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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의 ‘한’ 덫인가 돛인가
김상일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과정철학연구소
[30호] 2007년 03월 10일 (토) 김상일 김상일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과정철학연구소
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빼자는 제의가 나온 이후 ‘비’를 키워낸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이 “한국 문화상품에 한류라는 국가 라벨을 꼭 붙일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한류의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하여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한류는 원래 탈민족, 착각하게 하지 말라.”고 박진영 씨의 주장을 비판한다. 김종휘 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같은 문화평론가 남재일 씨가 박진영 씨를 옹호하여 “민족주의 광풍 비판한 것, 한류 국수주의 경계해야” 한다고 김종휘 씨 주장을 비판한다.

박진영 씨가 문제 제기를 한 후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비판의 비판을 우리는 모두 읽고 들었다. 마침 박진영 씨가 문제 제기를 하기 이틀 전 2월 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류와 한사상’이란 학술대회가 열렸다. 90여 명의 교포들과 학생들이 모여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발표된 내용들 그리고 토론된 내용들을 소개하며 지금 한국 내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한류 담론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선도 문화와 한류’라는 주제로 필자가 발표를 하였다. 한류의 기원은 최치원이 <난랑비서문>에서 말한 풍류도와 포삼교(包三敎)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과, 한류의 근원을 좌우 뇌가 잘 조화된 한국인들의 뇌 구조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잡힌 문화적 흐름이 바로 한류의 틀이 된다고 하였다. 다음 강은해 교수(계명대 국문과)는 한국 ‘난타’의 원형을 도깨비 문화에서 찾았다. 도깨비의 원래 이름은 ‘두두리’이고 이는 두드림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류와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난타가 결국 한국적 도깨비 문화의 산물임을 지적하였다. 하늘과 땅이 서로 두드려 여는 문화가 단군신화들에 나타난 한류의 원류라는 것이다.

이도흠 교수(한양대 국문과)는 한류를 한국 문화의 심층심리에서 추구하여 그것을 기호학적으로 구명하였다. 특히 원효의 화쟁기호학을 통해 한국인들의 불이불일(不一不異) 사상이 한류의 논리적 구조가 됨을 선명하게 설명하였다. 이어 김봉진 교수(일본 북구슈대학)는 일본 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혐한류(嫌韓流)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보고를 하였다. 바로 박진영 씨가 우려하고 있는 혐한류에 대하여 민족주의에 편승한 한류의 이상증후를 통해 일본 안에서 한류를 지속하는 데 있어서 한계와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이 날 진행된 종합 토론에서는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류가 과연 얼마만큼 한국 문화의 진수를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상업화된 신자유주의 물결에 편승하여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회의적이었다. 과연 한류의 원형을 찾아들어 갈 때에 지금 만연되어 있는 ‘한류’라고 하는 것이 한류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道)’란 말이 함부로 쓰이고 이미 ‘도’답지 않는 것을 도라고 한 데 대하여 노자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 했듯이 ‘한류는 한류가 아니다’라는 언설이 나올 만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류’에 대한 찬반 논의는 정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류에서 ‘한’을 제거하자는 것은 ‘도가도비상도’에서 도 자체를 제거하자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진정한 도를 ‘상도(常道)’ 혹은 ‘대도(大道)’라고 하였으며, 《도덕경》 82장의 내용은 모두 도의 참모습을 찾자는 것이지 도 자체를 버리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지금 박진영 씨의 발언을 두고 찬반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논객들이 어떤 한류의 도는 버리고 어떤 한류의 도는 찾자는 것인지 불분명한 것이 안타깝다. 어린아이를 목욕시키고 구정물을 버릴지언정 대야 속의 어린아이마저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로켓이 일단 궤도에 진입한 다음에는 발사시의 추진체를 버려야 한다. 그것으로 추진이 되었지만 어느 단계에서는 그것이 짐이 되기 때문이다. 한류에서 ‘한’의 민족주의가 추진체가 되었지만 그것이 짐이 된다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원숭이가 병 속에 있는 바나나를 집으면 손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것을 놓으면 손은 빠져 나오지만 바나나는 꺼내지 못하듯이 한류의 한이 이런 역설에 걸려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일은 한류의 근원을 찾아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가질 것인가의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이 만약에 로켓 자체라면 이를 버리자는 주장은 도 자체를 버리자는 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이 과연 한류의 덫인가 돛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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