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경허를 다시 읽는다

1. 들어가는 말

경허(鏡虛, 1849~1912)는 구한말 한반도를 남에서 북으로 운수행각하면서 광풍과도 같은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간 선의 초인이다. 뛰어난 학승으로서, 심오하고도 격렬한 선을 치열하게 체험한 그의 생애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삶의 모순된 고통과 비극적 아픔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불교계 일각에서 경허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깨달음을 통한 초월적 경지에서 혼자만이 즐기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웃은 경허는 살아 있는 부처였음이 틀림없다.
이처럼 위대한 경허의 삶이 후대에 전해지고 검토되는 기준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전승과 기록으로 전해지는 전기 혹은 평전이 있다. 기록으로 남겨진 전기는 연대와 그 인물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숨은 장치가 있을 수 있지만 구전된 이야기들에서는 그의 위대함 내지 위의를 찾아볼 수 없고 때로는 폄하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경허 관련 서적 중 대표적인 것으로 선사의 시문과 일화를 모은 《경허집》과 그 영인본 《경허당 법어집》 《경허법어》와 이흥우의 《공성의 피안 길》 일지의 《술에 취해 꽃밭에 누운 선승, 경허》 한중광의 《경허−길 위의 큰 스님》 등의 평전과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정휴의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 등의 전기적 소설이 있다.
이러한 평전과 소설들은 다양한 경전과 선어록, 경허집을 바탕으로 경허선(鏡虛禪)의 세계를 축약하여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투철한 깨달음으로 꺼져가는 선(禪)의 등불을 밝히고 1912년 4월, 한만(韓滿) 국경 북방의 고원을 행각하다가 초라한 동네 훈장으로 열반에 든 경허에 대한 존경과 숭상의 마음으로 경허의 생애를 엄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객관적이면서도 불교사상적으로, 혹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회향하려 한 경허의 뜻을 담아내는 데 있어 각 저서는 그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깨달음 얻고 그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이류중행(異類中行, 중생 속으로 들어가다)을 선택한 경허의 평전과 소설을 통해 나타난 전기의 서술의 몇 가지 경향과 신화적 서술과 이설(異說)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경허 평전에 나타난 서술의 특징

1) 이흥우 《공성의 피안 길》(동화출판공사, 1981)
최초의 경허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시인 이흥우의 《공성의 피안 길》은 〈주간조선〉에 ‘현대한국고승전: 경허대선사 편’으로 연재(1972년 1월 2일~11월 16일)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출판한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쓰자면 거의 그 사람이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저자는 1971년 말과 72년 하반기에 수덕사, 정혜사, 천장암 일대와 동학사, 그리고 경기도 시흥의 청계사 등 현장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당시 스님의 연고지와 스님과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경허의 구도적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 조사들의 어록과 일화들을 중간중간 삽입하여 독자들의 선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특히 변설호, 마벽초, 김탄허, 배운기 스님 등에게서 들은 경허 스님에 대한 사실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현장감과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가령, 1972년 2월, 천장암 아랫마을 정 처사의 아내와 딸과의 인연은 서울 동대문 청룡사에서 탄허 스님으로부터 들은 것이고, 부석사 아래 어촌 김 진사 딸과의 이야기는 정혜사 마벽초 스님이 들려준 것이다. 해인사에서 학명 스님의 시봉을 하던 변설호 스님이 경허 스님으로부터 받은 한글 문장의 법문이 4.4조의 8자를 기본으로 해서 181행으로 이루어진 ‘참선곡’임을 밝히고 있다(310). 