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와 정치참여

들어가는 말

2월 말 반지하 방에서 세 모녀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30대의 두 딸과 60대의 어머니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함께 죽음의 길로 떠났다. 떠나는 길에 밀린 집세, 가스비, 전기세를 남겨놓고 떠났다. 돈 때문에 죽음을 택했는데,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것들이나 실컷 먹고 갈 일이지, 알뜰살뜰 모아 주인에게 건네고 갔다. 남긴 글에는 ‘죄송하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또박또박 써 놓았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일까. 큰딸은 중증 당뇨와 고혈압 합병증으로 누워 있었다. 혈당 수치를 잰 기록은 꼼꼼히 남겼지만, 치료제를 처방받고 약을 샀다는 기록은 없다. 그저 고통의 기록만 남긴 것이다. 둘째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신용불량의 낙인만 찍혀 있었다. 그에게 꿈은 고질병이었다. 어머니는 음식점에서 월 150만 원을 받으며 일했고, 그것으로 가정을 지켰다. 불과 한 달 전 빙판에 넘어져 돈벌이를 할 수 없었다. 세 모녀 비극의 전모는 이게 전부였다. 비정한 사회, 무정한 사람들!

세 모녀는 그렇게 착하게 살았으니, 극락정토에 들었을까. 모든 것 내려놓았으니 그것이 무여열반이었을까. 그것이 부처님이 꿈꾸던 인간 삶이고, 세상이었을까? 세상은 그들의 비극을 빨리 잊으려 하고, 실제로 잊혀 가고 있다. 그 불편한 걸 왜 가슴속에 담아둘까.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한 이들은 우리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공식 통계로는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이들이 410만여 명이다. 세 모녀는 이 통계에 잡혀 있지도 않다. 그런 이들까지 포함하면 우리 국민 10명에 1~2명은 절대빈곤층이다. 이들 중 셋에 한 명만 정부 지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언제 어떻게 세 모녀의 뒤를 따를지 모른다. 실제로 세 모녀가 주검으로 발견된 뒤 광주에서 의정부에서 하남에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세상을 떴다. 단칸 반지하 방에서 자다가 엄마와 아이들이 불에 타 숨지기도 했다.

그러면 이들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현생에서 그런 고통과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 가난한 이들의 가난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 가난한 자식이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열에 하나인 데 반해 부자의 자식이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열에 일곱이다. 이 땅의 부자 1%가 가진 것은 전체 소득의 22%이고, 0.1%가 벌어들이는 것은 그 가운데 절반인 11%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진다. 이런 가난의 대물림과 빈익빈 부익부는 업 때문이고, 그래서 숙명인가. 그것이 부처님의 뜻인가.

학자들은 물론 부자들도 대개 동의한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이기 전에 사회 구조적 문제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대부분의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피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래서 이 불공정한 제도를 어떤 식으로든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데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불교처럼 출가 종교인 가톨릭에선 끊임없이 사람을 죽이는 제도에 대한 날 선 비판과 저항이 있었다. 지난해 새로 교황에 서임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날이면 날마다 부정한 사회 제도, 정치와 맞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권고문 〈복음의 기쁨〉을 통해 불의한 제도와 대결을 선언했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세상의 모순은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고 천명했다. 불의한 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정치지도자와 재계에 호소하고 재촉했다.

이에 반해 한국불교는 곁에서 가난한 이들이,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데 그저 침묵한다. 돌부처처럼 입을 닫고 아예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나? 중생 구제를 위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노력을 포기하거나 외면한 사이, 불교는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 죽은 문화재가 되어 간다. 불교는 이웃이나 세상과 담쌓고, 정치는 아예 돌아보지도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걸까? 더 큰 불행과 고통의 원인인 법과 제도에 무관심한 것이 불교의 법이자 덕목인가.

종교와 정치

서임 후 불과 3~4개월 만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정치는, 비록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이다.”

정치 행위란 단 두 사람뿐인 공동체에서도 이루어진다. 합의해야 할 일이 있고, 조정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규정이 있고, 존중해야 할 법도가 생기기 마련이다. 돌아봐야 할 일이 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 이런 합의와 조정을 이뤄내고, 규정과 법도를 제정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다. 정치적 행위는 폄하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행해야 할 의무다.

