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웃종교에서 보내온 우정의 충고

불교를 향한 나의 우정

내가 불교를 좋아하고 석가모니를 존경하고 불교에 대해서 친밀감과 우정을 느낀다면 불교를 위해 충고할 수는 없더라도 함께 걱정하고 안타까운 맘을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오늘의 종교들을 보면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참된 친구라면 우정 어린 충고를 할 수도 있고 속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불교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 나의 어릴 적 기독교 신앙 속에 이미 불교전통과 정신이 녹아 있었다. 나는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랐는데 청소년 시절에는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다닐 만큼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글도 모르고 가는귀가 먹어 웬만한 소리는 듣지 못하는 할머니와 함께 새벽예배에 다녔는데, 설교도 알아듣지 못하고 찬송도 부를 줄 모르는 할머니가 저렇게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종교적 열심과 신앙은 새벽마다 장독대에 찬물 떠놓고 정성을 들였던 전통종교에서 온 것이고 절에 가서 시주하고 불공드리던 열심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세계 기독교인들 가운데 한국 기독교인들만 새벽예배를 드리고, 한국 기독교인들처럼 헌금을 많이 내는 기독교인들이 없다고 한다. 헌금을 많이 하고 새벽예배를 드리는 한국교회의 전통은 새벽예불을 드리고 시주를 하는 불교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신앙과 정서 속에 불교전통과 관행이 들어와 있으니 내게 불교는 낯선 종교가 아니라 친밀하고 익숙한 종교다. 오늘의 불교에도 서구문화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가 낯선 종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에 찬불가가 불리기 시작했고 도시에 절이 많이 생기면서 교회와 비슷한 일을 하는 걸 보면 불교와 기독교가 멀어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년 이전 스님들의 설법과 오늘 스님들의 설법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문화와 함께 기독교를 경험한 스님들과 그렇지 않은 스님들의 설법은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동안 믿고 따랐던 예수와 석가모니는 많은 문화·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진리 정신과 자비의 실천에서 서로 통하고 친밀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 자신도 《금강경》과 《법화경》을 읽으면서 빔과 없음의 아름답고 장엄한 진리 세계를 만질 듯이 보여주는 불교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느낀 적이 있다. 역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형성된 성경은 생동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불경처럼 보이지 않는 생명과 정신의 실재를 없음과 빔 속에서 여실하고 설득력 있게, 논리적이고 또렷하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갈등과 대립, 고난과 죽음 속에서 생겨난 기독교는 열정적이고 행동적이지만 모가 나고 편협한 감이 있다. 불교의 원만하고 심오한 가르침은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를 좋아하며 기꺼이 불교의 가르침에서 배우려고 한다. 불교에 대한 호의와 우정을 가지고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내가 공부하고 생각한 것을 나누는 것으로 충고를 대신하려고 한다.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했으면

흔히 한국교회에는 예수의 이름은 있으나 예수는 없다고 한다. 오늘 불교는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한가?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서 생명의 진리를 깨닫고 비폭력과 불살생의 가르침을 설파하며 자비를 실천했던 석가모니가 오늘 불교 속에 살아 있는가? 석가의 가르침과 실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 문명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500년 전 인도사회는 인간의 영혼 아트만과 범신(汎神) 브라만의 하나 됨에서 종교적 평안과 해탈을 경험하면서도 잔혹한 카스트 신분제도에 안주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신분 체제였던 카스트 제도는 수많은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고 억압하고 수탈했다. 이런 신분 체제를 그대로 두고 브라만과 하나로 된 영혼 아트만의 기쁨과 자유를 누린 것은 당시의 종교인들이 종교적 이기주의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석가는 단호하게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해버렸다. 자기의 영혼을 부정한 것은 자기가 자기의 목을 잘라버린 것과 같다. 이것은 종교이기주의의 싹을 뿌리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석가는 제자들과 함께 당시 인도 문명을 옭아맸던 카스트 신분질서를 거부하고 모두 똑같이 물든 옷을 입고 무소유와 탁발로 살아가며 비폭력과 자비를 실천하는 평등 공동체를 이루었다. 얼마나 혁명적인가. 인간정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사회질서와 체제에서 이처럼 철저한 혁명을 실천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석가의 삶과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인도 대륙에서 산업과 경제가 발달하고 강대국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통일제국을 이루기 위해 전쟁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때였다. 예민한 정신을 지녔던 석가는 곧 전쟁과 폭력의 피바람이 불어올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의 작은 왕국은 거대한 전쟁의 파도 위에 떠 있는 가랑잎 같은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죽은 다음에 그의 나라는 참혹하게 파멸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석가의 가르침이 개인의 탐욕과 사나운 감정과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그의 가르침과 실천은 전쟁과 폭력으로 치닫는 국가주의 문명을 치유하고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석가의 가르침과 실천뿐 아니라 기축시대에 출현한 종교들과 철학은 모두 전쟁과 폭력에 휘둘리는 국가주의 문명을 치유하고 전쟁과 폭력에서 벗어나 정의와 평화의 삶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중국의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가 살았던 시대도 국가들이 전쟁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들은 군왕들에게 인의와 도의 정치를 제시하면서 군왕들을 일깨우려고 애썼다. 히브리 종교(유대교)와 기독교도 강대국의 침략과 정복으로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 백성으로 고난을 겪던 시대에 생겨났다. 예수가 선포한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로 다스리는 나라이며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세상 나라들에 대한 대안이며 처방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그리스 사회가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달을 때 탐욕과 편견, 충동과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맑은 지성으로 바르게 생각하며 살도록 일깨웠다.

