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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입자를 통해 본 불교의 세계관* / 양형진
[57호] 2014년 03월 01일 (토) 양형진 yangh@korea.ac.kr

1. 지수화풍에서 힉스입자까지

   

양형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밤하늘에 나타나는 천체의 규칙적인 운행을 보면서 우주가 어떤 모습인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자연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라면, 이 우주 전체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또 다른 한 가지 의문이 될 것이다. 이는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 왔던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고대인들은 우리의 세계가 네 개의 원소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우주의 모든 물질이 원자라는 기본 단위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근대과학의 원자론으로 바뀌었고, 원자는 다시 무수한 소립자로 구성돼 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설명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17개의 기본입자 중 마지막 입자인 힉스입자가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원자 탐구의 역사, 표준모형과 힉스입자, 대칭성의 깨짐에 대해 살펴본 후, 불교의 세계관과 관련하여 세계의 위계 구조, 대칭성의 깨짐, 기본입자의 무아성 등을 논의하겠다.

2. 원자에 대하여

1) 4원소설과 원자 

고대 인도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세계가 네 가지의 원소(element)인 흙, 물, 불, 공기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두 문명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설명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가 4원소로 이뤄져 있다는 설명은 너무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는 시도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세계가 기본적인 원소 몇 가지로 이뤄져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근대과학의 원자론과 맥을 같이하는 세계 이해라고 볼 수도 있다.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2~432경)는 우주는 흙, 물, 불, 공기의 질적으로 다른 네 가지의 원소로 구성돼 있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1경)는 세계가 영원불변의 딱딱한 물질인 원자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어로 원자(atom)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다(indivisible)’는 의미를 갖는다. 개념적으로만 보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근대과학으로 계승되고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4원소설로 발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근대과학의 원자론을 성립하게 한 추동력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온다.

과학혁명 이전까지 서구 물질관의 기초가 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의하면 흙, 물, 불, 공기의 4 원소는 습함과 건조함,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두 쌍의 성질과 관련을 맺는다. 불은 뜨겁고 건조한 것이고, 물은 습하고 차가운 것이며, 흙은 건조하고 차가운 것이고, 공기는 습하고 뜨거운 것이라고 했다. 네 원소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성질 중의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교체함으로써 다른 원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원소가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영원불변의 원자를 상정하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원소가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금속으로부터 금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되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 이론은 후에 연금술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금은 한 조각도 만들지 못했지만, 연금술은 수많은 화학약품과 화학기구를 만들어냈고 실험방법을 개발하면서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화학이 발전하면서 근대의 원자론이 성립됐으니,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보다 4원소설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연금술을 통해 근대의 원자론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질소가 방사성탄소로 변환되거나 핵융합이나 핵분열에 의해 방사성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영원불변의 원자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변환될 수 있는 원자로 세계가 이뤄져 있다고 보는 것이 현대물리학적인 설명과 오히려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2) 원자에 대한 탐구

원자에 대한 근대적인 개념은 돌턴(1766~1844)에 의해 제기됐다. 그는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뉘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인 원자로 구성돼있다고 생각했다. 원자라는 용어와 이런 개념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다를 것이 없지만, 돌턴은 서로 다른 원소의 원자들이 서로 다른 크기와 원자량을 갖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아보가드로(1776~1856)에 의해 분자라는 개념이 제시됐고, 물질 대부분은 원자 상태가 아니라 분자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서로 다른 원소가 꾸준히 발견되면서 이런 원소들 사이에 주기적인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근거로 멘델레프(1834~1907)가 주기율표를 제안하면서 원자의 세계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소는 원자번호가 1인 수소에서 원자번호가 92인 우라늄까지의 92개이며, 그 이상의 원자번호를 갖는 원소는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순식간에 원자량이 적은 원자들로 붕괴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리스의 어원이 말하는 대로 원자가 나뉠 수 없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1897년에 톰슨이 음의 전기를 띠는 전자(electron)를 발견하면서 이런 믿음은 완전히 근거를 잃게 된다. 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원자가 그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원자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 원자가 세계의 궁극적인 물질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 이후 지속돼 왔던 원자의 개념이 이렇게 근원적으로 바뀌면서,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됐고 이와 함께 물리학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원소가 존재하느냐가 지금까지의 관심사였다면, 원자가 무엇으로 구성돼 있고 그 구성요소들이 어떤 형식으로 엮여 있는지 즉, 원자가 어떤 구조인지가 이제부터의 관심사가 되었다. 세계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데서, 세계의 구성요소인 원자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으로 물리학의 관심사가 바뀌면서 현대물리학이 시작된다.