경허가 삼수갑산 쪽으로 간 데에는 어떤 특이한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변설호 스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탄허 스님에 따르면, 만화의 뒤를 이은 23세의 젊은 강사 경허는 《화엄경》 현담을 가지고 《화엄경》 강의를 했는데, 《화엄경》 원문을 가지고 하는 사람보다 강을 더 잘했다고 경허의 천재성을 이야기한다(55). 또한 한암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로 “선비들과 사귀려면 한문을 많이 알아야 해서 장자를 천 번 읽었다”(97)고 경허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울러 저자는 옛날 여러 불보살과 조사들의 말과 일화들을 찾아보며 시를 쓰는 저자 나름의 불교에 대한, 특히 선불교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여 주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청계사의 사미승’에서 ‘경허 성우의 공무화(空無化)’로 끝나는 27장으로 되어 있는데, 탄탄한 문장 구성으로 비교적 쉽게 읽히며, 인생무상과 그 무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공부의 필요성과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이흥우는 경허가 10대 후반을 보내며 본격적인 공부를 한 동학사에 얽힌 사연과 내력은 차후 경허의 인간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경허의 시문에 유학의 여운이 짙은 것, 말년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유관을 쓴 모습으로 행한 삼수갑산 무애행의 한 연원을, 불교를 천시하던 당시에 불교와 유교가 한데 가까이 인연을 맺어 온 동학사에서 보낸 시절의 환경에서 찾고 있다. 확암 선사와 경허의 ‘십우도’를 비교함으로써 경허의 구도와 깨달음의 경지를 살피고 있는 저자는 조사와 부처를 이 몸 밖에 두고 오랜 세월 시장바닥을 돌아다닌다는 경허의 〈심우송〉은 경허의 만년의 행각을 적지 않게 암시해 주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서술한다. 아울러 깨달아도 깨닫지 않는 듯이, 부처이면서도 부처가 아닌 듯이 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행세하며 시장 바닥에서 수많은 장삼이사와 접촉하며 이야기하며 술도 마시고 매를 맞는 삶, 문둥이 여인을 대한 그의 살 속에는 피가 흘렀다는 대목이 말해주듯이, 오도 후 경허의 걸림 없는 삶의 과정과 다양한 경전의 예를 들어 경허의 법문을 이끌어낸다.
 
2) 일지 《술에 취해 꽃밭에 누운 선승, 경허》(민족사, 2012)
이 평전은 《삼수갑산으로 떠난 부처》(2001년, 민족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절판되어 제목을 《술에 취해 꽃밭에 누운 선승, 경허》로 바꿔 다시 출간한 것이다. 참으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책 제목이다. 붉은 배경의 책 표지 안에 선이 굵고 기골이 장대한 선승의 우직한 눈매와 주장자를 힘껏 움켜진 강인한 모습이 주목을 끈다. 책 제목은 만공월면이 스승의 입적 소식을 듣고 “선함과 악함이 부처와 호랑이보다 더하신 분/ 바로 경허선사이시다/ 돌아가셨으니 어느 곳을 향해 떠나셨는가/ 술에 취하여 꽃밭 속에 누우셨도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스승 경허의 고독했던 일생이 함축되고 있다. 저자는 “술은 세속의 술이 아니다. 꽃밭은 세속의 꽃밭이 아니다. 경허의 술은 자신을 이류중행에 몰아넣기 위한 미망의 술이며, 꽃밭은 경허 자신이 선택한 가시밭이다.”라고 썼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승과 기록의 전기를 연대와 사건으로 꼼꼼히 확인하고, 저자 나름의 탄탄한 불교적 지식과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히 상좌 만공과의 선문답 복원에 비중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허를 둘러싼 진부한 소문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오직 경허의 선과 인생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소수 독자를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불교가 어둠의 미망 속에 처해 있을 때 한국 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경허를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인간에게 내준 프로메테우스에 비견하고 있어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분히 경허가 밝힌 선화(禪火)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이단자라는 운명을 감수하고 북방고원의 방랑자로 쓸쓸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경허선의 비밀을 오늘의 언어로 살려내고자 한다.