교황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일을 곧 정치라고 보았다. 그가 제시하는 성경의 논거는 지극히 간단하다. 십계명의 여섯 번째 ‘살인하지 마라’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네 형제는 어디 있는가’라는 물음 따위에 근거하고 있다. 교황은 이렇게 말하고 묻는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규범이었듯이,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인다.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은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교황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문제를 십계명 1항에 근거해 비판한다. “자유시장체제로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온다는 ‘낙수이론’이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확인된 적이 없으며, 다만 경제적 지배 권력의 선의와 지배적인 경제체제의 신성화 작업에 대한 순진한 믿음일 뿐이다.” “돈과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태도 뒤에는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 자유시장이 절대화되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하느님은 심지어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길 원한다.”(이상 〈복음의 기쁨〉에서)

그는 또 구약의 카인과 아벨의 예화에 근거해 이렇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형제자매는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우애의 의무를 일깨워 줍니다. 그 의무를 저버렸을 때, 저 수많은 전쟁과 불의가 저질러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인류가 겪는 극심한 경제위기도 결국 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탐욕스럽게 물질만 추구한 결과입니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우애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세계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그는 이런 논거와 설명에 따라 지극히 정치적인 지침을 내린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평화의 증진을 강조해야 합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합니다. 적자생존의 경제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쓰고 버리는 풍토는 버려진 사람들을 양산합니다. 시장의 폭압에 교회는 맞서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한국불교는 깨달음과 해탈과 적멸 등을 불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고, 세속적 가치로부터의 해방 곧 탈속을 삶의 목표로 여긴다. 개인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다.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억압기제 등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주장하지만, 하화중생은 선근공덕을 쌓는 개인적 윤리로만 다룬다.

그리하여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지배질서, 기득권 구조를 합리화하고 공고히 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지배계급 혹은 기득권층의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정당화시켜줬다. ‘탈정치’를 앞세워 실제로는 ‘지배자에 봉사하는 정치’를 해왔던 셈이다. 가난과 억압과 차별은 숙명으로 돌리라고 가르치고 외면했다. 그걸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믿게끔 했다. 권력자들에게 그런 불교는 얼마나 유용하고 편리한 존재였을까, 호국이란 이름 아래 권력의 안녕을 기원해온 한국불교는 참으로 누추했다.

그러면 일찍이 불교를 생활화하고 신념화한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존재였을까. 아니 부처님이 실제로 그렇게 가르쳤나? 결론부터 말하면 부처님은 윤회전생이나 숙명을 거부했으며, 모순된 사회 구조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과 의제를 제기했다. 부처님은 이 세계가 어떻게 존립하는지, 공동체는 어떤 원리로 형성되고 운영되는지, 바람직한 공동체 상은 무엇인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지, 불의한 지도자에 대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설파하고 몸소 실천했다. 빈부격차와 절대 빈곤 문제에 대해서도 개인 윤리적인 차원의 시혜가 아니라 제도적 차원의 공정성 실현을 주장했다. 그것이 불국토를 이루는 길이라고 했다.

스리랑카불교는 빈곤도 풍요도 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웃을 외면한 채 깨달음에 이를 수 없으며, 이웃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나와 이웃이 함께 깨달음에 이른다는 신념이 보편화되어 있다. 태국불교에는 아예 부처님 법에 따른 담마사회주의를 이상으로 삼는 불교 지도자 술락 스님이 있고, 베트남의 틱광득 스님은 독재체제의 억압을 깨기 위해 소신공양을 감행했다.

불교는 숙명론에 빠져 현실도피와 염세주의를 장사하는 종교가 아니다. 부처님은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이런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으며, 이 땅에 정토를 실현하라고 했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 녹색운동가 노르베리 호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불교는 우리에게 세계 전체에 걸쳐 고통을 낳고 영속화시키는 경제구조에 도전할 수 있는 논리와 도구를 제공한다.” 그런 가르침을 한국불교는 경전에서 이끌어내려 하지도 않고 실천하려 하지도 않았을 뿐이다. 