3) 원자의 구조

전자를 발견했던 톰슨은 양전기의 물체가 안개처럼 퍼져 있고 그 안을 전자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톰슨의 원자모형이라고 한다. 건포도가 박혀 있는 빵처럼, 양전기를 띠는 물질 속에 전자가 점점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알파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원자 내부의 아주 좁은 공간에 양전하가 뭉쳐져 있는 원자핵(nucleus)이 있으며 나머지 넓은 공간에 음전하의 전자가 돌아다닌다는 원자모형이 제시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의 모형이 완성됐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돼 있으며, 원자핵은 다시 양의 전하를 띠는 양성자(proton)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neutron)로 이뤄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거의 같고 그 질량이 전자 질량의 1,800배 정도이다. 따라서 원자의 질량은 99.9% 이상 원자핵에 몰려 있다. 전자는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거의 점이라고 생각되며, 양성자는 반지름이 1fm(펨토미터)이다. 그런데 가장 간단한 구조의 수소(Hydrogen) 원자의 반지름이 0.5A0 정도이므로 수소 원자핵의 반지름의 5만 배나 된다. 원자핵을 반지름이 1cm인 공으로 늘린다면 수소 원자는 반지름이 500m인 구가 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의 모형이다.

이렇게 큰 구 안에 방울토마토만 한 크기의 원자핵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작은 영역에 원자 질량의 99.94%가 몰려 있다. 원자질량의 0.06%만을 차지하는 전자가 원자핵을 제외한 나머지 아주 넓은 공간을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원자핵이 위치한 아주 좁은 영역을 제외하면 원자 내부는 거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수소 원자뿐 아니라 다른 원자도 모두 마찬가지여서, 우리 주변의 물질이 차지하는 부피의 대부분은 예외 없이 이렇게 텅 비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성자별이나 블랙홀과 같이 원자핵만 모여서 대단히 밀도가 높은 천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빈 공간인 우리 몸이 역시 빈 공간인 벽을 왜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가? 빈 공간인 우리가 역시 빈 공간인 바닥을 지나, 중력에 의해 지구 중심을 향해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것이 거의 빈 공간이라도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들 사이의 정전기적 반발력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 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두 물체를 구성하는 전자들 사이의 정전기적 반발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면서 커지기 때문에, 두 물체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접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텅 빈 공간이지만, 우리는 땅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3. 표준모형과 힉스입자

1) 측정과 충돌, 그리고 입자가속기

갈릴레이 이후 물리학은 여타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관측을 통해 이론의 진위를 검증(confirmation)하는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의 전통을 고수해 왔다. 그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활용됐던 성서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나 본성론을 거부하고, 관측 자료를 통해 과학이론을 수립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직접 깎은 렌즈를 부착한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여, 그 당시로서는 지동설과 거의 동등한 설명력을 지닌 천동설을 부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측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광학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의학적 진단을 위해서는 초음파나 MRI, 엑스선 등을 사용하고, 천체 관측을 위해서는 전파망원경을 사용하며, 미세한 물체의 관측을 위해서는 전자현미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과학 장치를 이용하여 사물을 관측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이 안 좋은 사람이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과 원리상 같다.

이와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대상을 관측하기 위해 관측 대상을 깨트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사과 안에 씨가 몇 개인지를 알기 위해서 사과를 잘라보아야 하는 것처럼, 양성자를 구성하는 성분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양성자를 깨트려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자를 가속시킨 다음에 충돌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하는 과학기구를 ‘충돌기(collider)’ 혹은 입자가속기라고 한다. 대형 입자가속기를 이용함으로써 원자핵을 구성하는 여러 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둘레의 길이가 무려 27km에 이르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인데, 이를 이용하여 최근에 힉스(Higgs)입자를 관측할 수 있었다.

