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전개의 새 지형도 제시한 역작

최병헌 외 지음
《한국불교사연구 입문》
(상, 하)

이 책은 최병헌 교수와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한국불교사 전공자들의 논문을 총 2권의 분량으로 모은 논문집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총 28명의 저자에 의한 논문 31편 각각은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연구의 현황과 그 주요 쟁점, 또한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를 각각 다루면서, 전체적으로 총괄적이고도 통일적인 형태의 한국불교사 연구의 현황 보고 내지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방향 제시를 의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사 연구와 불교사에 대한 연구사는 물론 서로 다른 연구 영역이지만, 서로 간에 불가분의 영향관계가 있다. 연구사를 살펴보고 이전의 작업을 되돌아보아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불교사에 대한 현재적 이해와 인식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자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불교사 연구의 현황을 인식하고 이해함으로써 한국불교사에 대해 최근에 나온 어떤 한국불교 연구서보다 더 많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한국불교학계를 돌아보건대 1970~80년대의 뜨거웠던 한국불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해외에서 또는 국내에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와 티베트어를 훈련받은 소장 학자들이 지난 이십 년간 학계로 유입되면서 급증한 인도·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대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전의 불교학 연구가 한문으로 쓰인 불교문헌에 전적으로 의존하였음에 비해, 이제 다른 불교 고전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기관이 활발하게 세워지고 따라서 많은 차세대 젊은이들이 그전에 손대지 않았던 불교 연구 자료에 자신의 학문적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국내의 한정된 연구 인력 풀을 고려할 때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음을 객관적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재 학계의 동향을 고려하건대 상, 하 양 권으로 한국불교사 전체를 망라하는 이 역작이 지금 출간된 것은 앞으로 한국불교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가져오고 학문적 균형을 이루는 데 더할 수 없는 공헌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많은 장점 중에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최병헌 교수는 자신이 최근 십 년간 꾸준히 작업해 온 근대 식민지 시대의 한국불교 연구 성과의 결정체를 특유의 유려하고 강력한 문체로 여과 없이 펼쳐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불교사학계의 최고봉으로서 그동안 그분이 축적한 많은 지식과 통찰이 첫 네 편의 논문에 고스란히 들어 있으니 진정 이 책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한국불교사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해 줄 연구서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모두에게는 감로수와 같다고 하겠다. 최병헌 교수는 논문 속에서 자신이 보는 한국불교사 연구의 관점을 밝히고 그에 기반해 현재 불교학 연구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불교사와 관련된 문헌과 연구서들을 상세히 거론하고, 18~19세기의 전통적 불교사서와 근대 불교사학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한국불교사 연구에 이르는 근현대 불교사 전체를 넓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개와 현황에 대해 그의 날카로운 비판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최병헌 교수는 현재 한국불교학 연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객관성을 상실한 호교론적 연구, 특정인물의 선양사업과 학문연구를 혼동하고 법문을 학문으로 모호하게 하는 태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불교연구가 탈정치적이고 밝은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서구적 종교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학계의 사상사 연구방법론의 부재는 그의 비판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는 자신의 불교사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국불교사학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역사의식의 정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70쪽) 또한 “한국의 불교사학은 자기의 불교 전통에 대한 이해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현재의 불교철학과 문화의 계발 과정과 궤도를 같이하여 발전하는 것이며, 현재적인 불교 발전의 한 고리로 존재하는 것이다.”(70쪽)이라고 한다. 즉 역사 연구는 철학과 문화 연구와 병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글은 ‘한국불교사의 체계적 인식과 인식방법론’이다. 1970년대 한국 사상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서 한국불교에 대한 근대적 의미의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 한국불교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는 꾸준한 시도가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비판도 또한 등장하고 있다. 그가 이 논문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소위 한국불교의 특성론으로 제창되어 온 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이다. 이것은 일본 식민지 시대 불교 지식인들이 일본의 식민지 사학에 대항하기 위해 제창한 것으로 그 시대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특히 통불교론은 일본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그것으로 일본불교에 대항하려던 당시 지식인들의 고충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이 한국 근대 불교사학이 간직한 역사 인식의 모순과 한계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해방 후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호국불교론이 통불교론과 더불어 다시 등장하는 배경에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병현 교수는 따라서 ‘호국’ 또는 ‘통불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한국불교사에서 국가와 불교의 관계,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제창한다. 한국불교사의 몇 사례만을 모아 이것을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비학문적인 태도이며 이전의 한국불교 특성론의 모순을 다시 반복하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최병헌 교수의 주장은 곧, 한국불교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는 꾸준한 시도는 짐짓 민족주의 담론으로 흐르기 쉬우며, 문화 교류와 습합의 역동적 과정을 간과하고 하나의 문화에는 고유 불변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 에센셜리즘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현재 한국불교 내에서 차지하는 선종의 비중을 생각할 때 전체 31편의 논문 중 단 한 편만이 고려시대의 간화선에 배정되었음은 현재 한국불교학의 제 분야를 골고루 다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글의 초점은 전문적인 연구사 작성에 있었기에 한국불교사 자체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기대하는 독자들, 한국불교사 이해의 길라잡이로 삼고자 할 독자들에게는 다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2008년 8월의 최병헌 교수의 서울대 국사학과 정년퇴임을 앞두고 기획되었다가 2013년 9월에 출판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였기에 연구사 서술에서 필수적인 시의성이 다소 감소되었다. 최근년 한국불교사 연구의 성과로 꼽히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더 넓은 불교사 맥락 속에서 한국불교사를 다시 인식하고자 하는 연구들, 식민지 시대 한국불교에 대해 일본 측의 자료를 사용한 새로운 연구들, 또는 티베트어 자료를 통한 원측 사상 연구 등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일에 걸쳐 이와 같이 28명의 많은 학자들의 협업에 의해 하나의 통일적인 내용의 연구사를 쓰는 것은 절대로 용이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록 논문들 간의 분량, 서술 방법, 그리고 체제에 들쑥날쑥한 점이 있는 것은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상세한 참고문헌을 제공한 필자도 있고, 자신의 저술과 논문 몇 편만을 소개한 저자도 있다. 대부분의 필자들은 연구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였지만, 어떤 저자는 연구사 대신 불교사에 대한 자신의 이전 연구를 되풀이한 경우도 있다. 서양의 한국불교사 연구는 그 심도와 다루는 범위에서 좀 더 보완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서양의 한국불교 연구와 이해에 대해 한국 학자들의 오해와 불신을 낳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의 불교사 연구의 지평을 한 단계 높이는 이 귀중한 시도를 통해 한국불교의 전개 과정에 나타난 개개의 양상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그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국불교의 산맥과 강을 표시하는 새로운 지형도가 마침내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불교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과도 같다. 이 책은 한국과 한국인의 역사적 뿌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훌륭하고도 신뢰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다음은 한국불교사연구입문에 수록된 논문의 목록이다. 책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

