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철학하다

지난여름 딸이 ‘담마코리아’에서 진행하는 묵언수행을 다녀왔다. 호흡과 함께 자기 몸의 감각을 지켜보는 위빠사나 수행법인데 몸과 마음이 정화된 것 같다며 나에게 참여하기를 권했다. 담마(dharma)는 ‘법(法)’, 위빠사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새해 새 의식을 치르는 기분으로 명상코스에 참가신청서를 냈다.

기껏 열흘간 묵언을 한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소음으로 찌든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고요하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수행기간 동안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었다. 끝없는 망상과 번뇌,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강요하지 않았지만 수행의 작업과 과정을 쉴 새 없이 의심하고 비판했다.

여기 적어놓은 기록은 특정 수행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맛보고 느낀 위빠사나 명상수행에 관한 좌충우돌 체험기이다.

Day-0 오리엔테이션

‘담마코리아’는 고엥카 선생이 가르치는 전 세계 2백여 위빠사나 명상센터 중 하나이다. 고엥카 선생은 1974년 인도 뭄바이 근처에 위빠사나 국제 아카데미인 ‘담마기리’를 설립하고 10일 명상코스를 만들어 위빠사나 명상을 세계화했다. 그래서 10일 코스를 한 번 끝낸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나라에 가서 똑같이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서든 고엥카 선생의 육성으로 녹음된 테이프를 통해 체계적인 명상지도를 받는다. 전통적으로 기부금만이 코스를 운영하는 유일한 자금원이며 코스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원하는 만큼 기부를 할 수 있다. 그 대신 수행기간 동안 오계를 철저히 지키고, 어떠한 기도나 예배 행위를 하지 않으며, 남녀 수련생들과 신체접촉뿐 아니라 일체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한다.

나는 전라북도 전주역에 도착해서 진안행 시외버스를 탔다. 마이산 중턱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담마코리아 명상센터는 마치 시골 초등학교처럼 보였다.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휴대폰과 책, 필기도구 등을 사물함에 넣어 맡기고, 수행하는 동안 규칙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서약서에 다시 한 번 서명했다. 남자와 여자의 영역은 숙소뿐 아니라 식당, 산책길도 구분되어 있었다.

수행코스 시간표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새벽 4시 기상, 6시 반 아침 식사, 11시 점심, 오후 5시 차 마시는 시간, 저녁 9시 반 취침. 그 나머지 시간은 오직 명상, 명상이었다.

Day-1 고귀한 침묵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은 무척 힘이 들었다. 혼자 사용하는 침대방에는 달력도 시계도 없고 작은 종소리에 의지해서 움직여야 한다. ‘몇 시쯤 되었지?’ 일정표나 시간을 확인하려고 수시로 복도를 드나들었다. 눈빛 교환조차 금해야 하는 수련생들은 서로 고개를 돌리고 투명인간처럼 행동했다. 모두 제 밥그릇만 들여다보며 밥을 먹는 식당 안에는 숟가락과 젓가락 소리뿐이었다.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 정수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랄 정도였다.

단체 명상이 진행되는 명상홀에는 남자와 여자 지도 선생이 양쪽 단상에 앉아 있다. 이스라엘인 남자 지도 선생 옆에는 영어를 통역해주는 봉사자가 있다. 그는 휴식시간과 주의사항을 동시통역으로 알려주었다. 24명의 여자 수련생 중 두 명과 10여 명의 남자 수련생 중 서너 명이 외국인이다. 센터 안 문짝과 벽에는 영문과 한글로 된 주의사항이 붙어 있다. 신문이나 책, 글 쓸 종이가 없어서 답답한 나는 주의사항을 읽고 또 읽었다.

명상의 첫 단계는 들숨과 날숨 관찰하기이다. 콧구멍을 통과한 호흡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아야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단지 수행을 위한 도구일 뿐 어떤 말을 암송하거나 어떤 형상을 상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자 마자 수만 가지 망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나간 일들이 번뇌 망상이 되어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Day-2 수행 아닌 고행?