저자 역시 이 평전을 쓰기 위해서 생전에 수년간 인간 경허, 시인 경허, 선승 경허의 연고지를 답사하고 행적을 추적했다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몇 가지 들 수 있다. 첫째 경허의 법맥과 관련 있는 고승들에 대해 엄밀하게 고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허집》에 실린 경허의 노래와 시들이 어떤 기연에서 비롯한 것인가를 면밀히 조사하고, 또 어떤 심정에서 읊은 것인가를 수행자의 시각으로 간파하여, 요소요소에 그 시구들을 배치하여 소개하고 있다. 둘째, 다양한 경전의 숲에서 읽어낸 의미를 토대로 적절한 부분에 적절한 내용을 삽입함으로써 경허의 선적 세계를 천착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 선승들의 뼈를 깎는 수행의 체험을 근거로 경허의 구도과정을 밝히고 있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경허를 스스로 환채(還債)의 길을 걸어간 사람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 선가에서는 숙업의 여파를 다스리는 것을 환채라고 한다. 환채란 ‘빚을 갚는다’는 뜻으로 선불교 특유의 업사상을 보여 준다. 이미 깨달았지만 남아 있는 숙업의 여파는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257). 뼛골 사무치는 가난을 지복으로 삼고 삼수갑산으로 떠난 경허는, 절을 떠나 유발의 선객으로 추운 고원지대를 떠도는 동안, 강주땅 팔 년간을 누더기 한 벌로 살았다는데, 이것이 경허의 환채였던 것으로 서술한다.
선사의 열반 100주년을 기해 나온 이 책은 ‘고해 속의 물고기, 소년 동욱’에서 ‘삶도, 죽음도, 사랑도, 미움도 없다’로 끝나는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허의 신화와 진실’에서부터 ‘경허선사 연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정보를 집대성했으며, 부록으로 경허선사의 연보와 경허 문파도가 실려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3) 한중광 《경허‐길 위의 큰 스님》(한길사, 1999)
한중광은 ‘길의 성현’ 경허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행과 위없는 깨침, 그리고 세간을 뛰어넘어 세간으로, 다시 출세간을 넘어 출출세간으로 펼쳐지는 극적인 삶을 조명하고 있다. 위대한 깨침과 존재의 본질과 모든 존재의 참모습인 공성을 철저히 깨달음으로써 근원적으로 풀어갈 수 있으며, 참사람으로 참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평전의 저자답게 이 책을 쓰기 위해 경허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다고 한다. 경허의 출생과 성장기에서부터 출가수행과 오도와 보임, 그리고 출출세간기인 마지막 생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전하면서, 스님 행장의 의미를 잘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전기식 나열에만 그치지 않고 때로는 중간중간에 상황에 맞는 스님의 법어 삽입, 시작하는 글에 앞서 간결한 시적 게송, 다양한 경전의 언급, 경허의 시선과 서산대사의 시, 서정주, 김달진, 조정권 등 현대 시인들의 시를 언급하는 등 문학적 수법으로 일화를 다루면서 경허의 본래면목을 짚어낸 점이 뛰어나다. 그리고 중요 용어 풀이와 320여 개의 각주, 상당한 참고문헌을 싣고 있어 경허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서술상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신라의 혜숙(惠宿)과 혜공(惠空), 대안(大安), 원효가 그러했듯, 경허가 처절한 보임양장을 하고 ‘오도가’를 부른 이래 강계를 떠나 갑산으로 향하는 내용을 화광동진의 대장정에 나선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경허가 박난주라 이름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서 갑산 일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서민 대중과 더불어 살아가며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술집에서 행한 모든 것이 동체대비의 방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경허가 때로 선비의 차림으로 때로 서민의 옷차림으로 묻혀 지냈지만 홀로 있을 때에는 가벼이 가사 장삼을 입었다며 “그의 삶이 결코 세간과 출세간에 머문 것이 아니라 출출세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저 낮은 곳을 향하여’가 둘이 아님을 온몸으로 보여 준 경허의 삶을 21세기를 비춰 줄 깨침의 별이요 삶의 등대임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경허가 상상을 초월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회향하려 한 그 뜻은 무엇인가. 저자는 붓다와 원효가 그랬듯이 “뿌리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아가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경허의 삶이야말로 제1 화두인 중생해탈과 제2 화두인 역사해탈을 아우른 21세기 인류의 대안이라고 언급한다. ‘뿌리로 돌아가라’는 것은 일체 존재의 본질인 불성을 깨달아 ‘참사람’이 되라는 의미이고, ‘알몸으로 살아가라’는 것은 일체 존재의 실상인 공성(空性)을 바로 보아 ‘참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 평전의 골자를 말해 준다.

