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해석과 독자적 주석 연구 돋보여

1.
한 길을 오래 간다는 것은 그 길과 그 가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길의 울림이 있을 것이다. 한 길을 오래 간 사람의 그 길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공명(共鳴)을 줄 것이다. 그 공명하는 울림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평래 교수는 〈여래장설과 원효〉(1987)에서 원효의 불교학은 《대승기신론》의 여래장 사상을 토대로 삼은 것이며, 원효의 《소》 《별기》 사상의 중심 역시 여래장 사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 책은 여래장 사상에 바탕한 《대승기신론》 해석이 저자의 언어로 녹아 있는 책이다. 여래장 사상을 강조하며 주석적 탐구를 통한 저자의 이해를 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구 경향은 일본과 우리나라 불교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평래 교수가 일본의 여래장 사상 연구 흐름을 잘 소개하면서 이와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국내의 다른 원효 사상과 《대승기신론》 사상 연구들과 대비되면서 이에 대한 학문적 쟁점들을 낳을 수 있는 틀이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은정희 교수는 원효가 《대승기신론》을 유식과 중관의 지양, 종합으로 보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박태원 교수는 〈대승기신론 사상평가에 관한 연구〉(1990) 이후로 줄곧 《대승기신론》이 유식 개념과 여래장 개념을 결합시키고는 있지만, 이들을 지탱하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유식학이고, 《대승기신론》 내의 여래장 개념이 유식학적 통찰을 보강해 전개하는 보조 개념이라는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통해 나타나는 원효 사상도 여래장 사상이 아닌 유식학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들은 《대승기신론》에서도 언급되듯이, 부처님의 말씀이 일음(一音)이기도 하지만 원음(圓音)이어서 이류(異類) 중생들이 각각 그 받아들여 이해하는 연[수해연(受解緣)]에 따라 자신의 언어로 다양하게 알아들으므로 중음(衆音)이라고 하는 것처럼 기신론적이기도 하며 불교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학적 이해가 가능하다면 오히려 일음(一音)에 공명(共鳴)하는 중음(衆音)으로서 더 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나와야 하고, 더 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관한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금년에 출간된 이평래 교수의 《대승기신론 강설》은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학자 중 한 분인 저자가 《대승기신론》의 한문 용어들과 산스크리트 용어들을 자기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불교 전공자에게도 어려운 전문적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불교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또한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쓰려고 했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이다. 내 생각에 불교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불서를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를 가장 큰 장점이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대승기신론》 용어들을 의역하기도 하고 또 현대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용어 해설을 하면서 단지 사전적 의미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대승기신론》 안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공들여 맞춤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보통 사람들이 불교 공부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만나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불교용어 해석의 어려움일 것이다. 대개의 기존 《대승기신론》 번역서나 역주서 혹은 《대승기신론》을 강의한 책들이 자의적 해석으로 기울거나 전문적인 용어들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대승기신론》에서 중요한 일심이문(一心二門)은 도대체 무엇이고, 이문인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이 도대체 무엇인지 현대의 일상언어로는 처음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의 《대승기신론》 번역이나 연구서들에서는 거의 굳어져 전문용어로 사용한다. 이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각각 ‘마음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는 부문’ ‘마음의 현상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부문’으로 풀이하여 설명하고 있다.

목차에서도 그 해석된 의역이 잘 드러난다. 저자가 편의적으로 본 저서를 세 부분 즉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어 놓고, 서분은 ‘머리글’ 정종분은 ‘본디 글’ 유통분은 ‘맺는 글’이라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문 중에서는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쓰고 있기도 하여 일관되게 의역된 번역어들을 쓰고 있지는 않다. 또 귀경송(歸敬頌)을 ‘예배를 드리는 말씀’으로, 인연분(因緣分)을 ‘왜 논문을 쓰는가?’로, 입의분(立義分)을 ‘근본사상을 제시한다’로, 해석분(解釋分)을 ‘근본사상을 해설한다’로,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을 ‘무엇을 믿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라 번역하였다. 또, 대승(大乘)을 설명할 때에, 법(法)과 의(義)의 두 가지로 설명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법(法)과 의(義)를 각각 본질(法)과 까닭(義)으로 바꾸어 의역을 한다.

《대승기신론》 번역서들과 해설서들의 목차는 원문을 그대로 쓰거나 혹은 번역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통일된 번역이 없는 형편이다. 길게 보아서는 원문의 용어들과 이에 대한 다양한 번역들이 있고 그 가운데 살아남는 것들이 생길 것이다. 이평래 교수의 《대승기신론 강설》의 목차에 나타나는 번역들은 불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요즘 말에 잘 맞게 표현된 번역들이라 생각한다. 번역과 해석이 다양하게 제시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처음 불교 공부를 할 때, 나도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대승기신론》을 처음 읽을 때는 《대승기신론》의 용어사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다소 해소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대승기신론》 원문 해석과 강설, 용어 해설 부분이 모두 저자 자신의 내공이 깊숙이 배어있으며, 통일성 있게 서술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대승기신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3.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저자가 《대승기신론》에 대해 개괄적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서론, 《대승기신론》에 대한 강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에서는 《대승기신론》의 제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 저자와 번역자 문제, 1차 문헌의 구성, 전파와 수용, 어떤 《대승기신론》 판본을 기본서로 이 책을 썼는지 등을 다루었다. 《대승기신론》의 저자와 번역자에 관해서 한동안 불교학계에서 문헌학적으로 접근하여 여러 입장이 있었는데, 이평래 교수는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이 《대승기신론》에 대하여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독자에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가 언급되지는 않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강설에서는 그 구성이 《대승기신론》 한문 원문, 저자의 원문 해석, 강설, 용어 해설 순으로 이어지는데, 구성이 이제껏 출간된 책들보다 더욱 친절하다. 지금까지 나온 《대승기신론》 관련 서적들은 번역서이거나 혹은 해설 위주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종합적으로 《대승기신론》을 정리하고 강설한 책이다. 한문 원문 해석은 직역을 지양하고,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 의역하고 있다.