입자가속기는 전자나 양성자를 아주 빠른 속도로 가속시킨 뒤 이들을 정면충돌시킴으로써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핵자(nucleon, 양성자와 중성자의 총칭)를 깨트리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핵자의 구성 성분인 소립자를 관측하려는 기구다. 이때 가속 구간이 길면 길수록 충돌할 때의 속도가 커지고, 충돌 속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검출되는 소립자의 에너지가 커지면서 새로운 현상이나 새로운 입자를 관측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논의하는 힉스입자를 보려면 가속기로 입자를 충돌시켜 힉스입자를 생성해야 한다. 힉스입자는 생성된 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붕괴되므로, 이 붕괴된 입자의 흔적을 분석하여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LHC는 양성자를 자기 질량의 7천 배나 되는 에너지로 가속시켜 정면충돌시키는데, 이때 생성되는 소립자는 양성자 질량의 1천 배가 넘는 에너지를 가진다. 이는 빅뱅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에너지다.

2) 네 가지 힘과 이를 매개하는 입자들

채드윅이 1932년에 중성자(neutron)를 발견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가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이며, 양성자와 중성자로 원자핵이 만들어지고 원자핵과 전자로 원자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새로운 소립자(elementary particle)들이 계속적으로 발견됐다. 오늘날까지 알려진 소립자는 수백 개에 달하며, 이들은 모두 불안정한 입자들이어서 그 반감기는 10-6초에서 10-23초밖에 안 된다. 이런 입자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힘에 대해 먼저 소개해야 한다.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의 네 가지 다른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먼저 중력(gravitational force)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정식화됐으며, 질량을 가진 모든 입자에 작용하고 우리를 지구 표면에 붙어 있게 하는 힘이다. 아주 약한 힘이지만 우주의 형성과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성간물질을 모아 질량이 큰 천체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력이고, 이 천체의 내부 압력과 온도를 높여 핵융합반응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별을 탄생시키는 것도 중력이다. 그리고 천체들 사이의 공전운동이나 은하 사이의 상호 운동을 지배하는 것도 또한 중력이다. 그러나 지구 전체가 나를 끄는 힘이 내 몸무게 정도밖에 안 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주 미약한 힘이어서 원자 내부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힘이다.

전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은 하전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원자가 양의 전기를 띈 양성자와 음의 전기를 띤 전자로 구성돼 있으므로, 원자나 분자의 구조와 속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힘이며 화학적 반응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힘이기도 하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사이에 강한 반발력을 일으켜, 원자핵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도 전자기력이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사이의 거리는 아주 짧으므로, 그들 사이에는 대단히 강한 전기적 반발력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원자핵이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전기적 반발력을 제압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들을 묶어주는 아주 강한 힘이 원자핵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힘을 강력(strong force)이라고 한다. 강력은 전자기력보다 1만 배 이상 강한 힘이지만,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한다. 강력은 이처럼 핵자를 묶어 원자핵을 형성시키는 힘이지만, 더 낮은 단계에서는 쿼크를 묶어 핵자를 형성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 논의한다.

중성자가 전자를 방출하면서 양성자로 바뀌는 것을 베타붕괴라고 한다. 베타붕괴나 이와 비슷한 과정에 관여하는 힘을 약력이라 한다. 이 힘은 중력보다는 강하지만 전자기력의 100만 분의 1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약력(weak force)이라고 부른다.

약력은 모든 입자에 작용하지만 강력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강력이 작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입자를 구분할 수 있다. 강력이 작용하는 입자를 강입자(hadron)라 하고 강력이 작용하지 않는 입자를 경입자(lepton)라고 한다. 강입자에는 양성자와 중성자 등이 있고, 경입자에는 전자와 중성미자 등이 있다.

현대물리학에서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photon), 약력을 매개하는 W와 Z입자, 강력을 매개하는 글루온(gluon) 등이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다. 일례로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에서는 하전입자 간에 광자(photon)를 주고받으면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전자기력이라고 이해한다. 한 하전입자에서 방출된 광자는 아주 짧은 시간 후에 다른 입자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관측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가상광자(virtual photon)라고 한다.

