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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동아시아 문명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큰 서쪽 문명이 있는데 하나는 인도[西域]의 불교이며 다른 하나는 서양의 과학과 기독교이다. 동아시아의 신도가[새로운 노장사상]는 불교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는데 징검다리 역학을 하였으며 유교사상은 불교와 신도가의 영향으로 새로운 유학[Neo-Confucianism]으로 나타났다. 이 신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 등으로 대표되는 시원유학[Original Confucianism]과도 다르고 특히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오경(五經)중심의 경전유학[Classical Confucianism]과 차별화된 유학이다.

신유학은 당나라 시대의 이고(李翶)의 복성(復性)사상과 한유의 원도(原道)사상에서 그 싹을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정욕에 얽매어 이기심에 가려져 있던 도덕적 본성[仁義]을 회복하여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번뇌에 얽매인 중생이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Buddha]가 될 수 있다는 불교와 그 파라다임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신유학은 본성을 천리(天理)라고 보고 이를 내세워 불교의 공(空)사상과 도가의 무(無)사상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면서 탄생하였다. 양명학과 주자학은 신유학의 중요한 두 흐름[思潮]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자학은 본성이 바로 천리이라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여 이것을 성리학이라고 하며 간단히 줄여 이학(理學]이라고 한다. 양명학은 마음이 바로 천리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제창하여 이것을 심학(心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상과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정도전은 불교를 비판하는 <불씨잡변>을 쓰기도 하였으며 <심기리(心氣理)>편에서 불교는 심(心)을, 도가는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인데 비하여 유학은 리(理) 즉 천리를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천리는 심과 기를 아우르는데 반하여 심과 기는 서로 포섭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불교는 심학이요 유교는 이학이라고 주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주자학을 정통으로 삼고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을 펼쳐나갔다 주자학자들은 심지어 왕양명의 심학을 불교의 심학과 같은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주자학은 불교에 대하여 배타적이었으나 양명학은 불교에 대하여 친화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양명학을 주체적으로 도입하여 독자적 심학을 수립한 하곡학이 있었으나 물밑에 숨어서 복류(伏流)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유학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내성은 자기의 인격수양에 힘써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것[修己]이며 외왕은 수신(修身)을 통하여 가정[齊家] 국가[治國] 천하[平天下]를 안정시키는 것[安人 혹은 治人]을 말한다. 유학의 성인은 인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극진히 잘 발휘한 이상적 모델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내성[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불교의 영향으로 신유학에 와서 그 깊이가 심화되고 그 넓이가 확대되었다.

중국철학사로 저명한 신리학자[新理學者] 펑유란[馮友蘭]에 의하면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의 마음[心]은 mind였지만 이후의 마음은 Mind가 되었다는 것이다[간명한 중국철학사 영문본] 다시 말해 전자는 신체와 분리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것을 초월한 마음 즉 큰마음[大心]이 된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무한심의 자극으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양명학의 선구라고 하는 육상산(陸象山)은 내 마음이 곧 우주이며 우주의 일이 내 마음의 일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마음은 우주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양지라는 말은 맹자에서 유래하였지만 왕양명에 이르러 양지는 마음의 본체[心體]가 되어 모든 것[천지 만물]의 존재근거[天理]로 확대되었다.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