전쟁과 폭력에 사로잡힌 국가문명의 고통과 모순을 꿰뚫어본 석가는 국가문명의 탐욕과 폭력 그 밑뿌리인 탐진치를 멸하고 열반의 세계를 열려 했다. 그가 왕을 가까이하고 국가를 품으려고 했던 것은 왕과 국가를 탐욕과 폭력에서 건지기 위함이었지 탐욕과 폭력에 굴복하여 탐욕을 부리고 권세와 폭력을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었다. 몇백 년 후에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은 전쟁의 비참함을 절감하여 불교를 숭상하고 비폭력을 내세우고 윤리적 통치를 하려고 애썼다. 왕과 국가가 석가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국가에서 탐욕과 폭력의 뿌리를 뽑아서 비폭력의 자비와 진리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티베트 왕국이 불교를 받아들여 비폭력과 자비와 진리의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든 것은 다 석가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불교국가였던 아소카 왕국은 오래 존속하지 못했으며, 인도 문명을 새롭게 창조하지 못했다. 티베트 왕국은 오래 존속했지만 결국 중국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이미 전쟁과 폭력 속에 깊이 빠졌던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와서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방조하는 호국불교로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비폭력 불살생의 불교정신이 뚜렷이 드러나지 못했고 제대로 실천되지 못했다. 다만 원효는 전쟁과 폭력으로 갈라지고 찢긴 민중의 마음을 끌어안고 치유하려고 애썼다. 전쟁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백성들, 나라를 잃고 헤매는 민중들을 달래려고 무애박을 두드리며 춤추고 다녔던 원효는 참으로 석가의 제자였다고 생각한다.

불교인들의 삶과 말과 행동에서 빔과 없음의 세계, 자비와 진리의 세계가 드러나기를 바란다. 석가의 제자라면 힘자랑도 돈 자랑도 하지 않을 것이고 세력을 과시하려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유치한 교리신앙에 사로잡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고 불교의 진리를 믿고 따르면 지옥 간다고 철없는 소리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철없는 기독교인들의 꼴사나운 행태를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불교가 얼마나 의젓하고 커 보이는가! 불교가 참종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너그럽게 보아 넘기면 보는 이들이 불교를 높이 평가하고 존경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기독교인들도 참종교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불교가 참종교가 되면 기독교도 참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기독교가 참종교가 되면 불교도 참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거짓 종교 껍데기 종교가 되면 서로 망하는 종교가 되고 나라와 사회를 망하게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조롱거리가 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불신을 당하고 있다. 불교는 존경받고 신뢰받는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세력과 재력을 과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집단적인 힘,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 스님들이 폭력을 쓰고 집단적인 패싸움을 한다면 석가모니 부처님께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점을 치고 신통력을 부리는 일은 그만 해야 한다. 앞날의 일을 예견한다고 자랑해서도 안 된다. 불교는 모름을 지키는 종교가 아닌가? 영의 종교에는 신통하고 신비한 일이 있겠지만 그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것은 자비와 진리의 종교가 아니다. 점치고 신통력을 부리는 일은 점쟁이와 무당더러 하라고 하고 참종교라면 생명을 살리고 힘 있게 하는 자비와 진리만 내세워야 한다. 생명과 정신은 스스로 하는 주체다. 미래는 지금 여기서 결정되는 것이지 결정된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그러므로 결정하는 주체가 있다면 나의 나, 너의 나, 그의 나가 결정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 환경과조건, 물질과 관념, 일과 제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나’의 속은 깊고 깊어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고,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내다볼 수 없다. 내가 우주와 인생의 주인이므로 오직 모를 뿐이며 오직 할 뿐이다. 

