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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을 부끄러워 함 / 홍사성
[58호] 2014년 06월 01일 (일) 홍사성 본지 주간

   

홍사성
본지 주간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겨우내 숨죽였던 나무들이 잎을 틔워 산하대지는 연초록으로 싱싱하다. 5월 한 달에는 즐거운 날들이 줄줄이 몰려 있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부처님오신날도 음력으로는 사월초파일이지만 5월 초순에 들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가족과 가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때가 5월인 까닭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 즐거운 계절이 어느 때보다 침울하다.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로 침잠해서 즐거운 일이 있어도 환하게 웃지 못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행사는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꽹과리와 북소리, 춤과 노래로 가장 화려한 축제였던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도 조용하게 지나갔다. 초파일 저녁 절 마당을 밝히던 오색찬란한 연등도 왠지 침울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만나면 웃는 것도 눈치를 보는 듯했고 목소리도 한껏 낮추었다. 3백여 명에 이르는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세월호 침몰 사고 앞에서 우리는 라면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사고는 지난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났다. 인천에서 제주로 떠난 유람선 세월호는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이 배에는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교사 14명)도 타고 있었다. 배가 전라남도 진도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해역을 지날 때였다. 화물을 과적한 채 유속이 급한 맹골수도를 지나던 배는 균형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선체를 증축할 때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선저(船底)의 수조(水槽)를 늘리지 않고 돈 되는 곳만 증축한 데다 키를 잡은 3등 항해사의 미숙한 조타가 원인이라 한다. 배가 기울자 승객 안전에 최우선 책임을 져야 할 선장은 혼자 탈출했다. 배 안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듣고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과 승객 3백여 명은 아무 죄 없이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생존자는 어이없게도 겨우 170여 명에 불과했다.

졸지에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가슴은 애를 끊는 듯한 참척(慘慽)의 슬픔에 빠졌다. 유가족들만이 아니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조카를 둔 삼촌이라면, 언니 동생을 둔 형제자매라면 엄청난 충격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운동선수들은 모자와 어깨에 노란 리본과 검은 리본을 달았고 인터넷과 모바일에도 노란 리본과 검은 리본이 물결쳤다. 초파일 날 절 마당에 내걸린 등도 화려한 색깔보다는 노란색이거나 흰색이었다. 과거에도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같은 대형 재난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이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몰한 세월호에는 어린 학생들이 타고 있었고, 물욕에 눈먼 어른들의 욕심이 그들을 차디찬 바다에 수장했다는 회한 때문이었다. 어른들이 조금만 욕심을 줄였다면,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다면, 자기 책임을 다했다면 이런 큰 불행은 없었을 텐데, 부끄럽게도 우리는 그 기본을 내팽개친 채 세월호를 거친 바다에 띄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구조상 이번과 같은 사고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은 자랑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룩해왔다. 서구사회가 1백 년, 2백 년에 걸쳐 이루어온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을 우리는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루어냈다. 개발도상국으로서 이토록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이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감당키 어려운 문제가 놓여 있었다. 물질 위주의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우리는 수단과 절차를 무시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속도위반과 반칙과 부정을 합리화했다. 외형적으로는 번듯해졌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를 문제를 축적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은 그 정점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마침내 생겨서는 안 될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예술, 스포츠, 심지어 가정이나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한국사회의 치명적 약점은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분야가 없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누구를 비난하고 흉볼 것도 없이 우리 모두가 세월호 증축 과정처럼 불법적 방법과 적당히 타협해왔다. 세월호 선장처럼 혼자 탈출하는 일에 익숙해 있다. 그 결과가 우리가 자랑하는 경제성장이고 오늘날 불행한 사태의 본질이다. 일찍이 공자는 정치의 정도를 “군군신신부부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정명론(正名論)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정치가가 정치가답고 관리가 관리답다면, 어른이 어른답고 자식이 자식답다면, 종교인이 종교인답고 기업가가 기업가답다면 건강한 국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춰보면 세월호 사고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백유경》이라는 불경을 보면 3층 누각만 지으려 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비웃는 비유가 있다. 어떤 부자가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3층 누각을 보고 자기도 그런 누각을 갖고 싶었다. 부자는 집 짓는 사람을 불러 누각을 짓게 했다. 그런데 목수는 누각을 짓기 전에 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고르고 1층 기둥을 세우는데 시간과 공력을 기울였다. 그는 목수를 불러 왜 필요 없는 1층과 2층을 짓느냐며 빨리 3층을 지어내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목수는 1층과 2층을 짓지 않으면 3층을 지을 수 없다며 떠났다고 한다. 이 경전의 비유는 훌륭한 결과를 얻기 위해 기초와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쳐준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듯이 어떤 경우에도 기본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결과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되는 원칙이다. 기업이나 나라를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본에 충실하고 절차와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내실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목표지상주의를 내세워 기본을 무시해왔다.

이번 사고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남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했는가, 절차와 과정이 정당했는가,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황금만능 물질만능에 경도된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반성해야 한다. 부처님은 한 경전에서 “설산을 황금으로 둔갑시키고 다시 그것을 배로 늘린다 해도 욕심을 줄이지 않는 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욕심을 줄이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지적은 듣기 싫어도 인정해야 할 진실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천민자본주의의 무한질주를 방치한다면 언제 다시 이런 불행을 겪을지 모른다. 물론 뒤늦게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한들 꽃 같은 목숨들의 희생에 값할 수 있을까만 그럴수록 우리는 입술을 깨물고 자성의 촛불을 켜야 한다. 미욱한 짐승도 위험을 알아차린다는데 사람이 돼서 한국호의 침몰 위험을 감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사고가 난 지 34일 만에 대통령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사과했다. 또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 전체를 바꾸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러나 이 일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의 전도된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출신활로(出身活路)는 월주 스님의 말씀대로 ‘잘살아보세’가 아니라 ‘똑바로 살아보세’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고혼들 앞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삼가 꽃 한 송이 올린다. ■

2014년 6월
홍사성(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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