불교의 깨달음과 허위의식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아집, 독선 등을 깨치고 존재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도록 한다. 불교는 삶의 고통에 천착하며, 고를 깨고 진실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추구한다. 그러면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물론 그건 생로병사와 미워하는 것과 섞이고, 사랑하는 것과는 떨어져야 하며, 구하지만 얻을 수 없는 것들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나’란 것이 없다면, 그런 고통의 원인은 무의미하다. 생사도 없고, 병도 늙음도 또한 없으며, 사랑과 미움에 매이지도, 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나’란 것은 색, 수, 상, 행, 식이 쌓인 것뿐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그런 감각의 질료, 의식의 질료가 쌓여서 ‘내’가 된다. 결국 나란 기억, 혹은 착각으로 존재한다.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이전의 ‘나’는 존재하지 않듯이 ‘나’란 잊히거나 기억되는 그런 신기루 같은 것이다.

이런 논증은 단지 불교의 교설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심리학 등 인지과학에서는 물리적 실험을 통해 이미 과학적 지식으로 확정했다.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나를 발견해 근대의 길을 열었는데, 이제 현대로 들어와 ‘나’는 기억이나 학습된 것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해체됐다. 데카르트(근대)의 ‘나’를 현대 과학은 기억의 퍼즐로 간주한다. 물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양파껍질과도 같은 ‘나’와 ‘나의 의식’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간주한다. 불교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자,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 되는 ‘나’의 껍데기를 끝까지 벗겨내 존재 실상을 드러내도록 한다. 수행은 ‘나’를 둘러싼 허위의식을 벗겨내 존재 실상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나’는 욕망의 원천이다. 생존, 생식, 부, 명예 등 불가사리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려 한다. 허깨비가 허깨비를 먹고 몸집을 불리는 셈이다. 그런 욕망은 개인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선 집단적 욕망이 된다. 집단적 욕망은 주도권 다툼을 하고, 나아가 전쟁도 불사한다. 이를 위해 집단은 일정한 이데올로기, 곧 욕망의 지도를 공유하도록 한다. 허위의식을 깨야 할 불교도 그런 이데올로기 혹은 허위의식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이데올로기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상이기도 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규범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발전의 힘이 되기도 한다.

서구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중세 신분질서의 허상을 깨트리는 동력이 되었다. 나면서부터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니 왕후장상의 신분제에 기반한 봉건 질서는 양립할 수 없었다. 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개인에게는 자연의 본성으로 이성이 주어져 있으며, 이성의 빛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로 개인과 사회가 모두 발전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결합해, 사회 변혁과 생산력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믿었던 이성은 한편으론 제국주의의 침탈과 전쟁, 야만적인 정복과 살육으로 이어졌고, 다른 한편으론 부익부 빈익빈을 극대화시켰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됐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졌으며, 부에 따른 새로운 신분질서가 나타났고, 정부는 가진 자를 대신해 가난한 이들의 권리 주장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한때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이념이었던 자유주의가 기득권 체제를 온존하는 허위의식이 되어버렸다. 그런 자유주의의 모순에서 태동한 것이 사회주의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등장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99% 또 다른 전체주의적 억압체제를 구축했다가 소멸되었다. 그 또한 체제 수호의 허위의식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불교에게 모든 허상은 혁파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허위의식은 남김없이 깨쳐야 할 덩어리다. 자유주의건 사회주의건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인간의 자유를 추구했다. 자유주의가 추구한 것은 봉건적 신분질서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이었다. 사회주의는 유산계급의 억압에서 해방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유였다. 이에 반해 불교는 ‘나’라는 것으로부터도 해방된 대자유를 추구했다. 근본적인 자유다.

자유주의에서 개인은 태어나면서 매여 있던 신분질서에서 해방됐지만, 자본과 자본가에 임금노동자로 예속됐다. 사회주의에서 유산, 무산 계급의 질서는 무너졌지만, 노동자들은 생산시설을 기획 통제 관리하는 집단에 의해 통제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결국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욕망의 자유였다. 욕망의 자유는 다른 개인들을 억압하거나, 예속시키면서 동일한 모순을 반복했다. 이에 반해 불교의 자유는 욕망으로부터, 욕망하는 나로부터 해방된 자유다. 개인이건 사회건 허위의식을 타파하고, 허위의식에 기대어 확립된 지배와 복종, 억압과 고통의 사회관계를 청산하려 한다. 무아의 자유, 무아의 관계를 추구했던 것이다.

