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욱스님 목동 반야사 주지

왜 성지를 순례하는가. 불자들은 인도로 순례를 떠나기를 갈망한다. 경전에서 읽은 부처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부처님의 숨결을 느껴보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정진하고자 함이리라. 그러나 모든 순례자들도 그럴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인도에 도착한 다음날 갠지스 강가에서 무참하게 깨져 버렸다.

이른 새벽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갠지스 강은 목욕하는 순례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화장장에선 세상을 떠난 이의 흔적을 지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태양이 떠오르는 그 모습은 생과 사, 그리고 삶의 모습들이 진하게 다가왔다. 나는 갠지스 강가에 서서 눈을 감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있었다.

비구들아, 갠지스강의 물결을 보아라.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실체도 없고 본질도 없다.
비구들아, 어떻게 물결에 실체와 본질이 있겠는가?
신체는 물결, 감각은 물거품, 표상은 아지랑이, 의지는 파초, 의식은 허깨비 이것이 세존의 가르침이다. (상응부경전3 219쪽, 포말)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함께 온 불자들이 검은 비닐봉지엔 모래를, 작은 병엔 강물을 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부처님은 갠지스 강을 비유하여 무상의 법문을 설하셨건만 저들은 지금 무상법문은 잊고 성지의 물과 모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순례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천지간에 불법이라고는 모르는 이들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갠지스 강물은 백년이 지나도 절대 썩지 않는 성수라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스님들이 다 하시는 일인데 새삼 왜 스님만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불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리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다비장에 흙을 한줌씩 퍼가는 바람에 야산 만하던 성지가 지금은 기단만 남았다고 했다. 부다가야 보리수 나뭇잎도 순례자들에게 파는 현실이 아닌가. 기독교의 성지인 베들레헴 성탄지에서 흙을 담아 팔고, 요단 강물을 담아 판다고 하니 비단 불교성지만이 겪는 일은 아닌가 보다.

페티시즘(fetishism)은 원시종교의 공통현상으로 모든 물건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 이를 숭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성지의 물과 흙, 나뭇잎 등 성스러운 흔적을 간직하면 종교적 영감을 얻게 한다고 믿는 것이리라. 이런 페티시즘 현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성지들이 앞으로도 계속 훼손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세상에 병에 담겨 썩지 않는 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아주 능숙하게 한국어를 하는 어부가 다가와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물고기를 사서 방생하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는 물고기 방생이 인도까지 전파(?)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갠지스강뿐만이 아니라 그 뒤로 찾아가는 성지에서도 계속되었다. ‘석가모니불’을 부르는 아이, 1달러만 달라고 외치거나 물건을 사라고 혹은 선물이라고 하면서 강매하던 아이들 모두 한국 불교인들이 물들여 놓은,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나는 열반당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인도의 아이들이 수많은 외국 승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한국 승려인 내게만 구걸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전 세계 모든 불자들은 승보에 보시한다. 이것이 의무이며 권리라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들을 동정하여 던져준 동전 한 닢이 이들에게 벗기 어려운 굴레를 씌운 것처럼 이들도 우리 한국 승려들을 승보로 여기고 있지 않고 돈 많은 순례자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난날 우리의 가난이 가슴 아파 동정심과 자비심이 엉켜 그들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응했던 일이 결국 이들을 거리의 아이로 전락시켜 버린 셈이다. 인도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여 여행자들에게 돈을 주지 말 것을 권장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국이 무상교육이라는데 아이들은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 애걸하면 돈을 주기 때문이다. 힘들게 노력하는 것보다 구걸이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이 습성에 젖으면 벗어나기 어렵다. 교육만이 이들에게 활기찬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보시를 행할 수 있는 길이리라. 이들의 교육 불사에 보시를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순례하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던 이 끈질긴 아이들을 뿌리치며 번민으로 상처받은 우리는 ‘수자타아카데미’에 이르러 정화하듯 마음을 다해 보시했다.

성지를 순례하는 불자들에게 먼저 부처님 일대기를 읽고 몸과 마음과 행동을 청정하게 한 뒤에 옷깃을 여미며 부처님의 길을 따라 출발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삼업이 청정할 때 드러나는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모든 이들에게 이롭고 자신에게도 이로운 수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란자라 강물이 말라 버린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갠지스 강물과 모래에 연연하여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참된 순례자가 되어 무상이라는 큰 화두를 챙기길 바란다.

성지순례의 참된 의미는 삶의 고통을 체험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으로서 부처님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 분의 숭고한 고행정진과 우리에게 가르치신 삶의 방식을 느끼는 것이다. 부처님의 참뜻을 간직하고 수행하여 그 분의 뒤를 따를 것을 순례를 통해 가슴에 담아 와야 하는 것이다.

갠지스 강가에서 부처님이 화현하시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를 설해 주시는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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