양명학이란 명(明) 나라시기에 당시 부정부패로 얼룩진 혼란한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하여 왕양명[1472-1529]제창한 철학을 가리킨다. 양명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업적위주의 학문[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세워[立志] 훌륭한 인격을 완성함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을 말한다.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이다 유학은 그 완성의 목표가 바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왕양명은 18세 때 명대 초기 주자학자인 누량(婁諒)으로부터 격물치지를 통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20세때 아버지의 관서에는 대나무가 많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이치[理]가 있다는 주자의 말이 생각나서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취하여 일주일 동안 격죽(格竹)을 하였으나 병이 나서 그만 두었다. 성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불교와 노장을 공부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상에는 불교와 가까운 점이 많이 발견된다. 그는 양지를 설명하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든가 항상 깨어있음[常惺惺]이라는 불교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양지가 바로 성인문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37세게 유배지 용장(龍場)에서 깨달을 때 까지 20연간 여전히 격물치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환경이 극도로 험난한 유배지 생활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돌무덤까지 만들어 놓고 천명(天命)을 기다리었다. 어느 날 밤중에 격물치지의 뜻을 크게 깨달았다 “성인의 길은 내 본성이 스스로 넉넉한데 이전에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心卽理]고 각도(覺道)의 체험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이것은 외적인 이치[理]를 내적인 것으로 돌린 코페르닉스적인 대전환이었다. 주자학은 마음 밖에 사물과 그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런데 양명학은 사물이 나의 마음과 의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마음 밖에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을 판단중지[epoche]시키고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다”[心外無物] 따라서 “마음 밖에 아무 이치도 없다”[心外無理]고 주장하였다.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는 외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산 속에서 저절로 피었다가 저절로 지는 꽃은 그것을 보는 마음과 연관되었을 때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을 때 그 꽃이 존재하는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판단 중지를 하였을 뿐이다. 의식[心]속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물(無物)이라고 말했던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물(物)은 마음과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의미 연관성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자는 외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실재론자이다 주자는 격물을 “외물에 다가가서 그 이치를 캐묻는다.”[卽物窮理]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격(格)자를 이른다(至)는 의미로 풀이하여 격물은 외물에 이르러 그 이치를 캐묻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양명은 이에 반대하며 격(格)이란 바로잡는다[正]라고 풀이하였다. 그는 “물(物)이란 일[事]이다 대체로 뜻[意]이 발동한 곳에는 반드시 그 일이 있다 뜻이 있는 곳을 물(物)이라한다. ‘격’이란 바로잡는다[正]는 것이다 그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 바른 데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왕양명은 ‘물’을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사건[事 event]으로, ‘격’을 ‘바로잡다’로 풀이하였다 이것은 정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외물에 이르는[至]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 것[正行爲]을 격물로 간주한 것이다. 왕양명은 어버이 자체가 일물(一物)이 아니라 어버이 섬김[事親]이 일물이요 책 자체가 일물이 아니라 독서가 일물이다. 뉴스에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시해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 아들에겐 시친(弑親)이 일물이다 이 잘못된 의도에서 생긴 행우[不正]를 바로잡아 바른 데로 돌리는 것[事親]이 바로 격물이다. 주자에서 격물치지는 외물을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는 것인데 반해 왕양명의 격물치지는 바르지 못한 사태의 행위를 바로잡아 양지를 드러내는 치양지(致良知)를 말한다.

왕양명의 철학은 치양지(致良知)로 요약된다. 이것은 양지를 현실 생활에 실현한다[致]는 말이요 양지에 의한 행위 즉 양지[知]를 일상생활에서 실천[行]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知)는 지식 혹은 지각(知覺)을 가기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행합일이란 지식과 행위의 합일이 아니라 양지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양지란 무엇이며 지식 혹은 지각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양지는 경험적[見聞] 지식 혹은 지각에서 유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천적이다. 그렇지만 지각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각과 함께 드러나며 결코 지각에 의하여 막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양지는 도덕적 심미적 법칙인 천리(天理)이며 이것이 상주(常住)불변하는 마음의 본체[心體]라는 것이다. 셋째 양지는 옳고 그름[是非]과 좋고 싫음[好惡]을 즉각적으로 아는 도덕적 심미적 판단능력이다 넷째 양지는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이것을 슬퍼하고 아파할 줄 아는[惻怛] 마음이다. 다섯째 양지는 성인이나 보통사람[凡人]이 모두 가지고 있는 영특한 밝음[靈明]이며 즐거움[樂]의 본체이다.