4) 최인호 《길 없는 길》(여백, 2008)
1권 거문고의 비밀, 2권 불타는 집, 3권 생각의 화살, 4권 하늘가의 방랑객 등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길 없는 길》은 근대인의 ‘길 찾기’를 불가의 오랜 선적 전통과 접목하여 이야기로 담아낸 것이다. ‘내가 곧 부처’라는 진리를 만나게 하는 불교문학의 압권이다. 소설의 서술은 두 개의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 구조의 하나는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대학에서 해직된 영문학자 ‘강빈’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경허의 일대기이다. 저자는 거문고라는 매개물을 통해 고승 경허의 삶으로 들어가는 구도로 선승의 삶을 통해 난해한 불교 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선 용어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선승 경허의 삶이 민중들의 희구를 담아내는 한국불교 본래의 덕목을 되살리는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다른 한편으론 경허가 지닌 선사들의 내면적 갈등과 자기 암시, 구도를 향한 끊임없는 정진 등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강빈은 기생 출신이었던 모친에게 대학 입학 후 자신이 의친왕의 소생이라는 사실을 듣고 혼란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부끄러움과 자기부정으로 청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던 그는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일곱 알로 된 큰 묵주를 잘 간직하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묵주에는 ‘경허성우(鏡虛惺牛)’와 ‘만공월면(滿空月面)’이라는 여덟 개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묵주와 거문고의 비밀을 찾아 나선 주인공의 행로가 외적 이야기의 주제이다. 2권에 이르면 강빈의 출생과 성장 과정, 묵주와 거문고의 내력이 밝혀진다. 여기에서 묵주가 만공 스님과 의친왕 사이의 범상하지 않은 인연을 보여주는 신표였다는 사실, 그리고 의친왕과 동기(童妓)였던 어머니와의 관계, 왕가의 소생임을 인가받지 못한 채 모친의 성을 따라서 이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강빈’의 슬픈 내력이 차츰 그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모친의 죽음 후 강빈은 모친의 감추어진 삶에서 평생 청계사를 드나든 신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함께 청계사에서 수행의 길을 시작했던 경허의 삶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전염병이 창궐한 죽음의 마을에서 경허 자신이 지금까지 그토록 매달려왔던 문자의 해석에 의지한 불교로서는 삶과 죽음의 비밀을 풀 수 없으며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모든 인간은 바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지닌 부처라는 가능성에서 출발하여 선(禪)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전염병의 공포에 쫓기던 경허가 거의 본능적으로 화두를 점검했던 이유로 서술한다.
한편 저자는 주인공 ‘강빈’은 자신의 해직 기간 동안 비로소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음을 밝힌다. 그 질문은 경허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심우도’의 절차를 거쳐서 ‘공’의 원리에 심취하며 답을 얻는다. 주인공이 ‘경허’라는 존재에게서 발견한 가치는 부처께서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세속을 좇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실천한 경허 선사의 ‘대(大) 자유인 상’이다. 그것은 ‘모든 집착을 끊어버린 자’의 깊은 경지이다. “이름을 감출수록 이름이 더욱 새로워질까 다만 그를 두려워하노라(但恐匿名 名益新)”라는 경허의 읊조림도 ‘삶의 집착에서 벗어난 자’의 노래로 이해된다.
결국 강빈은 해인사에서 경허의 유품과 친필을 확인하고 경허와 자신은 하나임을 깨닫는 것으로 묘사된다. 장경각 안에서 목판경 위에 손을 얹고 깊은 상념에 빠진 강빈에게 비수처럼 꽂히는 내면의 목소리는 “나와 내 것을 모두 버려라, 그러면 너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이다. 이 순간 강빈은 “경허는 경허이고, 나는 나다”라고 외친다. 부처로부터 경허에 이르는 선의 흐름은 강빈과 연결된다. 경허의 길을 좇아가며 그 삶을 추체험하며 터져 나온 깨달음이다. 마침내 강빈은 여행에서 돌아와 대학 당국으로부터 복직을 통고하는 통지문을 받으며 이 소설은 끝난다.