시대정신에 충실한 불교가 되기를

석가를 만나면 석가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불교의 철저한 진리 정신은 오늘의 삶에 충실한 주체 정신이다. 불교는 지금 여기의 삶과 실천, 나의 깨달음과 관계에 충실한 종교다. 불교는 석가를 믿고 따르는 종교가 아니다. 석가는 석가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석가는 석가의 때를 살고 나는 나의 때를 살라는 것이 석가의 가르침이고 불교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깨달아 나의 삶을 옹글게 살고 미움과 번뇌가 없고 고통과 해악이 없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자는 것이 불교정신이다.

석가의 가르침을 따라 내가 나의 때, 나의 삶을 살려면 석가의 때와 나의 때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석가의 때보다 나의 때 우리의 때가 훨씬 크고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석가의 때는 어떤 때인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기축시대 이전에는 자연만물이나 동물에서 또는 왕(권력)과 국가체제에서 영원한 생명과 힘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석가를 포함해서 기축시대의 성현과 철인들은 인간 내면의 지성과 영성에서 영원한 생명과 궁극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자기 속에 영원한 생명과 가치가 있으므로 스스로 깨달으면 알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속에서 저 자신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주체적이고 개성적으로 되어서 저마다 저답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통하여 전체가 하나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축시대의 윤리를 한마디로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황금률(黃金律)로 표현한다. 달리 말하면 서로 입장과 처지를 바꿔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주체적이면서 전체적인 정신과 진리에 이르고 나와 네가 서로 통하고 하나로 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 열반에 이르라는 석가의 가르침은 이런 진리와 깨달음의 길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제2 이사야)가 살았던 기축시대는 기축시대 성현들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받아들여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민중은 비민주적 신분 질서에 매여 살았고 비과학적 숙명론과 미신에 빠져 있었고 국가와 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오늘의 시대는 민주 시대이고 과학기술 시대이고 세계화 시대다. 나라마다 헌법에 민주의 원리를 선언하고 컴퓨터와 인터넷, 손전화와 텔레비전, 비행기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가 하나로 통하고 있다.

민주 시대이므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달아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해야 한다. 과학기술 시대이므로 미신과 숙명론에서 벗어나 삶과 운명, 역사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로 살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이므로 과거의 역사와 전통에서 벗어나서 민족과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서 자유와 평등, 상생과 평화의 세계를 열어야 한다.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연락하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들의 전쟁과 폭력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전쟁과 폭력에 의존한 국가주의 문명은 이제 저물어가는 낡은 문명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대는 비폭력과 자비에 대한 석가의 가르침을 요청하고 깨달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석가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있는 그대로 배우고 가르치며 깨닫고 실천할 때가 된 것이다.

시대정신과 불교

그런데 진지하게 불교인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석가는 진화론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메바나 물고기에서 파충류가 나오고 파충류에서 포유류가 나오고 포유류에서 영장류가 나오고 영장류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진화론을 석가모니께서는 알고 계셨을까? 나는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가 모두 진화론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축시대의 성현들은 스마트폰과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인터넷을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화론도 알고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인터넷을 알고 쓰고 있다.