3) 기본입자를 찾아서

원자가 핵자와 전자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기본입자가 아니듯이, 핵자도 충돌 실험을 해 보면 다른 소립자가 나오므로 기본입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충동실험에서 나오는 소립자들은 그 종류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핵자보다 더 무거운 것도 있어서 이들을 기본입자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됐다.

1961년에 겔만(Murray Gell-Mann)과 니만(Yuval Neeman)은 강입자들을 입자의 성질에 따라 기하학적 대칭성을 지니는 모형으로 배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겔만은 너무나 기뻐서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길을 의미하는 팔정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팔정도의 배열이 입자물리학에서 갖는 의미는 주기율표가 화학에서 갖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주기율표의 규칙성이 원자가 기본입자가 아니라 하부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강입자들을 이렇게 규칙적으로 배열할 수 있다는 것은 강입자의 하부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강입자를 구성하는 보다 기본적인 입자가 있다는 것이다. 겔만은 이를 쿼크라고 하였다.

1964년에 겔만과 츠바이히(George Zweig)는 강입자들이 쿼크(quark)로 이루어져 있다면 팔정도의 배열이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입자의 종류에 따라 세 종류의 쿼크로 이루어진 입자도 있고, 쿼크와 반쿼크로 이뤄진 입자도 있다. 양성자나 중성자는 쿼크 셋이 모여 이루어진 입자다. 둘씩 짝을 이뤄 업(Up)−다운(Down), 참(Charm)−스트레인지(Strange), 톱(Top)−보텀(Bottom)이라고 부르는 모두 여섯 종류의 쿼크가 존재한다. 이들 쿼크들은 글루온이라는 입자를 교환하면서 생기는 강력에 의해 강하게 속박되어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강입자를 만들어낸다.

쿼크에는 강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여러 개의 쿼크가 모여 강입자를 형성하지만, 전자나 중성미자와 같은 경입자에는 강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개의 경입자가 뭉쳐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쿼크와 경입자들은 그 내부에 하부구조가 없는 기본입자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쿼크와 경입자는 우리의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다.

4) 표준모형과 게이지 대칭성

우주의 모든 물질은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여섯 개의 쿼크와 강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경입자, 그리고 그들의 반입자(anti-particle)로 구성돼 있다. 그러므로 쿼크와 경입자와 반입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다. 그리고 이들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가 있다. 중력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중력자,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빛알(photon),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W와 Z-입자, 강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글루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사이에서 교환되면서 상호작용을 유발시킨다. 이들에 대한 이론을 표준모형이라고 한다.

네 가지의 근본 상호작용 중에서 중력을 제외하고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은 게이지 대칭성으로 정확하게 설명된다. 빛알, W입자, Z입자, 글루온은 게이지 입자(gauge particle)다. 이들은 모두 입자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다. 게이지 이론이 매력적인 것은 이렇게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게이지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게이지 입자가 없다면 게이지 대칭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게이지 대칭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게이지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게이지 입자들은 실험적으로 관측된다.

5) 자발적 대칭성 깨짐과 힉스입자

게이지 대칭성이 성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게이지 입자가 실험적으로 관측됐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지 이론에는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있었다. 게이지 이론에서 도출되는 입자는 질량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질량을 갖게 되면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게 된다. 그러나 실험으로 검출된 입자들은 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질량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카고대학의 남부 요이치로는 1960년에 자발적인 대칭성의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리고 1964년에 영국의 피터 힉스와 벨기에의 앙글레르 등이 게이지 대칭성의 자발적 깨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앙글레르는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면서 게이지 입자의 질량이 나타나는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을 제시했다. 그리고 힉스는 이 과정에서 질량을 가진 게이지 입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예측했는데, 이를 힉스입자 혹은 힉스보손(Higgs boson)이라고 한다.

스티븐 와인버그와 압둘 살람은 1967년에 이 이론을 약한 상호작용에 적용함으로써, 약력을 매개하는 W와 Z-입자가 질량을 가지며 이 질량 때문에 약력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게 되고 그 크기가 전자기력에 비해 아주 작다는 것을 설명했다.