불교를 두고 혁명적 평등주의라고 말하는 건 그런 까닭이었다(오노 신조). 불교는 서구에 자유주의 이념이 출현하기 2,000여 년 전에 이미 신분질서(카스트)를 부정했다. 남녀 차별 또한 거부했다. 경제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법률적으로든 4개의 계급은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모든 강이 바다로 모여들면 예전의 이름을 잃고 단지 바다로 불리는 것처럼, 4개의 성도 여래의 법과 율을 따라 출가하면 똑같은 부처의 자녀라 불린다”고 가르쳤다. 남녀노소 누구나 출가를 허용한 것도 혁명적이었다.

대안 사회로서 승가공동체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개인의 소모품 이외에는 모두 교단의 소유로 했으며, 보시물은 필요에 따라 배분했으며, 지도자에게는 관리권만 부여할 뿐, 처분은 만장일치의 동의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공유의 원칙에 철저했다. 그렇다고 석존이 일반인들의 사적인 생산 활동이나 사적 소유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석존은 적극적으로 저축을 권장하고, 생산 활동을 존중했다. 다만 여법하게 벌고, 여법하게 사용하도록 했다. 승가공동체는 각종 모순을 안고 있는 현실 세계의 대안으로서, 일반인들이 추구해야 할 사회의 이상형이었다.

석존은 욕망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존은 현실의 욕망을 인정하는 위에서, 이를 바로 잡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길과 자세를 보여주려 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만 보장되면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지고, 사적 소유가 없어지면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이데올로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실에 존재하는 부정의와 불평등의 해소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욕망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함으로써, 자유주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이루고자 했다.

불교의 사회관

불교가 꿈꾸는 이상 사회는 개인 중심의 사회도 아니고 집단 중심의 사회도 아니다. 서구의 사회사상사에서 줄곧 맞서왔던 사회실재론이나 사회유명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개인적 완성이 사회를 완성시키며, 사회의 완성도가 개인의 성숙을 이끄는 그런 모델이다. 모두가 독립적이면서도 모두가 서로 의지하는 인드라망은 그 상징이다.

초기경전 《약간냐 숫따》는 사회의 발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가 탄생하고 인간 존재가 등장하면서, 남녀가 애욕에 의해 가족을 이루게 되고, 가족이 발생하면서 소유욕이 생기고, 소유욕에 따라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정하게 분배되던 토지와 식량이 개인의 재산으로 나뉘게 되고, 이는 가난과 풍요를 낳고 또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가 혼란스럽고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범죄로부터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규범을 지켜 정의가 이뤄지도록 관리할 사람을 선출했다. 그렇게 뽑힌 사람을 ‘선출된 위대한 자(마하 사마타)’라고 불렀다. 일부 선각자는 인간 마음속에서 증대하는 나쁜 기질을 근절하기로 결심하고 수행자가 되었으며 이들을 바라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사회발생론이 정연하게 정리된 이야기는 어떤 종교에도, 어떤 설화에도 없다. 여기엔 사회가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하며 혼란과 갈등에 빠지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과 종교적 노력이 어떻게 경주되게 됐는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지도자를 선출된 자로 규정함으로써 서구의 근대국가 형성의 철학적 바탕이었던 사회계약론의 싹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치란 주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대표자들이 공동체의 규범을 제정하고, 또 이를 집행하고 잘 지켜지는지 관리하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 사회 결성의 전제이자,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약간냐 숫따》의 사회발생론에는 그런 정치의 기능과 역할이 담겨 있고, 또 국민주권의 원칙, 권력 위임의 원칙, 자유와 평등의 원칙 등 근대 정치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집단을 이끌어가는 원칙과 규범을 정하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구성원들의 의식주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내적 평화 곧 행복감을 증진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보람을 찾고 자아를 실현시키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출가자들에게 생산 활동을 금지한 불교는 일견 노동을 경시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노동 금지는 출가자로서 무소유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지, 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에게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규율 가운데 하나인 일일부작 일일불식은 이를 잘 반영한다.

