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 개념의 철학적 논의, 더욱 진전시킬 터”

신규탁 교수는
●1959년 경기 이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일본 동경대학 중국철학과에서 중국철학, 그중에서도 화엄사상과 선사상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이래 봉선사 월운 강백과의 인연으로 화엄교학 연구에 뜻을 두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 모교인 연세대학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중국철학사, 화엄교학, 선불교 등을 주로 강의하고 있다.
●신행 활동으로는 관악산 성주암에서 약 12년 동안 신도들을 위한 경전 강의를 첫째, 셋째 일요일에 맡아 하고 있다. 학회 활동으로는 선학회와 정토학회의 편집장을 맞고 있으면서, 한국동양철학회,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정토학회, 불교학연구회 등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사회 활동으로는 한중일교육문화교류협회의 이사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저서와 역서로는 《선학사전》 《벽암록》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증보판>》 《선과 문학》 《화엄과 선》 《때 묻은 옷을 걸치며》 《선문수경》 《한국근현대 불교사상 탐구》 《원각경^현담》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우수연구실적’ 표창 및 ‘우수강의 교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간의 나의 불교 연구를 돌아보면, 그것은 조선 후기 이래 정착된 소위 ‘강원’의 교과과정에서 나오는 경론이나 어록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금강경》 《대승기신론》 《선문염송》 《경덕전등록》 《도서》 《절요》 《선요》 《서장》 등이 그것이다. 한자로 기록된 원문과, 그 원문에 대한 여러 화엄 종사님들의 주석서를 탐구해왔다.
나의 불경 독서와 연구가 이런 텍스트 주변을 맴돌게 된 것은, 봉선사의 월운 강백을 만난 것이 결정적 인연이다. 그때가 1978년도의 일이다. 당시 봉선사에는 공식 ‘강원’이 종단적으로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훌륭하신 강사 스님이 계신 인연으로 사중의 대중들이 강을 청해 듣고는 했다. 이렇게 강이 열리면, 승속을 막론하고 모두 청강을 할 수 있었다. 승속이 함께 청강하는 전통은 운허 큰스님 때부터였으니, 그 역사가 꽤나 길다.
잘 알려진 대로, 이상에 거론한 여러 불경은 대부분이 화엄종사, 그중에서도 당나라 말엽 규봉종밀 선사의 주석서가 근간을 이룬다. 거기에다가 송나라 시대의 장수 자선좌주나 진수정원 법사의 주석이 첨가된다.
경을 주로 읽다 보니, 선 문헌에 대한 강의는 거의 듣지 못했다. 《전등여적》이라고 해서 운허 큰스님께서 《경덕전등록》을 요약해 놓으신 강의 노트를 배운 적은 있었다. 본격적으로 선 문헌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해인사 백련암의 원택 스님 덕분이었다. 《선림고경총서》를 윤문할 수 있는 기회를 원택 스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선 문헌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불교 연구에 은혜로운 스승 두 분을 꼽으라면 월운 스님과 원택 스님이시다. 월운 강백을 통해서는 화엄교학을, 원택 선사를 통해서는 선 문헌을, 각각 읽을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이렇게 화엄과 선 관계의 문헌을 읽는 과정에서, 두 문헌들 사이의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상하고 다양한 연기 현상들이 ‘한마음’ 위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록 ‘한마음’이라고 한글로 표기했지만, 그 말에 상응하는 한자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그것을 나열해 보면, ‘본각진심’ ‘원각묘심’ ‘자성청정원명체’ ‘묘명각심’ ‘진여’ ‘본지풍광’ ‘본래 면목’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마음’은 불생불멸하면서 그 속에 무한한 덕성과 지혜의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를 신앙하고 연구하는 분들은 다 아시듯이,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라고 배우고 또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이고, 연기라고 하는데, 내가 본 책들에서는 공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 ‘한마음’이 상주불변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일변 모순처럼 보이는 이 문제가, 나의 불교학 연구 시절부터 이제까지 따라다니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든 해결해 보려는 마음에서 집필한 것이 《규봉 종밀과 법성교학》이다. ‘법성’이라는 개념을 발굴하여, 그 개념을 중심으로 불교의 다양한 이론을 정리하고 평가한 것이다.
‘법성’의 상주불멸을 논증하는 방식은 크게 두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논리학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학적인 방법이다. 먼저 논리학적인 방법은 《타르카바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편 역사학적인 방법은 조선 후기에서 현재에 전해지는 염불 가사에서 따왔다. 염불과 그 가사에 관한 연구는 봉선사 인묵어장 스님과 태고종의 능해 스님께 영향받은 게 많았다. 이번 기회에 이렇게 인연되어 주신 여러 스승님들께 참으로 고마움을 전해 올린다.
《규봉 종밀과 법성교학》을 탈고한 것은 올해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 책을 탈고한 뒤 여름 방학부터 지금껏 고민하고 있는 것은 향후의 연구 주제였다. 청량징관의 화엄사상을 정리하는 것도 나의 몫으로 남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송 대의 화엄학승들(자선좌주와 정원 법사)를 연구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송 대로 내려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청량 국사에 대한 연구는 좀 더 나이가 든 다음에 하려고 한다.
아직 미정리된 부분이 남아 있는 나의 ‘법성철학’을 공개했고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이 책으로 인해 《불교평론》에서 학술상을 주시니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법성’ 개념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논의를 더욱 탁마하여, 불교학은 물론 철학의 다양한 문제를 해석하고 확장해가는 것으로, 은혜로운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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