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고행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 인도 여행길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물론, 이른 새벽에 새소리와 경전을 외는 노랫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들려올 때마다 성스러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내 발길은 허공 위를 걷는 듯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부처님께서 최초의 설법을 하셨다는 사르나트(녹야원)에는 잡풀만이 무성했고, 관광객들은 비둘기 사이를 기웃거리거나, 부처님의 가호 대신 원숭이를 피하면서 회랑을 돌고 있었다.

그렇게 녹야원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다 나는 매대에서 휴대전화기 크기 정도의 반전각 부처님상을 발견했다. 작은 불상은 붉은 진흙으로 만든 것이었다. 연꽃무늬가 도드라진 좌대에서 정진하고 계신 불상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고,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부처님의 후광과 은은한 미소가 아수라 같은 이곳을 건너다보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기껏해야 명함판 크기의 부처님상이었는데 그건 내가 이제껏 본 어떤 부처님상보다 생생했다. 금방이라도 입을 열어 목소리를 들려주실 것 같았다. 온화한 목소리로 내게, 아니 이 세상에 설법을 하실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잘 포장해서 가방에 넣었다.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채로 맞닥뜨린 가슴이 차오르는 경험이었다.

수년 전의 일이다. 아이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가만히 있는 것이 편치 않아 기도 삼아 절을 열심히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돌덩이로 빚어 만든 저 불상, 저 돌덩이 앞에서 내가 무슨 해답과 무슨 원을 구하려는가 하는 자책 어린 의심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어느 절에 가든지, 탑이라든가 불상에 서려 있는 그 ‘무엇’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불상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경주에 갔을 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남산의 불상을 오래도록 바라보았고, 화순에 갔을 때는 운주사의 일그러진 불상과 아직 일어나지 못한 와불, 그리고 암벽 불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영천 거조암의 오백나한 앞에서도 혹 부처님의 설법이 흘러나오는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좀처럼 곁을 주시지 않았다. 창살 너머로 돌아앉은 각양각색 나한의 어깨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설봉산 비탈에 서 있는 미륵불상을 보러 간 적도 있다. 아직 봄이 채 오지도 않아, 불상은 눈석임물과 얼음바람 때문에 어깨를 떨고 있음이 확연해 보였다. 추위에 떨면서 정진하고 계시는 부처님의 표피에서 이상한 전율을 느꼈던 것일까. 불상이 돌덩이만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나의 욕망이 얼마나 아프고 큰 것인지 추위에 떨고 있는 부처님께 무엇을 달라고 간구하는 이 어리석음이라니!

늘 눈으로 확인해야 그 무엇을 믿을 수 있을 거 같다는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산봉우리만 한 불상을 세우고 번쩍번쩍 금칠을 하는 것일까? 부처님이 남기신 팔만사천 법문이 불상보다도 더 확실한 가르침인데. 도저히 무거워 옮길 수 없는 법을 차마 말로 옮길 수 없구나, 너 스스로 깨달아 보아라, 하고 그냥 입 다물고 계시는 것이 아닌지. 사시사철 천년 만년 땅을 깔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침묵 같은 것.

그렇다면 내가 녹야원에서 구한 이 작은 불상은 너무 가볍지 아니한가. 너무 작지 아니한가. 그래도 나는 이 작은 불상을 서재에 모셔두고 마음의 향불을 피워올린다. 그 작은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두 손을 조아리고 두 다리를 들어 꼬고 앉아서 정진하고 계신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저 미소를 보낼 때, 가섭처럼 나도 그냥 미소 지어 볼까 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환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의심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불상을 보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불상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무슨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향나무로 만든 불상은 향나무이고, 전단나무로 만든 불상은 전단나무이고, 돌로 빚은 불상도 애초에는 돌이었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아니, 깨달았다는 표현이 너무 거창하면 그냥 향나무, 전단나무, 돌이 여기에 있다는 정도로 해두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사람이 불상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백장암 선방에서 잠시 도반들과 앉아 있었는데 산봉우리로부터 달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달빛에 홀렸던 것일까,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던 것일까, 벌레 소리에 놀랐던 것일까. 옆의 도반들이 돌 같았고, 그림자 같았고, 그리고 마침내 불상 같았다. 그냥 검게 앉아 있었다. 그들의 내장이 없는 것 같았고, 피가 흐르지 않는 사물 같았다. 옆의 도반처럼 앉아 있던 내 자세를 풀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고요함에 들지도 않아서 무섭고 지루하고 두려웠던 경험이 있다. 새벽녘, 자세를 겨우 풀고 내가 말했다. 당신들이 불상 같았다. 그랬더니 당신은 돌 같았어, 그러는 것이었다. 그래 돌처럼 바보 같고 돌처럼 생각이 캄캄하고 돌처럼 입이 무겁고 돌 같이 생각이 변치 않고, 돌처럼 숨소리 없이 숨 쉬다가 돌 속으로 들어갔으면…….

녹야원의 불상에는 먼 여행에서 모셔온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한국에 태어난 내가 인도 녹야원 매대에서 하필이면 이 조그마한 부처님상을 모시고 온 것에는 분명 우주의 섭리가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우주의 섭리가 내 신심과 회심의 길잡이가 되어 준 것은 아닐까. 부처님은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고도 한 법문도 설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모든 법은 전해 들었지만 그 법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중생을 위해, 만 개의 불상은 더 세워져야 하는 걸까.

나는 오늘도 녹야원 부처님상 아래 두 손을 모으고 경외심에 젖는다. 하지만 어쩌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욕망과 어리석음과 성냄으로 펄떡거리는 진짜 부처상이 우리 집에도 들끓고 있으니, 그 부처상이 살아 있는 생불(生佛)이려나? 그 생불들과 불상 사이, 그곳이 내가 그날 달빛 아래 숨 쉬고 있던 그 자리, 그 자리가 나의 중심자리이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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