노동은 경제적으로 재화의 획득과 증식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며,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며, 종교적으로는 수행의 과정이며, 노동의 결과를 회향함으로써 자리이타와 자타성불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다. 불교는 노동을 재화 생산만이 아니라 인격적 완성과 인간적 가치의 실현하는 인간의 본질적 구성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견지하는 노동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본은 노동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노동시장에서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거의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소외, 착취, 억압, 전쟁, 약탈, 차별 등.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자본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늘리려 한다. 비용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품삯을 줄이는 일이다. 기술 개발로 필요한 노동을 감축하고, 실업자를 양산해 노동자의 교섭력을 떨어트리고, 이를 통해 전체 임금 비용을 절감한다. 실업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고, 가난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거기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양극화는 이제 체제 자체를 흔들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금색왕경》은 빈궁의 고통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로 다룬다. “어떤 법을 괴로움이라 하느냐, 이른바 빈궁이요. 어떤 괴로움이 가장 무거우냐, 이른바 빈궁의 괴로움이다. 죽은 괴로움과 가난한 괴로움 두 가지가 모두 다름이 없으나, 차라리 죽는 괴로움 받을지언정 빈궁하게 살지 않으리.” 빈곤 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꼽았던 것이다. 

빈곤은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 우선 생산량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석존은 근면과 검소, 기술 개발을 통한 재화 생산의 증대를 주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다음으로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인간을 배제하고, 불공정을 구조화하는 시장의 문제다. 시장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는 부질없지만 계속됐지만, 욕망을 체제 유지의 동력으로 삼는 시장경제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관점은 욕망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해온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전은 윤리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분배정의 실현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윤리적으로는 복전 개념을 도입했다. 부모와 스승에 대한 보은전,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는 공덕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빈궁전은 불교인으로서 권장 사항이 아니라 해야 할 의무다. 사회 정책적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조세 정의였다. 생산력이 약했던 고대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의 수탈을 막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그래서 “세금의 징수는 일정한 법을 따를 것이며 세율을 낮추고 빈궁한 자에게는 면세의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조세 정책과 관련한 언급들이 대승경전에 많이 나타난다. 《구라단두경》의 언급은 보다 근본적이다.
한 바라문이 권력에 취한 왕에게 충고한다.

“왕의 국가는 약탈과 유린으로 곤경에 처했다. 곳곳에 강도가 들끓어 마을과 도시를 약탈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징수한다면 큰 잘못이다. 왕은 지위를 빼앗거나 추방, 벌금, 구금 또는 사형에 처함으로써 범법자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혼란과 범죄를 종식시킬 수 없다. 근절할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왕의 국토에서 목축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식량과 종자를 제공하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자금을 제공하라.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식량과 임금을 제공하시오. 그러면 백성은 자기 일에 전념하게 되어 국토를 유린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범죄 발생과 범죄 예방에 대한 현대적 관점, 생산적 복지 관점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근본적이다.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이다. 국가는 물리력으로 단속과 규제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분배 정책을 촉구한 것이다.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생산과 자립 기반을 확충하는 생산적 복지 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공업 사상과 사회참여

이런 ‘정치적’ ‘사회참여’의 교설은 공업 사상과 관련이 있다. 불교는 인간의 행과 불행, 고통과 안락 등 인간의 운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업의 산물로 본다.

문제는 이를 숙명, 개인 차원의 문제로만 환원한다는 사실이다. 불교인들은 업설을 업보윤회설로 이해한다. 불변하는 의식이 있어, 전생의 업에 따라 내생의 행, 불행이 결정된다는 윤회전생은 자연히 숙명론으로 귀결된다. 이미 전생에 결정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개인은 주체적인 결단과 노력의 의지를 상실한다.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더 나은 사회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끔 한다.

그러나 업보윤회설은 불교의 근본 관점인 무아와 정면 충돌한다. 의식에 대한 교설과도 어긋난다. 석존은 연을 따라 생성하는 것이 식일 뿐, 식이 실재하여 윤회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석존이 숙명론을 외도, 그릇된 도라고 비판한 건 그런 까닭이다. “일체가 숙명으로 말미암는다고 보고 말한다면, 너희는 모두 산목숨을 죽이는 자다.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사기하는 자이다. 일체가 다 숙명으로 말미암는다면 스스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도무지 의욕도 없고 노력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숙명론은 어떤 범죄도 용인하게 되며, 개인의 창조적 노력과 결단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인과응보의 교리는 유효하지만, 불변이지만, 그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삶의 원리를 정리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업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최선을 다해 심고 뿌리고 기르고 거둬 최선을 다해 이웃을 돌보고, 함께 사는 세상을 밝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르친다. 운명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른 창조적 노력을 재촉하는 교설인 것이다.

