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땅 미얀마. 고립과 통제의 고단한 날들을 견디면서도 부처의 미소를 잃지 않는 나라. 올드바간의 일몰 풍경은 신비롭다 못해 치명적이다. 들판 가득 끝없이 서 있는 탑들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불경에 귀 기울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달그락 달그락 마차들의 말발굽 소리만이 고요하게 어둠 속으로 나직하게 깔린다. 저녁노을 속에 붉게 물들어가는 파고다의 니르바나(nirvāna)를 만난다. 찬란한 불교 유적 속에서 ‘론지’라 불리는 전통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들, 강렬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백단향 가루인 ‘다나까’를 하얗게 바르고 다니는 아이들, 빨간색 가사를 두른 승려들의 긴 탁발 행렬과 그 행렬을 맞아 보시공덕을 짓는 눈빛 고운 사람들이 있다.

보시(dāna)란 무엇인가. 남에게 베푸는 행위를 일컫는다. 어린아이였을 때 시골집 대문에 거지가 오면 할머니는 늘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 거지들은 부처님이 몸을 바꾼 모습이니 곡식을 듬뿍 떠다 주거나 밥상을 잘 차려 주어야 한다고. 보시를 하든, 구경을 하든, 기도를 하든, 미얀마의 성지에 들어가려면 모두 신발을 벗어야 한다. 물론 나도 맨발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가죽이나 종려 같은 나뭇잎,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로 샌들을 만들어 신었고 파라오는 금신을 신었다. 샌들을 신는 것은 신관, 왕, 귀족 등에게 허용되었던 특권이었지만, 자기보다 고위자 앞에서는 신을 벗었으며 성역에서는 신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미얀마의 모든 사원과 파고다는 맨발만 허용한다.

미얀마의 건축물은 종교와 왕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사원, 파고다, 왕궁은 그림, 목각, 조각 등의 뛰어난 예술적 스킬을 보여준다. 그중 ‘황금의 모래언덕’이라는 의미를 지닌 ‘쉐지곤파고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소이다. 기원전 585년, 어느 두 형제가 고타마에게서 얻은 머리카락 여덟 가닥을 이곳에 묻고 탑을 세운 것이 기원이다. 파고다 건축양식의 기초가 된 이 건물은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아나우라타 왕 때 건축하기 시작해 다음 왕인 짠싯타 왕 때 완공됐다. 과거 식민지 역사를 말해주는 영국풍 건물 사이로 황금빛 탑이 보인다. 2,7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미얀마 사람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준 불상에 부채질하는 사람들을 본다. 곡진한 눈빛으로 불상에 부채질하며 하나의 성역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만달레이에 도착하자마자 마하간디용 수도원으로 가서 내일 ‘보시 일정’에 대해 물었다. 그곳에 보시하려면 일 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뜻한 바 의지를 말하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코리아에서 왔습니다.”라는 대답에 정성이 보였던지 참여해도 좋다는 즉석 허락을 받았다. 드디어 점심공양 의식에 참여해 보시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다음날 점심에 맞춰 수도원에 도착하자 이미 서 있던 보시자들 줄 맨 앞자리에 나를 세워준다.

뗑! 식사 시간을 알리는 묵직한 타종 소리와 함께 물밀 듯이 스님들이 들이닥친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천여 명의 스님들께 한국산 비스킷을 일일이 바루에 넣어드린다. 잠시 실수로 비스킷 하나를 떨어뜨렸다. 허리를 굽혀 줍는 사이 어린 사미승 하나가 과자를 받지 못한 채 휙− 지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계속 밀어닥치는 스님들의 바루에 비스킷을 넣어드리면서도 그 어린 사미승에게로 내 마음은 온통 달려가고 있다. 공양시간에 양옆의 친구들은 색다른 과자를 먹고 있을 텐데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 마음이 오죽이나 먹고 싶을까? 그날 내 얼굴에는 부처의 미소가 흘렀던가? 그러나 돌아오는 내 맨발 감촉에는 천 명에게 보시한 충만감보다 한 명에게 보시 못 한 아쉬움만 대롱대롱 매달려 따라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차를 타고 달리는 거리에서 신기한 장면이 내 눈을 확 끌어당겼다. 한 마장쯤 지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투박한 항아리들! 아름드리 나뭇가지 사이에 안정감 있게 놓여 있거나, 그늘 집을 지어 뚜껑까지 모신 것을 보니 분명 신묘한 그 무엇이겠다. 그렇다면 무슨 신당일까? 아니면 도대체 저 작은 집 속에 들어 있는 항아리들은 무엇에 사용되는 것일까? 항아리가 하나에서, 다섯 개까지 있는 곳도 있다. 맨발로 사원을 걸을 때에도 내내 화두는 항아리였다.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소원이 있을 때, 한 집안에서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항아리를 보시한다고 한다. 매일 옹기항아리를 깨끗이 청소한 후 찰랑찰랑 먹을 물을 가득 담아놓는 의식이다. 장날이나 학교 소풍 가는 날은 물을 여러 번 채워 넣는다고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정갈하게 몸을 닦고 천상수를 길러가는 아낙의 모습이 보인다. 때를 놓칠세라 나는 아낙을 따라 샘터에 간다. 내 마음의 차양 아래 나도 항아리를 하나 놓았다.

이곳 ‘물 보시 풍습’에는 불교의 ‘물 보시 10공덕’이 들어 있다. 물을 보시하면 첫째 장수하고, 둘째 아름다워지고, 셋째 부유해지고, 넷째 강인해지고, 다섯째 두뇌가 명석해지고, 여섯째 마음이 깨끗해지고, 일곱째 일이 잘 풀리고, 여덟째 드높아지고, 아홉 번째 덕을 이루고, 열 번째 성공적인 여행이 된다고 한다. 이런 물 공덕을 위해 한 가문에서 물동이를 설치하면 매일 아침 새 물을 채워 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사망하는 날엔 자손들이 대를 이어 지킨다. 먼지 많고 더운 지방에서 갈증 해소에 이보다 더 좋은 보시는 없을 듯했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표주박에 버들잎 한 잎 띄워 권하던 우리네 우물 인심을 만난 것 같아 정겨웠다.
젊은 날 내가 가둬놓은 물의 속성은 ‘우유부단’ ‘비겁’이었다. 현존과 정면 타결하지 못하고 비켜 흐르면서 몸을 바꾸는 모습이 그렇게 비쳤다.

그러나 나이 들며 물처럼, 물의 육담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영육의 자존을 다 버리고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맞추는 삶, 그 겸손한 삶이야말로 저물 무렵의 숲 속에서 새벽을 채비하는 나뭇잎 위의 이슬방울이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할 한 방울의 사랑, 즉 보시의 기술은 사랑의 기술만큼이나 필요하다.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베풀면 ①기쁨을 두 배로 받고 ②모르는 새 친구를 얻으며 ③‘나’를 높여주며 ④마음의 문이 열리고 ⑤상처가 회복되고 ⑥행복한 삶이 되며 ⑦인격이란 옷을 입는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팔만사천 은유의 보시공덕을 만난 것이다. 왜 육바라밀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중에 ‘보시’를 벽두에 놓았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영원한 진실을 염원하기 위해서는 보시의 근본 공덕이라는 성찰과 수행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한적한 길가, 마지막으로 본 물동이의 심해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달려나온다. 어머니 뱃속의 따뜻한 생명수, 계곡을 흐르는 천상수, 변함없이 몸을 바꾸며 사람의 눈 속을 흐르는 어떤 강물을 생각한다고.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