1983년에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같은 물리량의 W와 Z-입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W와 Z-입자를 관측함으로써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17개의 입자 중 힉스입자를 제외한 모든 입자가 발견됐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10월 4일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물리량과 일치하는 힉스입자를 발견함으로써 힉스 메커니즘이 확인되고 표준모형이 완성됐다.

4. 우주의 구조와 불교의 세계관

1) 위계적 구조의 환원 불가능성과 상호 의존과 연관의 연기

우리는 쿼크가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의 핵자를 이루고 핵자와 전자가 모여 원자가 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가 모여 DNA나 단백질과 같은 생명물질을 이루고, 생명물질이 모여 세포를 이루고,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잘 결합하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이 잘 결합하여 단위 생명체를 이루며, 그 개별적인 생명체가 모여 생태계를 이룬다. 인간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인간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한 시대의 지식을 교육을 통해 후대에 전승하면서 문명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그러면 우주의 기본입자인 핵자를 이루는 쿼크와 전자 등의 경입자를 잘 이해하면 인간사회와 인류문명까지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생명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DNA 등의 유전정보나 단백질을 잘 이해해야 하지만, 유전정보나 단백질을 잘 이해했다고 해서 생명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쿼크와 인류문명쯤 되면 도저히 그들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고 믿기는 어려워진다. 왜 그런가?

전체에 대한 설명을 그 요소에 대한 설명으로 환원시키려는 것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한다. 그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단계에서 세계를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상위 단계의 요소가 하위 단계의 어떤 요소와 연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종류의 관계인지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전자의 결함이 특정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의학적 설명은 환원주의적 방법론이 성공을 거두는 좋은 사례다. 그러나 여러 변수가 서로 연관되면서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커지면 이 방법론은 한계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글자 a와 n과 d에 의해 and라는 단어가 구성되지만, and에는 각각의 글자에 들어 있지 않은 ‘그리고’라는 의미와 관념이 들어 있다. 이 ‘그리고’라는 의미와 관념은 개개의 글자가 전혀 지니지 않았던 의미와 관념이므로 하위 단계의 각 글자와 의미적 연관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관념은 각각의 글자가 서로 의지하는 상호 연관과 의존의 맥락, 연기의 맥락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런 상호 의존과 연기의 맥락 위에서 세 개의 쿼크가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형성한다. 이 형성의 과정에서 쿼크에는 없던 핵자의 성질이 발현된다.

이 창발의 과정이 있으므로 사회나 역사나 문화는 개개인의 행위로 환원되지 않고 생명은 세포로 환원되지 않으며 세포는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 사회과학이 생물학으로 환원되지 않고 생물학이 물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수소 원자는 100만 년 전과 동일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그때와 다르다.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동일해도, 과거의 역사와 문명의 기초 위에서 창발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우리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and와 핵자는 단순히 하위 요소 세 개가 결합한 게 아니라, 그 셋이 서로 의지하고 연관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하위 요소에 없던 새로운 요소가 창조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이를 연기론에서는 상의성(相依性) 혹은 상호 의존성이라 한다. 이에 대한 유명한 비유가 《노경》에서의 갈대 묶음에 대한 것이다. 경에서는 “세 개의 갈대가 땅에 서려고 할 때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과 같다. 만일 그 하나를 버려도 둘은 서지 못하고 또한 둘을 버려도 하나는 서지 못하듯이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된다”고 하였다.

세 개의 갈대가 서로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서 있을 수 있게 되는 ‘갈대의 묶음’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갈대’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자체로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갈대의 묶음’이라는 존재나 ‘갈대의 묶음’이라는 관념이나 ‘갈대의 묶음’이라는 명칭은 갈대가 서로 의지한다는 인연에 의해서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는 존재이고 관념이며 명칭이기 때문에 ‘하나의 갈대’에서는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존재이고 관념이며 명칭이다.