인간 삶은 개인적 업으로 말미암아 행불행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홍수, 화재, 지진 등 자연재해나 전쟁과 테러, 공황 등 인재로 말미암은 고통에 도덕적 인과율을 적용할 순 없다. 《대반열반경》 〈교진여품〉은 이렇게 말한다.

“일체중생이 4대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일체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을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4대란 세계를 구성하는 4가지 물리적 요소, 즉 땅, 물, 불, 바람은 기후나 풍토, 지진 홍수 화재 태풍 등 자연환경을 뜻한다. 시절이란 우리 운명에 영향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전쟁과 평화 등 시대 환경을 뜻한다. 토지는 생산의 원천으로서 토지 및 경제적 환경을 뜻한다. 개인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가 태어난 땅과 경제 제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민이란 집단으로서 사회제도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남녀 차별이 제도화된 곳과 그런 차별이 사라진 곳에서 태어난 여성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그가 살아가는 법과 제도, 관습과 체제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금융위기, 환란 따위도 법과 제도 체제에서 비롯됐다.

4대와 토지는 자연조건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시절과 인민은 사회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자연조건은 인위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집단적 노력에 의해 조금은 개선할 수도 있고, 개악시킬 수도 있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기상재해는 숲의 남벌, 토지의 약탈적 개발, 무분별한 화석 에너지 사용 등 자연환경의 무차별적 파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 노력이나 반대로 이를 파괴하는 사회적 행위가 바로 공업이다. 전쟁과 파괴, 금융위기와 환란, 사회적 빈곤과 자살 따위의 고통은 정치 경제적 제도와 선택을 통해 예방할 수도 있고 피해갈 수도 있다. 반대로 인간의 선택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 법과 제도, 국가적 선택을 결정짓는 건 정치고, 정치를 좌우하는 건 인민이다. 결국 선한 공업은 선한 사회적 결실을, 악한 공업은 악한 사회적 결실을 낳는다. 공업을 짓는 과정이 곧 정치다.

정치의 산물인 법과 제도가 잘못 만들어지면, 그 사회와 개인은 힘들어지고 불행해진다. 따라서 시민들은 개인적으로는 선근공덕을 쌓고, 사회적으로는 함께 올바른 법과 제도를 제정하고, 정당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가 하나의 꽃이라는 가르침을 감안한다면, 공업은 개인의 선근공덕보다 더 중요하다. 자연환경을 아름답게 보호하고 사회 환경을 정의롭게 구현하는 것은 부처님이 꿈꾸던 일이었다. 그런 행위는 이익을 따지지 말고 하라 했으니(무주상보시) 신앙인에겐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구라단두경》은 범죄를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했다. 절대 빈곤이나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한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규범을 정하고, 규범을 집행하는 정치는 마땅히 민생을 살리고 분배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런 과업을 망각할 경우엔 초기경전 《약간냐 숫따》의 언명대로, 시민은 그들을 소환하고 교체할 수 있다. 국왕은 ‘선출된 자’다. 경전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정치가 빈부격차를 심화하고 빈곤을 방관하는 법과 제도로써 인민을 괴롭힌다면 인민은 그를 추방할 수 있다. 혁명적 교설이 아닐 수 없다.

메시아론과 불교

기독교 정치사상의 핵심적 개념이 메시아다. 메시아는 잘못된 법과 제도와 관습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날 존재다. 인민은 그를 마냥 기다리며 고통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야 하며, 하느님의 의를 구현하기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 그런 노력 속에서 메시아는 나타난다.
그런 메시아는 기독교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에도 대부분 존재한다. 불교의 전륜성왕은 좀 더 적극적인 형태의 메시아가 될 것이다. 기독교의 메시아와 다른 점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불국토를 실현하려 한다는 점이다.