여기서 저자가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것은 성과 속의 양면을 지닌 우리 모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경허와 나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또한 하나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길’은 자신의 법기를 가늠해줄 스승도 없는 지금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이다. 이 소설이 부처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운 행보로 ‘길 없는 길’을 넘나들며 인간의 본성을 찾고자 함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정휴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불교시대사, 1992)
저자는 경허를 단순한 기인이나 농세(弄世)의 달인이 아니라, 고통의 극한에서 오히려 최고의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 몇 세대를 앞당겨 살다간 슬픈 초인으로 그려내고 있다. 삶은 파격의 연속이고, 파격을 통해 깨달음의 자유를 시험했고 명분과 사상의 틀에 구속되기를 거부한 초인으로 묘사해 낸다. 삼천대천세계를 자기 집, 자신의 삶의 무대로 삼고 서서히 탈속 무애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 경허의 무애는 파계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비난과 탄핵이 뒤따랐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치열한 구도정신의 표출이었고 초월적 삶이었으며 오히려 해탈적 자유로 인식되고 미화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바람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로 시작하여 ‘갯마을의 정사’로 끝나는 이 소설에서 저자는 경허가 14세에 출가하여 32세까지 가장 치열하고 전통적 수행인의 삶을 살았으며, 성취할 개오를 위해 자신을 백척간두까지 몰고 갔고, 일체 경전을 배우고 나서 그 경전의 지식이 죽음 앞에 참으로 허망함을 묘사한다. 특히 콜레라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스스로 삶과 죽음을 분리하고 해체하는 견성 실험을 통해 불멸의 법신으로 다시 태어난 경허의 구도와 깨달음의 행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오도 후, 경허의 남보다 앞서 가는 해탈적 정서와 야성적 광기가 만든 난폭함은 무애의 자유로 승화되어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경이를 일으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서술한다. 경허는 스스로 오물 속에 빠져 삼악도의 고통을 체험했으며 때로는 지옥의 삶을 살기도 하였고 축생과 아귀의 세계로 자기를 몰락시켰으며, 운수적 고독을 참지 못해 초동들을 불러 돈을 주면서 자기를 때리도록 했고, 미친 여자와 잠자리를 하면서 뜨거운 잠자리를 나누었으며, 문둥병에 걸린 여자와 침식을 할 만큼 미추(美醜)를 초월해 있었던 것으로 묘사한다. 갯마을 처녀를 사랑하고 정을 나눈 후 짐승처럼 뭇매를 맞고 실신한 후 사흘 만에 깨어나서는 파도소리가 높고 바람이 거칠더라고 여유를 보인다는 경허의 모습에서 술과 여자를 소유하면서 집착하지 않았고, 구름과 바람의 신이 되어 파계의 허물을 남기지 않았음을 짚어낸다. 미혹의 안목으로 보면 경허의 형상은 파계승이요, 타락된 인간으로 보이지만, 그의 견성 체험의 득의망언(得意妄言)의 입문에서 그의 실상을 이해하면 경허는 일체 것을 버리고 나서 일체를 획득한 해탈인이요, 중생 전체의 슬픔과 절망에 동사섭하는 자애로운 구도자라는 것이다. 윤리적인 세계는 미추, 선악이 분별이고 상대적 세계이다. 그러나 저자는 선가에서는 상대적인 모든 한정을 깨버리는 대융합의 세계임을 설파한다. 여기에 자비의 계율, 마음이 계율이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경험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어쩌면 자신의 체내에 경허와 같은 무애의 광기가 떠돌아다니고 있었다고 술회한 점이다. 그래서 그의 삶을 소설과 전기 형식으로 새롭게 형상화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실패했다고 후기에서 말하고 있다. 도반끼리 입적하여 한 수행인은 별빛이 되고 한 스님은 소쩍새가 되어 서로 달빛과 새소리로 듣는 아름다운 만남도 있었다는 저자는 “선사들의 입적 모습은 생멸이 없는 삶을 살고 간, 한 편의 시”라고 말했다. 수행으로 이뤄진 삶의 끝은 오히려 마음달(心月)이 밝은 상태이고, 빛과 그 경계마저 없는 신생의 지경이 된다. 저자는 이를 “별들이 빛을 거두어 가듯 인간도 죽음으로 자성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해주고 있다. 요컨대 경허의 고통은 덧없는 세월에서 오는 고통이 아니라 불교적 초탈이 만들어 낸 고통과 슬픔이며, 경허가 소쩍새로 환생하여 울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저자의 내면세계에는 다분히 이러한 감정이입의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3.경허의 신화적 서술과 이설(異說)의 문제

1) 탄생 후 사흘 동안 울지 않았다
한암의 〈경허화상 행장〉과 한용운의 〈약보〉에 의하면 경허가 태어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평전과 소설에는 다 같이 경허가 태어나서 사흘 동안 울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다. 경허가 태어나서 사흘 동안 울지 않았다 함은 입태(入胎), 어머니 태 속에서 열 달 동안 머무는 주태(住胎), 어머니 태에서 나오는 출태(出胎)에 어둡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장차 삼계(三界)에 울음을 그치게 하고, 조선에 법등을 다시 밝히며, 조선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대원력보살의 삶을 살게 될 것을 시사한다 할 수 있다(한중광, 39).