우리는 민주 시대, 과학 시대, 세계화 시대를 살고 그들은 비민주적 신분질서가 지배하고 미신과 숙명론에 빠지고 국가와 민족의 좁은 틀에 갇혀 살았다. 그들의 정신과 인격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크겠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만큼은 그들의 시대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다.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그때보다 나아간 시대다. 그들의 시대에는 민중이 역사와 사회를 형성하는 주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생각은 근대에 비로소 생겨났다. 언제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가 민중이 역사를 형성하고 창조하는 주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석가가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고 공자가 민본을 말하고 예수가 민중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고 소크라테스가 대중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주장했지만, 민중을 신뢰하고 민중을 앞세워 민중의 나라를 세우는 운동을 펼치지는 않았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난한 민중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선언했지만,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라고 했지 민중이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라고 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석가처럼 스스로 생각하여 깨닫도록 맑은 지성을 가지고 또렷또렷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가 죽은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늘에서 구름 타고 다시 올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예수는 민중에게 믿고 따르라고 역설했지만 석가는 스스로 깨달아 성불하고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했으니, 이 점에서 보면 석가가 예수보다 이성적이고 현대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불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불경에 생명의 자람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가? 석가가 생명의 자람과 새로움,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대해서 직접 말한 일이 있는가? 나는 불교경전을 많이 읽지 못했고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석가의 가르침과 불경을 조금 공부하고 느끼는 것은 생명과 정신에 대한 철저하고 근본적인 통찰과 깨달음을 주지만 생명의 자람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예수와 석가를 비판하는 것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상식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처럼 생각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지난 2천 년~2천5백 년 동안 인류 역사는 진전을 이루었고 배운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의 말과 지식으로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 석가는 사람 속에 불성이 있다고 했고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 천자(天子)라고 했다. 이것을 우리 시대의 말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물리천문학자들은 사람 속에 우주의 나이테가 들어 있다고 한다. 사람 속에는 우주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생명진화에 비추어 말하면 사람은 37억 년 생명진화 끝에 나온 존재다. 사람의 몸속에 37억 년 생명진화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 사람의 맘속에 2백만 년 인류 역사가 새겨져 있다. 5천 년 민족사가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사람의 몸과 맘속에는 신성한 얼과 혼이 살아 있다.

만일 석가가 진화론을 알았다면 벌레, 짐승, 사람이 죽어서 벌레가 되기도 하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윤회의 가르침 대신에 내 몸과 마음속에 있는 생명과 정신의 바닷속에서 내가 벌레가 되기도 하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현대인들에게는 그렇게 말해야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질 것 같다.

민주 시대, 과학기술 시대, 세계화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게 그 시대의 말과 글로 생각하고 그 시대의 지식과 감정과 정신으로 깨닫고 표현하고 소통해야 한다. 염불과 설법을 우리 말과 글로 하면 좋겠다. 말과 글, 생각과 행동을 끊고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는 말과 글이 소용없지만, 말과 글로 표현할 때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말과 글로 표현하려는 이들이 있고 그런 시도가 불교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작업이 전면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오늘의 젊은이들이 종교의 깊은 세계는 외면하고 눈에 보이며 자극적인 화면과 놀이에만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반성, 국가주의에서 벗어나라

한국불교가 우리 시대에 참종교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유교가 한국인의 도덕과 윤리를 바로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불교는 한국인의 마음을 깊고 풍성하게 해 주었다. 한국 기독교가 그렇듯이 한국불교에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남아 있지만 그래도 불교의 진리를 맑고 알차게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일본불교는 교토학파를 만들 정도로 학문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도쿄의 아카사카 절은 기복신앙과 미신으로 범벅되어 있다. 내가 한 번 언뜻 본 것이지만 일본불교의 기복신앙과 미신적 행태는 한국불교가 맑고 건강한 종교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한국불교에는 원효와 지눌 같은 학승도 있고 위대한 선승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 시대정신에 비추어 반성해야 할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불교의 약점은 국가주의와 유착된 호국불교 전통이다. 신라의 세속오계는 화랑의 국수주의와 결합되었고, 끝없는 전쟁을 벌이면서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의 한쪽으로 오그라든 초라한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고려는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제작하기도 했다. 팔만대장경의 글자와 목판이 외적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할 힘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위기를 맞아 불교의 진리에 의지하려고 한 것은 갸륵한 일이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 절간이 넘쳐나고 요승 신돈이 왕권을 농락하더니 불교는 고려와 함께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조선왕조에서는 유학자들에게 밀려나서 억압받고 학대받는 종교가 되었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국가권력으로부터 억압과 학대를 당했으면 국가주의와 유착된 호국불교의 전통을 씻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조선왕조에서 억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불교는 왕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왕궁과 밀착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스님들이 군대를 조직해서 외적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애국의 관점에서 보면 스님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외적과 싸운 것은 의로운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비폭력과 자비의 관점에서, 불교의 본래적인 진리관에서 보면 국가주의와 결합되어서 전쟁과 살육에 참여한 호국불교의 전통은 문젯거리다.