명상하는 동안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으면 온몸이 아팠다. 허리와 다리, 특히 오른쪽 골반이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방석을 여러 개 겹쳐 깔고 다리 사이에 작은 방석을 끼워보지만 마찬가지였다.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하루 한 차례, 점심시간 이후 지도 선생과 개인면담이 가능하다. 신청 용지에 내 이름과 방 번호를 적어 놓았다. 가구 하나 없이 썰렁한 면담실 단상에 앉은 선생은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기다렸다.

“나도 나를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괴로운지…… 난 너무 행복한데……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이건 수행이 아니라 고행 같아요.”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내가 우습고 창피했다.

“햇빛이 환히 비추면 깨끗하다고 생각하던 방 안에 먼지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게 보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고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하게 되지요.”

그녀의 말은 너무나 평범했다. 오히려 담백하고 순수한 물맛 같아서 믿음이 생겼다. 그래, 좋아. 끝까지 부딪쳐보자. 그깟 열흘을 못 버티겠어?

Day-3 너나 잘해

오직 기부와 봉사로 운영되는 센터 안의 생활은 절약 또 절약이다. 실내온도는 15~18도. 화장실 물도 마실 수 있는 청정지역의 추위는 더 매섭다. 식사 후에는 각자 제 그릇을 설거지하는데 완전 얼음물이다. 실내에서도 내복 위에 얇은 옷을 두세 벌 껴입었다. 집에서 가져온 화장지가 모자랄 것 같아서 아끼고 아꼈다. 한 번에 4쪽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날로그적 생활이 주는 교훈이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았다.

10일 코스를 한 번 이상 끝내면 구수련생(old student)이 되고 그 후에는 원하는 만큼 봉사를 할 수 있다. 구수련생이 된 딸이 3일 동안 주방 봉사를 하러 왔다. 명상홀에서 마주친 우리는 서로 눈만 끔뻑거렸다. 그런데 그때부터 딸이 어디 앉아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딸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걱정이었다.

저녁에 두 차례 단체명상이 있다. 그 중간에 한 시간 반 동안 고엥카 선생의 법문을 듣는다. 한국어로 번역된 말이 오디오로 낭독되는데 왜 수행을 해야 하는지, 참다운 수행법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시간이다. 오늘 법문은 내 것에 대해 집착하는 어리석음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그 말씀은 나를 향한 경책이었다. 내 딸, 내 물건…… 과연 내 것이 무엇이던가.

Day-4 기우뚱한 내 몸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는 순간 앞쪽으로 15도가량 굽어진 내 몸이 보인다. 척추를 반듯이 세우고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 채 눈을 감았는데 번번이 그랬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몸을 조금 세우면 뒤로 넘어지려고 했다.

‘어느 게 진짜 내 몸이지? 늘 15도쯤 기울어져 있는 걸 모르고 항상 똑바르다고 착각하며 산 것 아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오늘부터 위빠사나 명상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동안의 호흡명상은 위빠사나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이제부터는 눈을 감은 채 나의 의식을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내려보낸다. 몸 전체를 순서대로 꼼꼼히 훑고 어루만진다. 머리, 얼굴, 목, 팔, 가슴, 배, 등, 엉덩이, 다리, 발가락…… 이때 진동, 간지러움, 마비, 통증 등 일어나는 어떤 감각이든 빼놓지 않고 관찰한다.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요하게, 참을성 있게 지켜보라(Be Calm and Quiet)! 고엥카 선생이 반복해서 강조한다.

저녁 명상 중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도저히 코로 숨 쉴 수 없어 입을 벌리고 학학, 거친 숨을 토해냈다. 명상홀의 흐릿한 불빛과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타인들, 깊은 침묵이 더욱 나를 질식시켰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수녀님, 내 옆자리의 외국인도 꼼짝 않고 있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 억겁의 죄가 이토록 깊디깊은 것인가.