세 글자가 모이는 인연과 서로 의지한다는 인연에 의해서만, ‘그리고’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되고 그 관념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그리고’라고 읽게 된다. ‘그리고’라는 단어와 관념과 명칭은 각각의 글자만으로는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것이어서 각각의 글자를 아무리 분석해도 해명될 수 없는 단어이고 관념이며 명칭이다. 세 쿼크가 모이는 인연과 서로 의지한다는 인연에 의해서만, 핵자가 나타나게 되고 핵자의 속성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핵자라고 부르게 된다. 핵자라는 존재와 속성과 명칭은 개별적인 쿼크만으로는 도저히 드러날 수 없는 것이어서 각각의 쿼크를 아무리 분석해도 해명될 수 없는 존재이고 속성이고 명칭이다.

이는 또한 ‘바퀴’ 등의 부분이 모여 ‘수레’를 이루게 되는 경우에서도 마찬가지고,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모여 물 분자를 이루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부분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분석해도 해명될 수 없는 존재와 관념과 명칭이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면만을 본다면 인연의 관계가 부분에서 전체로 향하는 일방적인 관계인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a나 n이나 d라는 각각의 글자는 ‘and’ 등의 단어가 없다면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단어를 표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각의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므로 각각의 글자는 단어에 의지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수레와 바퀴’의 경우에도 ‘바퀴’ 등의 부분이 모여서 ‘수레’라는 전체를 이루지만, ‘수레’라는 전체가 없다면 ‘바퀴’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처럼 각각의 글자는 단어 전체에 의해서만 의미를 가지며 ‘바퀴’ 등의 부분은 ‘수레’라는 전체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가지므로, 각각의 부분은 전체에 의지하여야만 존재하게 되고 전체에 의지해야만 관념과 명칭을 갖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부분은 전체를 이루는 다른 부분에 의지하여 있을 뿐 아니라, 전체는 부분에 의지하여 있고 부분은 또한 전체에 의지하여 있다.

중아함에서는 “마치 목재에 연하고 풀에 연하고 볏집에 연하고 공간에 둘러싸여 가옥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는 것처럼, 뼈에 연하고 근육에 연하고 피부에 연하고 공간에 둘러싸여 신체란 명칭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세 개의 쿼크에 연하고 우리 우주의 배경에 둘러싸여 핵자라는 존재가 형성되고 핵자라는 속성이 나타나고 핵자라는 명칭이 생겨난다.

2)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입자의 상호작용과 무아 무상의 연기론

고대 인도와 그리스에서 똑같이 4원소설을 얘기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스의 4원소설은 지수화풍의 네 원소가 지니는 본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천상과 지상의 이분법을 적용해 천상을 구성하는 제5원소를 상정하기도 했다. 천상세계의 속성은 천상의 세계를 이루는 물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봤다. 이에 반해, 불교의 세계관은 세계가 이 네 원소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오직 인연의 화합에 의해 나타나고 그 인연의 별리에 의해 사라진다는 연기론이다. 이렇게 그 스스로 생겨나지 않고 무아무실체적(無我無實體的)이어서, 《능엄경》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별리(別離)하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였다.

세계를 구성하는 (생명체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특수한 자성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연의 화합에 의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본성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무아(無我)다. 이렇게 무아이고 무실체적인 것들이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인연의 모임에 의하여 나타났다가 그 인연의 흩어짐에 의하여 사라지니, 우리 우주에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없으므로 무상(無常)이다. 이렇게 불교의 연기론은 무아와 무상의 연기론이다. 이를 살펴보자.

소립자의 수명은 10-6초에서 10-23초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소립자들은 이처럼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순간적으로 소멸한다. 그러한 미립자로 원자가 이루어지고 그 원자에 의해 우리의 세계가 이루어지니,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찰나에 생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미립자의 세계에서 생성과 소멸이 찰나에 이루어진다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주목하여야 할 것은, 생과 멸로 이어지는 과정 전체의 상호연관성이다. 한 입자의 생멸과 다른 입자의 생멸은 결코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개개의 사건이 아니라 미립자 전체의 긴밀한 상호연관의 맥락 위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과정의 한 단편이다. 이 과정은 한 입자만을 본다거나 생성이나 소멸의 어느 한 면만을 보아서는 절대로 파악될 수 없는 전체다. 입자 간의 관계에서, 한 입자의 생멸은 다른 입자의 생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따로 떨어진 독립된 입자의 생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상의상대의 연기는 소립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나고 죽는 생명의 세계에서도 성립하고 성주괴공하는 천체의 세계에서도 또한 성립한다.