《한국불교사연구입문》 목차

(상권)
제1부: 한국불교사의 새로운 이해
◇ 근대 한국불교사학의 전통과 불교사 인식 / 최병헌(서울대 국사학과)
◇ 한국불교사의 체계적 인식과 이해방법론 / 최병헌(서울대 국사학과)
◇ 한국의 역사와 불교−사회전환과 불교변화 / 최병헌(서울대 국사학과)

제2부: 고대불교
◇ 불교 수용 이전과 한국의 전통종교 / 나희라(경남과학기술대 교양학부)
◇ 한국의 토착종교와 불교 / 서영대(인하대 인문학부)
◇ 고대의 불교와 국가 / 신동하(동덕여대 국사학과)
◇ 원효의 생애와 사상 / 남동신(서울대 국사학과)
◇ 화엄사상 / 정병삼(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 신라의 유식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 최연식(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 발해불교 / 송기호(서울대 국사학과)

제3부: 고려불교 Ⅰ
◇ 고려시대 법상종의 연구동향 / 토니노 푸지오니(이탈리아 외무부)
◇ 고려 후기의 신앙결사 / 채상식(부산대 사학과)
◇ 고려 후기의 임제종 수용과 간화선 / 인경(동방대학원대 자연치유학과)
◇ 원간섭기 고려불교에 대한 이해
                                 −고려와 원의 불교 교류 / 강호선(동국대 불교학술원)
◇ 고려대장경 / 박상국(한국문화유산연구원)

(하권)
제4부: 고려불교 Ⅱ
◇ 고려시대 불교사서와 불교사 인식
            ―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 김상현(동국대 사학과)
◇ 사원경제 / 이병희(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 고려불교와 여성 / 김영미(이화여대 사학과)

제5부: 조선불교
◇ 조선시대 불교사의 특성 / 김용태(동국대 불교학술원)
◇ 조선 후기 진언집과 불교의식집의 간행 / 남희숙(대한민국역사박물관)
◇ 조선 후기 사기(私記)의 불교학적 의미 / 이정희(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 조선시대 불교조각 / 송은석(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제6부: 근현대불교
◇ 일제 침략과 식민지불교 / 최병헌(서울대 국사학과)
◇ 근대 불교 종단 성립 / 김순석(국학진흥원 유학문화박물관)
◇ 해방공간의 불교 / 김광식(동국대 불교학술원)
◇ 근현대 불서간행 / 윤창화(민족사 대표)

제7부: 외국 학계의 한국불교사 연구
◇ 일본 메이지시기 불교의 전개와 근대불교학의 성립
                                                                    / 이태승(위덕대 불교문화학부)
◇ 일본 학계의 한국 화엄학 연구동향 / 김천학(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 일본 학계의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 / 오시카와 노부히사(규슈대 문학부)
◇ 천주교 선교사들의 한국불교 인식 / 윤선자(전남대 사학과)
◇ 서양 학계의 한국불교사 연구
                                     / 판카즈 모한(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한국학부)

 

 

조은수 /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불교철학 전공).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학위와 박사 수료). 미국 버클리대학교 박사. 미국 미시간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조교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통불교 담론을 통해 본 한국불교사 인식〉 〈범망경(梵網經) 이본을 통한 고려대장경과 돈황(敦煌)유서(遺書) 비교연구〉 등이 있고 편저로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Hidden Histories, Enduring Vitality(SUNY Press, 2011), 2인 공동 영역본 Jikjisimgyeong 등의 역서가 있다. 전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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