Day-5 이놈의 영감탱이!

열흘 중 절반이 지났다. 나는 한 시간 반 동안의 법문 듣기가 지루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지도 선생한테 두 번째 면담을 신청했다.

“저는 신심이 깊은 집에서 태어났고 결혼해서도 부처님 말씀을 즐겨 듣고 있어요. 한데 고엥카 님의 법문이 너무 듣기 싫어요. 모두 좋은 얘기인 줄 알면서도 이놈의 영감탱이 그만 좀 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랍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기 때문에 더욱 놀라워요.”

나의 고백을 듣고 선생은 크게 웃었다. 법문 듣기가 괴롭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몸이 아프고 괴로우면 제아무리 좋은 것도 싫어질 수 있다며 단체명상만 참여하고 개인명상은 숙소에서 편하게 해보라고 제안했다. 5분간의 면담이었지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집에 불상을 모실 정도로 부처님을 섬기는 집안의 장손인 아버지. 그런데 엄마가 불경이나 법문이 나오는 녹음기를 틀면 손사래를 치며 그 자리를 피하곤 하셨다. 엄마와 나는 이 좋은 말씀이 왜 듣기 싫으냐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형식적으로는 부처님을 받들지만 미움과 다툼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이중적인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셨던 거야.’ 그때의 아버지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살아생전 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좋아하는 술 한잔 대접하지 못하고, 노래방에 가서 좋아하는 노래 함께 불러드리지 못하고…….

Day-6 아니짜

하루에 세 번, 단체명상 시간에 수련생들은 한 시간 내내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강한 결심의 명상인 ‘아딧타나’이다. 이제는 의식을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옮기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작고 미세한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 몸이 가렵고 팔이 움찔거린다. 얼굴이 마비되는 느낌도 있다. 그런 다양한 감각을 그저 목격자처럼 평정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면 1, 2분 후 그 느낌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다른 느낌들이 일어난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의 ‘아니짜’를 경험하는 것이다.

법문 중에 고엥카 선생이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게 아파 죽겠을 때 아니짜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제 끝났구나 하고 기뻐하지요.”라고 말했다. 명상홀의 무거운 침묵이 깨지며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났다. 아니짜란 말로 시작하는 염불은 노래의 후렴구 같아서 명상시간이 곧 끝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아팠지만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아주 깊숙한 곳에서 쓰리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가라앉혀 놓았던 마음의 불순물들이 겉으로 둥둥 떠오른 것일까. 원하지 않는 것, 바라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까 두려워 마치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회피했던 것 아닐까.   

Day-7 Observing, Observing, Observing!

“감각적 쾌락에 구르고 굴러서 매듭을 짓고 또 짓습니다. 관찰하고 관찰하고 관찰해서 모든 매듭을 풉니다.” 식당의 날짜판에 적어놓은 경구다.

명상 중에 반가부좌를 한 다리 통증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릎 위에 가볍게 얹어놓은 손이 몹시 무거웠다. 무겁다 못해 자주 마비가 왔다. 그럴 때면 ‘우리 몸뚱어리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결정체라더니 내 손이 흙에서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무겁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머무르는 것은 없다, 흐르고 지나간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 울컥거려서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 정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인가. 삶의 무상함이 언어가 아닌 피부를 꼬집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단체명상 시간에 남자 수련생 자리에서 누군가 훌쩍거렸다. 옆자리의 외국인은 자주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나는 아침부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음소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내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는가. 관대한 척, 너그러운 척하면서 내심 오만하고 도도하지 않았는가. 더러운 것 보고 얼굴 찡그리고 상대방의 형편을 이해하기보다 나의 불편을 못 견뎌 하지 않았나. 질투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나. 조상과 부모, 남편 덕에 잘 먹고 잘산 것을 내가 잘나서 그런 거라고 으쓱하지 않았나. 잘한 것은 하나도 없고 잘못한 일들만 생각났다.
 