오늘 세계는 식민지 쟁탈과 세계정복을 위해 강대국들이 벌인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세계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서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 태평양(太平洋) 시대다. 말 그대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큰 평화바다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전쟁과 폭력을 일삼던 국가주의 문명은 저물고 있다. 세계평화 문명이 동트고 있다. 한국불교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새 문명 새 시대를 열려면 먼저 호국불교, 국가주의 전통을 벗어야 한다.

석가의 가르침은 국가주의 문명의 탐욕과 폭력을 치유하고 비폭력과 자비로 새 세계를 열자는 것이었다. 전쟁과 폭력으로 인류를 고통과 죽음의 바다로 몰아넣었던 제국주의 문명은 저물고 비폭력과 자비, 상생과 평화의 큰 바다가 열리려고 한다. 이제 석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할 때가 아닌가?

한국 근현대사와 불교

한국불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떤 구실을 했는가? 조선왕조가 쇠퇴하고 멸망하면서 불교도 함께 힘을 잃고 쇠락의 길에 있었던 게 아닐까? 조선왕조로부터 억압과 학대를 받았으면 조선왕조가 망할 때는 떨쳐 일어나 불교의 진리 정신을 뚜렷이 드러내고, 고난받으며 신음하는 국민을 건져주는 일에 앞장섰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서구의 민주정신과 과학기술 문화를 받아들여 새 문명 새 나라를 이루는 데 불교가 앞장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적어도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가 되는 상황에서 불교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중심에서 이끌어 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한용운 스님과 백용성 스님이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불교의 낯을 세우기는 했지만 2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가 그것을 내세우고 자부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다행히 조선조 말기와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경허와 만공이 선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한국불교를 지켜내려고 힘썼으며, 경허와 만공의 제자들이 민중 속으로 숨어 들어가 민중의 상처받은 마음을 붙잡아주고 민중을 깨워 일으키려고 했던 것은 다행스럽고 믿음직스러운 일이다.

아쉬운 것은 그런 일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민중을 깨워 일으켜 민중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민중교육입국 운동을 일으킨 안창호와 이승훈은 삼일운동에 앞장서고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민족 신흥종교인 천도교는 민족문화 운동에 앞장서고 삼일운동을 조직적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며 이끌었다. 한국불교의 전통과 위상에 비추어 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국불교는 제구실을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많은 스님이 생명운동과 사회문화운동에 앞장서서 우리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그런 스님들과 불자들이 더욱 많이 나올 것이다. 한국불교는 종교 문화적 뿌리가 깊고 심오한 깨달음과 높은 학문의 전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 비하면 한국 기독교는 종교 문화적 뿌리가 얕고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고 신화적인 교리신학에 머물거나 번역 신학에 만족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스님이 큰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불교는 자신이 가진 위대한 잠재력과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불교가 제 능력과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한국 근현대사의 기본 성격과 내용, 방향과 의미를 깊이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근현대는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중의 자각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외국의 정신과 문화가 침입해 들어왔는데 외국의 정신과 문화를 받아들여서 민족과 민중의 주체적 자각운동이 일어난 것은 아주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서양의 기독교와 문화를 받아들인 세력이 흔히 민족정신과 문화를 억압하고 민중을 해치는 구실을 한다. 한국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특히 해방 이후에는 친미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반민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일본 식민통치 기간까지는 기독교와 서구 정신문화를 받아들인 이들이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들은 해방 후에도 민주화 운동과 산업화 운동에 앞장섰다.