경허의 탄생에 얽힌 설화가 시사하듯이, 불보살의 삶은 모든 고통과 굴레로부터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의 삶이며 해탈이다. 그렇다면 경허가 세상에 태어난 후 사흘이 지나도록 울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 사흘간의 침묵은 장차 이 나라 불교계에 큰 사자후를 토해낼 조짐인 동시에 큰 그릇의 소유자임을 암시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2) 뱀과 소통하다
천장암에서 경허가 선정에 들고 있을 때, 뱀이 경허의 무릎을 지나 등 위까지 올라와서는 주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나 경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무심한 그대로였다. “실컷 놀다가 가게 그냥 내버려 두어라.”라고 말했던 경허였다. 독사는 스르르 똬리를 풀고 내려오더니 이내 뒷문으로 사라졌다. 뱀이 사라지자 경허는 제자 만공에게 “평상심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에 마음에 동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쉽게 믿기지 않은 일화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행 정진에 있어 한 치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부동심’이 강조되고 있다.

3) 입적 장소에 대한 이설
〈함경북도 갑산군 웅이면 만덕산 아래에서 선법사 다비 때에 읊다〉라는 만공의 시 제목을 보면 경허의 무덤이 만덕산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허가 입적한 곳(마을)에 대해서는 유력한 이설을 제기하는 것이 있다. 이흥우는 그 증언을 담여 김탁의 장손이며 임시정부 첩보요원으로 활약한 김홍국에게 들었다 한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경허가 입적한 마을은 만덕재 아래의 성장동(成章洞)이었다고 한다.(이흥우, 322)

4) 〈금강산유산기〉 위작에 대한 설과 사실 관계
교계 일각에서 〈금강산유산기〉가 경허의 진작(眞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일지는 《경허》에서 경허의 진작으로 진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경허가 표훈사에서 쓴 〈제헐성루〉 2수와 한암이 “갑진년 봄 오대산에 들어가 금강산을 거쳐 안변군의 석왕사에 도착하셨다”고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에서 계속 동해안으로 북행하여 금강산을 돌아본 뒤, 석왕사로 가는 경허의 여정은 당시 북행 교통로를 감안해 보아도 설득력이 있다(일지, 285).

5) 경허의 유발은 환속의 징표인가
경허의 유발은 한암이 적은 바와 같이 ‘도회귀적(韜晦歸寂)’을 위한 변장이다. 즉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기 위한 유발이다. 선의 대전제는 형상으로 성과 속을 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마음의 깨달음을 원칙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일지, 289). 따라서 경허의 유발은 환속이 아니라 다만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기 위한 행위였다 할 수 있다. 선은 형상으로 성(聖)과 속(俗)을 가르지 않고 깨달음만을 원칙으로 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6) 삼수갑산행의 신비화와 도피성의 문제
경허가 만년인 1906년 갑자기 삼수갑산으로 종적을 감춘 것은 경허의 정체성을 다루는 중요한 이슈이다. 왜 경허는 방장이나 선원의 조실을 마다하고 또한 경성 땅을 밟지 않고 하필이면 조선시대의 유배의 땅 서북단의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삼수갑산으로 가 이름을 박난주(朴蘭洲)로 바꾸고 스스로 속인이 되어 살았을까?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 가장 낮은 자들이 사는 곳, 가장 춥고 배고픈 그곳으로 향한 경허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자신의 신비화와 ‘도피성 은둔’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에겐 추상같되 남에겐 훈풍이 되었던 선사들에게 은둔이란 단순히 세간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의 빛을 감춘 채 중생 속에 숨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는, 수행의 최후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서의 자리를 비운 것이었던 것이다.