불보살들은 중생 구제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육신으로 화현한다. 석존은 전생에 이미 대각을 이뤘음에도 윤회의 길로 들어서 35년간 중생 구제의 삶을 살았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33가지 몸으로 화현한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까지 모두 구제한 후라야 성불하겠노라고 서원했다. 유마 거사의 동체대비는 불교 메시아의 지극히 인간적인 속성을 상징한다. “내 병은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일체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앓고 있습니다. 만약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나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중생 구제는 화현한 불보살의 역할만이 아니었다. 석존 당시 인도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 이상이 있었다. 하나는 전륜성왕이 되어 인간을 가난과 전쟁과 범죄로부터 구제하고, 출가수행자가 되어 인간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성자가 되는 것이었다.

전륜왕은 바로 이 땅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이다. 《전륜성왕수행경》에 따르면 불국토는 법으로 운영되는 평화와 복지의 이상사회다. 전륜왕은 ‘무기를 쓰지 않고도 나라가 저절로 태평하게 하는’ 이다. 그는 “마땅히 법에 의해 법을 세우고, 법을 갖추어 그것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법을 관찰하고 법으로써 우두머리를 삼고 바른 법을 지키고 보호”하며 그리하여 “짐승들에 이르기까지 그 보호와 보살핌이 미치도록” 한다. 나아가 “나라에 외로운 이와 노인이 있거든 마땅히 물건을 주어 구제하고 곤궁한 자가 와서 구하면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옛날 사람들은 보배 때문에 서로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으며 또 무수히 고뇌하였지만 지금은 이 보배들이 기왓조각이나 돌과 같아서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는 나라로 이끈다(대정장). 중아함경은 신하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말을 거스르지 말 것 등 통치자가 지켜야 할 11가지 덕목을 적시하고 있다. 

승가는 열반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출가한 수행자들의 집단이다. 그렇다고 승가가 오로지 개인적인 깨달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약간냐 숫따》가 전하는 바라문의 목표는 인간 내면의 증진하는 나쁜 기질, 곧 탐욕을 없애는 것이었다. 불교학자 월폴라 라훌라는 이렇게 말했다. “승단을 조직한 이유는 자신의 정신적 지적 발전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봉사에 일생을 기꺼이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재가자는 가족이 딸려 있으므로 오로지 이웃을 위해 헌신하기 힘들다.”
석존은 성도 이후 이렇게 선언했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유행하라.” “나는 언제나 일체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어 편안하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찬미한다.” 그래서 그는 일생에 걸쳐 권력자들과 어울렸고 비천한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유한 자본가(장자)와도 교제했고, 귀부인들을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앙굴리말라와 같은 강도나 수니따와 같은 청소부, 순다리 같은 매춘부 등과도 교분을 맺었다. 석존은 마지막까지 혼란스런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병자를 보살피고 버림받은 자와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약자를 위로하고, 불행한 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 헌신했다.

불국토 실현을 위한 노력들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정토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얻을 수 없다.” 현실은 버리고 떠나야 할 세계가 아니다. 용수 보살은 “열반과 세간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차별도 없다”고 했으며 의상 대사 역시 생사와 열반은 서로 공화한다고 말했다.

이 땅에 정토를 이루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헌신은, 앞서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열성적으로 이루어졌다.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의 해방과 카스트 제도의 혁파를 위해 앞장섰다. 암베드까르는 계급차별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 불교개종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인도를 망치는 것은 영국이 아니라 카스트제도라며 계급차별의 상징인 《마누법전》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불교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가장 근본적으로 고취시키는 종교이며, 석존의 가르침은 내세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깨달음 곧 구제와 구원이라고 말했다. 상가락시타 스님은 그 뒤를 이어 담마의 실천을 통해 나를 개혁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개혁하는 담마혁명을 추구했다. 수행과 강좌 그리고 공동체 설립 등을 추진하는 한편, 대중을 위한 유치원, 합숙학교, 문자교실, 직업교실, 상담출장소, 이동도서관 등을 운영하는 ‘만인의 이익을 위해’라는 뜻의 바후잔 히타이 운동을 벌였다.