찰나에 일어나는 생멸의 과정에서 생은 멸을 있게 하고 멸은 생을 있게 하는 것이어서, 생과 멸은 동시적으로 공존하면서 역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전체다. 이처럼 생과 멸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동인으로 작용하니, 생과 멸이 또한 상즉하여 생즉멸하고 멸즉생한다. 곧 불생불멸이다. 이 중도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다.

이렇게 생과 멸이 한 덩어리로 가는 이유는 일체의 모든 것이 무아이기 때문이요, 생멸하는 모든 소립자가 자성이 없이 상의상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변하지 않는 본성을 유지하면서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무아다. 무아무실체적인 존재가 인연의 화합과 별리에 의해 어떤 것이 형성됐다가 소멸한다는 그 과정이 우리 우주의 모습이다.

이 연기적 생멸의 맨 아래에 위치한 과정이 쿼크에서 핵자가 형성되고 핵자와 전자로 원자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쿼크는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입자로 알려져 있다. 핵자 안에 쿼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쿼크들은 강입자 안에 영원히 갇혀 있어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기본 입자인 쿼크조차도 변치 않는 자성을 가지고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무아의 존재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이 상의상대하는 무아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곳이다.

3) 대칭성과 대칭성의 깨짐, 평등의 공과 차별의 색

용수보살은 연기하는 것을 공이라고 했다. 일체의 모든 것이 예외 없이 연기적 맥락에서 생하고 주하고 멸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일체의 모든 것이 예외 없이 공하다는 것도 또한 인정해야 한다. 이처럼 색을 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상호 연관과 의존의 맥락, 즉 색의 연기성에 근거하여 우리 우주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은 예외 없이 상호 연관과 의존의 연기적 맥락 위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자 각각이 보여주는 명백한 차별상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는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라는 보편적 공성(空性)이 나타난다. 여기서 색즉시공이 성립한다. 우리가 아는 일체의 모든 색은 예외 없이 공이기 때문에, 화엄의 1조 두순 스님은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난다고 했다. 각각의 존재자는 다른 존재자와 구별되는 차별성과 개별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는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라는 공성의 평등성과 보편성이 나타난다.

그렇게 일체의 모든 것이 예외 없이 공한 것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사는 색의 세계가 나타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공이라는 보편성과 평등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색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사물의 개별성과 차별성이 드러나게 되는가? 모든 것이 공하다는 평등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며 어떤 것은 아름답다고 하고 어떤 것은 추하다고 하며 어떤 것은 맛이 있다고 하고 어떤 것은 맛이 없다고 하는가? 공성의 평등성이 보편적으로 성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차별성을 지니는 존재자의 개별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십이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십이연기에 의하면, 무명과 행에 연하여 식과 명색과 육입과 촉과 수가 나타나고, 식과 명색과 육입과 촉과 수에 연하여 갈애가 나타나며, 갈애에 연하여 취와 유와 생과 노사우비의 고뇌가 나타난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공성의 평등성에도 불구하고, 무명에 연하여 형성되는 갈애에 의해 개별적 존재자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대칭성의 세계가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질량이 나타나지 않는 세계인 것처럼, 일체 모두는 공성이라는 평등성과 무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자발적인 대칭성의 깨짐에 의해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질량이 나타나는 것처럼, 갈애에 의해 취와 유와 생이 형성되면서 좋아함과 싫어함,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개별성과 차별성을 지닌 색의 세계가 나타나게 된다.

모든 것이 오직 연기일 뿐이므로 색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색이 있는 그 자리에서 공의 세계가 성립하는 것과 같이, 갈애에 의해 취와 유가 발생하는 것이어서, 공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공의 바로 그 자리에서 색의 세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공즉시색이 성립한다. 일체의 모든 색은 예외 없이 공에서 현현한 것이기 때문에, 두순 스님의 표현에 의하면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난다. 무아이고 무실체적인 공성의 평등성과 보편성에서 갈애에 의해 모든 존재자의 차별성과 개별성이 나타난다.

