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을 낮과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다. 검은 하늘로 깊이 잠긴 도시 안에 얼마나 많은 여인이 숨죽여 울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 땅의 여성들은 늘 핍박의 대상이었다. 빛의 속도로 이룩해낸 경제성장이 어쩌면 인권과 문화적 성숙엔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급작스레 편리해진 생활과 풍족해진 물질이 사유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13년 10월 25일, 연합뉴스에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라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에서 〈2013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이 세계 136개국 가운데 111위로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난해(108위)보다 세 계단 하락한 것으로, 이는 아랍에미리트(109위), 바레인(112위), 카타르(115위) 등 아랍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역대 성 격차 지수 세계 순위는 2010년 104위, 2011년 107위, 2012년 108위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다.

보고서는 성 평등 수준 측정을 위해 여성의 경제 참여 정도와 기회, 교육 정도, 정치권력 분산, 보건 등 4개 분야로 크게 분류하고 이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초등 및 고등 교육기관 등록 비율, 여성 각료와 의원 숫자, 기대수명 등 14개 세부 지표로 나눠 유엔이나 국제기구 등의 자료를 종합·분석해 각국의 순위를 매겼다.
지표별 순위를 보면 한국 여성 경제참여도와 기회 지수는 118위로 지난해보다 두 계단 떨어졌고, 교육 정도(100위), 보건(75위), 정치권력 분산(86)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세계 성 평등 순위 1~3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아이슬란드(1위), 핀란드(2위), 노르웨이(3위) 등 북유럽 3국이 나란히 차지했다. 최하위 국가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차드(134위)를 비롯해 파키스탄(135위), 예멘(136위) 등이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난해 8위였던 필리핀이 5위로 탑 5에 처음 올라섰고, 중국은 지난해와 같은 69위, 일본은 4단계 떨어진 105위를 기록했다. 독일은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14위를 차지했고 영국(18위), 캐나다(20위), 미국(23위) 등이 비교적 상위에 올랐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이제 각 나라는 여성 인력을 각 분야의 지도적 위치에 어떻게 통합시켜 나갈 것인지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사고의 전환과 실천은 장래의 목표가 아니라 당장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2013/10/25 연합뉴스).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권은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한국 여성 인권의 현주소이다. 한국의 여성 인권은 기형적이다. 다른 변화들은 준비되지 못한 채로 맞은 물질적 풍요가 문화와 정신적 성숙을 박약하게 만들었다면 과언일까. 여성은 소수자이다. 선진국 후진국이라는 분별이 마뜩하지는 않지만, 굳이 어떤 사회가 나은 사회인가, 좋은 사회인가를 보려면 그 나라의 ‘소수자들의 위상’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것이 그 사회 성숙도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에는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적 소수자, 가난한 자가 속한다. 소수자를 양적 소수자와 질적 소수자로 나눌 수 있는데 노인과 여성과 가난한 자는 ‘질적 소수자’에 속한다.

지나친 경쟁과 가치철학 부재의 교육, 만물은 순환하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 대신 그저 이기적인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만이 잘사는 삶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의 팽배가 끝내 소수자들이 발붙이고 살 수 없는 땅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회가 이들 소수자에게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복지는 어떠하며, 국민이(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수자를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올여름, 어느 단체가 주관한 성매매 합법화 토론에 발제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진보적 성격을 가진 단체원들이었고, 참석한 인원의 성비는 남자 대 여자가 대략 5:1 정도였다.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인정해 최소한 ‘노동자로서의 권리’인 최저임금보장 및 합법적 진료 수혜를 보장하자는 것이 발제 내용이었다.

이 땅은 극락도 천당도 아니다. 성매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할 수 있었다면, 매춘이 인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금지하면 불법적으로, 음성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성매매이기에, 엄중한 제도하에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성매매 여성이나 남성을 ‘성노동자’로 인정해 이들의 인권을 법으로 보장해 주자는 생각이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이 그들을 온전한 평등과 인권보장을 담보해 낼 수 없다. 성매매 합법화를 통해 그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회 인식이나 사람들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을 것이다. 법적 보장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런 차갑고 차별적인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정말 그들을 불법 사각지대로 내모는 꼴이 되는 것이다.

발제하면서 알게 된 것은 ‘진보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조차’ 성매매자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 또는 꺼리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참석자 중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성매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성매매를 노동이나 직업으로 법제화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류, 성매매 여성 중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사람들만 보호하자는 부류 등등. 한편 합법화에 아예 거부감을 느끼는 부류는 성매매 합법화로 인해 청소년들이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합법적 루트를 열어 놓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석자 중에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물론 그중엔 불교 신자들도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자비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의 발등에 입을 맞추는 것이 자비이고 사랑이 아닐까.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구가한다고 해도 우리 내면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설 수 있는 정신문화의 성숙함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질적 소수자인 여성의 인권은 결코 세계 최하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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