서구 문화의 충격과 영향을 받아 민족독립과 민중의 자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정신과 문화가 들어올 무렵에 조선왕조는 쇠퇴하여 몰락할 위기에 있었고 국가권력은 힘을 잃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도 힘을 잃고 민중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국가권력과 지배이념의 공백기에 민중이 사회와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고 서구의 기독교와 과학기술과 민주정신을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는 동서 정신문화의 깊은 강물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였다. 서양문화가 동양으로 침입해 들어옴으로써 동서문명이 합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동서문화가 깊이 만날 수 없었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서구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미의 전통문화는 정복당했을 뿐이고 아프리카는 아직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서양문화를 받아들여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3백 년 동안 강력하게 지배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 정신문화가 깊이 들어올 수 없었다.

서구의 정치제도와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인 지식인 엘리트와 군부가 결합하여 천황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아래로부터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민중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었을 뿐이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패전 후 미 군정 치하에서 제정된 헌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은 공산화됨으로써 전통종교와 문화는 억압되고 기독교는 배척되었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동서 정신문화의 깊은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무너지고 지배종교 이념이 약해진 상황에서 서구 정신문화가 깊이 들어올 수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아픔과 슬픔 속에서 한민족은 서구 정신문화를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크게 각성하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위대한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동서 문명의 만남 속에서 한민족의 정신세계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민중의 삶 속에서 엄청난 생명과 정신의 에너지가 분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오늘 한류라고 부르는 문화운동이 생겨날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는 큰 슬픔 속에서 큰 자비가 나온다는 말이고 동체대비(同體大悲)는 큰 슬픔 속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라고 들었다. 기독교에서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서 죄악을 씻고 화해를 이루는 큰 사랑이 나오고 죽음을 이기는 부활생명 사건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나라와 민족의 큰 아픔과 슬픔 속에서 동서 문명이 하나로 되고 민중이 하나가 되어 깨어 일어날 수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와 3^1 독립운동 그리고 불교

동서 문명의 만남과 민중의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는 교육입국 운동을 힘차게 벌인 사람은 안창호와 이승훈이었다. 이들이 벌인 민중교육 운동은 삼일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삼일독립운동은 임시정부를 낳았다. 헌법 전문은 삼일독립운동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합법적 정통임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신과 철학은 삼일독립운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삼일독립운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정신적 등뼈와 같은 것이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식민지가 되는 고통 속에서 민주와 민족자주와 세계평화의 정신과 이념을 세계만방에 높이 드러낸 것이 삼일독립운동이다. 제국주의적 불의와 폭력을 넘어서 민주와 민족자주와 세계평화를 선언한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위대한 일인지 모른다. 천도교와 기독교와 불교가 함께 손을 잡고 일제의 불의한 억압과 폭력에 맞서 높은 도덕과 정신을 바탕으로 비폭력과 진리, 민족자주와 정의, 민족국가들 사이의 우애, 세계 인류의 상생과 평화를 위해 국민이 떨쳐 일어설 것을 호소했다.

그러자 200만 명의 국민이 일제의 총칼에 맞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떨쳐 일어났으니 민주이고 제국주의의 불의한 총칼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선언했으니 민족자주이고 국가들 사이의 우애와 협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내세웠으니 세계평화주의다. 한민족뿐 아니라 세계 인류의 앞길을 이처럼 뚜렷하고 확실하게 밝힌 것은 세계문명사의 큰 전환과 새로운 시작을 보여준 것이다.

삼일독립운동에 만해 스님과 백용성 스님이 민족 대표로 참여한 것은 불교를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불교인들 가운데 아무도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삼일독립운동의 중심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민족국가를 넘어서 세계평화의 길을 열어 가는 데 앞장설 면목이 없었을는지 모른다.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데, 불교가 앞장서기를 바란다.

이제 앞으로 5년 후 2019년이면 삼일독립운동 100주년이다. 한민족과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을 극복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와 세계에 정의와 평화의 물길을 열어가려면 삼일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비폭력의 힘과 지혜와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삼일독립운동을 일으킬 때는 기독교와 천도교보다 불교가 뒤졌어도 삼일독립운동의 정신과 지혜를 오늘 되살리고 국가주의적 전쟁과 폭력의 낡은 사고와 행태를 벗어버리고 세계평화와 정의의 길을 열어가는 데는 가장 앞장서기를 바란다.
  