게이지 대칭성이 성립하는 평등하고 무차별적인 대칭의 세계와 대칭성이 깨지면서 각각의 질량이 나타남으로써 개별성과 차별성이 드러나는 현실의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듯이, 색의 세계와 공의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다. 색이 숨고 공이 드러나면 색즉시공이고, 공이 숨고 색이 드러나면 공즉시색이다.

4) 기본입자인 쿼크와 전자의 무아성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고,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핵자는 쿼크로 이뤄져 있다. 전자는 그 하부 구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결국 우리 우주의 기본입자는 쿼크와 전자가 된다. 이런 기본입자는 연기적 맥락을 통해 상호 의존과 연관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 자체의 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닌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즉, 기본입자의 자성을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다면 일체의 모든 것을 무아라고 할 수도 없게 된다.
쿼크에 대해 먼저 살펴보다. 쿼크 자체를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은 쿼크가 그 스스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쿼크를 자성을 지닌 존재라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처럼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자이기 때문에, 세 개의 쿼크가 모여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핵자를 이룬다. 궁극적인 물질이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우주가 연기적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핵자가 상호 연관과 의존의 연기적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쿼크가 연기적 구조를 전제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기적 구조를 전제한다는 것의 예는 서까래와 집 사이의 관계, 바퀴와 수레 사이의 관계, 심장과 생명체 사이의 관계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어떤 나무토막을 서까래라고 하는 것은 집이라는 구조물을 전제했을 때의 얘기다. 집이라는 구조물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서까래는 단순한 하나의 나무토막일 뿐이다. 그러므로 집이라는 구조물에서 서까래 하나를 뽑아낸다면,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서까래가 아니다. 이는 바퀴나 심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명체의 각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순환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근육 체계를 우리는 심장이라고 부른다. 그 심장을 몸에서 떼어내어 순환기관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더 이상 심장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근육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서까래와 바퀴와 심장에 의해 집과 수레와 몸이 구성되지만, 서까래와 바퀴와 심장은 집과 수레와 몸을 전제했을 때만 서까래와 바퀴와 심장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쿼크에 의해 핵자가 구성되지만 핵자를 전제해야만 쿼크의 존재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쿼크는 쿼크에 의해 구성되는 핵자의 연기적 구조를 전제해야만 성립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다.

쿼크와 달리 전자는 그 존재를 관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질량과 전하량 등 특정한 물리량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전자가 그 스스로의 물리량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독립적인 실체라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우주 전체의 전하량이 정해져 있다면 음의 전하를 갖는 전자의 총수는 양의 전하의 전체 양에 의해 구속될 수밖에 없으므로, 음의 전하를 갖는 전자 등의 존재는 양성자 등 양의 전하를 갖는 입자에 의해 구속된다. 또한 전자가 원자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다른 존재자와 무관하게 전자 자체의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원자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과 전자가 어떤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개개의 생명체와 생태계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 개개의 생명체가 생태계를 구성하지만, 개체 생명을 독립적인 실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개체 생명의 생존이 생태계에 의해 제약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생명체와 의존과 연관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만 생존이 가능한 존재가 생명이기 때문에 개체 생명을 독립적인 실체라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기본입자인 전자도 그 존재 양상은 스스로의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자와 어떤 연관과 의존의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처럼 전자도 원자 혹은 우주 전체의 연기적 구조를 전제해야만 성립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쿼크나 전자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기본입자라 하더라도 그들은 상위 존재자의 연기적 구조를 전제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무아이고 무실체적인 존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맺는말

현대물리학의 역사는 원자를 탐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원자를 탐구한 역사에서 시작하여 힉스입자와 관련된 입자물리학의 내용을 개괄한 후, 상호 의존과 연관의 세계 구조, 기본입자의 상호작용, 대칭성과 대칭성의 깨짐, 기본입자의 무아성 등을 통해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였다. 발표 후에 의미 있는 토론을 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

 

 

양형진 /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학 물리학 박사. 주요 논문으로 〈불교와 과학에서 평등과 차별, 중도(中道)〉 〈물리학을 통해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등이 있고, 저서로 《과학으로 보는 불교》 《산하대지가 참빛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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