이평래 교수가 밝히기로는 《대승기신론 강설》 안의 한문 원문은 저자가 본문을 해석하며 의역하고 현대어에 맞게 풀어쓴 것이 많아 의미의 혼동을 막기 위해 실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시대에 맞게 쉽게 의역한 것은 더 넓은 독자층에 쉽게 이해될 수 있는데, 동시에 번역자 개인의 해석이 지나치게 강해져 원문의 의미 전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용어 해설이 차지하는 분량이 많다. 이 또한 주석적 연구에서는 큰 장점이다. 용어 해설의 내용을 보면, 그 해설이 사전적 의미의 나열이 아니라, 《대승기신론》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추가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또한 용어 해설의 내용이 저자 자신의 강설과도 연계되어 통일성 있게 설명되고 있는 면이 있고, 《대승기신론》 안에서 문제가 되는 중요 개념의 경우 더욱 자세히 설명되고 저자 자신의 의견도 밝히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학문적으로도 가치를 더하고 있다. 용어 해설 부분을 더욱 보충한다면 따로 《대승기신론》 전용의 용어 해설집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성상 주석이나 별다른 표시 없이 임의적인 순서로 용어가 해설되므로 의문이 드는 개념이 해설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맨 뒤의 색인을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으로 중국 한문 불교 경전에 대해 강설하고 있으나 기존의 번역서, 해설서보다 산스크리트 표기와 발음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살(菩薩)을 산스크리트 발음 ‘보디삿뜨와’라고 음역하고 있다. 또 열반(涅槃)을 ‘니르와나’라고 음역하고 있다. 기타 인도의 인명과 불전의 이름을 산스크리트로 표기하고 있는데, 산스크리트 발음을 표기하는 현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저자가 한문 원문 불전의 문장을 인용하면서도 한문 이름 표기가 없이 산스크리트 이름만을 밝힌 경우도 있다. 내 생각에는 한문 불전에서 인용한 글이라면, 한문으로 제목을 밝히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 같다. 한문 불전의 제목을 산스크리트로 표기한 것이 오히려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디심(bodhicitta, 菩提心), 마하야나(mahāyāna, 大乘) 같은 경우에도 이미 보리심, 대승이라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어휘가 있는데, 병기도 아니고 산스크리트로만 사용한 것은 이 책의 장점을 오히려 훼손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의 불교 용어를 한자 발음 그대로 사용한 것과 저자가 산스크리트 발음으로 사용하는 데 생기는 차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설득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은 한글, 한문, 산스크리트를 함께 병기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본문 해석을 설명하는 강설 부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승기신론》의 3대 주석가라고 할 수 있는 원효, 법장, 혜원의 해석을 인용한 점이다. 또한 세 사람의 해석이 뚜렷하게 다를 경우 그 해석의 차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승기신론》 본문의 맨 처음 귀경게송을 삼보로 설명할 때, 세 사람이 “歸命盡十方,最勝業遍知,色無礙自在,救世大悲者,及彼身體相,法性眞如海,無量功德藏,如實修行等”를 어떻게 불·법·승 삼보로 끊어 나누는지가 모두 다른데, 그 차이가 선명히 드러나도록 그림으로 비교하여 정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설의 내용이 뛰어난 주석가들의 주석을 활용하여 단순 정리·비교한 것은 아니고, 저자의 여러 지식이 충분히 녹아들어 설명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되고 있다. 또 자신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불전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부와 준비를 거쳐 이 책을 펴냈는지 짐작하게 한다.

4.
이 책은 원로학자의 평생 연구가 녹아 있는 훌륭한 《대승기신론》 강설서이다. 혜원, 원효, 법장의 이해를 함께 소개하고 있고, 한문과 산스크리트 용어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대 한국말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전체적으로 주석적 불교학의 전통에 있는 연구 내용을 강설하고 있으면서도 노교수의 내면적 성찰과 수행의 경험이 들어간 실존적 해석과 용어 해설이 특히 돋보이는 책이다. 노교수의 지난한 연구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 그리고 철학적 불교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불교학은 근본적으로 실체론적 사유를 거부하는 것이고, 철학은 무전제의 학문이라고 하듯이, 《대승기신론》의 이해도 이 책의 이해에서 독자 자신의 이해로 더 나아가 열린 해석학적 태도로 자신에게 더 묻고, 더 깊이 사색을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 물음이 깊어져 더 물을 것이 없어질 때까지, 사색이 깊어져 더 사색할 것이 없어질 때까지! ■


김원명 /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박사). 주요 논저로 〈조주의 선문답에 대한 언어비판적 분석〉 〈원효 《열반경종요》에 나타난 일심〉 〈원효의 비불교적 배경 시론(試論)〉 등의 논문과 《원효−한국불교철학의 선구적 사상가》 《원효의 열반론》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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