불교국가 스리랑카에서는 아리야라트네 박사를 중심으로, 불교적 가치와 원리에 따라 스리랑카의 정신적 경제적 재건에 나서는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 운동이 식민지하에서부터 지금까지 추진되고 있다. 30년 전 사르보다야가 활동하는 촌락의 수는 스리랑카 전 촌락의 3분의 1에 이르렀으며, 때로는 그 활동이 정부와 비교될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정부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이 운동은 ‘자기 욕심을 버리고 세계에 봉사하는 것이 수행이며, 불교의 이상을 구체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이중적 해방을 쉽게 이룩하도록 새로운 사회구조를 개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아리야라트네는 “다른 사람이 깨닫도록 돕지 못한다면 나도 깨달을 수 없다.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남들도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세속의 진리를 깨달아야 최고의 진리를 깨칠 수 있다고 했다. 사르보다야는 빈곤도 없고, 풍부함도 없는 경제 질서 확립을 사회적 이상으로 추구했다.

태국의 정신적 지도자 붓다다사 비구는 현대 사회구조의 부도덕성과 이기주의를 비판하며, 담마사회주의를 주창했다. 또 다른 지도자 술락 시바락사는 불상생의 의미를 확장해, 무기의 생산까지도 살생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고, 충분한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살인이며, 화학비료나 제초제의 사용이나, 숲을 파괴하는 것, 그리고 타인은 굶는데 자기는 낭비와 사치를 부리는 것도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으로 간주했다. 베트남의 틱광득 스님은 군사정권의 폭정에 항의해 사이공 거리 한가운데서 분신을 했고, 뒤를 이어 수많은 승려가 독재정권의 압제에 소신공양으로 맞섰다. 틱낫한 스님은 제자들에게 고통의 한가운데 서기를 촉구했다. 그가 반대한 것은 압제자나 그를 지원하는 자들이 아니라, 고통의 근원이 되는 제도적 폭력과 그 바탕에 깔려 있는 탐욕이었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그에게는 깨달음의 주체였으며, 해방의 대상이었다.

공업과 화현, 보살행 사상은 이런 주체적 삶과 실천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석존은 인간의 주체적 의지와 결단을 중시했다. 수행과 깨달음의 결단도 그렇고 소신공양 등 보시의 결단 또한 그렇다.

세상은 법당, 어떻게 장엄할까

다시 세 모녀의 문제로 돌아가자. 남편은 12년 전 방광암으로 죽었다. 큰딸은 혈압과 당뇨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누워 지냈다. 아내는 빙판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지면서 생계가 끊겼다. 모녀에게는 달리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구걸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존감을 뭉개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도 없다. 팔만 부러져도 산 입에 거미줄 쳐야 하는 게 바로 우리가 처한 비정한 현실이다. 이미 그건 용산참사에서도 보았던 일이다. 세 모녀의 사건 이후 잇따랐고, 지금도 잇따르고 있는 자살로도 확인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설프게 익힌 불설에 기대어, 태어난 게 고통이고, 살아가는 건 더 큰 고통이니,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은 다행이라고 읊조릴 것인가. 아니면 불교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세 모녀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떠나는 길에 천도재를 지낸 것으로 만족할 일인가. 공업 사상을 돌아본다면, 지금 이 순간도 불제자들은 악한 업을 짓고 있는지 모른다. 더러운 제도를 방치한 공업, 잘못된 정치를 방관하는 공업,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비정을 따지지 않는 공업, 그리하여 의지할 곳 없는 선한 사람들의 비극을 방치하는 죄의 공업을 짓고 있다.

세상은 법당이다. 부처님의 법을 설하고, 법을 깨닫게 하고, 법을 실천에 옮기는 도량이다. 그 도량을 장엄하듯이 세상을 부처님 법으로 장엄해야 한다. 도량을 더럽히고, 파괴하고, 비정한 정글로 만드는 것을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신중들이 도량을 지키듯이, 불보살은 세상을 그런 탐욕과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가난에서 해방시켜야 하며, 불평등을 혁파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국토는 지금 여기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져 있지 않다.

한국불교의 문제는 실천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누구도 경전을 깊이 연구하지도 않았다. 시대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뿐더러,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경전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법대로 사는 것은 법을 제대로 공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선한 공업을 짓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법대로 산다면, 정치는 진실로 공동선 실현의 유효한 방편이 될 것이며, 우리 사회는 불국토에 한 걸음씩 다가갈 것이다. ■

* 이 글은 동국대 박경준 교수의 저서 《불교의 사회경제사상》에 의존해 쓰였음을 밝힌다. 박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곽병찬 / 〈한겨레〉 대기자.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 졸업. 〈한겨레〉 정치·사회·문화부장, 논설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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