새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기를

20~30년 전에는 인류사회가 20대 80으로 나뉘어 있어서 20%의 사람이 80%의 에너지와 부를 누리고 80%의 사람이 20%의 에너지와 부를 누린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10대 90이라고 해서 10%의 사람이 90%의 부를 누리고 90%의 사람이 10%의 부를 누린다고 했다.

그러더니 세계경제 위기를 맞고 나서는 1대 99의 사회가 되었다고 했다. 요즈음에는 0.1대 99.9의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0.1%의 사람이 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인간이 굶주림 속에서 죽어간다. 과학기술과 산업은 발달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돈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가정은 파괴되고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다.

불교인들이 0.1과 99.9의 대립을 넘어 자비행과 비폭력 진리로 새 세상을 열기를 바란다! 기독교는 서양이 주도한 자본주의 기술문명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 기독교의 품에서 자란 서구문명이 자본주의적 탐욕과 군사·정치적 권력욕에 사로잡혀 1,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서 세계를 약육강식과 파괴, 살육과 수탈의 지옥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서구문명과 기독교는 상생평화와 생명공동체의 새 문명 새 시대를 위한 발언권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식민지 백성으로 고통을 겪고 남북이 분단되어 전쟁을 치른 한민족은 새 문명 새 시대를 위한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민중과 함께 마음 밭을 갈고 닦으며 비폭력과 무소유의 정신을 배우고 익힌 한국불교는 누구보다도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상생평화의 세상을 여는 데 앞장설 자격이 있다.

현대인은 물질과 기계에 매여 깊은 병을 앓고 있으며, 마음에 병을 갖고 산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로서 철학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와 사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빔과 없음의 진리 세계를 장엄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한국불교가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에 갇혀 병든 현대인을 치유하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물질과 기계에 매인 현대인의 삶과 마음을 치유하려면 낡은 관념과 관행을 버리고 오늘의 시대정신을 체화하고 민중과 함께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상생과 평화의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불자들은 무애박을 두드리며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의 삶과 심정 속에 녹아들었던 원효의 민중불교와 모든 갈등과 대립을 하나로 화합시켰던 화쟁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위대한 선승들인 경허와 만공이 보인 기행과 파행은 그들의 인간적 한계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종교문화의 껍질을 깨고 승속의 경계를 허물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하나로 녹아들어 민중을 깨워 일으키려는 몸짓인가? 민중을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려면 민중이 불성을 스스로 깨닫고 참된 삶에 이르게 하려면 민중을 섬기는 자세로 깨우쳐야 한다. 민중을 섬기려면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민중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원효처럼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모든 이론과 교설을 회통하는 대종합의 사상과 철학을 지닌 스님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 시대는 높은 학덕을 가진 위대한 선승을 요구하는 것 같다. 동서고금의 전통과 문화가 합류하고 민주화, 과학기술화, 세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오늘의 시대에 민중의 심정과 처지에서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아우르는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지닌 스님, 교선일여의 큰 스님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 스님이 나와서 혼란과 어둠에 빠진 중생들에게 삶과 행동과 생각의 기준과 지침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이런 기준과 지침은 위대한 학자나 스님이 홀로 생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세계 인류의 심정과 처지를 헤아리고 뚫어볼 수 있는 사람만이 이런 기준과 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는 2천 년, 2천5백 년 전의 시대와는 너무도 달라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르침이 요구되는 것 같다. 어쩌면 불교의 경전과 가르침을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새 시대 새 문명을 위한 경전을 새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공자의 말씀은 더 이상 삶과 행동과 생각의 기준과 지침이 되지 못한다. 성경과 불경도 삶과 행동과 생각의 기준과 지침이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1만 년, 10만 년 후에도 인류가 불경과 성경에 의지할까? 민주 정신, 과학기술 정신, 세계정신이 사무쳐 있는 새 경전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함께 읽고 몸과 맘을 바로 잡고 곧게 세우며 삶과 행동과 생각을 이끌어줄 새 경전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교를 넘어서 기독교를 넘어서, 기존의 철학과 과학을 넘어서 새로운 정신과 철학의 세계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석가를 만나면 석가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기백과 용기를 가지고! ■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와 한신대에서 공부하고 한신대 성공회대에서 가르쳤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사상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민중신학에서 씨알사상으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등이 있다. 현재 재단법인 씨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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