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종종 글이나 말을 통해 종교의 쇠퇴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곤 했다. 종교가 이토록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가다가는 조만간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박물관의 유물 같은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게다가 몇몇 종교가 시대에 잘 안 맞는다거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서 쇠퇴할 위기라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함께 그런 위기가 닥쳐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격하고 터무니없어서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름대로 근거가 없지 않다. 대학교수로서 늘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동향을 보고 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내가 붙박이로 담당하고 있는 한 교양과목은 신입생에게 수강 우선권을 주는 과목이다. 그래서인지 대개 150명으로 제한을 두는 수강생 중에 100명 가까운 인원이 신입생이다. 그 강의를 몇 해 계속해서 담당하면서 매년 새로운 신입생들을 접하고 전해의 신입생들과 비교를 할 수 있다 보니까, 요즘 그 나이 청년들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추이를 좀 알 수 있을 듯하다. 흥미롭게도, 매년 꽤나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네들의 생각을 총체적으로 안다는 건 아니다. 그 강의에서 다루는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그네 생각의 일단을 관찰할 뿐이다.

이 강의는 세계의 여러 종교가 인류에게 어떤 지혜를 주었는지 개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세계종교를 다루는 강의는 교양과목으로 이것 외에 또 따로 있고 전공과목으로도 개설되어 있어서 여러 종교를 두루 비교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의에서는 특히 종교의 지혜에 초점을 둔다. 교과목의 목표가 단순히 그 지혜를 교과서와 강의를 통해 배워보자는 데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러 종교에서 제시해온 지혜가 오늘 여기서 우리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이 교과목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니까 이 과목의 은근한 의도는 종교가 인간의 삶에 굉장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지혜를 제공해준다는 점을 학생들이 절실하고 진지하게 느낄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학기 내내 3~5개의 글쓰기 과제를 치르는데, 첫 글쓰기 과제에서는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특정 종교 신행에 참여하는지 여부, 이 과목을 수강하는 이유, 종교에 대한 나름의 생각 등을 자유롭게 피력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학생들의 종교관에서 갈수록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우리 세대에서는 종교에 관한 교과목을 수강한다면 그것은 대개 뭔가 심각하고 절실하고 진지한 실존적인 문제를 붙들고 씨름할 때 종교사상으로부터 그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가 교수로 부임하여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초기의 학생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좀 새로운 분위기가 살금살금 엿보이기 시작했다. 종교가 훌륭하고 중요한 삶의 지혜를 제공하면서 인류문화를 이끌어온 공로를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동참하고 싶어서 종교학 과목들을 수강한다는 얘기에는 대체로 변함이 없다. 그런데 간혹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언급도 나타나게 되었다. 얼추 돌이켜보면 2001년의 이른바 9·11 테러사건이 하나의 큰 계기가 아니었나 싶지만,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은근히 성장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종교는 원래는 훌륭한 것인데 맹신과 광신, 종교집단의 호전적 배타성 등등 몇 가지 부정적인 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식의 견해가 학생들의 글에서 나타났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분위기가 아예 반전되었다. 종교는 워낙 사회적으로 문젯거리인데, 그래도 예전 한때는 인류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지식인으로서 종교에 대해서 좀 알고 있어야 하겠다는 식의 태도가 주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종교에 심취해 있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 가족과 이웃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왜 그러는지 좀 알아봐야 하겠어서 수강한다는, 꽤나 시니컬한 얘기도 심심찮게 접한다. 이제는 이를테면 100명 중 90명쯤은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종교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들어오는 학생은 나머지 소수뿐이다.

특정 종교의 신행에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도 예전보다 좀 줄었다. 또한 그런 학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종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종교인이어서 자신도 태어나면서부터 그 종교의 신행에 참여하게 된 이른바 ‘모태신앙’의 학생들에게도 자기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요즘 수강생들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종교는 워낙 합리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각자의 믿음일 뿐이다. 과학적 지식과 배치되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걸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그런 각자의 믿음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 싸워도 아주 격렬하게 싸운다. 급기야는 테러와 전쟁의 원천으로서 국제정세의 불안한 변수이다. 국내에서는 종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고 같은 종교 안에서도 교파 사이의 분쟁이 심심찮게 벌어지는데, 서로 비방하기도 하고 세력 다툼에 매진하는 모습이 마치 기업체나 장사꾼들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니 종교도 자기들의 세력과 수익을 위해 다투는 이익집단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어느 종교에서나 신행의 대종을 차지하는 게 기복 즉 복을 비는 것이다.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런 이기적인 소망에 있는 것 같다. 성직자들이 근엄하면서도 자상하고 초연한 모습 뒤에 감추고 있던 비리와 세속적이고 심지어 저속한 모습을 들키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런 불편한 진실을 고상한 포장으로 덮고 있는 게 종교이다.

요즘 몇 년 사이에 부쩍 노골화된 젊은이들의 회의적인 종교관을 요약해보았다. 이걸 보면 장차 종교의 공멸까지도 걱정케 된다. 그나마 세속적인 동기만으로는 불가능한 거룩한 수준의 희생과 봉사, 자기수련 등의 사례에 대해서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것을 보면, 미래 세대의 인류에게도 종교가 의미 있고 가치 있을 수 있는 불씨가 아직 살아 있기는 한 것 같다. 과연 종교의 미래는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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