이러한 양지가 구체적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지행합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양지를 현실생황에 실현하는 것을 치양지라고 한다. 우리는 지식과 행위의 합일을 지행합일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주자학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지식과 행위는 언제나 둘로 나뉘어 있어 먼저 알고 난 뒤에 행위한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주장한다. 그래서 왕양명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知行分離] 당시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하여 지행합일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지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외적인 지식으로 알았다하더라도 내적인 양지로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외적인 도덕지식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각이 아직 안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양지에서 나온 도덕적 자각이 더 근본적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好色 好貨 好名]이 양지를 가려버리면 도덕적 자각이 생길 수 없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환하게 드러나듯이 욕심에 가려진 양지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치양지의 공부이다. 우리가 본심인 양지를 잃어버리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남을 해치고 심지어 골육을 죽이는 일도 생긴다. 이러한 재해를 막으려면 양지를 되찾는 길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치양지 공부이다.

왕양명은 “나의 평생 강학은 치양지 세 글자 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치양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나의 양지설은 백번 죽고 천번 어려운 가운데 얻은 것이다 ...학자들이 그것을 쉽게 얻어 구경거리로 삼아서 놀까 두렵다 현실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이 양지를 저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반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천백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험난한 현실에서 체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왕양명은 양지를 실현하기[致良知]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첫째 묵좌징심(黙坐澄心) 둘째 성찰극치(省察克治) 셋째 사상마련(事上磨鍊)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초학자를 위하여 정좌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불교의 좌선(坐禪)과 유사한 방법이었다. 왕양명은 초학자들이 마음이 들뜰까 경계하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혀 맑게 하는’[黙坐澄心]의 공부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방법은 움직임을 싫어하여 생기를 잃어버린 병폐가 있었다. 욕심을 다스리려고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靜坐] 온갖 잡념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끊기도 어렵다 왕양명은 억지로 끊어버리려 하지 말고 욕심이 막 싹트려고 할 때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온 눈으로 살피고 온 귀로 듣고 있다가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자마자 바로 그것을 살피어 다스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성찰극치의 방법이다.

이 모두가 치양지의 방법이지만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일상생활에 역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상마련이다 왕양명은 “그대가 조용히 마음을 기르는 것만 알고 이기(利己)적인 자기를 극복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에 부딪쳤을 때 마음은 사욕에 기울어져 버린다. 우리는 반드시 일을 해가면서 자신을 연마해야 비로소 확고히 설 수가 있고 조용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움직여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 치양지는 조용함과 움직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에서 양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치양지는 구체적인 일에서 실천되는 실학이다 더 정확히 말해 양지실학이다 이것은 하곡학의 실심실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3 양지와 불성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는 불성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부타[Buddha:覺者]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양명학은 양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대승불교 중 진상유심(眞常唯心)계통은 진실하게 상주하는 여래장(如來藏)을 모든 존재[萬法]가 의거하는 바라고 생각하였으며 마음의 본성은 깨끗[淸淨]하기 때문에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말하였다 모든 중생은 이 여래장의 공덕으로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어[離苦得樂] 부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왕양명은 상주(常住) 불변하는 양지를 마음의 본체[心體]로 간주하였으며 일점(一點) 영명(靈明)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천지 만물이 이 영명을 떠난다면 천지 만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양지가 천지만물의 근거이며 또한 주재자라고 보았다. 양명은 천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끝내 없앨 수 없고 양지의 광명은 영훤히 불변한다고 하였으며 세상을 떠날 때 “내 마음이 빛이다”[吾心光明]이라고 하였다.

이점에서 진상(眞常) 불학의 불성과 양지는 매우 유사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명학은 어디까지나 유학인 만큼 사상마련(事上磨鍊)을 통한 외왕을 강조하는 점에서 불교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서양의 민주와 과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신유학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거의 공동체[가정과 국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동체인 시민사회가 생겨났다. 따라서 현대 신유학 특히 현대 양명학은 시민사회에 알맞은 새로운 외왕[新外王]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은 과거 동아시아에서 부족하였던 과학과 민주 그리고 자본주의를 양명학과 융합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시민사회에서 남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자율적 독립성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를 속이지 않는[無自欺] 양지를 자기가 하는 일에서 실현하는 것[事上磨鍊]이다.

정인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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