학 졸업(석사·박사 학위 취득). 오스트리아 그라쯔 대학교, 빈 대학교, 뷔쯔부르크 대학교에서 비교언어학, 동양학, 고대 역사학 석사학위와 철학박사 학위 취득. 오스트리아 그라쯔 대학 종교학과 조교수 등을 거쳐 2,000년 독일 본대학교 비교종교학과 정교수에 임용되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독일 종교학 연합의 아시아 종교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혜유(慧有) /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Dortmund Universität) 졸업(특수교육학전공 교육학 석사). 대행 스님을 은사로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 출가. 한마음선원 독일 지원에서 포교. 현재 독일 본(Bonn) 대학 비교종교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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