음주와 식육, 여색 등 비도덕적이며 계율파괴의 행위로 승가의 구성원들과 세인들로부터 ‘악마, 마종’이라는 원색적인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자 이를 모면하기 이하여 은둔을 선택했다고 하는 일부의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이류중행(異類中行), 화광동진(和光同塵), 과거에 지은 업을 갚는다는 환채(還債)의 정신, 즉 중생들의 현실 삶에 직접 들어가서 그들의 환경과 근기에 맞추어 함께하며 거침없는 성격 그대로 살고자 한 경허의 보살도 정신에서 찾아진다. 평전과 소설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경허가 한암에게 주는 전별사에서 “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말에서 찾고 있다. 또한 경허의 북행을 입전수수와 이류중행이라고 보는 것은 그의 〈심우가〉와 〈심우송〉에서 수행자의 마지막 삶을 항상 입전수수와 이류중사(異類中事)로 그리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경허의 평전과 소설은 비록 그 나름의 서술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경허의 삼수갑산행을 신비화하거나 미화하고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경허는 자신의 남유(南遊)를 끝내는 시점에서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 빛을 비춰주고는 자신의 진면목은 감추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소멸을 생각한 것이지, 결코 은둔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4. 나오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허의 평전 3권과 경허 소설 2권은 모두 경허의 출가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연고지와 행적을 추적함은 물론 다양한 경전과 선어록, 그리고 문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그 결과물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지만, 경허의 자유가 향한 곳은 언제나 저 낮은 곳, 다름 아닌 민중이 울고 웃는 저잣거리의 세계였음을 담아내고 있다.
만해가 경허의 문장과 시에 대해 “문장마다 선이요 구절마다 법이어서 실로 기이한 문장이요 기이한 시”라고 높이 찬탄하고 있듯이, 경허의 선시는 도심, 시심이 하나 된 시선일치의 경지와 산하대지와 무심도인의 경허가 하나 된 물아일체의 경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경허의 선과 시문학에 담긴 선의 섬광과 우수들은 삶의 속악과 범속들, 그리고 덧없는 존재들의 미망을 단숨에 뛰어넘고 불교의 세계마저 뛰어넘는다. 어쩌면 거친 행동이 미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경허의 뛰어난 오도적 체험과 시정신(詩精神)이 있다 할 것이다. 선시에는 잘 정제된 감성과 초월적 우주의식, 그리고 자연을 해체하고 재조직하는 뛰어난 분석력이 있는가 하면 한국적 정서로 애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한암이 이야기한 것처럼 마음달(心月)이다. 만년의 경허가 차라리 어느 절의 조실로 주석하면서 여생을 보냈다면 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허는 명분과 사상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했기에 그 막막한 자유로움의 가혹한 보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를 넘어선 경허는 오히려 통념과 억측의 희생자로서 홀로 서 있게 된 행복을 누리며 빈 거울이 되어 사라져 갔다. 그 빈 거울은 분별과 망념에 떨어진 중생심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주는 자비의 다른 얼굴이다. 경허가 은둔의 선사로서가 아니라, 잘못된 소문과 이설, 저잣거리의 이야기 틀을 벗어던지고 전광석화의 깨달음을 던져 주는 마음달의 참모습으로 우리 곁에 선연히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백원기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영문과, 동 대학원 영문과 졸업(문학박사), 한국동서비교문학회 부회장 및 조계종 국제포교사회장 역임. 주요 논문으로 〈서구 초현실주의와 만해의 시〉 〈하디와 정현종의 생태시학〉 등과 저서로 《선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하디의 삶과 문학》 번역서로 《아시아의 등불》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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