Day-8 회의적 의심

수행을 하는 데 5가지 적이 갈망, 악의, 나태, 회한, 의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마음이 회의적 의심으로 가득 차 투정부리는 어린애 같았다. ‘그동안 좋은 말씀 듣고 많은 걸 배웠으니 그 말씀 새겨서 앞으로 죄짓지 않고 사랑과 자비 베풀며 살면 될 것 아니야? 반복해서 되풀이하는 말이 타 종교의 맹목적 주입과 뭐가 달라? 왜 계속해서 몸을 위로 아래로 쓸어내려야 해? 평정심을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기쁨이나 즐거움조차 무덤덤하게 느끼라는 거야?’ 더 이상 의심을 키우지 않으려면 지도 선생한테 설명을 구해야 했다.
“판단은 끝나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한테 맞지 않아, 더 이상 하지 않겠어, 그것은 나중에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마지막 날에는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자비명상에 대한 말씀이 있을 겁니다.”

그래, 이렇게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또 어디 있겠어? 이것도 어쭙잖은 나의 지적 유희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Day-9 나의 상카라

동료 수련생 중 울긋불긋한 실을 섞어 파마를 한 레게머리의 여자가 있다. 삼십 대의 그 여자는 마치 소풍 나온 사람처럼 혼자서 생글생글 웃고 명상홀에서 남자들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샛노란 담요를 몸에 두른 그녀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쩌면 이것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싫어하는 심리 아닌가 싶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인데 나 스스로 내 잣대가 옳다고 들이대며 고통을 키운 것 아닌가. 이것이 나의 상카라 아닌가. 그래서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전처럼 들끓지 않았다.

마음의 습관적 반응인 상카라(sankhara)는 자신을 구속하는 정신적 속박이다. 상카라가 깊어지면 고통도 깊어지는데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면 상카라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결국 평정심을 유지하는 만큼 해탈과 열반의 행복에 더 가까이 간다.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비로소 나는 해탈과 열반이 하늘의 별처럼 멀리 있는 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나는 평정심이라는 단어를 《잡보장경》의 ‘걸림 없이 살 줄 알라’의 내용으로 풀이하는 게 쉬웠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어떤 감정, 어떤 감각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서로 상통한다고 생각했다. 

Day-10 보시

점심시간부터 묵언이 풀렸다. 오늘은 바깥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 날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고통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했다. 여전히 신체 접촉은 금기사항이다. 사무실 앞에 담마코리아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하는 패널이 진열되었다. 위빠사나 수행이 중범죄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인도의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열흘 동안 내가 누린 일상에 감사하며 다음 수련생의 편의를 위해 기쁘게 보시를 했다. 침묵이 깨지고 나니 명상시간에 의식이 제대로 집중되지 않았다. 진지한 수행을 위한 고귀한 침묵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명상홀로 이동하는 길에 달이 만월을 향해 채워지고 이지러지는 과정을 쭉 지켜보았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잡초 위에 내린 서리들은 들판 가득 보석을 뿌려놓은 듯 빛났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그랬다. 아니짜, 삶의 무상성은 결코 염세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내가 이 짧은 현생의 시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되돌아보게 했다.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데 왜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 것인가.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음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Day-11 자비명상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내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도 아니짜 법칙을 이해하며 마음의 균형을 유지해라. 세상 모든 곳에 참된 평화, 참된 행복, 참된 자유가 함께 하기를!”

고엥카 선생의 자비명상을 끝으로 수행 일정을 모두 마쳤다. 위빠사나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 것, 시련이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정화하여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이며 내 몸의 감각을 지켜보는 것으로 터득하는 실천적 수행법이었다. 그리고 수행을 잘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 곧 평정심이었다.

이제 나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담마(정법)의 씨앗을 심었다. 앞으로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할 일만 남았다.

사바타 망갈랑(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

 

김우남
소설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1년 《실천문학》 소설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굿바이 굿바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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